파멸 예정 악녀는 연금술 카페를 엽니다

6화: 성녀의 이름은 몰라도
“그거 하나만 냄새 맡아 봐도 될까요?”
유리 상자 앞의 소녀는 대답을 기다리면서도 마카롱 쪽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낡은 망토 끝에서는 빗물이 떨어졌다. 소녀의 손은 장갑도 없이 새파랬고 손목에는 해진 끈이 여러 겹 감겨 있었다. 끈 아래로 비친 피부에는 오래된 멍이 희미했다.
엘리제는 유리 상자 안의 분홍색 마카롱과 소녀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냄새만 맡으면 더 배고파질 텐데요.”
소녀는 고개를 숙였다.
“그래도 한 번만요. 달콤한 냄새가 나는 곳은 오랜만이라서요.”
마리가 카운터 뒤에서 입술을 깨물었다. 베른은 장부를 덮었다. 표정은 평소처럼 단단했지만 손가락이 장부 모서리를 한 번 쓸었다.
“아가씨. 무료 시식은 개업일에 이미 끝났습니다.”
“알아요.”
엘리제는 작은 접시를 꺼냈다.
“그러니 무료 시식이 아니라 손님 규칙으로 하죠.”
소녀가 조심스레 고개를 들었다.
“한 입만 드세요. 먹고 속이 메스껍거나 어지러우면 바로 말하기. 그리고 다음에 갚을 방법을 저와 같이 정하기.”
“정말 먹어도 돼요?”
“그래야 냄새가 어떤지보다 몸이 어떤지 알 수 있으니까요.”
엘리제는 말끝을 흐리지 않았다. 굶주린 사람에게 달콤한 것만 쥐여 주고 만족하는 방식은 자신도 싫었다. 카페가 매번 공짜 식당이 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배고픈 얼굴을 문밖에 세워 두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거래라면 서로 덜 불편할 수 있었다.
“이름은요?”
소녀의 어깨가 움찔했다.
“장부에 아무개라고 적을 수는 없잖아요.”
한참 뒤 소녀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델이요.”
엘리제의 손끝이 접시 가장자리에서 멎었다.
원작의 성녀 이름은 세레나였다. 그 이름 하나만으로 안심하기에는 이 세계가 너무 넓었고 거짓말은 너무 쉬웠다. 더구나 소녀의 망토 안에서는 설명하기 어려운 마력 냄새가 났다. 비가 지난 흙과 새싹을 섞어 놓은 듯한 맑은 기운이었다.
“아델 양. 그럼 한 입부터 시작해 볼까요?”
아델이 마카롱을 집으려는 순간이었다.
손목의 해진 끈 사이에서 빛이 새었다.
벽의 안정석이 낮게 울렸다. 화덕 위의 동그란 마력등이 한 번 밝아졌다가 곧 어두워졌다. 아델은 놀라 손을 뒤로 감췄다.
“죄송해요. 저 때문에 그런 게 아니에요. 저는 아무것도 안 했어요.”
“가만히 있어요.”
엘리제가 아델의 손목을 향해 손을 내밀자 소녀는 한 걸음 물러났다. 도망칠 준비를 한 사람의 움직임이었다.
“잡지 않을게요. 다만 지금 그 마카롱은 안 돼요.”
아델의 눈가가 순식간에 젖었다.
“역시 돈이 없어서요?”
“공복에 마력 자극이 들어가면 속부터 뒤집혀요. 돈 문제가 아니라 처방 문제예요.”
엘리제는 분홍 마카롱을 도로 상자에 넣었다. 일반 손님에게 내는 마카롱에는 피로를 깨우는 미세한 허브 마력이 들어갔다. 아델처럼 마력이 새는 사람에게는 불씨를 던지는 꼴이 될 수 있었다.
“마리. 우유 크림 남은 것 있죠?”
“네. 오늘 쓸 분량이 조금 남았어요.”
“설탕은 절반만. 블루민트는 한 방울이에요.”
베른이 고개를 들었다.
“새 메뉴를 지금 만드십니까?”
“메뉴가 아니에요. 반응 확인용이에요.”
엘리제는 가마의 화력을 낮췄다. 크림이 끓어 넘지 않도록 나선형 서클을 작은 크기로 겹쳤다. 우유의 지방이 거친 마력 입자를 감싸게 하고 블루민트는 그 흐름을 느리게 잡아 주는 역할을 했다. 정화가 아니라 완충이었다.
마리는 아몬드 꼬끄 두 장을 가져왔다. 엘리제는 그 사이에 얇게 크림을 바른 뒤 마카롱을 반으로 잘랐다.
푸른 기운이 크림 표면에서 아주 잠깐 숨을 쉬듯 일렁였다.
“한 번에 다 먹지 말고요.”
아델은 접시를 두 손으로 받았다. 따뜻한 접시의 온기가 손끝에 닿자 소녀의 손가락이 더 크게 떨렸다.
“이것도 비싸죠?”
“지금은 가격보다 기록이 먼저예요. 대신 거짓말은 하지 마세요.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고요.”
아델은 반쪽짜리 마카롱을 아주 작게 베어 물었다.
처음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
엘리제는 아델의 눈동자와 손목을 살폈다. 마력이 몸 밖으로 빠져나가는 사람은 대개 창백해지고 손끝이 차가워진다. 그런데 아델의 경우에는 공기 중의 마력까지 끌어당겨 제 몸을 채우려는 듯했다. 그래서 안정석도 반응한 것이다.
잠시 뒤 아델의 어깨가 내려갔다.
손목의 끈 아래로 새던 빛이 약해졌다.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들끓던 기운이 얇은 막 안에 잠긴 것처럼 잔잔해졌다.
“괜찮아요?”
아델은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맛이 나요.”
“무슨 맛인데요?”
“우유요. 그리고 비가 그친 뒤 풀 냄새요.”
마리가 조용히 웃었다. 베른은 말없이 장부를 다시 폈다.
엘리제는 기록란에 적었다.
아델. 공복. 공명성 마력 누출 의심. 저당 우유 크림 마카롱 반 개. 안정석 반응 약화.
적고 나니 더 분명해졌다. 아델의 마력은 약한 것이 아니었다. 금이 간 그릇에 물을 아무리 부어도 넘쳐 흐르는 것과 비슷했다. 그릇을 고치지 않고 더 강한 마력을 넣으면 결국 더 많이 샐 뿐이었다.
아델은 남은 반쪽을 바라보다가 접시를 밀었다.
“이건 안 먹을래요.”
“왜요? 아직 속은 괜찮아 보이는데.”
“다 먹으면 갚을 게 많아질 것 같아서요.”
그 말에 카운터 안쪽이 조용해졌다.
엘리제는 접시를 다시 아델 쪽으로 밀었다.
“갚는 방법은 이미 생각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내일 오전에 와서 아몬드 껍질을 벗겨요. 손이 괜찮으면 크림도 짜고요. 일거리 하나에 간식 한 접시예요.”
베른이 짧게 헛기침했다.
“아가씨. 교육에 드는 시간도 비용입니다.”
“그래서 첫날은 손질만 시킬 거예요. 아몬드는 늘 부족했고요.”
“그건 맞습니다만.”
베른은 더 말하지 못했다. 마리가 아델에게 남은 마카롱을 가리켰다.
“우리 아가씨는 장부에 없는 손해를 제일 싫어하세요. 남기면 오히려 곤란해요.”
아델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마리와 엘리제를 번갈아 보았다. 그러고는 남은 반쪽을 작게 먹었다.
이번에는 손목의 빛이 번지지 않았다.
“내일 꼭 올게요.”
“약속은 함부로 하지 마요. 못 오게 되면 사람을 보내거나 메모라도 남기고요.”
아델의 표정이 굳었다.
“새벽에는 못 올지도 몰라요.”
“왜요?”
아델은 망토의 단추를 쥐었다.
“자꾸 누가 찾아요. 제가 자는 곳 근처까지요. 절 부르는 목소리가 들리면 숨었어요.”
로딘이 문가에서 시선을 좁혔다. 베른도 이번만큼은 장부를 보지 않았다.
“누군데요?”
“몰라요. 하얀 옷을 입었어요. 제 손을 보면 데려가야 한다고…….”
아델의 말이 끊겼다. 손목을 묶은 끈 아래에는 지워진 문양이 남아 있었다. 둥근 테두리와 세 갈래 햇살. 성당에서 쓰는 표식과 닮았지만 보통의 자선원 문양보다 더 오래된 형태였다.
엘리제는 섣불리 묻지 않았다. 겁먹은 아이에게 대답을 강요하면 손에 쥔 단서도 함께 도망간다.
“마리. 별저 하녀방에 빈 침대가 있죠?”
“네. 창고 옆 작은방이 비어 있어요.”
아델이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까지는 안 돼요. 저는 손님도 아닌데.”
“아까부터 손님이라고 했잖아요.”
“돈도 없는데요.”
“돈은 내일 아몬드로 갚고요. 오늘은 비를 피하는 비용으로 우유빵 하나를 먹는 거예요.”
엘리제는 마리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카페 손님이 골목에서 쓰러지면 평판이 나빠져요. 그러니까 이건 장사예요.”
아델은 끝내 울지 않았다. 다만 두 손으로 접시를 꼭 쥐고 한 번 깊게 고개를 숙였다.
“내일 아침에 꼭 올게요. 설거지도 할게요.”
마리가 아델의 망토 위에 마른 숄을 둘러 주었다. 소녀가 문을 나설 때 벽의 안정석은 더 이상 울지 않았다.
다음 날 오전 라 보나는 문을 열기 전부터 조용했다.
첫 예약 손님은 레온이었다.
그는 평복 차림이었지만 자세만큼은 감찰단원 그대로였다. 목덜미의 보랏빛 선은 옅어졌고 어제보다 눈 밑이 덜 꺼져 있었다. 손에는 얇은 금속 기록판이 들려 있었다.
“마력 사용 시간과 수면 시간만 적었습니다.”
엘리제가 판을 받아 들었다. 밤새 세 번의 마력 사용. 한 번은 짧았지만 다른 두 번은 검술을 오래 유지한 흔적이었다. 수면은 두 시간 남짓이었다.
“이렇게 쓰고도 오늘 치료를 받으러 왔어요?”
레온의 입가가 굳었다.
“임무가 있었습니다.”
“저는 임무를 묻지 않았어요. 다만 이 기록이면 오늘 고농도 타르트는 못 드린다는 뜻이에요.”
에드윈이 문가에서 한 걸음 나왔다.
“레온은 오후에 다시 움직여야 합니다. 가능한 처방을 부탁드립니다.”
“가능한 처방은 움직이지 않게 하는 거예요.”
짧은 침묵이 흘렀다. 레온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엘리제는 그가 계약을 믿고 찾아온 손님이라는 사실도 잊지 않았다.
“대신 단계적으로 해 볼게요. 카모마일 쿠키 한 개. 묽은 타르트 크림 두 숟갈. 물을 마시고 열이 오르지 않으면 한 숟갈 더.”
“그 정도로 효과가 있습니까?” 에드윈이 물었다.
“어제 레온 씨가 쓰러지지 않게 한 건 그 정도였어요. 오늘은 그 위에 한 단계만 쌓는 거죠.”
레온이 처음으로 말했다.
“따르겠습니다.”
엘리제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마리는 미지근한 물과 쿠키를 내왔다. 레온은 지시대로 천천히 씹었다. 몇 분 뒤 묽은 크림을 한 숟갈 먹자 목덜미의 보랏빛 선이 미세하게 옅어졌다.
그때 카운터 옆 안내장이 희미하게 빛났다.
어젯밤 아델이 손을 얹었던 자리였다.
엘리제는 숨을 죽이고 남은 마력 잔재를 살폈다. 아델에게서 흘러나온 빛은 정화가 아니었다. 주변의 마력을 끌어당겨 빈 곳을 채우려는 공명이었다. 레온의 마력은 반대로 안쪽에서 엉겨 밖으로 터지려 하고 있었다.
둘이 가까워지면 서로를 고쳐 줄 수도 있다고 섣불리 생각하면 안 됐다. 맞물린 두 톱니가 같은 방향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이가 부러지는 법이었다.
“에드윈 씨.”
“말씀하십시오.”
“감찰단 손님은 앞으로 예약 시간 외에 이 근처를 지날 때도 마력을 쓰지 말아 주세요.”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엘리제는 빛나는 안내장을 바라봤다.
“새 손님이 하나 생겼어요. 아직 이유는 모르지만 이 카페의 안정석이 그 사람에게 반응합니다.”
레온이 크림 숟가락을 멈췄다.
“위험합니까?”
“그래서 확인할 때까지는 조심하자는 거예요.”
엘리제는 장부의 새 줄에 아델의 이름을 다시 적었다. 그 바로 아래에는 레온의 재진 기록이 있었다.
아델. 다음 날 오전. 아몬드 손질. 공명성 마력 누출 관찰.
펜 끝이 종이를 떠나는 순간 안내장의 오래된 문장이 한 번 더 빛났다.
마치 누군가가 그 이름을 기다렸다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