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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하고 싶은데 고백받았습니다5화

퇴사하고 싶은데 고백받았습니다

퇴사하고 싶은데 고백받았습니다

5화: 기록실의 빈자리

오후 보고는 탁자 위에서 네 갈래로 나뉘어 있었다.

즉시 처리.

당일 처리.

대리 결재.

반려.

로잘린은 침상에 기대 앉은 채 그 표지를 한참 바라봤다. 보고서가 자신에게 오기 전 다른 사람의 손을 거친다는 사실이 어쩐지 불안했다.

누락된 문장 하나를 못 보고 넘기면 어쩌지. 숫자 한 줄이 틀렸는데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면 어쩌지.

그 불안이 손끝까지 올라왔을 때 이안이 첫 번째 보고서를 집어 들었다.

"병참부 수송 마차 축 파손입니다. 인명 피해는 없고 수리비도 기존 예산 안에 있습니다. 대리 결재로 돌리겠습니다."

"제게는 올리지 않습니까?"

이안은 대답하기 전에 보고서의 접수 시각을 확인했다.

"긴급 기준에 들지 않습니다. 마차 세 대 중 한 대가 멈췄을 뿐이고 남은 두 대로 오늘 배정분을 옮길 수 있습니다. 수리비는 수석 서기관의 대리 결재 한도 안입니다."

그는 붉은 끈을 묶어 대리 결재함에 넣었다.

로잘린은 무심코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대리권자의 직급과 한도 그리고 처리 기한까지 빠짐없이 적혀 있었다. 자신이 손을 댈 자리가 없었다.

"그래도 확인은 해야 하지 않을까요?"

"보좌관님께서는 식사 중이십니다."

이안의 말에 로잘린은 숟가락을 내려다봤다. 은쟁반 위의 죽은 벌써 반쯤 식어 있었다.

"식사 중인 건 압니다."

"그래서 지금은 보고를 받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안은 너무도 당연한 얼굴로 장부 한쪽에 시간을 적었다.

감찰단장 식사 시작. 오후 두 시 십 분.

로잘린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것까지 적습니까?"

"휴식 조항 위반을 기록하라고 단장님께서 직접 지시하셨습니다."

자신이 쓴 문장이었다. 그래서 더 반박하기 어려웠다.

로잘린은 억울한 마음으로 숟가락을 들었다. 누군가가 보고서를 처리하는 동안 밥을 먹는 것이 이렇게 이상한 일일 줄은 몰랐다. 전에는 식사 시간에도 결재 대기 장부를 무릎에 올려놓는 게 당연했다.

이안은 다음 보고서를 펼쳤다.

"서부 창고의 비상 약품 수량이 예상보다 적습니다. 당일 처리입니다. 창고장에게 재고 대장과 실제 수량을 대조하게 하고 해 지기 전 결과를 받겠습니다."

"부족분은요?"

"아직 부족한지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숫자가 틀린 건지 물자가 없는 건지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로잘린은 숟가락을 멈췄다가 천천히 죽을 삼켰다.

틀린 답이 아니었다. 아니, 지나치게 맞는 답이었다.

누군가에게 일을 넘긴다는 건 그 사람이 자기 방식으로 일하는 것을 견디는 일이기도 했다. 로잘린은 그 사실을 이제야 배웠다.

그때 반려함 아래에서 얇은 종이 한 장이 미끄러져 나왔다.

기록실 보관 장부 누락 건.

담당 서기관 부재로 확인 불가.

로잘린의 손가락이 저절로 움직였다. 이안이 먼저 종이를 집어 들었다.

"반려함에 넣겠습니다. 현재 담당자도 대리권자도 없습니다."

"그럼 담당자를 정하면 되죠."

"권한 없는 사람을 먼저 보내면 장부를 찾는 사람에게 책임만 남습니다."

이안은 종이를 도로 내려놓았다.

그 단호한 말에 로잘린은 입을 다물었다. 예전 같으면 ‘일단 찾아보라’고 지시했을 것이다. 그리고 가장 낮은 자리에 있는 문관 하나가 밤새 기록실을 뒤지게 했을 테다.

문밖에서 다급한 노크가 들린 것은 바로 그때였다.


문을 열고 들어온 청년은 손에 묻은 먼지를 미처 털지 못했다.

낡은 회색 제복 소매는 팔꿈치가 희게 닳아 있었다. 그의 품에는 작은 장부와 접힌 메모가 잔뜩 끼워져 있었다. 문턱 앞에서 멈춘 그는 황제의 의무실이라는 장소가 주는 위압감에 잠시 숨을 삼켰다.

"기록실 하급 문관 에드먼드 리스턴입니다. 감찰단에 보낸 보고를 보고 왔습니다."

이안이 반려함의 종이를 들어 보였다.

"황궁 식량 배급 장부 누락 건 말입니까?"

에드먼드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졌다.

"그게 반려됐습니까?"

"확인 권한자가 없어서요."

"이틀 뒤에 폐기 목록으로 넘어갑니다."

로잘린이 그를 바라봤다.

"누락된 장부가 폐기된다는 뜻입니까?"

"정식 이관 기록이 없는 상자는 보관 기한이 지나면 폐기 대기 구역으로 이동합니다. 담당 서기관님이 열흘째 출근하지 않으셨습니다. 열쇠와 인장은 그분 책상에 있고요."

에드먼드는 품에서 메모 뭉치를 꺼냈다. 종이에는 봉인 번호와 상자 위치, 마지막 열람 일시가 작은 글씨로 빼곡했다.

"이걸 누가 만들었습니까?"

"제가요. 장부가 없는 상자는 보통 이관 대장에 흔적이 남습니다. 혹시 제가 잘못 본 건지 확인하려고 적었습니다."

"왜 감찰단에 바로 요청하지 않았죠?"

청년의 손등이 굳었다.

"하급 문관에게는 보관 장부를 대조할 열람 권한이 없습니다. 담당 서기관님이 돌아오실 때까지 기다리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말은 익숙했다. 권한은 없는데 마감은 있고 책임은 밑으로 떨어지는 자리.

로잘린은 메모를 받아 들었다. 봉인 번호 하나가 이관 대장의 기록과 어긋나 있었다. 단순히 장부 한 권이 없어진 게 아니었다.

식량 배급 장부, 창고 출입 장부, 외곽 병영 보급 장부. 세 묶음의 상자가 같은 잘못된 번호 아래 들어가 있었다.

이안이 옆에서 조용히 숫자를 대조했다.

"이 번호는 작년 겨울에 폐기된 세무 기록의 번호입니다. 누군가 상자를 옮길 때 잘못 적은 모양이군요."

"혹시 몰라서 보관 구역도 확인했습니다." 에드먼드가 급히 덧붙였다. "상자는 아직 있습니다. 다만 폐기 대기 표지가 붙었습니다."

"이틀 뒤면요?"

"봉인이 뜯기지 않은 채 폐기 창고로 이동합니다. 거기서 실제 내용이 맞는지 다시 확인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로잘린은 메모 아래쪽의 작은 글씨를 발견했다.

다음 달 북부 병영 보급 산정 예정.

장부가 사라지면 보급량을 맞출 근거도 사라진다. 기록상으로 식량을 지급하지 않은 일이 되거나 반대로 같은 물자를 두 번 산정하게 될 수도 있다.

"책임자는 누구입니까?"

에드먼드가 머뭇거렸다.

"기록실 관리관님께 말씀드렸습니다. 담당자가 돌아오면 확인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분은 오늘 어디 있죠?"

"감찰단의 지침 설명회에 참석 중입니다."

로잘린은 헛웃음이 나올 뻔했다. 사람 하나가 비면 일이 멈추지 않게 만든다고 회의에 간 관리관이 정작 자기 기록실의 빈자리는 방치하고 있었다.

그때 창문이 가볍게 울렸다.

마력의 기운이 복도 끝에서부터 스며들어 왔다.

에드먼드가 움찔하며 고개를 숙였다. 이안은 대조하던 장부를 닫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문이 열리자 칼릭스가 검은 제복 자락을 흔들며 들어왔다.

그의 시선은 방 안의 낯선 청년을 한 번 훑고 탁자 위 누락 보고서에 멈췄다.

"기록실의 장부가 사라질 수 있다는데 왜 내게 보고하지 않았지."

낮은 목소리였지만 유리잔 속 물이 잔물결을 일으켰다.

이안이 먼저 대답했다.

"사라진 것이 아니라 잘못 분류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현재 보관 위치도 확인됐습니다. 긴급 보고 기준을 판단하는 중이었습니다."

"황궁 식량 장부가 폐기될 수도 있는데도?"

"보급이 중단되거나 장부를 찾을 수 없을 때는 즉시 보고 대상입니다. 지금은 열람 권한을 정하면 오늘 안에 대조할 수 있습니다."

칼릭스의 붉은 눈이 이안에게 향했다. 방 안의 공기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로잘린은 침상 가장자리를 짚었다. 겁이 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마력이 눌러오는 순간 몸이 먼저 움츠러들었다.

하지만 이안의 판단은 자신이 세운 기준 안에 있었다.

"부단장의 말이 맞습니다."

칼릭스의 시선이 곧바로 그녀에게 옮겨 왔다.

"네가 판단했나."

"아니요. 에드먼드 문관이 봉인 번호를 대조했고 이안 부단장이 위험도를 분류했습니다."

그 말 뒤에 짧은 침묵이 흘렀다.

칼릭스의 표정이 아주 미세하게 굳었다. 기록실 장부보다도 로잘린이 직접 보고를 받지 않았다는 사실이 더 마음에 들지 않는 얼굴이었다.

로잘린은 빈 결재지를 끌어왔다.

에드먼드 리스턴에게 보관 장부의 임시 열람 및 대조 권한을 부여한다.

장부 반출과 폐기 중지는 감찰단 부단장 공동 확인을 요한다.

확인 시각과 봉인 상태 및 대조 결과를 즉시 기록한다.

"하급 문관에게 이 권한을 주겠다는 건가."

"열람과 대조만입니다. 장부를 옮기거나 폐기하지는 못합니다."

"그가 틀리면?"

"혼자 책임지지 않습니다. 이안 부단장이 함께 확인합니다."

칼릭스는 에드먼드를 내려다봤다. 청년은 고개를 숙인 채 두 손을 꼭 맞잡고 있었다.

"이름을 말해라."

"에드먼드 리스턴입니다. 폐하."

"네가 이 장부를 찾았나."

"찾았다기보다 위치를 추정했습니다. 아직 대조하지 못했습니다."

에드먼드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답은 정확했다. 공을 부풀리지도 않았고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확정하지도 않았다.

로잘린은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이 문관은 권한이 없어서 일을 멈춘 게 아닙니다. 권한 없이 움직이면 다른 사람의 책임까지 뒤집어쓸 걸 알아서 멈춘 겁니다."

칼릭스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권한이 없으면 기다리는 것이 맞다."

"기다리는 동안 장부가 폐기됩니다. 그래서 지금 권한을 정하는 겁니다."

그녀는 결재지를 칼릭스 쪽으로 밀었다.

"긴급 명령이 아니라면 절차대로 처리하겠다고 하셨습니다."

황제가 자신의 말을 부정할 수 없는 방식으로 문장을 돌려주는 것은 언제나 위험한 일이었다. 마력이 잠시 더 짙어졌다가 서서히 걷혔다.

칼릭스는 결재지를 읽었다.

"장부가 없거나 보급이 막히면 즉시 내게 보고해라."

"시간과 사유를 함께 기록하는 조건으로요."

"그래."

이번에는 답이 빨랐다.

칼릭스는 인장을 찍었다. 검은 인장이 종이에 남는 소리와 함께 에드먼드의 어깨가 작게 떨렸다.

로잘린은 그에게 결재지를 건넸다.

"지금부터 권한이 있습니다. 다만 혼자 기록실에 들어가지 마세요. 이안 부단장과 확인자를 한 명 더 데려가세요."

"알겠습니다."

에드먼드는 종이를 두 손으로 받았다. 도망치고 싶은 얼굴이었지만 물러서지는 않았다.


해가 기울 무렵 기록실에서 첫 대조 결과가 도착했다.

담당 서기관은 열쇠를 서랍 가장 안쪽에 넣고 병가를 냈다. 대리권자는 지정되지 않았다. 관리관은 열쇠의 위치도 모른 채 담당자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라고만 지시했다.

문제의 장부 세 묶음은 폐기 대기 구역 가장 아래에서 발견됐다.

에드먼드는 봉인이 훼손되지 않은 것을 확인한 뒤 이안과 함께 상자 번호를 바로잡았다. 장부를 펼친 자리에는 확인 시각과 열람자 이름, 새 보관 위치가 차례로 기록됐다.

로잘린은 대조표를 읽으며 손가락으로 표의 줄을 짚었다.

봉인 상태 이상 없음.

보관 번호 정정.

다음 달 보급 산정 전 재무부 사본 대조 필요.

문장은 짧았고 빠진 것이 없었다. 예쁜 문서는 아니었다. 그러나 누군가 다음 일을 이어받기에는 충분했다.

에드먼드는 의무실 앞 회의실에서 서류 가방을 든 채 서 있었다. 먼지 묻은 소매는 그대로였지만 처음 들어왔을 때처럼 고개만 숙이지는 않았다.

"수고했습니다."

그의 눈이 커졌다.

"제가 한 건 위치를 찾은 것뿐입니다. 대조는 부단장님께서……"

"위치를 찾는 일도 일이에요. 그리고 모르는 부분을 기록하고 도움을 요청한 것도요."

로잘린은 새 서식을 펼쳤다.

업무 교육 및 인수인계 계획.

첫 줄에는 교육 기간과 업무 범위가 있었다. 둘째 줄에는 감찰단의 임시 파견 기간이 적혀 있었다. 마지막 줄에는 식사 시간과 야간 호출 제한이 있었다.

에드먼드는 마지막 줄에서 시선을 멈췄다.

"이것도 적습니까?"

"적지 않으면 누군가 잊습니다."

로잘린은 망설이지 않고 다음 칸을 가리켰다.

"감찰단에 열흘만 파견을 오세요. 이안 부단장 아래에서 인수인계 기록과 대리 결재표를 익히면 됩니다. 기록실의 담당자 부재 절차도 함께 고치고요."

"저를 왜요? 저는 하급 문관입니다."

"그래서요. 하급 문관이 권한 없이 버티는 구조부터 고칠 겁니다."

에드먼드는 선뜻 서명하지 못했다. 그 망설임은 욕심이 아니라 두려움이었다. 새 자리로 가면 일이 늘어날 것이다. 실수하면 지금보다 더 큰 책임을 져야 할지도 몰랐다.

이안이 조용히 빈칸 하나를 가리켰다.

교육 담당자: 이안 레이너.

업무 한도: 기록 대조 및 인수인계표 작성. 단독 결재 금지.

"혼자 떠맡게 두지 않겠습니다." 이안이 말했다. "모르는 건 기록하고 물으면 됩니다."

에드먼드는 그 문장을 한참 보았다.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펜을 들었다.

그 순간 로잘린의 눈앞에 반투명한 창이 떠올랐다.


[시스템: 원작에 존재하지 않는 후임 후보가 확인되었습니다.]

[경고: 진행 이탈률이 상승합니다.]

[경고: ‘칼릭스’의 이탈 반응이 안전 범위를 벗어납니다.]


로잘린은 창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손을 내렸다.

후임 후보.

그 말은 아직 너무 컸다. 에드먼드는 열흘짜리 교육 계획에 서명했을 뿐이다. 이안도 막 감찰단의 첫날을 보낸 참이었다.

그래도 이름 없는 빈자리를 메울 사람이 한 명 더 생겼다. 로잘린이 사라지면 모두가 멈춘다는 말을 조금 덜 믿어도 될 이유가 생겼다.

문가에서 칼릭스가 낮게 말했다.

"후임이라니."

그의 시선은 에드먼드의 서명 위에 머물렀다.

로잘린은 시스템 창을 보지 못하는 사람에게 설명할 수 없었다. 대신 서류를 덮고 또박또박 말했다.

"업무를 이어받을 후보입니다."

칼릭스의 붉은 눈이 그녀에게 향했다.

"네 일을."

"제가 사람답게 쉴 수 있게 할 일을요."

짧은 침묵 뒤 에드먼드가 조심스레 서류 가방을 끌어안았다. 이안은 새 인수인계표를 챙겼다.

칼릭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에드먼드의 이름을 한 번 더 눈으로 읽는 것을 로잘린은 놓치지 않았다.

퇴사의 문은 아직 멀었다.

그래도 그 문 앞에 서서 열쇠를 찾는 사람이 이제 자신 혼자만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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