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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하고 싶은데 고백받았습니다1화

퇴사하고 싶은데 고백받았습니다

퇴사하고 싶은데 고백받았습니다

시놉시스

피폐물 속 최종 흑막, 칼릭스 황제의 수석 보좌관으로 빙의한 지 3년.
목이 잘리지 않기 위해 완벽하게 일했더니, 이제는 과로사로 죽게 생겼다!
살기 위해 던진 사표를 황제는 집착으로 돌려주는데…….
"네가 없는 제국은 의미가 없다. 그러니 내 곁에서 죽어라."
아니, 저기요. 저는 그냥 퇴사하고 싶다니까요?

1화: 사표를 던지는 타이밍

창밖은 여전히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제국의 수도, 에스토반의 심장부인 황궁 '크로이츠'는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지만, 그 빛은 화려함보다는 기괴한 압박감으로 다가왔다.

수석 보좌관실.
로잘린 폰 벨리아는 깃펜을 내려놓고 파르르 떨리는 자신의 손가락을 내려다보았다. 손마디에는 굳은살이 박여 있었고, 잉크 자국이 문신처럼 스며들어 있었다.

'...오늘이 며칠이지?'

날짜를 세는 것조차 사치였다. 빙의한 지 벌써 3년.
그녀가 눈을 떴을 때, 이곳은 남주인공들이 황제의 칼날 아래 추풍낙엽처럼 쓰러지고, 여주인공이 감금당해 피눈물을 흘리는 피폐 소설 <멸망의 황제> 속이었다.

로잘린은 그 소설에서 이름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는, 황제의 변덕에 목이 날아가는 수많은 단역 보좌관 중 하나였다.

살고 싶었다. 그래서 그녀는 죽어라 일했다.
황제가 사람을 죽이려 하면, 그 사람의 유용성을 증명해 살려냈고.
황제가 무리한 정복 전쟁을 벌이려 하면, 예산안과 보급 계획서를 들이밀며 합리적인 지연책을 제시했다.
그 결과, 크로이츠 제국은 원작보다 훨씬 풍요로워졌고, 황제의 폭주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하지만 그 대가는 혹독했다.

"보좌관님, 황제 폐하께서 호출하셨습니다."

문밖에서 들려오는 시종의 목소리에 로잘린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새벽 3시였다.

'이 미친놈이 또…….'

로잘린은 심호흡하며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정돈했다. 거울에 비친 그녀의 얼굴은 창백하다 못해 푸르스름한 빛이 감돌았다. 눈 밑의 다크서클은 이제 화장으로도 가려지지 않는 수준이었다.

황제의 집무실로 향하는 복도는 길고 차가웠다.
로잘린은 걸음을 옮길 때마다 가슴 한구석이 욱신거리는 것을 느꼈다. 스트레스성 부정맥이 분명했다. 아니면 화병이거나.

육중한 문이 열리고, 피 냄새와 매캐한 마력이 섞인 공기가 훅 끼쳐왔다.

집무실 중앙, 거대한 집무 책상 뒤에 비스듬히 앉아 있는 남자.
크로이츠의 태양이라 불리지만, 실상은 만물을 태워 죽이는 흑태양인 칼릭스 에스토반 반 크로이츠가 거기 있었다.

그는 피가 묻은 장검을 테이블 위에 던져놓은 채, 로잘린을 빤히 쳐다보았다.

"왔나."

낮게 깔리는 목소리. 그가 입을 열 때마다 로잘린의 뒷덜미에 소름이 돋았다.

"부르셨습니까, 폐하."

"서쪽 국경의 반란군 놈들 말이다. 싹 다 목을 쳐서 성문에 걸어두라 명령했거늘. 네가 독방에 가두고 치료까지 해줬다더군."

칼릭스의 눈동자가 붉게 번뜩였다. 마력 폭주가 시작되기 직전의 징조였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살려달라 빌었겠지만, 로잘린은 익숙하게 품 안에서 서류 한 뭉치를 꺼냈다.

"그들은 반란군이 아니라, 영주에게 수탈당해 쫓겨난 소작농들입니다. 그들을 처형하면 서부의 농지 30%가 버려지게 됩니다. 이는 내년도 제국 식량 수급에 막대한 차질을 빚으며, 결국 폐하의 군비 확충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로잘린은 막힘없이 말을 이어갔다.

"대신 그들을 변방의 개척지로 보내 노역을 시키기로 했습니다. 처형 비용은 절감되고, 개척은 앞당겨지겠죠. 여기 상세한 예산 대조표와 향후 5년간의 예상 수익 보고서입니다."

칼릭스는 로잘린이 내민 서류를 흘끗 보더니 픽 웃었다.

"너는 참으로…… 지루할 정도로 유능하군."

그는 서류를 대충 던져두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로잘린에게 다가왔다.
커다란 그림자가 그녀를 집어삼킬 듯 덮쳤다. 칼릭스는 로잘린의 턱을 잡아 강제로 들어 올렸다.

"그런데 말이다, 로잘린. 네 눈을 보면 기분이 나빠."

"……어떤 점이 말입니까?"

"당장이라도 여기서 사라지고 싶어 하는 그 눈. 나를 보는 네 눈에는 두려움도, 충성심도, 욕망도 없어. 오직…… 귀찮음뿐이지."

로잘린은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그녀는 최대한 표정을 관리하며 대답했다.

"오해이십니다. 저는 폐하의 충실한 보좌관으로서……."

"거짓말 마라."

칼릭스의 손가락이 로잘린의 목덜미를 스치듯 내려갔다. 날카로운 칼날보다 더 서늘한 감촉이었다.

"네가 만약 내 곁을 떠나려 한다면, 나는 네 다리를 부러뜨려서라도 이 방에 가둬둘 거다. 네 유능함은 오직 나를 위해서만 쓰여야 하니까."

원작 여주인공 실비아에게나 하던 대사가 로잘린에게 쏟아지고 있었다.
하지만 로잘린은 설레기보다 소름이 돋았다. 이건 사랑이 아니었다. 소유욕, 그것도 아주 뒤틀린 형태의 소유욕이었다.

'다리를 부러뜨려? 가둬둬?'

그 순간, 로잘린의 머릿속에서 무언가 끊어지는 소리가 났다.

3년이다.
3년 동안 하루에 4시간도 못 자고, 식사는 서서 서류를 보며 때우고, 주말도 휴가도 없이 이 미친놈의 비위를 맞춰왔다.
죽지 않으려고 시작한 일인데, 이러다가는 칼에 맞아 죽기 전에 과로로 먼저 죽을 판이었다.

'어차피 죽을 거라면, 할 말은 하고 죽자.'

로잘린은 칼릭스의 손을 거칠게 뿌리쳤다.
칼릭스의 눈이 경악으로 크게 떠졌다. 제국에서 그의 손을 쳐낼 수 있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로잘린은 품 안에서 소중하게 간직해오던, 구겨진 종이 한 장을 꺼내 책상 위에 탁 올려놓았다.

"이게 뭐지?"

칼릭스가 물었다.

"사표입니다."

로잘린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맑고 단호했다.

"사…… 뭐?"

"사직서라고요. 저 퇴사하겠습니다, 폐하."

집무실 안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칼릭스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력이 소용돌이치며 주변의 가구들을 삐걱거리게 했다. 하지만 로잘린은 물러서지 않았다.

"이제 더는 못 해 먹겠습니다. 폐하의 비위를 맞추는 것도, 새벽 3시에 불려 나오는 것도, 제국 예산안을 짜는 것도 지긋지긋합니다."

"로잘린 폰 벨리아……! 지금 제정신인가?"

"아주 멀쩡합니다. 오히려 지금이 제 인생에서 가장 맑은 정신이죠. 저는 이제 제 고향으로 내려가서 농사나 지으며 살 겁니다. 아니면 옆 나라인 성국으로 가서 성가대나 할까요?"

칼릭스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그는 책상 위에 놓인 사표를 집어 들어 순식간에 가루로 만들어버렸다.

"퇴사? 네 마음대로는 안 된다. 너는 내 보좌관이다. 죽어서도 내 곁을 떠날 수 없어!"

"아뇨, 갈 겁니다. 이미 인수인계서도 다 작성해뒀고, 후임자 교육 매뉴얼도 완벽하게 준비했습니다. 제 짐은 어제부로 이미 궁 밖으로 빼돌렸거든요."

로잘린은 싱긋 웃으며 덧붙였다.

"찾으셔도 소용없을 겁니다. 저는 폐하가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비합리적이고 비논리적인' 방식으로 사라질 거니까요."

"네가 감히……!"

칼릭스가 로잘린의 어깨를 낚아채려던 찰나.
로잘린의 코에서 붉은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

칼릭스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로잘린은 어지러운 듯 비틀거리더니 그대로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로잘린!"

칼릭스가 당황하며 그녀를 받아 안았다. 그의 품에 안긴 로잘린의 몸은 깃털처럼 가벼웠고, 얼음처럼 차가웠다.

"어이, 눈 떠! 로잘린! 장난치지 마라!"

하지만 로잘린은 대답이 없었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오직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성공이다. 일단 쓰러졌으니 3일은 쉴 수 있겠지.'

그것이 이 피 튀기는 오피스 밀당의 서막임을, 로잘린은 아직 알지 못했다.
그리고 그녀를 안은 황제의 눈동자가 공포와 집착으로 뒤섞여 검게 가라앉고 있다는 사실도.


[시스템: '과로사' 직전의 위기에서 '사표' 스킬이 발동되었습니다.]
[알림: 남주인공 '칼릭스'의 집착 수치가 폭발적으로 상승합니다!]

로잘린의 의식이 암전되었다.
정말로, 퇴사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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