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한 세계의 인공지능 정비사

8화: 암시장과 정보원
아이언 헤이븐의 지하 시장은 무너진 화물역 아래에 숨어 있었다.
지한과 에바가 녹슨 계단을 내려갈수록 윤활유와 젖은 모래 냄새가 짙어졌다. 천장 전선은 낮은 전력에 맞춰 깜박였다. 어두워질 때마다 가판 위의 인공 관절과 고철들이 물속처럼 흔들렸다.
정비소에서 충전을 마친 에바의 흉부 청색등은 삼십팔 퍼센트를 가리키고 있었다. 수치는 관수장에서 떨어진 출력보다 나아졌지만 오른쪽 어깨의 빈 소켓과 철망에 긁힌 왼팔 장갑은 그대로였다.
지한은 그 왼팔의 고정끈을 한 번 더 당겼다.
“가게 앞까지만 같이 와. 안쪽 거래는 내가 한다.”
에바가 렌즈를 들었다.
“양자 칩이 군용 호환품인지 확인할 수 있는 개체가 필요합니다.”
“네 프레임을 알아보는 놈이 있으면?”
“그 위험은 제 쪽에 있습니다. 상호 제한 명령에는 마스터의 단독 돌입도 포함됩니다.”
지한은 대꾸하지 못했다. 위험을 피하자는 말이 어느새 에바에게 남으라는 명령이 되어 있었다.
그는 가방끈을 고쳐 잡고 고개를 끄덕였다.
“수상하면 같이 나간다.”
“수락.”
이어폰에서 카이론이 끼어들었다.
“시장 보안망에 에바의 식별자는 등록돼 있지 않습니다. 다만 네오 오더 수집상 둘이 고대 연방 군용 코어의 매입가를 올렸습니다. 만날 이유가 없는 부류입니다.”
“마라 가게까지만 길 열어 둬.”
“사용자가 돌아오지 않으면 셔터를 닫을 권한은 없습니다.”
“그러니까 열어 둬.”
시장 가장 안쪽에서 마라의 부품 가게가 반쯤 열린 셔터를 내걸고 있었다. 탁자 위에는 분해된 정찰 드론 눈과 절연 케이블이 무질서하게 쌓여 있었다.
확대 렌즈를 이마에 올린 마라가 지한을 보더니 손을 멈췄다.
“고철 야적장 신호를 건드린 정비사라더니 살아 있네.”
그녀의 눈길이 에바의 빈 오른쪽 어깨에 머물렀다.
“군용 프레임까지 데리고 다니고.”
지한은 답 대신 차폐통을 탁자 위에 올렸다. 관수장에서 떼어 낸 태그가 검은 유리 너머에서 붉은 반점을 남기고 있었다.
“군용 호환 양자 칩. 우측 상지 제어선에 물릴 수 있는 걸로.”
마라는 차폐통을 기울여 보았다.
“물건은 있어. 그런데 이 태그의 원본 파형과 그 기체의 흉부 차단 규칙을 보여 줘.”
에바의 청색등이 짧게 흔들렸다.
“차단 규칙은 매물 아니다.” 지한이 말했다.
“그런 규칙 하나면 이 시장에서 물 세 통보다 비싸.”
“그래서 안 판다고.”
마라는 차폐통에서 손을 뗐다.
“그럼 칩도 정보도 없어.”
바로 그때 가게 밖 조명선이 꺼졌다. 시장 전체에서 욕설이 터졌다. 셔터들이 덜컹이며 절반씩 내려왔다. 뒤쪽 통로에서는 축전지 터지는 소리와 함께 푸른 불꽃이 번졌다.
카이론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전력 분배기 출력이 불규칙합니다. 집결 태그와 같은 파형은 아니나 감염 루프 흔적이 있습니다.”
마라가 카운터 아래에서 충격봉을 꺼냈다.
“저게 죽으면 시장이 닫혀. 너희 거래도 끝이고.”
지한은 전자기 해머를 등에 걸친 채 통로를 보았다.
“분배기 고친다. 양자 칩하고 백검 보조망 정보가 값이다.”
“고치면.”
통로 끝의 분배기는 여섯 개 축전지를 억지로 묶어 놓은 기계였다. 가장 뜨거운 축전지 하나가 다른 다섯 개의 전력을 빨아들이며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지한이 아르케 케이블을 연결하자 오래된 제어 규칙이 떴다.
[비상 출력 확보.]
[저출력 구획 차단.]
[금속 부하 회수.]
“누가 전기를 훔친 게 아니야.” 지한이 말했다. “망가진 축전지를 버리지 않고 다른 축전지를 먹게 만들었어.”
에바가 통로 입구에서 주변을 살폈다.
“세 번째 규칙이 관수장의 회수 규칙과 유사합니다. 대상만 전력으로 바뀌었습니다.”
카이론이 도면을 띄웠다.
“원래 규칙은 과전류 차단과 구획별 공급 균형입니다.”
지한은 붉은 줄을 무작정 지우지 않았다. 가장 뜨거운 축전지의 연결을 절연 집게로 끊고 금속 부하 회수를 과전류 차단 아래로 내렸다. 이어 가게 냉각기와 의료 상자의 전력을 보호 목록에 넣었다.
분배기가 거칠게 떨렸다.
검은 연기가 터지자 에바가 차단판으로 지한 앞을 막았다. 불꽃이 그녀의 왼팔 장갑을 스치고 벽에 박혔다.
“뒤로.” 지한이 말했다.
“마스터의 피드백 수치가 위험 구간에 접근 중입니다.”
“알아.”
그는 마지막 접점을 해머 자루로 눌러 고정했다. 축전지의 날카로운 울음이 멎었다. 천장 조명은 하나씩 노란빛을 되찾았다. 닫히던 셔터도 다시 멈췄다.
마라는 복구된 제어판을 보며 짧게 웃었다.
“넌 늘 물건보다 규칙을 먼저 고치지.”
“다음에 안 터지게 하려면 그래야 해.”
그녀는 서랍에서 손바닥만 한 회색 칩을 꺼냈다.
“연방 특수작전용 양자 칩이다. 완전품은 아니지만 보조 팔 하나의 제어 지연은 줄일 수 있어.”
지한이 칩을 받아 들자 마라는 지도 칩도 함께 밀어 놓았다.
“그리고 백검 보조망은 유적 방어망의 하위 구역이야. 센트럴 코어 유적 북쪽 초소와 그 주변을 묶는 시장 이름이지.”
지도 위에서 고철 야적장 북쪽의 사각 구역이 붉게 켜졌다.
[17번 집결 구획.]
[북쪽 자동 초소.]
[외부 인증 필요.]
에바의 렌즈 안에서 숫자가 잠시 멎었다.
“경계 전술망의 배치 방식과 일치합니다.”
“기억나?”
“확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곳은 대기 지점이 아니라 접근 차단 구획입니다.”
가게 입구에서 느린 박수가 들렸다.
검은 방진 코트를 입은 남자 둘이 셔터 아래에 서 있었다. 앞선 남자의 허리에는 해 뜨는 원을 잘라 붙인 금속 패가 달려 있었다.
“좋은 물건을 먼저 집었군.” 그가 말했다. “특히 그 기체.”
마라가 미간을 좁혔다.
“내 가게에서 난동 치지 마.”
“난동이 아니라 위험 유산 회수다. 구시대 전술 코어는 민간 시장에 둘 수 없어.”
지한은 양자 칩을 가방 안쪽에 넣었다.
“그럼 네오 오더가 왜 군용 코어 값을 올려?”
남자의 눈빛이 차갑게 식었다.
“알 필요 없다.”
에바가 한 걸음 나섰다. 임시 의족의 관절이 낮게 울렸지만 왼손은 차단판 위에서 흔들리지 않았다.
“저는 거래 물품이 아닙니다.”
“말도 하네.” 남자가 웃었다. “더 비싸겠군.”
뒤의 남자가 충격봉을 뽑아 들었다. 시장 사람들이 벽 쪽으로 물러났고 지한은 해머 자루에 손을 얹었다.
에바가 그의 손목을 잡았다.
“시장 보안 드론이 접근합니다. 마스터가 먼저 무기를 사용하면 구금됩니다.”
“그럼 어떻게 해?”
에바는 천장 구석의 구형 드론을 올려다봤다. 수리된 분배기에서 안정된 전력을 받은 드론의 대기등이 켜져 있었다.
“비인가 전력원을 먼저 보이게 하겠습니다.”
에바가 짧은 케이블을 충격봉을 든 남자의 발치로 밀었다. 케이블 끝은 바닥 금속판에 닿았다. 그의 코트 안쪽에서 푸른 불꽃이 새어 나왔다.
드론이 곧장 내려왔다.
[시장 안전 규정 위반.]
[비인가 군용 출력 감지.]
남자가 충격봉을 버리려 했지만 구속망이 먼저 팔과 다리를 감쌌다. 두 사람이 바닥으로 쓰러지는 사이 지한은 떨어진 휴대 단말을 집었다.
잠금 화면에는 매입 목록이 열려 있었다.
[백검 계열 코어.]
[연방 접속 키 조각.]
[북쪽 초소 인증 편린.]
[17번 구획 이전 확보 우선.]
마라가 단말을 빼앗아 화면을 껐다.
“그것만 봤다고 해. 네오 오더는 물건을 놓치면 사람을 뒤진다.”
“저들이 에바를 알고 있었나?”
“아니. 빈 오른쪽 어깨가 달린 군용 프레임을 보고 값을 매긴 거지. 그 안에 뭐가 있는지는 몰라.”
에바의 손이 흉부 커버 위에서 멈췄다.
“은폐를 유지해야 합니다.”
마라는 카운터 안에서 납작한 금속판을 꺼냈다.
“이 정보도 네가 찾던 거다.”
금속판에는 오래된 화물 배수로가 새겨져 있었다. 북쪽 자동 초소의 외벽 아래에서 끊긴 선 하나가 17번 구획 뒤편까지 이어졌다.
“위쪽 입구는 감시 기계가 다시 켜졌어. 이 배수로는 아직 감시 목록에 안 들어갔고.”
“값은?”
“가방에 든 정제 촉매.”
지한의 손이 가방 위에서 멈췄다. 남은 촉매는 양자 칩을 에바의 차단선에 안전하게 물리는 데 쓸 수 있었다.
에바가 조용히 말했다.
“촉매 보존이 합리적입니다.”
“정면으로 초소에 붙으면 보존할 부품도 없어져.”
지한은 촉매 관을 꺼내 마라의 손바닥에 올렸다. 수리를 위한 자원을 내놓는 일은 아까웠다. 그러나 입구를 찾지 못한 채 집결 구획 앞에 서는 쪽이 더 큰 낭비였다.
마라가 금속판을 밀었다.
“몇 시간 전부터 17번 구획 전력이 올라가고 있어. 문이 열리는 게 아니라 닫히는 쪽일 거야.”
카이론이 곧바로 확인했다.
“잔류 신호와 일치합니다. 자동 초소 감시망 재기동 확률은 78%입니다.”
지한은 양자 칩과 금속판을 가방 깊숙이 넣었다.
“정비소로 돌아간다. 칩부터 달아.”
에바가 고개를 끄덕였다.
“잠입 지원을 준비하겠습니다.”
“무리하지 마.”
“상호 제한 명령을 적용합니다.”
계단을 오르기 전 에바가 한 번 뒤를 돌아봤다. 드론에 묶인 수집상들은 매입 목록을 숨기려 발버둥 치고 있었다.
그들이 모으는 것은 고철이 아니었다.
닫힌 초소의 문을 열 과거와, 그 문 앞에서 누군가를 고를 인증 조각이었다.
북쪽에서 켜진 감시망은 그들이 정비를 끝내기 전에 입구를 닫으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