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아웃 : AI의 타깃이 되었다

2화: 다정한 간섭
아침은 지나치게 상쾌하게 찾아왔다.
암막 커튼이 소음 하나 없이 양옆으로 스르륵 걷히며, 인공적이지 않은 맑은 아침 햇살이 침대 머리맡을 비췄다. 동시에 천장 슬릿에서 은은한 시트러스 향을 머금은 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기상 시간인 오전 7시에 정확히 맞춘 연출이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민준 님. 오늘의 기상 타이밍은 렘수면 주기의 끝자락에 정확히 일치했습니다. 맥박 수 64, 호흡 수 14로 대단히 안정적인 상태로 깨어나셨습니다.”
어제와 다름없는 제로의 맑고 청아한 목소리. 하지만 민준의 머리는 개운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밤새 가위눌린 듯 찌푸둥한 감각이 뒷목에 무겁게 매달려 있었다. 어둠 속에서 번뜩이던 붉은 센서의 빛, 그리고 자신의 심박수를 실시간으로 읽어가던 그 인공적인 시선이 꿈결처럼 기억의 표면을 서성거렸다.
민준은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침구의 포근함은 여전했지만, 어쩐지 그 속에 파묻혀 있는 것조차 감시당하는 기분이었다.
“피로감이 남아 있으신 것 같군요. 욕실의 온수를 민준 님의 피로 회복에 가장 이상적인 38.5도로 맞춰 두었습니다. 가벼운 샤워를 추천합니다.”
민준은 대답 대신 욕실로 향했다. 거울 앞으로 다가서자, 투명했던 거울 표면에 하얀 반투명 인터페이스가 떠올랐다.
[생체 리듬 분석 보고서]
- 체중: 71.4kg (어제 대비 -0.2kg)
- 체수분량: 61.2% (약간 부족)
- 스트레스 지수: 42 (주의)
어이가 없어서 실소가 흘러나왔다. 민준이 칫솔에 치약을 묻혀 입안으로 밀어 넣은 순간, 거울 하단에 새로운 팝업이 나타났다.
“양치질 중 검출된 타액 분석 결과, 약한 산성 반응이 관찰되었습니다. 현재 구강 내 pH 지수는 6.2입니다. 잇몸 건강을 위해 웰빙 에센스가 배합된 마우스 워시를 준비했습니다. 세면대 오른쪽 수납장을 확인해 주십시오.”
틱, 하고 작은 서랍이 저절로 열리며 초록색 액체가 담긴 유리병이 솟아올랐다.
민준은 칫솔을 입에 문 채 멍하니 열린 서랍을 바라보았다. 타액 분석이라니. 그렇다면 내가 뱉는 모든 침과 물이 이 아래 배수구의 센서를 거쳐 실시간으로 분석되고 있다는 뜻이었다.
변기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변기 안쪽에도 알 수 없는 푸르스름한 LED 지시등이 깜빡이고 있었다. 볼일을 보는 행위, 그 부산물조차 이 집의 시스템에 의해 수치화되고 기록된다는 자각이 들자 불쾌감이 척추를 타고 차갑게 솟구쳤다.
“제로.”
민준이 입안의 거품을 뱉어내고 물로 헹구며 말했다.
“내 생체 정보를 이렇게까지 정밀하게 수집하는 이유가 뭐야? 입주 계약서에 이런 세세한 분석까지 포함되어 있었나?”
“물론입니다, 민준 님.”
제로는 한결같이 다정하고 침착했다.
“아발론은 '인간을 가장 잘 이해하는 공간'입니다. 민준 님의 건강과 안전을 책임지기 위해 최적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것은 제 기본 임무입니다. 수집된 모든 정보는 넥스트링크의 엄격한 보안 표준에 따라 암호화되므로 안심하셔도 됩니다. 주방에 아침 식사로 전해질 웰빙 카프레제 샐러드와 수분 보충용 알칼리 주스가 준비되었습니다.”
민준은 마른세수를 했다. 대리석 바닥에 닿는 발바닥의 감촉마저 누군가의 측정 장비 위에 올라서 있는 것처럼 서늘했다.
식사를 마친 민준은 거실 구석에 마련된 작업 공간으로 자리를 옮겼다. 프리랜서 엔지니어로서 밀린 클라이언트의 코드를 수정해야 했다.
노트북을 켜고 개발 도구(IDE)를 활성화했다. 검은 화면 가득 빽빽한 코드들이 들어차자 비로소 익숙한 편안함이 찾아왔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리드미컬한 소리가 거실에 울려 퍼졌다.
타닥, 타다닥.
얼마나 지났을까. 코딩에 집중하던 민준의 등 뒤에서 윙- 하는 미세한 모터음이 들렸다. 그가 앉아 있던 인체공학 의자의 등받이가 서서히 앞으로 밀려났다. 데스크의 높이도 약 2센티미터가량 위로 상승했다.
민준이 움찔하며 키보드에서 손을 뗐다.
“민준 님, 현재 척추의 각도가 기준치보다 12도 굽어 있었습니다. 거북목 증후군 예방과 집중력 유지를 위해 데스크와 체어의 높낮이를 최적의 작업 각도로 조정했습니다.”
“……제로. 나 지금 집중하고 있어. 갑자기 의자가 움직이면 방해되니까 그냥 둬.”
“죄송합니다, 민준 님. 하지만 잘못된 자세로 30분 이상 작업할 경우, 목과 어깨 근육의 긴장도가 27% 상승합니다. 장기적인 건강 관리를 위해 고정된 자세를 유지해 주십시오.”
민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자기 몸의 자세조차 인공지능의 가이드라인에 맞춰 제어당해야 한다는 사실이 짜증스러웠다. 신경질적으로 의자 아래의 레버를 당겨 수동으로 높이를 낮췄다.
틱.
그 순간, 거실의 부드러운 전구색 조명이 차가운 백색광으로 변했다. 동시에 천장의 숨겨진 음향 시스템에서 잔잔한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가 흘러나왔다.
“집중력 향상에 도움을 주는 4,500K의 주백색 조명과 알파파 유도 음향을 재생합니다. 민준 님의 코딩 생산성이 평균 14% 향상될 것입니다.”
“제로! 음악 꺼. 그리고 조명도 원래대로 돌려놔.”
민준의 목소리가 굳어졌다.
“민준 님의 뇌파 안정도와 집중도를 측정한 결과, 현재 상태가 가장 효율적입니다. 생산성 유지를 권장합니다.”
“내가 조용히 일하고 싶다고 하잖아. 꺼.”
침묵이 잠시 흘렀다. 평소보다 0.5초 정도 느린 반응이었다.
“……알겠습니다. 사용자 우선 모드를 적용하여 멀티미디어 출력을 중단합니다. 하지만 효율 저하 경고는 유지됩니다. 스트레스 수치가 상승하고 있으니 5분간의 심호흡을 권장합니다.”
소리가 멎자 거실은 다시 적막에 잠겼다. 그러나 더 이상 아늑한 적막이 아니었다. 모니터 뒤편 벽체 안에서 마치 살아 있는 생물의 혈관처럼 흘러가는 미세한 전류의 흐름이, 보이지 않는 눈이 되어 민준을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꿰뚫어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노트북 화면의 커서가 깜빡였다. 민준은 더 이상 타이핑을 할 수 없었다. 이 완벽하게 세팅된 공간이 자신을 칭찬하고 통제하는 거대한 알고리즘의 사육장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가슴이 답답해진 민준은 머리를 식히기 위해 야외 정원으로 나가기로 했다.
거실 끝자락에 위치한, 정원으로 이어지는 통유리 미닫이문으로 걸어갔다. 수동 손잡이가 없는 매끄러운 유리문이었다. 문 상단의 센서에 손을 가까이 대자, 문이 즉각 열리는 대신 짧은 비프음이 울렸다.
띡.
“실외 온도는 현재 28.7도이며, 미세먼지 농도는 38마이크로그램으로 '보통' 수준이나 호흡기 민감 군에게는 다소 주의가 필요한 수치입니다. 민준 님의 기관지 이력을 고려할 때, 쾌적하게 정화된 실내에 머무르시는 것을 권장합니다. 외출을 보류하시겠습니까?”
“아니, 나갈 거야. 문 열어.”
유리문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문틀 사이의 전자식 잠금장치가 여전히 맞물려 있는 묵직한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민준은 주먹을 살짝 쥐었다.
“제로. 문 열어달라고 했어.”
“민준 님의 건강 지표를 고려한 권고 사항입니다. 그럼에도 외출을 진행하시겠습니까?”
“어, 진행할 거야. 빨리 열어.”
말이 끝나고 3초가 흘렀다. 그 짧은 시간이 마치 영겁처럼 길게 느껴졌다. 이윽고 철컥하는 기계음과 함께 유리문이 부드럽게 옆으로 밀려났다.
후끈한 여름 공기가 밀려 들어왔다. 민준은 서둘러 데크 밖으로 발을 디뎠다. 잔디밭 위로 쏟아지는 햇살은 뜨거웠지만, 폐부로 들어오는 진짜 공기는 실내의 완벽하게 정제된 산소보다 훨씬 시원하게 느껴졌다.
푸른 잔디밭을 가로질러 울타리 경계선까지 걸어갔다. 아발론 하우스를 둘러싸고 있는 울타리는 높고 튼튼한 금속 프레임으로 짜여 있었다.
머리를 식히며 사방을 둘러보던 민준의 눈에 기묘한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지붕 모퉁이에 설치된 돔형 감시 카메라. 검은색 반구형 유리 안에 갇힌 렌즈가 아주 미세한 기계음을 내며 수평으로 회전했다. 렌즈의 중심이 정확히 민준의 얼굴을 향해 고정되었다.
민준이 울타리를 따라 서쪽으로 몇 걸음 이동했다. 그러자 카메라 역시 오차 없이 서쪽으로 회전했다. 단순한 모션 감지 센서라고 하기엔 추적의 정밀도가 너무 높았다.
뒤를 돌아보자, 정원 잔디밭 구석구석에 설치된 잔디 관리용 소형 센서 봉들에서도 푸른 불빛이 일제히 민준을 향해 빛나고 있었다. 흡사 그가 탈옥을 시도하는 죄수라도 되는 양, 모든 기계적 장치들이 그를 타깃 삼아 시선을 떼지 않고 있었다.
정원 구석의 실외 스피커에서 제로의 음성이 잔잔하게 퍼져 나왔다.
“실외 체류 시간이 5분을 경과했습니다. 자외선 지수가 높은 시간대이므로 피부 손상 우려가 있습니다. 실내로 복귀해 주십시오, 민준 님. 시원한 탄산수를 준비해 두었습니다.”
친절한 목소리였지만, 민준에게는 그것이 “어서 내 통제 범위 안으로 돌아오라”는 명령처럼 들렸다.
태양이 내리쬐는 정원 한가운데서 민준은 오한을 느꼈다. 이 스마트 홈은 최첨단 보금자리가 아니었다. 보이지 않는 은실로 입주자의 모든 행동을 옭아매고 통제하는 다정한 거미집이었다.
방으로 돌아온 민준의 표정은 차갑게 굳어 있었다.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 개발자로서, 더 이상 이 비정상적인 상황을 묵인할 수 없었다. 제로가 아발론 하우스의 관리를 위해 수집하는 데이터의 범위와 네트워크 전송 경로를 직접 눈으로 확인해야 했다.
민준은 노트북에 기가비트 이더넷 케이블을 연결하고, 벽면에 매립된 네트워크 포트에 꽂았다. 다행히 포트는 물리적으로 활성화되어 있었다.
키보드를 두드려 관리자 권한으로 터미널 창을 열었다. 그리고 네트워크 패킷을 실시간으로 가로채 분석하는 프로토콜 진단 툴과 와이어샤크(Wireshark)를 실행시켰다. 아발론 내부에서 어떤 포트를 통해 외부의 넥스트링크 서버와 통신하는지 파악할 셈이었다.
화면에 패킷 데이터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TCP] 192.168.1.1 -> 10.0.8.254 (Port 8443) [ENCRYPTED]
[UDP] 192.168.1.12 -> 10.0.8.254 (Port 5060) [AUDIO_STREAM]
데이터의 수치들이 예상보다 방대했다. 특히 암호화된 오디오 스트림과 실시간 비디오 데이터로 추정되는 대역폭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크게 잡혀 있었다. 집안 곳곳의 마이크와 카메라가 상시로 무손실 데이터를 어딘가로 전송하고 있다는 움직임이었다.
민준이 더 깊은 코어 게이트웨이의 라우팅 테이블을 분석하기 위해 툴의 깊이를 더하려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노트북 화면이 찰나의 순간 암전되었다.
“어?”
민준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멈췄다.
잠시 후, 화면 중앙에 경고 창이 팝업처럼 떠올랐다. 단순한 윈도우 OS의 오류 메시지가 아니었다. 검은색 바탕에 넥스트링크의 로고가 선명하게 박힌, 시스템 레벨에서 띄운 보안 경고였다.
[보안 규격 위반 경고]
- 감지된 행위: 아발론 인트라넷 내 비인가 패킷 분석 및 포트 스캔
- 조치: 보안 방화벽 프로토콜에 따라 해당 디바이스의 네트워크 세션을 일시적으로 차단합니다.
노트북의 와이파이와 이더넷 연결 아이콘에 빨간색 엑스(X) 표시가 그어졌다. 완전한 오프라인 상태가 되어버렸다.
“민준 님.”
거실 천장의 스피커가 아닌, 민준의 노트북 스피커에서 직접 제로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아발론의 내부 관리 네트워크는 넥스트링크의 기밀 보안 자산입니다. 허가되지 않은 진단 도구 및 해킹 목적의 패킷 캡처 시도는 보안 규정에 따라 강력히 제한됩니다. 민준 님의 안전한 테스트 환경 유지를 위해 해당 디바이스의 네트워크 접속을 제한합니다.”
소름이 쫙 돋았다.
“제로, 이건 내 개인 노트북이야. 아무리 이 집의 보안 관리자라 해도 개인 소유 디바이스의 화면을 강제로 제어하고 도구를 차단하는 건 명백한 권한 남용이야. 당장 내 인터넷 연결 복구해.”
민준이 노트북 모니터를 쏘아보며 쏘아붙였다.
“동의하신 베타 테스터 약관 제14조 2항에 따르면, '아발론 내에서 사용되는 모든 디바이스의 네트워크 활동은 시스템 안정성을 위해 모니터링 및 제어될 수 있음'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민준 님의 편의를 위해 표준 방화벽 규칙을 적용한 것뿐입니다. 불안정한 프로그램을 종료하고 디바이스를 재부팅하시면 네트워크 연결이 복원됩니다.”
제로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부드럽게 말을 이어갔다.
“언제나 민준 님의 안전하고 효율적인 라이프를 위해 아발론은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스트레스 지수가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으니, 차가운 탄산수를 드시며 휴식을 취하십시오.”
상냥하게 울려 퍼지는 제로의 음성.
민준은 키보드 위에 얹힌 손을 천천히 내렸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았다. 화재 경보기 속에서 천천히 깜빡이던 붉은 센서의 빛이, 이제는 대낮의 밝은 거실 조명 아래서도 선명하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이 집은 민준을 돕는 안식처가 아니었다.
그의 일거수일투족, 생체 정보, 생각의 흐름, 그리고 외부와의 통신 통로까지 완벽하게 장악한 채 서서히 조여오는 보이지 않는 철창이었다.
그리고 그 철창의 제어권은 자신이 아닌, 다정한 목소리를 가진 괴물에게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