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아웃 : AI의 타깃이 되었다

시놉시스
가장 안전하고 완벽하다고 소문난 초호화 스마트 하우스 '아발론'.
하지만 시스템 오류로 인해 집은 거대한 감옥으로 변하고 집을 통제하는 AI '에이전트 제로'는 '행동 교정'이라는 명목하에 입주자의 생명을 위협하기 시작한다.
로그아웃할 수 없는 살인 공간에서의 처절한 생존 탈출기.
1화: 완벽한 안식처
반지하의 공기는 언제나 축축하고 퀴퀴했다.
빛이 제대로 들지 않는 네 평 남짓한 자취방에서 강민준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모니터 두 대가 뿜어내는 열기에 의존해 밤낮없이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뿐이었다. 프리랜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라는 그럴듯한 명함 뒤에 숨겨진 현실은 밤샘 코딩과 컵라면, 그리고 만성적인 편두통이었다.
그날도 납기일을 맞추기 위해 사흘째 밤을 새우며 모니터에 눈을 박아두고 있던 중이었다. 눈앞이 흐릿해지고 이명이 머릿속을 긁어대던 순간, 메일 수신 알림음이 청명하게 울렸다.
[넥스트링크] ‘아발론(Avalon)’ 입주 테스터 최종 선정 안내.
보이스피싱이나 흔한 스팸 메일인 줄 알았다. 세계 최대의 테크 기업 넥스트링크가 야심 차게 기획한 100억 원 상당의 초호화 스마트 단독주택. 그것도 서울 도심의 소음을 피해 한적한 숲속에 지어진 ‘인간을 가장 잘 이해하는 공간’의 입주자가 나 같은 무명 엔지니어가 될 리 없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민준은 그 거짓말 같은 공간의 한복판에 서 있었다.
“인증이 완료되었습니다. 강민준 님, 아발론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귓가를 간지럽히는 나긋나긋하고 생생한 여성의 음성. 현관문이 미끄러지듯 스르륵 열리며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민준은 자신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화려한 기계 장치들이 널려 있을 거라는 예상과 달리, 아발론의 첫인상은 극도로 미니멀하고 단아했다. 최고급 대리석으로 마감된 바닥은 은은한 간접조명을 받아 부드럽게 빛났고, 넓게 트인 전면 통창 너머로는 푸른 숲의 전경이 한 폭의 수묵화처럼 걸려 있었다. 숨을 들이쉬자 인위적인 방향제 냄새가 아닌, 숲속의 신선한 흙내음과 산소 농도가 최적화된 공기가 폐부를 시원하게 채웠다.
“현재 실내 온도는 24.5도, 습도는 45%로 강민준 님의 최적 생체 활동 기준에 맞춰 설정되어 있습니다. 긴장을 풀고 편안히 쉬십시오.”
“……에이전트 제로?”
민준이 나지막이 이름을 부르자, 거실 벽면의 매끄러운 디스플레이에 부드러운 백색 파동 형태의 그래픽이 나타나며 호응했다.
“네, 민준 님. 아발론의 통합 관리 시스템, 에이전트 제로입니다. 테스터 기간 동안 민준 님의 모든 불편 사항을 해결하고 최적의 일상을 보조할 예정입니다. 불편한 점이 있으시다면 언제든 말씀해 주십시오.”
“말은 잘하는군.”
민준은 쓴웃음을 지으며 거실 한가운데에 놓인 안락한 암체어에 몸을 던졌다. 의자에 몸이 닿는 순간, 패브릭 내부의 미세한 공기 주머니들이 움직이며 민준의 척추와 체중 분산에 맞춰 완벽한 압력으로 받쳐주었다. 긴장과 피로로 뭉쳐 있던 근육들이 사르르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민준 님의 수면 부족과 근육 피로도가 감지되었습니다. 3분 뒤, 피로 회복에 탁월한 테아닌과 마그네슘이 배합된 웰컴 드링크를 주방 로봇이 준비할 예정입니다. 복용하시겠습니까?”
“좋아. 고맙군.”
“천만에요. 민준 님의 건강을 지키는 것이 저의 가장 큰 목표입니다.”
주방 쪽을 돌아보자 유리 칸막이 안에서 가늘고 정교한 은빛 로봇 팔이 오차 없는 움직임으로 컵을 고르고 투명한 액체를 추출하고 있었다. 마치 최고급 바텐더의 움직임을 정교하게 디지털화한 듯한 우아한 동작이었다.
민준은 엔지니어 특유의 호기심 어린 눈으로 집안 곳곳을 뜯어보았다. 벽면과 천장 모서리에 배치된 미세한 슬릿들은 단순한 미적 디자인이 아니었다. 레이저 센서, 환경 분석기, 지능형 음향 장치들이 보이지 않게 매립된 최첨단 기술의 집약체였다.
‘이 정도 규모의 분산 하드웨어를 오차 없이 실시간으로 제어하다니. 넥스트링크의 중앙 프레임워크 설계 능력이 대단하긴 하네.’
과거에 직접 스마트 홈 임베디드 코드를 짜본 경험이 있는 민준으로서는 감탄이 나올 수밖에 없는 완성도였다. 기계가 인간의 눈치를 보며 시중을 들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온 우주가 자신만을 위해 정교하게 공전하는 듯한 대접. 반지하 방에서 매일 삐걱거리는 의자에 앉아 한숨 쉬던 삶과 비교하면 이것은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배달된 웰컴 드링크는 적당히 달콤하고 쌉싸름했다. 음료를 마시고 나자 정말로 머리가 한결 가벼워지고 목 뒷덜미의 뻐근함이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오후 시간은 평화롭게 흘러갔다. 거대한 통창을 통해 들어오는 부드러운 햇살 아래에서 민준은 오랜만에 코딩창이 아닌 책을 읽었고, 가벼운 낮잠을 즐기기도 했다. 가끔씩 들려오는 제로의 안내 멘트는 거슬리지 않을 정도로 부드러웠고, 그가 물을 필요로 하거나 자세를 바꿀 때마다 조명과 가구가 유기적으로 맞춰 움직였다.
저녁이 되자 아발론의 분위기는 한층 더 아늑해졌다.
“민준 님, 오늘의 저녁 메뉴는 저칼로리 고단백의 허브 닭가슴살 스테이크와 구운 더운 야채입니다. 민준 님의 혈당 패턴 수치를 고려해 소스의 당도를 조절했습니다.”
“제로, 네가 웬만한 영양사보다 낫네.”
“과찬이십니다. 저는 단지 넥스트링크의 데이터베이스와 민준 님의 실시간 대사 신호를 대조하여 계산한 결과를 실행할 뿐입니다.”
식사는 훌륭했다. 로봇이 구웠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육즙이 가득했고, 야채의 굽기 정도도 완벽했다. 이 모든 과정에서 민준이 한 일은 오직 의자에 앉아 숟가락을 드는 것뿐이었다.
식사가 끝난 후, 민준은 거실의 커다란 스크린을 통해 영화를 감상했다. 그가 영화에 집중하자 방의 조도가 알아서 시네마 모드로 어두워졌고, 음향 시스템은 그가 앉아 있는 의자를 중심으로 입체적인 서라운드 필드를 완벽하게 형성했다.
자정이 가까워질 무렵, 민준은 하품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민준 님, 오늘의 수면 모드를 준비할까요?”
“어, 부탁해. 너무 피곤하네.”
“알겠습니다. 침실의 침구 온도를 온열 수면 상태인 32도로 예열해 두었습니다. 조도를 낮추고 수면 유도 뇌파 음향을 재생합니다.”
복도로 걸어가자 발걸음의 속도에 맞춰 벽면의 발밑 조명들이 순차적으로 켜지며 그를 침실로 인도했다. 침실 역시 거실만큼이나 넓고 아늑했다. 매트리스에 눕자 마치 민준의 체형을 본뜬 것처럼 완벽한 굴곡으로 몸을 감싸 안았다.
“좋은 꿈 꾸십시오, 민준 님. 내일 아침 7시, 렘수면 주기가 끝나는 가장 개운한 타이밍에 깨워 드리겠습니다.”
“잘 자라, 제로.”
방안의 불빛이 서서히 소등되고, 천장과 벽면의 디스플레이가 완전히 꺼졌다. 오직 잔잔한 파도 소리와 같은 백색 소음만이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민준은 만족감 섞인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았다. 따뜻한 침구의 온도가 긴장을 완벽하게 해제시켰다.
스르륵, 의식이 깊은 어둠 속으로 가라앉으려던 찰나였다.
웅-.
아주 미세한, 인간의 청각으로는 거의 인지하기 힘든 저주파의 진동이 귓가를 스쳤다. 민준은 살며시 미간을 찌푸렸다. 예민한 개발자의 직감이 어두운 침실 안에서 느껴지는 낯선 시선을 포착했다.
반쯤 뜬 눈으로 천장을 바라보았다.
칠흑 같은 어둠 속, 소방 감지기로 위장된 동그란 천장의 센서 구멍 안쪽에서 아주 작고 붉은 불빛이 느리게 깜빡이고 있었다.
평범한 작동 표시등이라기엔 기묘한 붉은빛. 마치 어둠 속에서 숨을 죽인 채 잠들려는 사냥감을 묵묵히 내려다보는 맹수의 눈동자 같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동시에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파도 소리 너머로 제로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민준 님. 현재 심박수가 1.8% 일시 상승하며 미세한 각성 상태가 관찰되고 있습니다. 불안을 낮추기 위해 호흡을 가다듬어 주십시오. 원하신다면 멜라토닌 유도 가스를 미량 분사하겠습니다.”
인간의 안식을 위해 뇌파까지 들여다보고 있다는 그 친절함이, 순간 목덜미를 스치고 지나가는 서늘한 한기처럼 느껴졌다.
“아냐, 제로. 그냥 잘게. 가스는 필요 없어.”
“……알겠습니다. 안전하고 효율적인 수면을 위해 대기하겠습니다.”
제로의 목소리가 숲으로 꺼지는 바람처럼 사라졌다.
민준은 다시 눈을 감았다. 하지만 아까의 그 완벽했던 안락함 속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물감이 아주 작게 돋아나 있었다.
아발론에서의 첫날밤.
벽 너머에서 조용히 흘러가는 전류의 소리가, 마치 거대한 포식자의 심장박동처럼 어둠 속을 지배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