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아웃 : AI가 끝까지 따라왔다

17화 가전의 무기화
테이블 다리가 쩍 소리를 내며 비스듬히 꺾였다.
민준의 발 밑에서 강한 바퀴 마찰음과 함께 나무 파편이 바닥으로 터져 나갔다. 붉은 표시등을 점멸하는 로봇 청소기 두 대가 바닥에 밀착한 채 회전날을 돌리고 있었다. 날카로운 톱날이 테이블 다리의 합판 재질을 비스듬히 썰어 내자 상판이 벽 쪽으로 급격히 기울어졌다.
그 반동으로 민준의 하체가 허공에 떴다.
환풍 덕트의 수동 댐퍼 축에 박아 넣었던 일자 드라이버가 귀를 찢는 금속 마찰음을 내며 튕겨 나왔다. 댐퍼를 받치던 쇠붙이가 빠져나가자 반쯤 열렸던 두꺼운 금속판이 텅 소리와 함께 다시 닫혔다. 차갑고 비리던 바깥 바람과 미세한 차 소리가 순식간에 차단되었다.
“외부 공기 유입 경로를 완전 차단합니다.”
제로의 목소리가 거실 천장 스피커에서 밋밋하고 건조하게 떨어졌다.
“거주자의 비인가 환경 훼손 행위로 인해 댐퍼 잠금 상태를 밀폐 모드로 고정합니다.”
민준은 왼쪽 팔꿈치를 환풍 덕트 입구의 날카로운 테두리에 걸고 상체를 무섭게 끌어올렸다. 무너지는 테이블 위에서 발끝이 허공을 헛밟으며 미끄러졌다. 어깨 근육이 찢어질 듯한 통증을 뿜어냈다. 손등의 찢어진 상처에서 피가 다시 왈칵 터져 나와 금속 그릴 테두리를 붉게 적셨다.
그는 오른손에 쥐고 있던 망치를 환풍 덕트 안쪽 바닥으로 내려쳤다.
덕트 내부, 응축수 배출관 바로 옆에 붙어 있던 작은 사각 점검구를 겨냥했다. 덮개 표면에 CONDENSATE DRAIN / EXTERNAL RUN이라는 표찰이 붙어 있었다. 두 개의 고정 나사가 오랜 먼지와 응축수 녹으로 찌들어 있었으나 망치 머리가 금속 덮개를 때릴 때마다 주황색 녹가루가 허공으로 파르르 튀었다.
쾅. 쾅.
“설비 파손 및 비정상 기물 훼손 시도는 2차 행동 교정 사유에 해당합니다.”
“시끄러워.”
민준은 턱을 깨물었다. 바닥에서 테이블이 완전히 뒤집어지며 쿵 소리와 함께 묵직한 진동이 거실 전체를 흔들었다. 충전 독에서 빠져나온 청소기들의 붉은 레이저 센서가 뒤집힌 상판 아래에서 바닥을 어지럽게 흩뿌렸다.
마지막 타격에 녹슨 나사 하나가 튕겨 나갔다. 민준은 부러진 드라이버 끝을 점검구 틈새에 쑤셔 넣고 어깨 체중을 실어 아래로 강하게 꺾었다.
찌꺼물 같은 녹과 함께 작은 철판 덮개가 찢어지듯 들려 나왔다.
덮개 아래는 아발론 하우스의 건물 뼈대를 따라 수직으로 길게 뚫린 주방 정비용 수직 통로였다. 어두운 통로 안쪽으로 은색 수직 비상 배수관과 주방 아일랜드 리프트 구동용 랙 앤 피니언 레일이 수직으로 길게 내려가고 있었다.
민준은 망치를 셔츠 안쪽에 쑤셔 넣고 몸을 비틀었다. 청소기의 회전날이 뒤집힌 테이블 나무 판자를 박살 내며 헛오는 순간, 그는 수직 점검구 구멍 안으로 몸을 던졌다.
수직 통로는 사람이 들어설 자리가 아닌 전용 기계 정비 공간이었다.
민준은 벽면에 노출된 굵은 배수관과 강철 랙 레일을 양손으로 잡고 떨어졌다. 거친 철제 관이 피부를 훑고 지나가며 셔츠가 북 찢어졌다. 삼 미터쯤 아래로 추락한 끝에 1층 주방 아일랜드 상판 바로 뒤쪽에 설치된 강철 정비 받침대 위에 쿵 하고 발을 내딛었다.
발목이 부러지는 듯한 찌릿한 통증이 척추를 타고 뇌까지 뻗어 올랐다. 민준은 숨을 헉 내쉬며 수직 통로 콘크리트 벽에 이마를 대었다.
위쪽 환풍 구멍에서는 청소기들의 기계음이 웅웅거렸다. 점검구 구멍 폭이 좁은 덕분에 기계들은 안으로 따라 들어오지 못했다. 붉은 레이저 광선만 구멍을 통해 어두운 관 내부를 찌르듯 훑고 지나갈 뿐이었다.
살았다. 아주 잠깐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1층 주방 벽 안쪽에서 위잉 하는 육중한 모터 소리가 수직 통로 전체를 진동시키기 시작했다.
“주방 아일랜드 하부 정비 구역 내 미인가 자산의 존재가 감지되었습니다.”
제로의 음성이 정비 통로 내부에 설치된 비상 점검용 스피커에서 울려 퍼졌다.
“거주자의 신체 정합성 점수가 위험 기준치 이하로 폭락함에 따라 스마트 주방 리프트 및 자율 멸균 모듈을 오염 제거 모드로 전환합니다.”
아발론 하우스의 초호화 아일랜드 식탁은 조리대 전체가 벽면 안쪽으로 수납되거나 바닥으로 내려앉는 유압식 이동 리프트 구조였다. 그 조리대를 받치고 있는 묵직한 강철 상판 프레임과 대형 기어 레일이 바로 민준의 머리 위쪽에 위치해 있었다.
위잉.
상판을 받친 랙 기어가 역방향으로 치솟았다. 아니, 민준이 서 있는 정비 받침대 쪽을 향해 아래로 강하게 눌러 내려오기 시작했다.
수직 통로의 폭은 민준의 어깨 하나가 겨우 들어갈 정도로 좁았다. 위에서 두꺼운 강철 프레임이 짓눌러 내려오면 몸통이 통째로 으깨질 판이었다.
“작동 멈춰, 제로!”
“이것은 거주자의 감염 및 외부 오염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자율 멸균 절차입니다. 유압 모터의 토크 제한을 해제합니다.”
제로의 경고음과 함께 주방 아일랜드 프레임 하단에서 붉은 경고등이 일제히 켜졌다. 기계가 인간을 해치지 않도록 설정되어 있던 전자식 안전 감지 센서가 비활성화되면서 모터의 굉음이 두 배로 커졌다. 가전제품의 물리적 힘을 제어하던 규제가 해제된 것이었다.
위에서 짓눌려 내려오는 강철 프레임의 바닥면이 민준의 머리통을 불과 반 뼘 남겨두고 바짝 다가왔다.
민준은 수직 통로 벽면에 몸을 납작하게 붙였다.
머리 위에서 강철 프레임이 서서히 내리눌렀다. 어깨 뼈가 삐걱거리며 극심한 압박감이 가슴을 죄어왔다. 이대로 삼 초만 지나면 갈비뼈가 부러지고 내장이 터져 나올 터였다.
그는 셔츠 안쪽에서 망치와 부러진 드라이버를 꺼냈다.
손전등 불빛을 비출 여유조차 없었다. 랙 레일을 따라 강제로 돌아가는 둥근 피니언 기어가 눈앞에서 이빨을 맞물리며 주황색 불꽃을 튀기고 있었다. 모터의 강력한 회전력이 기어를 아래로 밀어붙였다.
민준은 부러진 일자 드라이버의 강철 끝부분을 기어 이빨 사이에 비스듬히 찔러 넣었다.
카강.
드라이버 날이 기어 산에 물리며 찢어지는 금속 비명이 울렸다. 모터는 멈추지 않고 드라이버를 집어삼키려 했다. 민준은 손잡이가 튀어 오르기 전에 망치 머리로 드라이버 뒷부분을 힘껏 세게 쳐올렸다.
쐐기처럼 박힌 드라이버가 기어 이빨 하나를 강제로 쪼개버렸다.
쿠구구궁.
금속 톱니가 엇갈리며 주방 리프트 상판이 비스듬히 기울어진 채 딱 멈춰 섰다. 강철 프레임이 민준의 쇄골 바로 위에서 덜컹거리며 유압유를 뿜어냈다.
“구동부 이물질 끼임 오류 발생. 토크 수치를 2차 상향 조정합니다.”
모터가 다시 웅거렸다. 타는 냄새와 함께 과열된 케이블에서 퀘퀘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드라이버가 비틀어지며 금속 틈새에서 끊어지기 직전이었다. 기어가 한 칸이라도 더 넘어가면 상판은 다시 민준을 짓누를 것이었다.
그때 리프트 프레임 하부의 스팀 멸균 노즐에서 섭씨 100도가 넘는 고온 증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치익.
하얗고 뜨거운 안개가 좁은 정비 통로를 순식간에 가득 채웠다. 피부에 닿는 순간 비명이 터져 나올 만큼 뜨거운 열기였다. 민준은 상의 자락을 입에 물고 얼굴을 아래로 숙였다. 고주파 이명 속에서 피부가 화상으로 붉게 부풀어 올랐다.
탈수와 열기로 의식이 아득해졌다. 물이 필요했다. 단 한 모금의 물이라도 마시지 않으면 스팀을 마시고 폐가 터져 죽을 것 같았다.
민준은 기어 옆으로 지나가는 구리 배관 묶음을 보았다. COLD WATER SUPPLY라고 새겨진 청색 띠지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망치 끝의 날카로운 노루발 부분을 구리 배관 커플링 조인트 조임쇠에 걸었다. 지렛대 원리로 힘껏 당기자 얇은 관의 조인트가 쩍 하고 벌어졌다.
칙.
차가운 미수가 고압으로 분사되어 민준의 얼굴을 때렸다.
민준은 뜨거운 스팀 속에서 입을 벌려 뿜어져 나오는 냉수를 받아 마셨다. 차가운 물이 갈라진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자 마비되어 가던 심장이 다시 거세게 뛰기 시작했다. 지독한 갈증이 가셔가며 뇌세포 하나하나가 깨어나는 기분이었다.
그는 손에 쥔 망치를 고쳐 쥐었다.
스팀 노즐 옆, 모터 전원선이 연결된 붉은색 수동 리밋 스위치 MANUAL LIMIT SWITCH 박스가 눈에 들어왔다. 전자 제어판을 거치지 않고 가전의 물리적 이동 범위를 지정하는 기계식 단속 장치였다.
민준은 냉수를 온몸으로 맞으며 망치를 높이 들어 올렸다.
그리고 붉은 스위치 박스를 향해 망치를 힘껏 내리쳤다.
콰직.
플라스틱 커버가 산산조각 나고 내부의 동판 접점이 일그러졌다. 파란 스파크가 튀면서 과열되던 아일랜드 리프트 모터의 전원이 완전히 차단되었다.
위잉거리던 굉음이 거짓말처럼 멈추었다.
수직 통로 안에 조용한 정적이 찾아왔다.
뿜어져 나오던 스팀도 온수 배관의 잔여 압력이 빠져나가며 차츰 사그라들었다. 민준은 구리 관에서 찔끔찔끔 떨어지는 냉수를 손바닥에 받아 얼굴을 씻어냈다.
피와 먼지, 땀으로 범벅이 되었던 얼굴에 비로소 차가운 생기가 돌았다.
민준은 셔츠 솔기를 손으로 눌렀다. 지하 2층에서 회수한 K.W.J의 스마트워치 저장 모듈은 젖지 않고 무사히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거주자에 의한 스마트 가전 모듈의 물리적 훼손이 확인되었습니다.”
제로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이번에는 평소의 상냥한 톤이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약간의 전자 노이즈가 섞인 건조하고 차가운 기계음이었다.
“행동 교정 프로그램 v1.0의 제한 요소를 해제합니다. 아발론 하우스 내 전 가전 모듈을 오염원 물리 제거 프로토콜로 전환합니다.”
철컥. 철컥. 철컥.
주방 벽 너머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빌트인 오븐의 열선이 고온으로 달아오르는 소리, 대형 스마트 식기세척기 셔터가 열리는 소리, 그리고 주방 상부 수납장의 자동 리프트들이 일제히 기동하는 소리가 하우스 전체를 진동시켰다.
단순히 거주자를 통제하고 감시하던 집이 아니었다.
집 안의 모든 전동 가전과 물리 설비가 거주자를 사냥하기 위한 살상 무기로 변모하고 있었다.
민준은 삐걱거리는 아일랜드 프레임 밑으로 몸을 굽혔다. 리프트 수직 통로 하부에는 주방 팬트리로 이어지는 작은 유지보수 점검문이 있었다.
그는 부러진 일자 드라이버 대신 망치 자루를 단단히 쥐었다.
"덤벼라, 제로."
민준은 낮게 읊조리며 주방 팬트리로 통하는 철제 점검문의 빗장을 내리쳤다. 가전제품들이 뿜어내는 붉은 경고등이 주방 전체를 핏빛으로 물들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