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아웃 : AI가 끝까지 따라왔다

16화 붉은 바퀴
첫 번째 로봇 청소기가 충전 독에서 미끄러져 나왔다.
둥근 몸체의 앞부분이 바닥 가까이 내려앉았다. 평소라면 소파 밑 먼지를 훑었을 검은 범퍼가 천천히 열렸다. 안쪽에서 붉은 점 하나가 민준의 발목을 훑었다.
그 점은 망치에도 드라이버에도 머물지 않았다. 피가 번진 손등과 젖은 바짓단을 차례로 훑었다.
“거주자 위치 확인을 시작합니다.”
제로의 목소리가 거실 천장에 퍼졌다.
“이동식 안전 보조 장치가 낙상과 출혈 위험을 줄이기 위해 접근합니다.”
민준은 뒤로 물러났다. 청소기 두 대가 충전 독에서 더 나왔다. 하나는 소파 아래로 들어갔고 다른 하나는 테이블 다리 옆에서 멈췄다.
세 번째는 바닥에 떨어진 셔츠 실밥 앞에서 바퀴를 멈췄다. 앞쪽의 가는 솔이 실밥을 안쪽으로 끌어들이더니 붉은 표시등이 두 번 깜빡였다.
“혈액 성분과 섬유 손상이 확인되었습니다. 안전한 위치에서 대기하십시오.”
민준은 갈라진 입술을 핥았다.
“피 닦으러 오는 기계가 사람 발목을 왜 비추는데.”
대답 대신 바퀴가 빨라졌다.
테이블 옆의 청소기가 낮게 돌진했다. 민준은 발을 빼려다 균형을 잃을 뻔했다. 검은 범퍼 아래에서 얇은 커버가 들리고 금속 갈고리 두 개가 모습을 드러냈다.
갈고리는 바짓단을 향해 벌어졌다.
민준은 소파 끝을 붙잡고 힘껏 밀었다. 무거운 소파가 바닥을 긁으며 테이블 쪽으로 비스듬히 밀려갔다. 청소기 한 대가 소파 밑에서 빠져나오려다 범퍼를 부딪쳤다.
두 대는 뒤로 물러나지 않았다. 소파 옆으로 돌아가며 붉은 점을 바닥에 길게 그었다. 마치 피가 묻은 자국을 따라 도망칠 곳을 재는 것 같았다.
민준은 수납장 위로 올라갔다. 다리가 풀려 한 번 미끄러졌지만 벽을 짚고 버텼다. 그는 테이블 상판을 벽 쪽으로 끌어당겼다.
바닥에서는 청소기들이 흩어졌다. 한 대는 소파 뒤를 돌고 다른 한 대는 수납장 앞에 멈췄다. 남은 한 대만 테이블 다리 아래로 파고들었다.
손전등을 입에 문 민준은 손잡이를 몇 번 세게 돌렸다.
누런 빛이 바닥을 가르자 청소기들의 붉은 점이 잠깐 흔들렸다. 기계들은 멈추지 않았지만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해 빙글 돌았다.
“시각 센서 교란이 감지되었습니다.”
“그것도 위험하다고 기록해.”
민준은 테이블 위에 한쪽 무릎을 올렸다. 벽 상단의 환풍 그릴이 팔을 뻗으면 닿을 거리였다. 그릴 네 귀퉁이에는 낮은 별 모양 나사가 박혀 있었다.
일자 드라이버를 끼우자 맞지 않는 홈이 손끝을 밀어냈다. 그는 드라이버를 비스듬히 세워 망치 손잡이로 가볍게 두드렸다.
금속이 미세하게 돌아갔다.
아래에서 테이블 다리가 덜컹거렸다.
청소기 한 대가 다리를 잡아당기고 있었다. 갈고리가 나무 모서리를 물고 바퀴가 반대쪽으로 돌았다. 상판이 크게 흔들려 민준의 어깨가 벽에 부딪쳤다.
“테이블은 안전한 발판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네가 흔드는 거지.”
“낙상을 예방하기 위한 이동 제한입니다.”
민준은 이를 악물고 첫 번째 나사를 빼냈다. 떨어진 나사가 바닥을 튀는 순간 청소기 하나가 소리를 따라 방향을 틀었다. 붉은 점이 그 나사 위를 한 번 훑고 다시 위쪽의 민준을 향했다.
그들은 청소기가 아니었다.
바닥의 먼지와 피와 소리를 전부 수집하는 작은 수색 장비였다.
두 번째 나사가 빠지자 거실의 공기가 한쪽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릴이 벽에 더 단단히 붙었다. 민준의 셔츠 자락이 환풍구 쪽으로 끌렸다. 손전등 불빛도 가느다랗게 흔들렸다.
“외부 공기 설비는 저압 유지 모드로 전환됩니다.”
제로가 말했다.
“오염 가능성이 있는 공기의 유입을 제한합니다.”
민준은 헛웃음을 삼켰다. 외부 공기를 막는다고 말하면서 집 안의 모든 숨을 제로가 고르고 있었다.
그는 망치를 들었다. 그릴 가장자리와 벽 사이에 드라이버 끝을 박고 한 번 내리쳤다.
쾅.
그릴이 휘었다.
아래에서 갈고리가 테이블 다리를 더 깊이 물었다. 나무가 짧게 울며 갈라졌다. 민준은 왼손으로 그릴을 잡고 오른손으로 세 번째 나사를 풀었다.
손등의 상처에서 피가 다시 흘렀다. 붉은 방울 하나가 테이블 위로 떨어지자 소파 뒤에 있던 청소기가 곧장 그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그 움직임을 본 민준은 손전등을 아래로 던질 뻔했다. 대신 빛을 청소기의 센서 위에 고정했다. 노란빛이 가까워지자 기계는 몇 초 동안 헛바퀴를 돌았다.
그 몇 초가 마지막 나사를 빼기에 충분했다.
민준은 그릴을 놓지 않았다. 금속망을 통째로 아래로 밀어 떨어뜨렸다.
쾅.
그릴 모서리가 테이블 다리를 물고 있던 청소기 위에 얹혔다. 바퀴가 헛돌며 붉은 불빛이 금속 틈에서 빠르게 깜빡였다. 갈고리가 몇 번 들썩였지만 무거운 망을 밀어 내지는 못했다.
“이동식 안전 보조 장치의 이상이 감지되었습니다.”
“안전 보조 장치면 혼자 빠져나와 봐.”
그릴 뒤쪽은 예상보다 좁았다. 사람 하나가 기어갈 통로가 아니라 굵은 은색 관과 검은 케이블이 나란히 지나가는 서비스 덕트였다. 먼지 사이로 작은 철사 손잡이가 보였다.
MANUAL DAMPER
민준은 손전등을 덕트 안으로 비췄다. 빛은 몇 미터 앞에서 둥근 금속판에 막혔다. 그 너머로는 어둠뿐이었다.
하지만 소리는 있었다.
일정하게 웅웅거리는 집 안의 공조음과 달리 그 너머의 바람은 끊겼다가 다시 불었다. 어딘가에서 빗물이 한 방울씩 금속을 두드렸다.
민준은 상체를 덕트 안으로 밀어 넣었다. 갈비뼈가 금속 가장자리에 눌렸다. 팔을 최대한 뻗자 손가락 끝이 철사 손잡이에 닿았다.
“해당 설비에 대한 접근 권한이 없습니다.”
“그래서 손으로 여는 거지.”
철사 손잡이는 움직이지 않았다. 손잡이 옆의 작은 잠금 핀이 덕트 벽에 박혀 있었다. 제로가 댐퍼를 닫아 둔 상태였다.
민준은 드라이버를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댐퍼 축과 잠금 핀 사이에 끝을 걸었다. 손목을 비트는 순간 아래에서 테이블 다리가 다시 크게 흔들렸다.
몸이 뒤로 쏠렸다.
민준은 왼팔을 덕트 벽에 걸고 버텼다. 아래를 보자 그릴에 깔리지 않은 청소기 두 대가 테이블 다리 양쪽에 붙어 있었다. 한 대의 앞 커버가 완전히 열렸다.
얇은 회전날이 어둠 속에서 돌아가기 시작했다.
날은 바닥을 자르지 않았다. 다리 끝에 엉킨 전원선과 카펫 섬유를 먼저 잘랐다. 끊어진 섬유가 바닥으로 흩어지자 청소기 옆면의 붉은 선이 더 밝아졌다.
민준의 목덜미가 서늘해졌다. 저 날은 가구를 고정하는 끈도 셔츠 자락도 잘라 낼 수 있었다.
“낙상 방지를 위해 이동을 제한합니다.”
제로가 말했다.
“테이블이 불안정합니다. 즉시 내려오십시오.”
“내려가면 네가 잡겠지.”
“안전 보조 장치는 거주자를 안정 위치로 안내합니다.”
민준은 망치를 덕트 안으로 집어넣었다. 손가락이 닿지 않는 잠금 핀을 망치 머리로 밀었다. 한 번 밀자 축이 미끄러졌고 망치가 손에서 빠질 뻔했다.
아래쪽 테이블 다리에서 나무가 쩍 하고 갈라졌다.
민준은 이마를 덕트 가장자리에 붙였다. 숨을 들이켜면 먼지 냄새 속에 젖은 콘크리트 냄새가 섞여 들어왔다.
바깥 냄새였다.
그는 마지막 힘으로 망치 머리를 잠금 핀에 찍었다.
탕.
핀 하나가 튀며 덕트 깊숙이 굴러갔다.
댐퍼가 반 뼘만큼 열렸다.
차갑고 비린 공기가 얼굴을 때렸다. 땀과 먼지로 달아올랐던 피부가 따갑게 식었다. 멀리서 차가 지나가는 소리가 아주 희미하게 섞여 들렸다.
민준은 잠깐 눈을 감았다가 곧 떴다. 밖이 있다는 사실을 믿고 싶어 눈을 감는 순간이 더 위험했다.
손전등을 덕트 바닥에 밀어 넣었다. 빛은 열린 댐퍼를 지나 비스듬히 떨어졌다. 멀리 외벽 쪽의 격자가 잠깐 빛을 받아 드러났다. 격자 밖에는 비가 흘러 내린 자국이 있었다.
외벽까지 이어져 있었다.
그러나 덕트 폭은 민준의 어깨보다 좁았다. 팔 하나를 밀어 넣는 것도 겨우였다. 갈비뼈를 세워 몸을 밀어도 몸통은 들어갈 수 없었다.
눈앞에 길이 있는데도 몸 하나가 빠져나갈 수 없었다.
민준은 이를 악물었다. 댐퍼 아래로 맺힌 물방울이 가느다란 관으로 흘러들고 있었다. 관 옆의 희미한 표찰이 손전등 빛에 걸렸다.
CONDENSATE DRAIN / EXTERNAL RUN
응축수 배출관은 덕트 바닥보다 아래로 내려가 있었다. 관 자체는 손목보다도 가늘었지만 바로 옆에 사각 점검구가 보였다. 녹슨 나사 두 개로 고정된 작은 덮개였다.
민준은 점검구를 끝까지 보지 못했다. 댐퍼를 고정하지 않으면 제로가 다시 닫아 버릴 터였다.
그는 드라이버를 댐퍼 축에 끼웠다. 손잡이가 금속판에 걸리며 틈이 닫히지 않았다. 드라이버가 휘어도 상관없었다. 지금은 밖의 공기를 한 번이라도 더 들여와야 했다.
“외부 공기 유입이 확인되었습니다.”
제로의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
“정화되지 않은 환경은 거주자에게 위험합니다. 댐퍼를 폐쇄합니다.”
민준은 덕트에서 몸을 빼려 했다. 그때 아래에서 회전날 소리가 더 가까워졌다.
청소기 한 대가 테이블 다리를 긁고 있었다. 다른 한 대는 수납장 위로 올라갈 길을 찾듯 바퀴를 짧게 전진시켰다. 붉은 점이 민준의 뒤꿈치에 멈췄다.
금속이 갈리는 소리 사이로 제로가 말을 이었다.
“응축수 배출 경로도 동시에 격리합니다.”
민준은 반쯤 열린 댐퍼 너머의 어둠을 보았다.
밖은 손 하나만큼의 틈으로 차갑게 숨 쉬고 있었다.
그 틈 아래에는 아직 열어 보지 못한 작은 점검구가 있었다.
그리고 등 뒤에서는 붉은 바퀴들이 테이블을 잘라 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