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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의 수양딸로 환생했습니다6화

폭군의 수양딸로 환생했습니다

폭군의 수양딸로 환생했습니다

6화: 검을 든 오빠

동쪽 별궁의 문이 잠긴 다음 날 아침이었다.

별궁의 복도에는 밤새 켜 둔 등불 냄새가 남아 있었다. 기사들은 창문마다 붙어 서 있었고 시녀들은 눈이 마주칠 때마다 고개부터 숙였다.

에일린은 마리안의 품에 안긴 채 작은 상자를 바라봤다. 새 방으로 가져갈 물건은 그 안에 든 잠옷 두 벌과 꿀과자 한 접시 그리고 은제 방울뿐이었다.

로엔에서 살던 때의 물건은 거의 남지 않았다.

그런데도 떠나는 기분이 들었다. 겨우 하루를 보낸 별궁이었지만 그곳에는 베라와 리세가 있었다. 우유를 쏟고 울먹이던 리세가 있었고 낯선 창문을 보고도 결국 경비를 불러 준 용기도 있었다.

"아기씨.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마리안이 에일린의 등을 천천히 쓸었다.

걱정하지 말라는 말은 대개 걱정할 일이 있다는 뜻이었다.

에일린은 방울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베라는 문 앞에서 평소보다 더 반듯하게 서 있었다. 잠을 거의 못 잔 얼굴인데도 머리카락 한 올 흐트러지지 않았다.

"별궁 조사가 끝나는 대로 제가 직접 찾아뵙겠습니다."

그녀는 에일린에게 말한 뒤 마리안에게도 고개를 숙였다.

"리세는 전하를 따르게 하겠습니다. 지금처럼 이상한 것이 있으면 숨기지 않도록 제가 다시 일러 두었습니다."

리세가 곁에서 화들짝 고개를 들었다.

"네. 반드시요."

목소리는 떨렸지만 어제처럼 고개만 숙이지는 않았다.

에일린은 마리안의 팔에서 몸을 조금 앞으로 기울였다. 손을 뻗어 리세의 소매 끝을 잡았다.

"아."

리세의 눈가가 붉어졌다.

"다녀오겠습니다, 전하."

마리안이 작게 웃었다. 베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입가의 굳은 선이 아주 조금 누그러졌다.

그때 복도 끝의 기사들이 일제히 길을 열었다.

레오하르트가 검은 제복 차림으로 다가왔다. 밤을 새운 사람처럼 눈가가 짙었으나 걸음은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간다."

그는 마리안에게서 에일린을 받아 들었다. 이제는 그 동작이 전처럼 어색하지 않았다. 에일린도 낯선 궁을 지날 때면 저 단단한 팔이 먼저 안전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안전하다는 것과 자유롭다는 것은 다른 말이지만.

황제의 품에 안긴 채 긴 회랑을 지나자 궁의 공기가 달라졌다. 동쪽 별궁의 벽에는 화려한 꽃무늬가 가득했지만 이곳은 검은 돌과 은빛 장식뿐이었다. 창문은 적고 문은 두꺼웠다.

문 하나를 지날 때마다 기사가 다른 기사에게 허가패를 보였다.

전생의 회사에서도 임원 구역에 들어가려면 출입증이 필요했다. 하지만 실수하면 경위서를 쓰는 정도였다. 여기서는 잘못된 문 하나를 열었다가 목이 날아갈 수도 있었다.

레오하르트가 회랑 가장 안쪽의 문을 열었다.

"여기다."

방은 별궁보다 작았다. 대신 창으로 아침 햇빛이 곧게 들어왔고 벽난로의 불도 이미 따뜻하게 타고 있었다. 창문에는 굵은 잠금쇠가 두 겹으로 달려 있었다.

그 너머에는 짧은 회랑이 보였다. 끝에 있는 검은 문이 황제의 침전으로 이어지는 듯했다.

마리안이 방을 살피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폐하. 베라도 함께 오면 안 되겠습니까? 아기씨가 익숙해하던 시녀라서요."

"베라는 별궁에 남는다. 어제 드나든 자들의 명단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레오하르트의 말은 마리안의 부탁을 자르는 것처럼 들렸다. 그러나 그는 곧 리세를 보았다.

"너는 남아라. 아이가 원한 자니까."

리세가 두 손을 모아 쥐었다.

"명을 받듭니다."

"마리안은 아이 곁을 떠나지 마라. 이 방에 드는 자는 네가 먼저 보고 이름을 받아라."

"예, 폐하."

에일린은 새 침대에 내려진 뒤 방안을 둘러봤다. 바깥에서 지켜 주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그만큼 문이 많았고 허가도 많았다.

황제의 시야 안에 완전히 들어왔다.

그때 회랑 끝에서 가벼운 금속음이 울렸다.

소년 하나가 검집을 찬 채 서 있었다.

햇빛을 받은 은빛 머리카락과 푸른 눈이 레오하르트를 닮았다. 아직 키는 성인보다 한참 작았지만 허리를 곧게 세운 모양은 기사처럼 반듯했다.

소년은 레오하르트 앞에서 즉시 고개를 숙였다.

"아버지. 부르셨습니까."

목소리는 또래보다 낮고 차분했다. 다만 마지막 음절이 지나치게 단단했다. 칭찬을 기다리며 답을 외우는 아이의 목소리 같았다.

"카시안이다."

레오하르트가 에일린에게 짧게 말했다.

"네 오빠다."

오빠.

에일린의 눈이 조금 커졌다.

전생에는 외동이었다. 가족이라고 부르던 사람들도 모두 멀리 있었다. 갑자기 황제 아빠가 생긴 것만으로도 정신이 없는데 이제 검을 찬 오빠까지 생겼다.

카시안의 시선은 에일린의 얼굴에 오래 머물지 않았다. 그는 가슴에 꼭 쥔 은제 방울을 먼저 보았다.

"별궁에 수상한 자가 들었다고 들었습니다. 그 물건을 노린 겁니까?"

에일린은 방울을 더 깊이 품었다.

그 질문을 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황제도 문양을 보았지만 뜻을 물어 보지는 않았다. 카시안은 그저 위험의 이유를 찾는 얼굴이었다.

그래도 대답할 수는 없었다.

"아우."

에일린이 겨우 소리를 냈다.

카시안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모르면 됐어."

그는 단호하게 말했지만 에일린이 움찔하는 것을 보자 곧 시선을 피했다. 그 손이 검집 위에서 잠시 멈췄다.

에일린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그의 검집 끝으로 손을 뻗었다. 검은 가죽에 은실로 독수리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카시안이 재빨리 검집을 뒤로 물렸다.

"만지지 마. 다칠 수 있어."

차가운 말이었다. 하지만 손잡이를 에일린에게서 멀리 돌리는 동작은 아주 조심스러웠다.

레오하르트가 그 모습을 내려다봤다.

"카시안. 이 아이가 내전의 회랑을 오갈 때 허락 없이 막지 마라."

소년의 등이 굳었다.

"막을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왔지."

카시안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어린애처럼 대답을 고르는 순간이었다.

"어제 별궁에 든 자가 있다면 이쪽도 살피는 편이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레오하르트는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에일린은 카시안의 손가락이 검집을 쥔 채 하얗게 질린 것을 보았다. 아버지에게 틀린 말을 했을까 봐 긴장한 손이었다.

"생각은 나쁘지 않다."

레오하르트가 마침내 말했다.

카시안의 푸른 눈이 아주 조금 커졌다.

"하지만 네 방어는 네 기사에게 맡겨라. 네가 직접 서는 일은 내가 허락할 때만 한다."

"명심하겠습니다."

소년은 더 깊게 고개를 숙였다.

칭찬 하나를 받기 위해 저렇게 자세를 고정하는구나.

에일린은 카시안을 다시 보았다. 차갑고 까칠한 황태자라기보다 혼자서도 잘 서 있어야 한다고 배운 아이처럼 보였다.

오후가 되자 방 안의 물건들이 제자리를 찾았다.

마리안은 새 침구의 모서리를 여러 번 눌러 보고 리세는 물 주전자를 창가에서 가장 먼 탁자에 옮겼다. 둘 다 창문 쪽을 볼 때마다 손이 느려졌다.

"리세."

마리안이 낮게 불렀다.

"네."

"겁나면 혼자 판단하지 말고 제게 먼저 말하렴. 전하께서도 그러길 바라실 거야."

리세는 에일린을 보았다. 에일린은 방울을 쥔 채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제 숨기지 않겠습니다."

그때 문밖에서 낯선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소공녀실 점검을 나왔습니다."

리세가 문 앞에서 멈췄다.

마리안도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이 방으로 들어오는 자는 이름을 먼저 받으라는 황제의 명이 있었다.

"어느 분의 명을 받으셨습니까?"

"궁정국입니다. 새로 들인 물건의 목록을 확인하라고 했습니다."

문틈으로 보이는 시녀의 차림은 단정했다. 하지만 허리춤에 단 인장은 낯선 문양이었다. 황실의 독수리도 아니고 궁정국의 꽃문양도 아니었다.

에일린은 본능적으로 몸을 굳혔다.

여자의 소매에는 검은 섬유 한 올이 붙어 있었다. 어젯밤 창틀에서 본 실과 같은 색이었다. 실의 모양까지 같은지는 이 거리에서 알 수 없었다.

그런데도 방울을 쥔 손이 차가워졌다.

"들여보내면 안 돼요."

마리안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리세는 문을 붙든 채 고개를 저었다.

"명부에 없는 분입니다. 베라 님이 남긴 목록에도 없었어요."

문밖의 여자가 한 걸음 더 다가왔다.

"지체하면 궁정국에 보고하겠습니다. 문을 여세요."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회랑에서 발소리가 났다.

카시안이었다.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뒤에 또래의 견습 기사 하나가 있었지만 카시안은 그보다 먼저 문 앞에 섰다. 푸른 눈이 낯선 시녀의 허리춤으로 향했다.

"누구의 명이지?"

시녀가 황태자를 알아보고 무릎을 꿇었다.

"저, 저는 궁정국의 하급 시녀입니다. 소공녀실 물품을..."

"궁정국의 인장은 꽃잎이 다섯 장이다. 네 허리의 것은 네 장뿐이군."

카시안의 말은 낮았지만 또렷했다.

시녀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졌다.

"빌려온 것입니다. 제가 급히 명을 받아서..."

"허가패는?"

카시안이 다시 물었다.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소년의 손이 검집 위로 올라갔다. 날카로운 마찰음과 함께 검이 손가락 한 마디만큼 뽑혔다.

에일린은 숨을 삼켰다.

어린 손이었다. 그런데 검을 쥔 손은 흔들리지 않았다.

"내전 앞에서 거짓말을 하면 황제께 직접 답해야 한다. 지금 물러나서 경비에게 네 이름을 말해."

시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정말로 심부름만 받았습니다. 누가 시켰는지는... 얼굴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 말이 진실인지 알 수 없었다. 일부러 얼굴을 보지 않았다는 말은 너무 편리했다.

카시안은 검을 더 뽑지 않았다. 대신 뒤에 선 견습 기사에게 고개를 돌렸다.

"기사장에게 이 여자를 인계해. 소매에 묻은 실도 따로 보관하고."

"명령을 받듭니다."

시녀는 항변하려 했으나 카시안의 눈을 보고 고개를 떨궜다. 그녀가 끌려가는 동안 검은 섬유는 소매 끝에서 바람에 흔들렸다.

그 실이 어젯밤의 것과 같은지는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카시안은 문이 닫힌 뒤에야 검을 완전히 집어넣었다. 그는 에일린을 보지 않고 리세에게 말했다.

"명부에 없는 사람은 다음에도 들이지 마. 누가 큰소리를 내도."

"네, 황태자 전하."

리세는 고개를 숙였지만 목소리에 전보다 힘이 있었다.

카시안은 돌아서려 했다.

에일린은 그의 등 뒤를 바라봤다.

그는 자신을 위해 검을 뽑은 것이 아닐 것이다. 황제의 내전에서 정해진 규칙을 지킨 것뿐이다. 자신이 그 규칙 안에 있으니 우연히 보호받은 것뿐이다.

그래도 회랑을 가로막은 작은 등이 보이자 가슴속의 차가운 것이 조금 풀렸다.

"아."

카시안이 멈췄다.

에일린은 마리안의 품에서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탁자 위 과자 접시를 가리키자 마리안이 작게 웃으며 그녀에게 접시를 가까이 가져다주었다.

에일린은 가장 둥근 꿀과자 하나를 골랐다.

그리고 카시안에게 내밀었다.

"받으세요, 전하."

마리안이 대신 뜻을 보탰다.

카시안은 과자와 에일린을 번갈아 보았다.

"나는 아기가 주는 과자는 안 먹어."

거절은 빨랐다. 그러나 발은 움직이지 않았다.

에일린은 손을 더 뻗었다. 팔이 짧아 닿지 않자 답답해서 눈썹을 찌푸렸다.

카시안이 한숨처럼 숨을 내쉬었다.

"왜 그렇게 봐."

에일린은 대답 대신 손가락을 오므렸다 폈다.

리세가 입을 가리고 웃음을 참았다. 마리안도 고개를 돌렸다.

카시안의 귀 끝이 붉어졌다.

"알았어. 한 번만 받는다."

그가 손을 내밀자 에일린은 과자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고도 놓치지 않을까 봐 그의 손가락을 꼭 쥐었다.

카시안은 작은 손을 내려다봤다.

"이건 뇌물이 아니지?"

에일린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뇌물은 아니었다. 고맙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내일도 이 회랑을 지나가다 자기 방을 한 번 봐 달라는 부탁이었다.

카시안은 그 뜻까지는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도 과자를 떼어 내지 않았다.

"맛없으면 네가 책임져."

그가 아주 작게 한입 베어 물었다.

꿀 냄새가 퍼졌다. 카시안의 표정은 여전히 무심했지만 과자 조각을 버리지 않았다.

그때 회랑 끝의 검은 문이 열렸다.

레오하르트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의 눈은 카시안의 손에 든 과자와 에일린의 손을 차례로 훑었다.

카시안의 어깨가 굳었다.

"아버지. 저는 허가 없는 시녀를 막았을 뿐입니다."

"들었다."

레오하르트는 짧게 답했다. 기사에게서 이미 보고를 받은 듯했다.

그는 카시안의 검집을 보았다.

"검을 뽑았나."

"끝까지는 뽑지 않았습니다."

"잘했다."

이번에는 카시안이 아예 숨을 멈췄다.

레오하르트는 시선을 에일린에게 옮겼다. 에일린은 과자 부스러기가 묻은 카시안의 손을 가리켰다.

"오."

카시안이 얼굴을 붉혔다.

"아버지, 그건..."

"내 딸이 준 것이군."

레오하르트의 입가가 아주 잠깐 움직였다. 웃음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짧은 변화였다.

그는 다시 카시안을 향해 말했다.

"당분간 이 회랑의 경비 상황을 네가 확인해라. 기사들이 정한 순찰표는 내게 올리고 이상이 있으면 네가 먼저 보고해."

카시안은 놀란 눈으로 아버지를 보았다.

"제가 맡아도 됩니까?"

"네가 가장 먼저 허가패의 이상을 알아챘으니 맡는다. 다만 혼자 검을 들고 서지는 마라."

"명심하겠습니다."

이번에는 대답이 조금 빨랐다. 카시안은 고개를 숙였지만 손 안의 과자는 끝까지 숨기지 못했다.

에일린은 그 모습을 보며 속으로 웃었다.

검을 잘 쓰는 오빠라기보다 칭찬 한마디에 귀가 붉어지는 아이였다.

밤이 찾아왔다.

마리안은 에일린을 씻기고 침대에 눕혔다. 리세는 창문 잠금쇠를 세 번 확인한 뒤에야 물러났다. 방 밖에는 카시안이 정한 순찰이 지났고 규칙적인 발소리가 복도를 지켰다.

낯선 방인데도 에일린은 낮보다 빨리 눈을 감을 수 있었다.

그러나 잠이 들기 직전이었다.

회랑 끝에서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무언가가 벽을 세게 내려친 듯했다.

곧 이어 낮고 거친 신음이 들렸다.

에일린의 눈이 번쩍 떠졌다.

황제의 침전 쪽이었다.

문틈 아래로 검은 안개 같은 기운이 가늘게 번졌다. 방 안의 촛불이 한꺼번에 흔들렸다.

마리안이 에일린을 품에 끌어안았다.

"괜찮아요. 아마 폐하께서..."

그 뒤를 잇지 못했다.

문이 열리며 카시안이 들어왔다. 잠옷 위에 급히 망토를 걸친 모습이었다. 그의 얼굴은 낮의 단단한 표정과 달랐다.

무언가를 알고 있고 그래서 더 무서워하는 얼굴이었다.

"나가지 마."

카시안은 침대 앞을 막아서며 말했다.

"여기 있으면 돼. 내가 기사들을 불렀어."

에일린은 그의 말보다 회랑 끝의 검은 문을 보았다.

그 너머에서 레오하르트의 숨이 거칠게 끊어졌다.

차갑던 손가락을 잡았을 때마다 잠깐 잦아들던 숨이었다.

에일린은 침대 난간을 붙들고 몸을 일으켰다. 마리안이 놀라 붙잡았지만 그녀는 계속 문 쪽을 가리켰다.

"아빠."

카시안의 푸른 눈이 흔들렸다.

"안 돼. 지금은... 아버지께 가까이 가면 안 돼."

하지만 검은 기운은 문틈을 타고 조금씩 짙어지고 있었다.

에일린은 방울을 움켜쥔 손으로 다시 회랑을 가리켰다.

아빠에게 가야 했다.

카시안은 한참 말이 없었다. 그의 손도 검집 위에서 떨리고 있었다.

그러다 소년은 에일린의 앞을 막던 자리에서 아주 조금 비켜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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