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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에만 배우들의 스탯이 보인다27화

내 눈에만 배우들의 스탯이 보인다

내 눈에만 배우들의 스탯이 보인다

27화: 첫 번째 판을 짜다

목요일 오전 10시, 서울 역삼동 주식회사 루미너스 501호 대표실.

투명한 유리 가벽 너머 확장된 502호에서는 새로 들어온 직원 둘이 서류 정리에 한창이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 공유 오피스의 1인 책상에서 시작했던 루미너스가 이제는 번듯한 주식회사 체제를 갖추고 활기차게 움직이고 있었다.

강시우는 책상 위에 쌓인 서류 더미를 바라보았다. 영화 <낙화>가 100만 관객을 파죽지세로 돌파하고 SBS <블랙 아웃> 티저가 온라인을 뜨겁게 달구자 소속 배우들을 향한 러브콜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윤서연 운영팀장이 얇은 태블릿과 정리된 제안서 세 권을 들고 대표실로 들어왔다.

“대표님, 유나린 배우와 최지환 배우에게 들어온 출연 제안서 중 일차로 검토를 마친 목록입니다. 대형 제작사 세 곳에서 캐스팅 문의가 왔습니다.”

시우가 제안서들을 하나씩 넘기며 내용을 살폈다.

첫 번째는 대형 기획사 A가 제작하는 로맨틱 코미디였다. 유나린을 주인공의 라이벌인 악녀 역할로 제안해 왔다. 외모와 이슈성만 소비하고 연기 스펙트럼은 갇히게 만들 구도였다.

두 번째는 유명 영화 제작사 B의 스릴러물이었다. 최지환에게 제안된 역할은 단 3씬 나오는 잔혹한 살인마 역할이었다. 출연료는 <낙화>의 성과를 거의 반영하지 않은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윤서연이 미간을 찌푸리며 덧붙였다.

“대형 제작사들이 여전히 루미너스를 신생 기획사로 보고 있습니다. 배우의 몸값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자기들 작품의 이슈용으로만 쓰려고 합니다. 계약 조건에도 독소 조항이 수두룩합니다.”

시우의 눈앞에 반투명한 푸른빛의 시스템 창이 차분하게 떠올랐다.

[스타메이커 Lv.2: 프로젝트 직접 패키징 기능 가동]

- 분석 대상: 국내 매매 및 유통 대본/IP 데이터베이스 1,420건
- 매칭 조건: 유나린(S급) + 최지환(S급) 더블 캐스팅 최적화
- 추천 프로젝트: <투명한 그림자> (원작: 도담 필름 소유 미기획 시나리오)
- 예상 흥행도: ★ 4.8 / 5.0
- 배우 싱크로율: 유나린 96%, 최지환 97%
- 패키징 시너지: 프로젝트 흥행 가치 +150% 급상승

시우는 눈앞의 푸른빛 문자를 가만히 쓸어내렸다.

차형준 상무의 금융 공작을 막아내고 주식회사 전환을 완료하면서 개방된 시스템의 새로운 권한이었다. 남들이 차려놓은 밥상에 배우를 밀어 넣어 찬밥 신세를 면하려 애쓸 필요가 없었다. 이제 루미너스가 직접 최고의 대본과 감독, 배우를 하나로 묶어 판을 짜면 되는 것이었다.

“서연 씨. 외부에서 온 제안서들은 전부 거절하세요.”

윤서연이 놀란 눈으로 시우를 바라보았다.

“전부 거절합니까? 지금 들어오는 제안을 다 쳐내면 당장 차기작 공백이 생길 수 있는데요.”

“남들이 만든 썩은 밥상에 우리 배우들을 올리지 않습니다. 우리가 직접 판을 짭니다.”

시우는 오기태 실장을 불렀다.

“기태 씨, 도담 필름이라는 인디 제작사가 가진 <투명한 그림자>라는 시나리오 현황을 지금 확인해 주세요.”

오기태가 손가락을 빠르게 움직여 태블릿을 조회했다. 3분도 채 지나지 않아 상세 정보가 시우의 책상에 떠올랐다.

“도담 필름은 마포구 연남동에 있는 소형 제작사입니다. <투명한 그림자>는 한이준 감독이 3년 동안 집필한 휴먼 미스터리 스릴러 대본입니다. 제작비 조달이 막혀 현재 판권 매각 위기에 몰려 있습니다.”

“한이준 감독이라면 4년 전 단편 영화로 해외 영화제에서 수상했던 그 감독 아닙니까?”

윤서연이 기억을 떠올리며 물었다.

오기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하지만 3년 전 신성 엔터 2본부와 마찰을 겪은 뒤 투자 길목이 전부 막혀 업계에서 매장당하다시피 했습니다.”

시우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신성의 방해로 묻혀 있던 원석 감독과 벼랑 끝의 명작 시나리오. 거기에 유나린과 최지환이라는 최고의 카드를 얹는다면 상상 이상의 폭발력이 터질 터였다.

“도담 필름 곽민수 대표와 한이준 감독에게 연락하세요. 오늘 오후에 직접 찾아가겠다고요.”


오후 2시, 서울 마포구 연남동의 조용한 골목길 끝자락.

빛바랜 2층 건물 구석에 위치한 도담 필름 사무실은 썰렁하기 그지없었다. 먼지 쌓인 책상 위에는 캐스팅 거절 통지서와 투자 반려 서류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도담 필름의 곽민수 대표와 한이준 감독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강시우와 윤서연을 맞이했다.

곽 대표가 찌그러진 캔커피를 건네며 씁쓸하게 입을 열었다.

“강시우 대표님이 저희 같은 작은 사무실까지 어쩐 일이십니까? 최근 <낙화>와 <블랙 아웃>으로 업계에서 가장 핫한 루미너스가….”

시우는 캔커피를 가만히 내려놓고 시나리오 <투명한 그림자>의 기획안을 꺼냈다.

“<투명한 그림자>의 30% 공동 제작 투자와 메인 캐스팅을 제안하러 왔습니다.”

한이준 감독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제 시나리오를 읽어 보셨습니까? 하지만 이 대본은 투자사들마다 주인공 감정선이 너무 어둡고 안면인식장애라는 소재가 진입 장벽이 높다고 전부 걷어차인 글입니다.”

시우는 한이준 감독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건 기존 투자사들이 배우의 진짜 연기력을 담아낼 그릇이 못 되었기 때문입니다. 안면인식장애를 가진 프로파일러 윤설 역에는 최지환 배우를,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이자 진실을 감춘 신경외과 의사 서수진 역에는 유나린 배우를 배치할 겁니다.”

곽민수 대표가 턱을 떡 벌렸다.

“최지환 배우와 유나린 배우라고요? 지금 연예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두 사람을 우리 작품에 동시에 넣겠다고요?”

“그뿐만이 아닙니다.”

윤서연이 깔끔하게 작성된 공동 제작 협약서를 펼쳤다.

“루미너스가 제작비 30%를 직접 투자하고 한성 캐피탈을 통해 잔여 제작비 지급 보증을 확정 짓겠습니다. 한이준 감독님의 연출권은 100% 보장하며 대본 수정 요구는 일절 없습니다.”

한이준 감독의 손끝이 가늘게 떨렸다. 3년 동안 신성의 압력과 투자사들의 외면 속에서 잊혀 가던 자신의 작품이 마침내 최고의 배우들과 투자금을 만나 날개를 펼치려 하고 있었다.

그때 곽 대표의 휴대폰이 울렸다. 화면에 뜬 이름은 신성 엔터 전략기획팀 직원이었다.

곽 대표가 난처한 표정으로 전화를 받고 스피커폰을 켰다. 전화 너머에서 거만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곽 대표님, 생각 정리됐습니까? <투명한 그림자> 판권을 신성에 5천만 원에 넘기세요. 차형준 상무님 직무 정지 건과 별개로 우리 본부에서 정리하기로 했습니다. 거절하면 알죠? 앞길 완전히 막히는 거.

시우가 곽 대표의 휴대폰을 향해 차분하고 단단한 목소리로 나섰다.

“신성 전략기획팀입니까? 도담 필름은 방금 주식회사 루미너스와 <투명한 그림자> 공동 제작 및 전액 투자 확정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잔재주 피우지 말고 본사에 가서 그렇게 보고하십시오.”

  • 뭐, 뭐라고? 강시우! 너 지금…!

시우는 망설임 없이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한이준 감독이 자리에서 일어나 시우에게 깊이 고개를 숙였다.

“강 대표님, 제 작품과 인생을 걸고 반드시 최고작을 만들어 내겠습니다.”

시우가 그의 손을 꽉 잡았다.

“감독님은 연출에만 집중하십시오. 판은 우리가 만듭니다.”


금요일 오전 11시, 서울 강남구 역삼동 글로벌 OTT 플랫폼 픽스온(FixOn) 코리아 대회의실.

대형 모니터 앞에는 픽스온 한국 콘텐츠 총괄 이형석 본부장을 비롯한 핵심 편성위원들이 앉아 있었다. 그 맞은편에 강시우와 윤서연, 그리고 최지환과 유나린이 함께 자리했다.

픽스온은 최근 신성 엔터가 제안한 150억 대작 라인업을 검토 중이었으나 루미너스가 기습적으로 제출한 완전체 패키징 기획안을 보고 긴급 미팅을 잡은 것이었다.

이형석 본부장이 서류를 넘기며 물었다.

“강 대표님, 신인 감독과 소형 제작사가 엮인 작품입니다. 픽스온 오리지널로 편성하기에는 브랜드 리스크가 있지 않겠습니까?”

시우는 리모컨을 들어 화면에 데이터 그래프를 띄웠다.

[프로젝트 패키징 종합 분석표]

- 작품: <투명한 그림자> (8부작 OTT 오리지널)
- 주연: 최지환(S급, <낙화> 100만 흥행) X 유나린(S급, 화제성 1위)
- 연출: 한이준 감독 (해외 단편 영화제 수상작 보유)
- 자금 구조: 루미너스 30% + 한성 캐피탈 70% 지급 보증 (제작 리스크 0%)
- 예상 글로벌 시청률 순위: 픽스온 아시아 아레나 Top 3 진입 확정적

“리스크는 검증되지 않은 150억 원을 거품에 쏟아붓는 신성의 기획안에 있습니다.”

시우의 분명한 목소리가 회의실에 울려 퍼졌다.

“저희는 이미 영화 <낙화>로 연기력을 증명한 최지환 배우와 대중성을 장악한 유나린 배우를 한 묶음으로 제공합니다. 제작비는 한성 캐피탈의 보증으로 이미 100% 확보되었습니다. 픽스온은 완성된 최고의 판을 플랫폼에 올리기만 하면 됩니다.”

이어 최지환과 유나린이 <투명한 그림자> 1화의 핵심 대치 장면을 즉석에서 리딩했다.

안면인식장애로 타인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해 불안에 떠는 프로파일러 최지환의 떨리는 음성과, 진실을 감춘 채 그를 차갑게 조율하는 신경외과 의사 유나린의 서늘한 눈빛이 회의실 전체를 순간적으로 압도했다.

단 2분간의 리딩이었지만 회의실 안의 편성위원들은 숨을 죽인 채 두 배우의 연기에 빠져들었다.

이형석 본부장이 감탄을 금치 못하며 펜을 내려놓았다.

“소문으로만 들었던 루미너스의 배우 몰입도가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대본, 연출, 배우, 자금까지 전부 완비된 이런 패키지를 마다할 이유가 없군요.”

그가 강시우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회당 제작비 최고 대우로 <투명한 그림자>를 픽스온 올해 하반기 텐트폴 오리지널로 편성하겠습니다.”


금요일 오후 5시, 역삼동 주식회사 루미너스 대회의실.

창밖으로 노을빛이 붉게 물드는 가운데 소속 배우들과 임직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유나린이 픽스온 오리지널 계약서 통지서를 보며 기쁨의 함성을 질렀다.

“대표님! 저희가 진짜 오리지널 대작의 주연으로 같이 들어가는 거예요?”

최지환도 깊은 감격에 젖은 표정으로 시우를 바라보았다.

“단역으로 잊혀 가던 제가 나린 씨와 함께 최고의 스릴러극 주인공으로 서게 되다니 꿈만 같습니다.”

신우진이 우직하게 웃으며 축하를 건넸다.

“지환 형님, 나린 씨 축하합니다! 저도 <블랙 아웃> 촬영 현장에서 뒤처지지 않게 멋지게 해내겠습니다.”

윤서연 운영팀장이 정돈된 일정표를 제시했다.

“신우진 배우의 <블랙 아웃> 본 촬영과 유나린·최지환 배우의 <투명한 그림자> 프리 프로덕션이 다음 주부터 동시에 가동됩니다. 법인 시스템과 보안 인력 배치는 이미 완벽히 구축되었습니다.”

오기태가 시우에게 다가와 나지막한 목소리로 보고했다.

“대표님, 신성 엔터 본사에서 차형준 직무 정지 후 전략기획본부장으로 구관모 전무를 투입했습니다. 구 전무는 기존의 유치한 사보타주 대신 대형 플랫폼과 언론망을 동원해 루미너스를 통째로 고립시키려 준비 중입니다.”

시우는 창밖의 도심을 내려다보며 단단하게 미소 지었다.

신성이 아무리 대형 자본과 인맥으로 막아서려 해도 이미 루미너스는 스스로 판을 짜고 기획을 주도하는 종합 스튜디오로 진화했다.

시우가 소속 배우들과 임직원들을 돌아보며 당당하게 선포했다.

“우리를 막으려는 남들의 룰에 맞춰 싸울 필요 없습니다. 앞으로 연예계의 모든 판은 주식회사 루미너스가 직접 짜나갈 겁니다.”

모두의 얼굴에 뜨거운 확신과 자신감이 피어올랐다. 루미너스의 위대한 도전이 또 한 번 커다란 결실을 맺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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