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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에만 배우들의 스탯이 보인다10화

내 눈에만 배우들의 스탯이 보인다

내 눈에만 배우들의 스탯이 보인다

10화: 어둠 속의 독백

혜화동의 한적한 골목길, 낡고 바랜 건물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은 축축하고 음산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강시우는 옷깃을 여미며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찌르는 지하 소극장 객석 구석에 조용히 자리를 잡았다. 평일 저녁이라 그런지 50석 남짓한 소극장 안에는 열 명 정도의 관객만이 듬성듬성 앉아 있을 뿐이었다.

무대 위에는 대학로 극단들이 흔히 올리는 심리극인 ‘회색의 숲’이 상영 중이었다.

어두운 조명 아래, 낡은 소파에 웅크려 앉아 있는 한 청년이 보였다. 루미너스의 두 번째 원석으로 낙점된 배우, 최지환이었다.

시우는 턱을 괸 채 무대 위의 최지환을 유심히 응시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스타메이커 시스템을 호출했다.

‘최지환 스캔.’

지잉-

그의 시야 위로 붉은빛 경고 표시와 함께 최지환의 반투명한 상태창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이름: 최지환 (28세)]
[재능: 연기 (S)]
[잠재력: 95 / 100]
[상태: 극심한 자기 부정, 무대 공포증 (중증), 외모 콤플렉스 (디버프)]
[현재 연기 싱크로율: 32% (공포증 및 디버프로 인해 본실력 발휘 차단)]
[미래 흥행도: 측정 불가 (현재 상태 방치 시 3개월 내 배우 생활 은퇴 예정)]

‘확실히 심각하군.’

시우의 눈이 가늘어졌다.

재능 S급에 잠재력 95는 유나린에 버금가는 괴물 같은 스탯이었다. 하지만 무대 공포증과 자기 부정이라는 치명적인 디버프 탓에, 그가 낼 수 있는 연기의 효율은 고작 30% 남짓에 머물러 있었다.

무대 위 최지환의 연기는 아슬아슬했다.

그는 어둠 속에서 홀로 중얼거리는 은둔형 외톨이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었다. 대사를 뱉기 직전, 그의 호흡이 턱 하고 막히는 소리가 고스란히 객석까지 들려왔다. 손끝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고, 이마에는 차가운 식은땀이 번들거렸다.

“그…… 그들이 올 거야. 문을 잠가야 해…….”

대사가 불안정하게 흔들렸다.

관객석에서는 낮게 혀를 차는 소리와 한숨이 흘러나왔다. 최지환 자신도 그것을 느꼈는지, 순간적으로 어깨가 굳어지며 눈동자가 극도로 흔들렸다. 전형적인 무대 공포증 발작 직전의 징후였다.

하지만 시우는 고개를 젓지 않았다. 오히려 최지환의 눈빛 깊은 곳을 꿰뚫어 보았다.

‘아니야. 저건 단순히 무서워서 떠는 게 아니야.’

시우의 눈앞에서 상태창의 수치들이 격렬하게 흔들렸다. 최지환의 심박수는 140을 넘나들고 있었고, 뇌파 동조 지수는 위험 수위에 도달해 있었다.

[시스템 싱크로율 정밀 분석]

그것은 재능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배역과의 싱크로율이 너무 높은 나머지, 캐릭터의 고통을 온전히 제 육체로 받아내다 보니 뇌가 과부하를 일으키는 것이었다. 제어 장치가 없는 S급 엔진을 몸에 달고 폭주하는 격이었다.

무대 위 최지환이 머리를 감싸 쥐며 절규했다.

“날 내버려 둬! 제발……!”

순간 최지환의 눈에서 서늘하고 짙은 슬픔이 객석을 향해 쏟아졌다. 그 찰나의 순간, 그의 연기 싱크로율 그래프가 70%를 뚫고 올라가며 황금빛을 내뿜었다.

시우는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답답하게 억눌려 있던 극장 안의 공기가, 그의 단 한마디 비명에 송두리째 흔들린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저 무대 공포증만 제어할 수 있다면, 저놈은 진짜 괴물이 된다.’

시우의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갔다.


연극이 끝나고 관객들이 모두 빠져나간 소극장의 좁고 어두운 복도.

“지환아, 오늘 또 호흡 끊겼잖아! 관객들이 돈 내고 네 숨넘어가는 거 보러 온 줄 알아?”

낡은 베니어판 문 너머로 극단 연출가의 카랑카랑한 잔소리가 복도로 새어 나왔다.

“죄송합니다, 감독님…….”

최지환의 힘없는 목소리가 뒤따랐다.

“너 다음 달까지만 하고 그만둔다며. 갈 때 가더라도 최소한 극단에 피해는 주지 말고 가야지! 에휴, 됐다. 정리하고 가라.”

탁, 문이 열리며 화가 잔뜩 난 연출가가 밖으로 걸어 나왔다. 시우는 벽에 기대어 서서 연출가가 멀어지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이윽고 낡은 가방을 어깨에 멘 최지환이 힘없는 걸음으로 분장실에서 걸어 나왔다. 조명이 꺼진 소극장의 어둠 속에서, 그의 어깨는 한없이 좁고 초라해 보였다.

터벅, 터벅.

지하 계단을 향해 걸어가던 최지환의 발걸음이 우뚝 멈춰 섰다. 어둠 속에서 팔짱을 낀 채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시우의 존재를 알아차린 탓이었다.

“누구…… 신가요? 오늘 연극 관객분들은 다 가신 걸로 아는데요.”

지환이 경계 어린 눈빛으로 물었다. 시우는 품에서 명함을 꺼내 지환에게 내밀었다.

“오늘 연극, 아주 인상 깊게 보았습니다. 루미너스 기획의 강시우라고 합니다.”

최지환은 명함을 받아 들고 찡그린 눈으로 글자를 읽어 내려갔다. 그러다 이내 그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최근 대형 포털 사이트와 SNS를 장악한 괴물 신인 유나린. 그리고 그녀를 발굴해 낸 1인 기획사의 대표 강시우. 그 이름은 대학로의 무명 배우들 사이에서도 전설처럼 떠돌고 있었다.

“루미너스…… 강 대표님이 여긴 무슨 일로…….”

“최지환 씨를 영입하고 싶어 찾아왔습니다.”

시우의 단도직입적인 제안에 지환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명함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퉁기며 고개를 저었다.

“사람 잘못 보셨습니다. 방금 연출가에게 조인트 까이는 소리 다 들으셨을 텐데요. 전 연극 무대 위에서도 공포증 때문에 대사 하나 제대로 못 쳐서 헐떡이는 삼류입니다. 얼굴도 보시다시피 밋밋해서 카메라에 담기면 매력도 없고요. 이제 배우 생활 완전히 접고 고향 내려가서 일반 회사 준비할 겁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깊은 자기 부정과 콤플렉스가 진하게 묻어 있었다. 오랫동안 세상의 거절에 다쳐서 단단해진 방어벽이었다.

하지만 시우는 지환의 눈을 똑바로 쏘아보며 차분하게 대답했다.

“밋밋한 게 아니라 하얀 도화지 같은 마스크입니다. 연출가나 작가 입장에서는 어떤 색깔이든 자유롭게 칠할 수 있는 최고의 얼굴이죠. 그리고 무대 공포증.”

시우가 지환에게 한 걸음 더 다가섰다.

“그건 당신이 연기를 못해서 생기는 병이 아닙니다. 배역의 슬픔과 공포를 온전히 제 몸으로 받아내려다가, 뇌에 자아가 두 개 들어앉아서 과부하가 걸린 것뿐입니다. 당신은 지금 S급 엔진을 달아놓고 제어 장치가 없어 폭주하는 중이에요.”

“……!”

지환의 동공이 지진이라도 난 듯 격렬하게 흔들렸다.

자신이 왜 무대 위에서 숨이 막히는지, 왜 머리가 깨질 것처럼 고통스러운지, 그 누구도 이해해 주지 못했다. 그저 ‘멘탈이 약해서’, ‘무대 체질이 아니라서’라며 치부되던 자신의 고통을, 눈앞의 남자는 단번에 꿰뚫어 본 것이다.

“제가…… 엔진이 폭주하는 거라고요?”

“네. 제어 장치만 달면 당신은 세상 모든 대본을 집어삼키는 괴물이 될 겁니다. 지환 씨가 겪는 그 공포증, 내가 치료해 주겠습니다.”

시우는 자켓 안주머니에서 미리 준비해 온 루미너스의 표준 계약서 초안을 꺼내 지환의 가방 위에 올려놓았다.

“계약 조건은 5 대 5 정산. 그리고 지환 씨의 무대 공포증 치료를 위한 전담 시스템 케어 보장. 일주일의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이대로 도망쳐서 평생 무대를 그리워하는 겁쟁이로 살지, 아니면 내 손을 잡고 진짜 배우로 거듭날지 결정하세요.”

시우는 가볍게 눈인사를 건넨 뒤, 미련 없이 지하 소극장 계단을 걸어 올라갔다.

어두운 복도에 홀로 남겨진 최지환은, 가방 위의 계약서와 시우가 준 명함을 쥔 채 마치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굳어 있었다.


다음 날 오전, 서울 강남구 청담동 신성 엔터테인먼트 본사 1본부장실.

탁!

두꺼운 보고서 서류 뭉치가 넓은 유리 책상 위로 거칠게 던져졌다.

책상 뒤에 앉은 매니지먼트 업계의 실세이자 신성 매니지먼트 1본부장 김도식은 잔뜩 찌푸린 얼굴로 담배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그의 앞에는 1본부 소속 팀장들이 굳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박철우 그 등신 같은 새끼가 로드 매니저 나부랭이한테 걸려서 회사 기조실 감사팀에 목이 따여?”

김도식의 목소리에 서릿발 같은 독기가 묻어났다.

“HN 정태원 상무와의 이중 계약도 그렇고, 촬영 현장에서 테러 지시했다가 녹취 따인 것까지…… 아주 신성 이름값에 똥칠을 제대로 했더군. 지금 박철우 때문에 검찰 수사관들이 회사 서류 털어가게 생겼어!”

“죄, 죄송합니다. 본부장님. 하지만 박 실장이 단독으로 벌인 일이라 저희 본부와는 무관하다는 선에서 꼬리 자르기는 끝냈습니다.”

팀장이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하지만 김도식의 불쾌함은 딴 곳을 향해 있었다.

“꼬리 자르기가 문제가 아니야. 강시우. 그 강시우라는 놈 말이다. 원래 우리 회사 3본부에서 유나린 데리고 나가기 전까지 만년 꼴찌 로드였던 놈 아니야?”

“예, 맞습니다. 조용하고 곰 같은 성격인 줄 알았는데, 이번에 움직인 동선을 보면 지나치게 치밀합니다. 박철우의 목줄을 딴 타이밍도 그렇고, 유나린의 첫 방송 임팩트를 광고 계약으로 연결하는 솜씨도 보통이 아닙니다.”

팀장이 패드 화면을 띄워 유나린의 최근 데이터를 보여주었다.

“유나린이 친환경 코스메틱 브랜드 ‘그린테라피’랑 모델 계약을 맺었습니다. 조건이 무려 6개월 단발에 8천만 원에, 초도 물량 완판 시 러닝 개런티 0.5%입니다. 신인 모델로서는 가히 파격적인 조건입니다. 업계에서는 벌써 루미너스 강시우의 협상 능력을 높이 사고 있습니다.”

김도식의 눈매가 뱀처럼 가늘어졌다.

그린테라피 광고는 원래 신성 1본부의 신인 여배우를 밀어 넣으려 조율 중이던 건이었다. 그것을 듣지도 보지도 못한 1인 기획사가 낚아채 간 꼴이었다.

“강시우 뒤에 누구 있어. 뒷배가 확실하다고.”

김도식의 손가락이 책상 위를 톡톡 쳤다.

“단순한 로드 매니저가 어떻게 정태원 상무를 들었다 놨다 하고, 그린테라피 마케팅팀의 빅데이터 협상을 주도해? 뒤에 다른 대형 기획사의 우회 투자자가 있거나, 사모펀드가 붙어 있는 게 분명해. 강시우의 자금 출처와 최근 인맥 관계망을 샅샅이 캐내.”

김도식은 담배꽁초를 재떨이에 비벼 껐다.

“그리고 유나린이 차기작으로 노릴 만한 독립영화나 드라마 조연 리스트 전부 뽑아와. 루미너스가 발을 들이기 전에 우리가 먼저 캐스팅을 선점해서 길목을 막아버린다. 감히 신성의 밥그릇을 건드린 대가가 어떤 건지 뼈저리게 느끼게 해 줘야지.”

“예, 알겠습니다. 본부장님!”

신성 엔터테인먼트의 거대한 그림자가 다시 한번 루미너스를 향해 손을 뻗치기 시작하고 있었다.


수요일 밤, 대학로의 허름한 옥탑방 자취방.

최지환은 보일러가 꺼진 싸늘한 방안에서 이불을 뒤집어쓴 채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머릿속에는 어제 소극장 복도에서 강시우가 자신에게 뱉었던 말들이 이명처럼 끊임없이 맴돌고 있었다.

지환은 이불 틈새로 손을 뻗어 책상 위에 놓인 강시우의 명함과 계약서를 쥐었다.

스마트폰을 켜 포털 사이트에 ‘유나린’을 검색했다. 첫 방송 10초의 분량으로 대중을 사로잡고, 하루아침에 억대 광고 모델로 도약한 신인의 신화가 온 인터넷을 장식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기사들의 한구석에는 언제나 ‘루미너스 기획 강시우 대표’라는 이름이 조용히 박혀 있었다.

‘나 같은 놈도…… 저렇게 빛나게 만들어 줄 수 있을까?’

오랫동안 짓밟혀 온 배우로서의 열망이, 가슴 깊은 곳에서 차가운 얼음을 깨고 꿈틀거리며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 순간, 강시우의 스마트폰이 테이블 위에서 부르르 진동했다.

화면에는 발신인 제한 번호가 아닌, 최지환의 프로필에 등록되어 있던 전화번호가 떠 있었다.

동시에 시우의 눈앞에 시스템 알림창이 황금빛으로 명멸했다.

[알림: 대상 최지환의 자아 도피 성향이 완화되었습니다.]
[대상의 은퇴 위험도: 95% -> 75% (하락세 진입)]
[최지환의 루미너스 기획 계약 성사 확률: 82%]

시우는 어둠 속에서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스마트폰을 귓가에 댔다.

“예, 루미너스 강시우입니다.”

수화기 너머로, 혜화동의 차가운 밤바람 소리와 함께 굳은 결의가 담긴 최지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원석의 껍질이 깨지는 첫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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