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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의 시한부 명예교수가 되었다7화

아카데미에서 추방당한 명예교수가 되었다

아카데미에서 추방당한 명예교수가 되었다

007화 [멈춘 손이 남긴 것]

정오가 되기 전부터 F-Class 강의실 앞 복도는 낯선 발소리로 가득했다.

문밖에 모인 상급생들은 낮은 목소리로 웃고 있었다. 검술부의 푸른 견장을 단 학생도 둘이나 보였다. 그들 뒤로 마르첼 보조교관이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낙제반 수업 하나 보겠다고 사람이 이렇게 많이 왔네.”

에신은 창가 의자에 앉아 중얼거렸다.

하리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녀는 바닥에 그어 둔 세 개의 작은 원만 보고 있었다. 원의 간격은 어젯밤부터 몇 번이나 바뀌었다. 첫 번째 보호막이 흔들리면 둘째 막에 마력을 넘긴다. 둘째가 흔들리면 셋째에 남은 줄기를 모은다.

머리로는 충분히 외웠다.

문제는 그 과정을 보는 눈이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카이드는 목검의 손잡이를 한 번 쥐었다 놓았다. 루나는 공책을 무릎 위에 올리고 강의실 중앙만 보고 있었다. 눈앞의 은색 측정석 세 개와 얇은 수정판이 그녀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수정판 위에는 실처럼 가는 마력선이 떠 있었다.

“관찰식입니다.”

회색 제복을 입은 측정관이 말했다.

“수업 중 발생하는 비정상 마력 반응을 실시간으로 기록합니다.”

루나의 눈썹이 아주 조금 움직였다. 그 선의 떨림은 낯익었다. 창문 바람을 따라 들어온 것처럼 보였던 마력의 결과 같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에는 숨길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뿐이었다.

에신이 수정판을 가리켰다.

“항목이랑 설치 위치를 기록지에 적어.”

측정관이 시선을 돌렸다.

“규정 관찰식입니다. 별도의 설명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규정이라서 더 필요하지.”

에신은 피곤한 얼굴로 턱을 괴었다.

“나중에 누가 뭘 봤는지 물으면 수정판이 대답해 주나?”

아르만 보조교수가 한 걸음 나왔다. 그는 아침부터 굳은 표정이었다.

“반응의 요동과 지속 시간을 기록합니다. 위험한 폭주를 놓치지 않기 위한 장치입니다.”

루나가 공책을 펴며 말했다.

“요동만 크게 표시하도록 되어 있어요.”

복도의 웃음소리가 끊겼다.

“흐름을 옮겨서 줄어드는 경우와 무너져서 끊기는 경우가 같은 색으로 남을 수 있어요. 시작 기준선도 이미 흔들리고 있고요.”

측정관이 수정판을 흘끗 보았다. 붉은 선은 거의 보이지 않을 만큼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아직 수업도 시작하지 않았는데요.”

루나는 그 말을 기록지 첫 줄에 그대로 적었다.

에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적어.”

아르만의 입술이 잠깐 굳었다. 그는 관찰식이 완벽한 장치라고 말하지 않았다. 다만 학생들이 다치기 전에 멈춰야 한다는 표정이었다. 에신은 그 표정을 보고 더 말하지 않았다.

위험을 막겠다는 사람과 위험이라는 이름을 쉽게 붙이는 사람은 때로 같은 문장을 쓴다.

차이는 그 문장이 누구의 손을 먼저 묶느냐에 있었다.


하리가 중앙으로 걸어 나갔다.

그녀가 손을 들자 첫 번째 보호막이 떠올랐다. 손바닥만 한 얇은 막이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막은 그보다 조금 뒤에 낮게 떠 있었다.

“시작해도 되겠습니까?”

아르만이 물었다.

하리는 대답하기 전에 에신을 보았다.

“네가 적은 걸 해.”

그 말은 전날과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하리는 오히려 숨을 조금 고를 수 있었다.

첫 번째 막에 마력 줄기가 닿았다.

투명한 표면이 가늘게 떨렸다. 수정판 위의 선은 기다렸다는 듯 붉어졌다.

“반응 상승.”

측정관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울렸다.

문가에서 누군가 작게 혀를 찼다. 하리의 어깨가 굳었다. 그녀는 그 소리를 알고 있었다. 로젠가에서 친척들이 그녀의 실드가 무너질 때마다 내던지던 소리였다. 아깝다는 말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쓸모없다는 뜻이었다.

첫 번째 막이 더 크게 흔들렸다.

마력을 밀어 넣으면 버틸 수 있었다. 적어도 몇 초는 더 버틸 수 있다. 그리고 그 몇 초 뒤에는 늘 같은 일이 일어났다. 막이 찢어졌다. 흐름이 손목으로 되돌아왔다. 자신은 다른 사람들 앞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하리는 손가락을 움켜쥐었다가 천천히 폈다.

첫 번째 보호막을 스스로 해제했다.

막은 터지지 않았다. 표면에 맺혔던 빛이 가늘어지며 둘째 막 쪽으로 흘렀다. 수정판의 붉은 선은 오히려 더 크게 흔들렸다.

“반응 급락. 붕괴 가능성.”

측정관이 말하려는 순간 루나의 펜 끝이 종이를 두드렸다.

“해제입니다.”

루나는 수정판을 보지 않고 하리의 손끝을 보았다.

“첫 번째 막의 끊김 뒤 둘째 막의 줄기 밀도가 올라갔어요. 외부 누출은 없어요.”

“측정석은 저하를 기록합니다.”

측정관이 말했다.

“저하는 붕괴라는 뜻이 아니에요.”

하리는 둘째 막을 바라봤다. 막은 얇아졌지만 마력 줄기는 이전보다 덜 흔들렸다. 그녀는 억지로 표면을 두껍게 만들지 않았다. 대신 둘째 막의 가장자리를 좁히고 남은 흐름을 세 번째 원으로 보냈다.

둘째 보호막도 조용히 사라졌다.

이번에는 아무도 붕괴라고 말하지 못했다.

세 번째 막이 손바닥 위에서 작은 물방울처럼 떠올랐다. 하리는 숨을 들이마셨다. 천천히 내쉰 뒤 다시 들이마셨다. 마력 줄기는 한 번 크게 흔들렸지만 더 밀어붙이지 않았다.

마지막 막은 끝내 찢어지지 않았다.

그것이 유지 시간으로는 자랑할 만큼 긴 결과가 아닐지도 몰랐다.

그러나 하리는 자신이 정한 곳까지 왔다.

“세 번째 보호막까지 줄기 유지.”

그녀가 또박또박 말했다.

루나가 기록지에 시간을 적었다.

“완료.”

하리는 손을 내렸다. 다리에 힘이 풀릴 것 같았지만 이번에는 그 앞에서 숨기지 않았다. 카이드가 말없이 한 걸음 앞으로 나와 그녀의 팔꿈치를 받쳐 주었다.

문가의 상급생들은 아까보다 조용했다. 수정판의 붉은 선만이 하리가 만든 세 번의 선택을 전부 같은 흔들림으로 칠하고 있었다.


카이드는 하리와 자리를 바꿨다.

그가 중앙에 서자 마르첼이 측정석을 손등으로 두드렸다.

“이번에는 검에 마력을 붙여라. 수치가 나오지 않으면 지난번 반응도 착시로 기록한다.”

카이드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제 목표는 그게 아닙니다.”

“낙제반 학생이 목표를 고르나?”

마르첼이 비웃었다.

“검술은 결과로 증명하는 거다. 빛도 수치도 없는 검로가 무슨 검술이지?”

카이드는 대답하지 않았다. 손바닥의 굳은살이 목검 손잡이를 눌렀다. 저 말에 맞서려면 검을 끝까지 휘두르면 된다. 칼날에 마력을 붙이고 더 큰 잔상을 남기면 된다.

그 순간만큼은 누구도 자신을 낙제생이라 부르지 못할 것이다.

그러고 나서 손목이 망가지더라도.

에신이 하품을 참듯 입을 다물었다.

“목표를 고르지.”

그의 말에 시선이 모였다.

“네가 초대한 구경거리가 아니니까.”

카이드는 목검을 반쯤 뽑았다.

검집과 칼날이 마찰하는 짧은 소리가 강의실에 퍼졌다. 손목이 앞으로 쏠렸다. 익숙한 습관처럼 마력이 칼날을 감싸려 했다.

푸른 기운이 막 피어나려는 순간 카이드는 손을 멈췄다.

온몸이 앞으로 나가려 했지만 발끝을 바닥에 박았다. 그는 검을 천천히 검집으로 밀어 넣었다.

손목 안쪽이 욱신거렸다.

“첫 번째 중단.”

루나가 말했다.

카이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실패라고 적히는 순간을 직접 듣는 것은 생각보다 더 불쾌했다. 그런데도 검은 그의 손 안에 남아 있었다. 부러지지도 않았고 손목이 꺾이지도 않았다.

마르첼이 코웃음 쳤다.

“도망친 거지.”

카이드의 어깨가 움직였다.

그는 바로 검을 뽑지 않았다. 숨을 세 번 고른 뒤 손잡이에서 손가락 하나를 떼었다. 마력을 붙들기 위해 가장 먼저 힘을 주던 손가락이었다.

두 번째 발걸음이 바닥을 스쳤다.

이번에는 칼날에 빛이 없었다.

목검이 공기를 가르고 지나간 뒤, 바닥의 종이 조각 하나가 검과 반대 방향으로 밀려났다. 종이 가장자리가 떨리는 사이 푸른 잔상이 한 번 깜빡였다.

카이드는 즉시 검을 멈췄다.

더 이어 갈 수 있다는 충동이 올라왔지만 그는 검끝을 바닥에 닿게 하지 않고 그대로 거두었다.

수정판은 잠잠했다. 측정석도 아무 숫자를 내놓지 않았다.

“측정 불가.”

측정관이 선언했다.

잠시 뒤 그가 수정판을 들여다보며 말을 이었다.

“측정 불가 반응은 안전 기준상 비정상으로 분류됩니다. 중지 조항을 발동하겠습니다.”

하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카이드는 검집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결국 저들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으면서,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멈추라고 한다.

그때 루나가 공책을 들고 앞으로 나왔다.


“중지 전에 기록을 보세요.”

루나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런데 수정판의 경고음이 멎은 강의실에서는 누구보다 잘 들렸다.

측정관이 눈살을 찌푸렸다.

“학생 기록은 보조 자료일 뿐입니다.”

“그 보조 자료가 없으면 측정석이 못 본 것을 전부 비정상이라고 쓰게 되잖아요.”

루나는 공책을 펼쳤다. 첫 장에는 관찰식이 설치된 시각부터 붉은 선이 흔들린 순서가 적혀 있었다. 두 번째 장에는 하리의 첫 보호막이 해제된 순간과 둘째 막의 줄기 밀도가 올라간 순간이 나란히 적혀 있었다.

“이 선은 수업 전부터 흔들렸어요. 창문은 닫혀 있었고 저희 마력도 닿지 않았어요.”

그녀는 수정판의 가장자리 아래로 손가락을 옮겼다.

“그리고 하리는 첫 번째 보호막을 터뜨리지 않았어요. 줄기를 옮겼어요. 카이드는 검로가 커지기 전에 멈췄고요. 둘 다 제어가 안 돼서 끝난 게 아닙니다.”

“종이 조각이 움직인 것은 우연일 수 있습니다.”

마르첼이 끼어들었다.

루나는 그를 올려다봤다.

“그래서 방향과 시간을 같이 적었어요.”

그녀는 바닥의 종이 조각을 가리켰다. 검이 지나간 방향과 종이가 밀린 방향은 반대였다. 관찰식의 가는 선은 그보다 한 박자 늦게 파랗게 흔들린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바람이면 먼저 종이가 움직여야 해요. 이건 검이 지나간 뒤에 움직였어요. 관찰식도 같은 순서로 반응했고요.”

아르만이 수정판 가까이 다가갔다. 그는 한참 동안 아무 말 없이 선의 기록을 확인했다. 붉은 선은 처음부터 미세하게 흔들렸다. 하리의 해제와 카이드의 중단에는 서로 다른 시간차가 있었다.

그 차이를 측정석은 읽지 못했다.

그렇다고 없던 일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중지 조항은 학생을 멈추게 하는 겁니까?”

에신이 물었다.

측정관이 그를 돌아보았다.

“비정상 반응을 막기 위한 조항입니다.”

“그럼 지금 멈춰야 할 건 학생이 아니라 관찰식 아닌가.”

에신은 수정판을 가리켰다.

“수업 전에 이미 흔들렸어. 해제와 붕괴도 못 가르고 측정 못 한 걸 비정상이라고 적었잖아.”

문가가 술렁였다.

그때 복도 쪽에서 지팡이 끝이 바닥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바르모트 총장이 사람들 사이를 지나 강의실로 들어왔다. 그는 누군가에게 들은 듯했지만 곧장 누구 편도 들지 않았다.

총장은 루나의 공책과 수정판을 차례로 살폈다.

“관찰식 자체의 초기 요동도 공식 기록에 넣게.”

측정관의 표정이 굳었다.

“총장님, 그건 장치 오차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럼 오차인지 확인하면 되겠지.”

바르모트가 담담하게 말했다.

“확인하기 전에는 학생의 실패도 확정할 수 없네.”

그 말이 떨어지자 하리는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카이드는 목검 손잡이에서 손을 뗐다. 루나는 공책의 마지막 줄에 관찰식 초기 요동이라고 적고 밑줄을 그었다.

아르만은 한참 뒤에야 고개를 끄덕였다.

“중지 조항은 보류하겠습니다. 관찰식과 측정석의 차이를 다시 검토하죠.”

그는 그 말을 할 때 조금 지쳐 보였다. 자신이 믿은 장치가 학생을 보호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그에게도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마르첼만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카이드 앞에 멈춰 섰다.

“그 정도 잔상으로는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해.”

카이드의 눈빛이 다시 날카로워졌다.

“정식 훈련생과 대련해서 보여라. 관찰 기록 뒤에 숨지 말고.”

복도 밖에서 누군가 숨을 삼켰다. 상급생 몇 명의 얼굴에는 아까와 다른 기대가 떠올랐다. 이번에는 구경이 아니라 싸움을 보게 될 거라는 기대였다.

카이드의 손이 검집 위로 올라갔다.

에신은 그 손을 잠시 보다가 느리게 물었다.

“네가 할 거냐?”

누구도 대신 대답하지 않았다.

하리도 루나도 카이드를 보지 않았다. 둘은 그가 방금 지킨 것을 알고 있었다. 검을 뽑는 일보다 먼저 멈추는 일.

카이드는 마르첼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손은 여전히 검집 위에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손을 언제 멈춰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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