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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악보는 대마법이 된다11화

내 악보는 대마법이 된다

내 악보는 대마법이 된다

11화: 자율 연구실과 첫 심포니

작곡동 별관 3층 복도 끝에는 오랫동안 잠겨 있던 육중한 놋쇠 문이 있었다.

제라드 교수가 쥐여 준 황동 열쇠를 열쇠구멍에 밀어 넣자 묵직한 쇠소리가 세 번 울렸다.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며 오랫동안 갇혀 있던 먼지와 오래된 양피지 냄새가 쏟아져 나왔다.

"와, 여기 완전히 창고였네!"

뒤따라 들어온 루카스가 콜록거리며 먼지를 쓸어냈다.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햇살 속에서 부유하는 먼지 너머로 커다란 수납장과 둔탁한 형태의 공명 오르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벽면에는 아카데미 초창기에 사용되던 청동 튜닝 파이프가 빽빽하게 걸려 있었다.

하진은 방 한가운데 놓인 오르간 앞으로 다가갔다. 건반 위를 손끝으로 쓸어내리자 서늘한 감촉이 전해졌다.

전생에서 그는 언제나 지하 골방이나 다른 작곡가의 명의로 계약된 남의 작업실을 전전했다. 자기 이름이 적힌 문패도 없이 남의 멜로디를 밤새 수정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공간은 학사위원회의 인장과 정교수의 승인을 받은 하진 전용의 자율 연구실이었다.

"좋네."

하진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좋긴 뭐가 좋아! 먼지가 십 센티는 쌓였는데!"

루카스가 불평하면서도 이미 소매를 걷어붙이고 빗자루를 들었다. 하진도 걸레를 적셔 오르간과 작업대를 닦아내기 시작했다.

한 시간가량 구석구석 정리를 마치자 찌든 먼지 속에서 은은한 목재 향과 청동 튜닝 파이프의 차가운 광택이 드러났다. 중앙의 오르간은 튜닝이 조금 비틀려 있었지만 대기 에테르 유도용 공명판은 손상 없이 완벽한 상태였다.

바로 그때 복도에서 무거운 구두 소리가 울렸다.

"여기가 마력 적성 제로 낙제생이 하사받았다는 그 연구실인가."

차가운 목소리와 함께 제복을 정갈하게 차려입은 장신의 남자가 문가에 섰다. 가슴에는 학생회 상임 학사간부를 상징하는 붉은 뱃지가 반짝이고 있었다. 작곡과 3학년 수석이자 귀족 파벌의 핵심 인물인 마르쿠스 로엔이었다.

그의 뒤로는 세 명의 학생회 검수단이 묵직한 가죽 상자를 들고 서 있었다.

루카스가 깜짝 놀라 빗자루를 꼭 쥐었다.

"마르쿠스 선배? 여근 어쩐 일로……."

"제라드 교수님의 자율 권한 부여 소식은 들었다."

마르쿠스는 연구실 내부를 훑어보며 비웃음을 머금었다.

"하지만 학사위원회 상임위원 단독 지시라 할지라도 학생회 규정 제14조에 따른 '연구실 실격 검증'을 거치지 않을 수는 없다. 마력이 없는 자가 작곡과 전용 자율 연구실을 점유하는 것은 학과의 자원을 낭비하는 짓이다."

하진은 손에 든 걸레를 내려놓고 마르쿠스를 마주 보았다.

"검증이라니요."

"간단하다."

마르쿠스가 뒤쪽 검수단에게 손짓했다. 검수단원이 가죽 상자를 열자 그 안에서 주먹만 한 검은색 공명 음차(音叉)가 드러났다. 표면에 에테르 문양이 복잡하게 각인된 고밀도 마력 공명석이었다.

"이것은 제국 황실 음악원에서 사용하는 고밀도 에테르 음차다. 체내 마력 수치가 200이하인 자는 진동조차 일으킬 수 없다. 마력을 주입해 이 음차를 울려라. 울리지 못한다면 이 연구실의 열쇠를 즉시 반납하고 학사위원회에 재심의를 청구하겠다."

마르쿠스의 눈빛에는 노골적인 적의가 담겨 있었다. 하진이 마력 적성 제로라는 사실을 노리고 준비한 저열한 트릭이었다.

루카스가 분통을 터뜨렸다.

"말도 안 돼요! 하진은 마력을 밀어 넣는 방식이 아니라 대기 에테르를 유도하는 방식이라고요! 저 음차는 마력을 직접 넣어야만 작동하는 구조잖아요!"

"규정은 규정이다."

마르쿠스가 단호하게 말을 끊었다.

"마법 음악의 본질은 마력이다. 대기 에테르니 뭐니 하는 이단적인 편법으로 교정을 어지럽히는 꼴은 볼 수 없다. 못 하겠다면 지금 당장 짐을 싸서 나가라."

마르쿠스는 하진이 당황하며 변명할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하진의 표정은 평정 그 자체였다.

"그 음차를 진동시키기만 하면 됩니까?"

마르쿠스가 눈썹을 찌푸렸다.

"말했지 않나. 체내 마력을 주입해서 울려야 한다고."

"음차가 울리는 원리는 소리의 파동과 주파수의 동조입니다. 체내 마력이든 대기 에테르든 파동의 형태만 완벽하다면 물체는 울립니다."

하진은 벽면에 걸려 있던 청동 튜닝 파이프 중 길이가 다른 두 개를 뽑아 들었다.

"마력이 없으면 소리를 낼 수 없다는 고정관념이야말로 아카데미가 정체된 이유죠."

하진은 오르간 페달을 가볍게 밟아 대기 에테르 유도 판을 활성화했다. 체내 마력은 단 한 점도 들어가지 않았다. 오직 대기 중의 에테르가 오르간 내부의 울림통으로 끌려들어 가기 시작했다.

하진이 튜닝 파이프 두 개를 오르간 공명구에 비스듬히 얹었다.

"3도와 5도의 완전 배음 공명. 지구의 음향학에서는 기본입니다."

하진이 오르간 건반 중 건조한 C음과 G음을 동시에 눌렀다.

웅-!

오르간에서 뿜어져 나온 파동이 청동 파이프를 통과하며 굴절되었다. 공기 중에서 두 개의 파동이 서로를 감싸며 배음(Overtone)을 생성했다. 이중으로 겹쳐진 주파수가 마르쿠스가 들고 있던 검은 공명 음차의 고유 진동수와 정확히 일치했다.

위잉-!

마르쿠스의 손에 들려 있던 검은 음차가 굉음과 함께 떨리기 시작했다.

"뭐, 뭐라고?!"

마르쿠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음차는 단순히 진동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하진이 유도한 배음 파동이 음차 내부의 고밀도 마력 결정 구조를 강제로 동조시키면서 음차 전체가 눈부신 은빛 광휘를 내뿜기 시작했다.

쨍강-!

음차에서 뿜어져 나온 은빛 파동이 검수단원들이 들고 있던 가죽 상자까지 하얗게 빛나게 만들었다. 마력을 억지로 밀어 넣었을 때보다 훨씬 순수하고 맑은 울림이 연구실 전체를 채웠다.

"이, 이건 마력 주입이 아니잖아! 공명을 강제로 흉내 낸 야매다!"

마르쿠스가 비명을 지르듯 소리쳤다.

하진이 차가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흉내라고요? 음차가 울렸고 마력 결정을 동조시켰습니다. 당신이 말한 마법 음악의 본질인 '공명'을 마력 한 방울 없이 완벽하게 구현했는데 무엇이 문제입니까?"

하진은 손을 뻗어 은빛으로 진동하는 음차를 마르쿠스의 손에서 가볍게 가져왔다. 하진의 손끝이 닿자 음차는 마치 순종하는 악기처럼 부드러운 여운만을 남기며 진동을 멈추었다.

"학생회 규정 제14조에 따른 검증은 끝났습니다. 앞으로 이 연구실의 소유권에 대해 왈가왈부한다면 학사위원회에 정식으로 명예훼손 조사를 요청하겠습니다."

마르쿠스는 입술을 짓씹었지만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마력이 없는 낙제생이 마력 전용 최고급 음차를 완벽하게 제어하는 모습을 눈앞에서 보았기 때문이다.

"……두고 보자, 하진."

마르쿠스는 분을 참지 못하고 쏘아붙인 뒤 검수단을 끌고 밖으로 쫓겨나듯 나갔다.

문이 닫히자 루카스가 제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대박! 봤어? 마르쿠스 그 오만한 녀석 얼굴 썩어 들어가는 거?!"

"소리가 물리적인 파동이라는 걸 모르는 이세계 마법사들의 한계지."

하진은 튜닝 파이프를 제자리에 걸어두며 덤덤하게 말했다.

그때 문가에서 가벼운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훌륭한 파동 동조였다."

검은 나무 지휘봉을 든 엘레나 폰 아르도가 문가에 서 있었다. 그녀는 방금 전 마르쿠스와의 대치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모양이었다.

"엘레나 선배."

엘레나는 연구실 안으로 들어와 깔끔하게 정돈된 오르간과 청동 파이프들을 둘러보았다.

"기습 검증을 배음 공명으로 쳐내다니 역시 너답군. 마르쿠스 그 친구는 귀족 학생회의 체면을 세우려다 제 밟등을 찍은 셈이다."

엘레나가 하진을 직시했다.

"약속대로 찾아왔다. 제국 아카데미 음악제 본선에 제출할 대규모 심포니 협연 악보 구상은 시작했나?"

"네. 방금 막 연구실 정리를 마치고 틀을 짜려던 참이었습니다."

하진은 중앙의 오르간 의자에 앉았다.

"선배. 현지의 마법 오케스트라는 수십 명의 연주자가 각자의 체내 마력을 억지로 밀어 넣으며 단선율을 쏟아내는 방식입니다. 그래서 조금만 합주가 길어져도 마력 간섭이 일어나 폭주하거나 결계가 깨지죠."

엘레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지휘자인 나조차도 수십 명의 마력 파형을 일일이 눌러 담느라 극심한 피로를 느낀다. 네 악보는 무엇이 다른가?"

하진은 텅 빈 양피지 악보지를 오르간 거치대에 올렸다.

"저는 지구의 입체적인 오케스트라 편성을 이세계 마법 에테르 구조에 대입할 겁니다. 현악기군은 광역 방어 및 에테르 유도 결계를 형성하고, 금관악기군은 강력한 전방 충격파와 에테르 집속을 담당하며, 목관악기군은 이 둘 사이의 주파수 마찰을 완화하는 동조 안정제 역할을 하게 됩니다."

엘레나의 눈이 커졌다.

"악기군마다 마법적 역할을 명확히 분담하여 전체 합주를 하나의 거대한 마법 진형으로 만든다는 뜻인가?"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 수십 개의 성부를 하나로 묶어줄 중심 축이 바로 다악장 심포니(교향곡) 구조입니다."

하진의 손가락이 오르간 건반 위로 얹어졌다.

그가 전생에서 수없이 연구했던 베토벤과 모차르트, 그리고 차이코프스키의 웅장한 화성 체계가 머릿속에서 이세계 에테르 보정식과 얽히며 하나의 완벽한 공명 도면으로 재구성되었다.

쿵-!

하진이 오르간의 첫 강박 4음을 짚었다.

단단하고 묵직한 C장조의 으뜸화음이 연구실 전체를 울렸다. 단순히 크기만 한 소리가 아니었다. 대기 중의 에테르가 오르간을 중심으로 둥글게 모여들며 마치 맑은 수면 위로 파문이 일듯 정교한 층을 이루었다.

이어지는 하행 아르페지오와 3도 보조 성부의 교차.

엘레나는 숨을 죽였다. 지휘과 수석으로서 평생 수많은 마법 악보를 접해왔지만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압도적인 건축학적 미학이었다. 소리가 마치 살아있는 거대한 성벽처럼 공중에 쌓여가고 있었다.

하진의 눈앞에 투명한 시스템 알림창이 떠올랐다.

[신규 메인 퀘스트 연계 작업 감지]
[작품명: 제1번 심포니 '에테르의 시작']
[구조 분석: 4악장 구성 다성부 오케스트라 대공명 악보]
[에테르 보정율: 99.6% / 공명 안정도: 100%]
[악보 청사진이 시스템에 정식 등록되었습니다.]

하진은 건반에서 손을 떼었다. 오르간의 잔향이 잦아들었지만 연구실 안에는 여전히 따뜻하고 맑은 에테르의 여운이 감돌고 있었다.

엘레나가 가슴에 손을 얹은 채 길게 숨을 내쉬었다.

"……믿을 수 없군. 겨우 몇 마디의 모티프일 뿐인데 내 몸속 에테르가 스스로 반응해 소름이 돋았다."

엘레나의 눈동자가 열정으로 빛났다.

"하진. 이 곡을 완성해라. 내가 아카데미 최고의 단원들을 모아 오케스트라를 구성하겠다. 이 심포니는 제국 음악제뿐만 아니라 아카데미 역사 전체를 바꾸게 될 것이다."

"감사합니다, 선배."

하진은 펜을 들어 양피지 악보지 첫 줄에 뚜렷한 글씨로 제목을 적었다.

<제1번 심포니: 에테르의 시작>

남의 뒤에서 숨죽여 악보를 쓰던 작곡가는 마침내 자신만의 연구실에서 세계를 뒤흔들 첫 번째 거대한 심포니의 첫 마디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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