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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의 천재 식물학자8화

아카데미의 천재 식물학자

아카데미의 천재 식물학자

8화: 한겨울의 유리 온실과 온열 룬

새벽녘의 차가운 산바람이 특허 약초 재배소의 얇은 덮개 천을 세차게 흔들었다.

로완은 조심스러운 손길로 토기 상자를 감싸고 있던 천을 걷어냈다. 이틀 전 95퍼센트의 기적적인 발아율을 기록하며 검은 흙을 뚫고 올라왔던 엘릭서 릴리의 어린 싹들이 가늘게 떨고 있었다.

파랗게 빛나던 잎선 끝자락에 하얀 마른 서리가 살얼음처럼 엉겨 붙어 있었다. 갓 터져 나온 연두색 어린 잎들은 얼음 기운에 눌려 짙은 자줏빛으로 착색되기 시작했다.

"로완, 온도가 너무 낮아요!"

한스가 굳은 흙 바닥을 딛고 달려오며 뱉어낸 숨결이 흰 김이 되어 공기 중에서 부서졌다.

"북쪽 산맥에서 내리꽂히는 한파예요. 영초 상단의 묘목들도 벌써 절반 넘게 잎이 얼어붙었다고 합니다. 이대로 두면 오늘 밤 첫서리가 내릴 때 이 여린 싹들은 모조리 삼투압이 파괴되어 짓물러 죽을 겁니다."

한스가 초조하게 발을 굴렀다.

"온실 감독관님은 중앙 온상실에서 화염 마석을 훔쳐 오거나 정지 주술 룬을 씨앗 판 위에 박아 넣으라고 하더군요. 다른 조수들은 벌써 불 마석을 화분에 바짝 붙여 두고 있습니다."

"화염 마석을 바짝 붙였다고?"

로완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불 마석에서 나오는 건 건조하고 강렬한 복사열이다. 그걸 흙 위에 놓으면 토양 표면의 수분만 전부 바짝 말라버리고 뿌리가 마른 숯처럼 타 들어간다. 반대로 정지 주술은 식물의 모든 대사 작용을 강제로 동결시키는 짓이야. 어린 싹에 정지 주술을 걸면 도관이 막혀 다시는 자라지 못한다."

"하지만 이대로 두면 얼어 죽는데요!"

"얼어 죽는 건 공기가 차가워서가 아니라 뿌리가 숨쉬는 흙의 온도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로완은 토기 상자 속 흙을 손가락으로 깊게 찔러 넣었다. 표면의 흙은 차가웠지만 손가락 마디 깊이의 배지는 아직 서늘한 온기를 품고 있었다.

"식물의 뿌리는 지온이 섭씨 18도 아래로 떨어지면 수분과 이온 흡수를 멈춘다. 공기만 뜨겁게 덥히는 건 뿌리가 얼어붙은 사람에게 뜨거운 바람만 쐬어주는 격이지. 흙의 온도를 지키고 적정한 습도를 유지할 공간이 필요하다."

로완은 작업대 위에 놓인 커다란 양피지 구석에 검은 숯봉을 가져갔다.

"유리로 벽을 세우고 땅 밑으로 온열 수로를 깔아야 한다."

그때 재배소 울타리 문이 거세게 열리며 펠릭스 시엘버그가 허겁지겁 안으로 들어왔다. 그의 털코트 깃에는 이미 굵은 눈발이 희끗희끗 얹혀 있었다.

"로완! 싹터 나온 엘릭서 릴리는 무사하냐?"

펠릭스가 토기 상자 속 유묘를 보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자줏빛으로 시들어가는 잎끝을 보자 다시 얼굴이 굳어졌다.

"산맥에서 눈구름이 내려오고 있다. 아카데미 본관에서도 겨울 결계를 가동하기 시작했어. 이 싹들을 구하려면 연금술 학부의 대형 화염 온상실로 옮겨야 한다."

"그 온상실로 들어가면 사흘 안에 잎이 바싹 말라 비틀어질 겁니다."

로완이 숯봉으로 양피지 위에 그어 내린 도면을 펠릭스 앞으로 밀어지급했다.

"우리가 직접 온실을 만듭니다."

"뭐? 온실이라고?"

펠릭스가 도면을 내려다보았다. 양피지 위에는 삼각 지붕 형태의 목조 프레임과 이를 둘러싼 이중 유리창 그리고 흙 밑으로 복잡하게 얽힌 기와 수로와 룬 배치도가 정밀하게 그려져 있었다.

"아카데미 후원의 유리 온실은 명문 귀족 가문의 영지나 시엘버그 본가에나 있는 고급 시설이다! 투명한 마법 유리를 수급하는 데만 수백 마르크가 들고 온열 결계를 유지하려면 상급 연금술사가 매일 상주해야 해!"

"상급 연금술사도 필요 없고 비싼 마법 유리도 필요 없습니다."

로완이 단호하게 말했다.

"두껍고 평평한 광산용 수정 유리판이면 충분합니다. 그리고 결계를 덧씌우는 게 아니라 흙 밑으로 저출력 온열 룬을 매설하고 수로를 통과시킬 겁니다. 습기와 지온을 동시에 잡는 구조입니다."

펠릭스는 로완의 눈빛에서 꺾이지 않는 확신을 읽었다. 7화에서 물리적 종자 휴면 타파로 발아율 95퍼센트를 증명했던 바로 그 눈빛이었다.

"좋다. 시엘버그 가문의 수송 상단을 움직이마. 광산용 수정 유리판과 방수 목재는 오늘 오후까지 끌어오겠다. 대신 학장의 승인과 시설 마법사들의 반대를 네가 넘어야 한다."

반대는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들이닥쳤다.

소식을 들은 약초식물원의 온실 감독관과 아카데미 시설 관리 마법사가 인부들을 대동하고 특허 약초 재배소로 들이밀었다.

"미친 소리! 폐묘목장 한가운데에 직경 열 척이 넘는 유리 집을 짓겠다고?"

온실 감독관이 붉어진 얼굴로 로완을 가리키며 고함을 쳤다.

"유리는 겨울 한파에 얼어 터지기 십상이고 흙 밑에 온열 룬을 묻으면 뿌리가 찌개처럼 끓어 썩어버린다! 마법 재배의 기초도 모르는 천민 조수가 학장님의 배려를 믿고 안하무인으로 굴고 있구나!"

시설 관리 마법사 역시 품에서 단단한 화염 마석 하나를 꺼내 들며 거들었다.

"겨울철 영초 관리는 고농도 화염 마석을 화분 둘레에 감싸는 것이 제국 연금술 학회의 공인 지침이다. 흙 밑에 룬을 매설하다가 대지 마나 도관이라도 건드리면 북쪽 결계가 흔들릴 거다!"

"화염 마석을 둘러싼 영초들의 뿌리를 직접 파보신 적이 있습니까?"

로완이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뭐라?"

"화염 마석에서 방출되는 과도한 열기는 토양 내부의 공생 미생물을 싹 사멸시키고 뿌리의 세포벽을 구워버립니다. 잎은 건조한 열기에 비명을 지르고 뿌리는 물을 마시지 못해 고사하죠. 그것이 당신들이 말하는 공인 지침입니까?"

로완이 발밑의 흙을 밟으며 이어서 말했다.

"제가 매설하려는 온열 룬은 흙을 끓이는 주술이 아닙니다. 땅속 세 척 깊이에 차열 자갈과 마른 참숯을 깔고 그 위에 진흙 기와 수로를 지나게 할 겁니다. 저출력 룬이 발산하는 열기는 숯과 자갈에 먼저 축적되고 수로에서 올라오는 수증기를 타고 흙 전체로 은은하게 전도됩니다. 흙은 찌개가 되는 게 아니라 섭씨 20도의 따뜻한 요람이 되는 겁니다."

"말도 안 되는 궤변이다!"

감독관이 펄쩍 뛰었지만 뒤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궤변인지 아닌지는 결과를 보면 알 수 있겠지."

알버스 듀란 학장이 실비아 폰 시엘 부교수와 함께 재배소 입구에 서 있었다. 학장의 혜안이 깊게 패인 눈동자가 로완의 도면과 흙 바닥을 번갈아 살폈다.

"실비아 부교수. 로완이 말한 지하 수로 구조가 북쪽 결계에 영향을 주겠나?"

실비아 부교수가 잎맥처럼 섬세한 룬 검측 마도구를 땅에 대어본 뒤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학장님. 로완 조수가 제시한 온열 룬은 결계 마력을 끌어쓰는 것이 아니라 미약한 대지 이온을 순환시키는 저출력 회로입니다. 오히려 수로를 따라 축축한 마력이 은은하게 퍼져 수호 신목 구획의 토양 안정성에도 도움이 됩니다."

알버스 학장이 지팡이를 가볍게 짚었다.

"시범 구획 건설을 승인한다. 필요한 목재와 자재는 펠릭스 생도의 가문 상단이 보증하고 재배소의 전권은 로완에게 맡긴다. 감독관은 인부들을 데리고 물러나게."

감독관은 씹어뱉듯 혀를 차며 물러났지만 그의 눈동자에는 짙은 분노와 질시가 서려 있었다.

오후가 되자 펠릭스가 수송 수레 세 대 분량의 광산용 이중 수정 유리판과 방수 처리된 삼나무 목재를 끌고 도착했다.

시간이 없었다. 북쪽 하늘에서 먹구름이 뭉쳐지며 차가운 눈발이 하나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한스! 터파기를 시작한다! 깊이는 세 척, 너비는 열다섯 척이다!"

"예, 로완 님!"

한스가 상의를 벗어 던지고 괭이와 삽을 휘둘렀다. 로완과 펠릭스 역시 장갑을 끼고 흙을 파내기 시작했다. 귀족 생도인 펠릭스는 처음에는 삽질이 서툴러 손바닥에 짓무름이 잡혔지만 싹튼 엘릭서 릴리를 살리겠다는 집념으로 이빨을 악물고 흙을 걷어냈다.

땅을 깊게 파낸 뒤 로완은 가장 밑바닥에 굵은 화강암 자갈과 마른 참숯 가루를 두껍게 깔았다. 열기가 밑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는 차열층이자 과습을 방지하는 배수층이었다.

그 위에 진흙으로 구운 기와 수로를 길게 이어 붙이고 수로 바닥에 미약한 저출력 온열 룬을 각인한 룬 돌판을 놓았다. 수로 안으로는 재배소 배수구에서 우회시킨 깨끗한 지하수가 천천히 흐르도록 설계했다.

"온열 룬이 작동하면 수로의 물이 은은하게 데워지면서 수증기가 발생한다. 그 수증기가 숯과 자갈층을 타고 흙 전체로 올라올 거다."

로완이 설명하며 온열 룬을 활성화하자 곧 수로 밑바닥에서 미세한 온기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숯가루가 열기를 품어 안고 흙 위로 따스한 온기를 밀어 올렸다.

그 위로 완숙 부엽토와 모래를 6 대 4 비율로 섞은 건강한 배지를 다시 두껍게 덮었다.

이어 삼나무 골조가 세워졌고 투명하고 두꺼운 수정 유리판들이 지붕과 벽면을 매끄럽게 채워나갔다. 로완은 유리판 사이의 미세한 틈새마다 송진과 벌꿀 왁스를 끓여 만든 천연 방수 접착제를 꼼꼼하게 메워 넣었다.

"바람이 들어올 틈을 완벽하게 차단해야 한다!"

작업이 막바지에 다다랐을 때 하늘이 완전히 검게 물들며 세찬 폭설이 아카데미 후원을 덮쳤다.

매서운 한풍이 웅웅 소리를 내며 유리 온실 외벽을 때렸다. 외부 온도는 하룻밤 사이에 영하 십 도 아래로 뚝 떨어졌다.

바깥의 풀밭과 나무들은 순식간에 하얀 눈더미 아래 묻혀 얼어붙기 시작했다.

다음 날 새벽 아카데미 전체가 흰 눈으로 덮였다.

약초식물원의 일반 묘목장에 놓여 있던 영초들은 화염 마석의 강렬한 열기에 잎이 검게 그을리거나 기온 강하를 견디지 못하고 뿌리가 얼어붙어 하얗게 죽어가고 있었다. 감독관과 생도들은 발을 굴리며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특허 약초 재배소 한가운데 세워진 유리 온실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소문을 듣고 찾아온 알버스 학장과 실비아 부교수 그리고 수많은 귀족 생도들이 온실 앞에 모여들었다.

서리가 내린 유리창 안쪽으로 은은하고 훈훈한 수증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로완이 유리 온실의 삼나무 문을 천천히 열었다.

후욱.

문이 열리는 순간 밖에서 얼어붙어 있던 사람들의 얼굴로 따스하고 축축한 흙 내음과 달콤한 마나 향기가 밀려 나왔다.

온실 내부의 바닥 흙은 섭씨 20도의 온기를 머금고 보송보송하게 가빠진 숨을 쉬고 있었다. 지하 수로에서 올라온 따스한 수증기가 공기 중의 상대 습도를 75퍼센트로 완벽하게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온실 한가운데 놓인 상자 위에서 기적이 일어났다.

어제까지만 해도 냉해로 자줏빛으로 시들어 가던 엘릭서 릴리 유묘들이 서리를 훌훌 털어내고 짙은 푸른빛의 줄기를 하늘로 당차게 뻗어 올리고 있었다.

단순히 생존한 것에 그치지 않았다.

적정한 지온과 완벽한 습도 그리고 유리창을 뚫고 들어온 햇살을 한껏 마신 엘릭서 릴리의 줄기 끝에서 눈부신 영롱함을 머금은 파란 마나 꽃봉오리들이 봉인 해제되듯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푸른 마나의 파동과 함께 한겨울 아카데미 한가운데에 만개한 파란 엘릭서 릴리 꽃밭이 웅장한 장관을 이루었다.

"겨울에… 영초가 꽃을 피우다니…."

펠릭스가 넋을 잃은 채 감탄사를 내뱉었다.

"성수나 고급 화염 마석도 없이 고작 유리창과 흙 밑의 온기만으로 이런 개화를 이끌어내다니!"

실비아 부교수도 떨리는 손으로 꽃잎에 맺힌 온난한 이슬방울을 만지며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자연의 원리를 거스르지 않고 환경을 만들어준 것뿐이군요. 마법사들이 그동안 얼마나 식물들을 학대해 왔는지 비로소 알겠습니다."

알버스 학장의 눈빛에 깊은 만족감이 스쳐 지나갔다.

"한겨울에도 영초의 끊임없는 생산이 가능하다는 뜻이로군. 로완 조수. 자네의 이 시설 재배 방식은 아카데미의 약초 자급률을 몇 배로 끌어올릴 것이다."

생도들의 환호와 경악이 이어지는 가운데 로완은 흙의 온도를 살피며 담담하게 미소를 지었다.

현대 식물학의 시설 재배 기술과 온돌식 열 전도 원리가 이세계의 마법 농업을 바꾸기 시작한 첫걸음이었다.

하지만 모두가 환호하는 온실 외벽 바깥,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그늘진 나무 뒤편에서 누군가가 잔뜩 서린 눈으로 온실 내부를 노려보고 있었다.

제국 약초 상단과 연금술 길드의 문양이 새겨진 두꺼운 로브를 둘러쓴 첩자의 손에는 붉은 얼룩이 반점처럼 얼룩진 수상한 병이 쥐어져 있었다.

차가운 산바람을 타고 미세한 검은 포자 가루가 훈훈한 유리 온실의 환기창을 향해 아주 조금씩 흘러들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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