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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의 천재 식물학자5화

아카데미의 천재 식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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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뿌리와 균근의 자연스러운 계약

달빛이 돌바닥의 물기를 희게 훑고 지나갔다.

로완은 신목 뿌리 곁에 깔아 둔 천의 끝을 조심스럽게 들었다. 낮에 덮어 둔 부엽토는 겉만 축축했고 안쪽의 마른 모래는 아직 형태를 지키고 있었다. 그 사이로 흰 균사 몇 가닥이 은빛 뿌리 끝을 향해 뻗어 있었다.

가는 실은 너무 여렸다. 손끝이 스치기만 해도 끊어질 것 같았다.

한스가 등불을 가까이 들었다.

“붙은 거야?”

“아직은 아닙니다.”

로완은 고개를 저었다.

“서로 가까이 간 것뿐이에요. 균사가 뿌리를 밀어내지 않고 자리를 잡으려면 흙이 계속 숨을 쉬어야 합니다.”

“균 하나 붙이는 데도 이렇게 오래 걸려?”

“나무가 먼저 내어줘야 하는 게 있으니까요.”

한스는 이해하지 못한 얼굴로 균사를 내려다봤다. 로완은 천 위에 떨어진 참나무 잔뿌리를 집어 들었다.

“균근은 마나를 빨아먹는 벌레가 아닙니다. 나무가 뿌리에서 내보내는 당을 받고 대신 흙 속의 물과 광물을 가져와요. 서로 줄 게 있어야 같이 삽니다.”

“계약 같은 거네.”

“억지로 맺는 계약이 아니라 오래 살아남은 쪽이 고르는 계약이지.”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북쪽 탑 위에서 낮은 종소리가 울렸다. 돌바닥에 새긴 결계 문양이 희미하게 떨었다.

에르단이 즉시 고개를 들었다. 그는 밤새 정원 바깥을 돌던 관리 마법사에게 손짓했다.

“진폭이 커졌다. 정화 주술을 한 단계 올린다.”

푸른 로브의 마법사가 지팡이를 들었다.

“안 됩니다.”

로완의 목소리가 먼저 정원을 갈랐다.

에르단의 눈매가 사나워졌다.

“네가 결계의 떨림을 들었나? 북쪽 벽이 흔들리면 이곳에 있는 모두가 위험해진다.”

“그래서 외곽 정화는 유지하라고 했습니다. 뿌리 쪽으로만 더 흘려 넣지 마세요.”

로완은 발밑의 흙을 가리켰다.

“여기는 오늘 겨우 물이 빠졌습니다. 정화 주술이 다시 습기를 얹으면 균사도 뿌리도 먼저 질식해요.”

“신목이 결계를 받쳐 주지 못하면 균사 따위는 의미가 없다.”

“신목이 버티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그 습기입니다.”

두 사람의 말 사이로 서늘한 바람이 지나갔다. 처진 잎들이 아주 약하게 부딪혔다. 로완은 그 소리를 들으며 이를 악물었다. 결계가 무너지면 안 된다는 말은 옳았다. 그러나 뿌리에 물을 더 밀어 넣는 방식도 나무를 죽이는 길이었다.

실비아가 수정판을 들어 올렸다.

“에르단. 외곽 수호진만 유지하게. 중심부의 정화 수치는 그대로 둔다.”

“부교수님. 만일 북쪽 결계가 더 흔들리면.”

“그때는 내가 책임지고 판단하겠다.”

에르단은 지팡이를 쥔 손에 힘을 줬다. 한동안 아무 말이 없던 그는 관리 마법사들에게 짧게 명령했다.

“외곽만 유지한다. 신목 아래로는 한 방울도 보내지 마라.”

푸른 빛이 정원 가장자리에서만 얇게 일었다. 신목 줄기까지 밀려들던 물빛 마나는 멈췄다.

로완은 다시 천을 덮었다. 한 번 기회를 얻었다고 안심할 수는 없었다. 밤은 길었고 물은 언제든 낮은 곳을 찾아 돌아왔다.

한스는 배수로 쪽을 살피라는 지시를 받고 등불을 들고 달려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목소리를 낮춰 불렀다.

“로완. 이쪽 좀 봐.”

배수로 끝의 물은 낮보다 맑아졌어야 했다. 그런데 바닥에 고인 얕은 물 위로 은빛 가루가 얇게 떠 있었다. 달빛을 받은 가루는 마치 잘게 부순 비늘처럼 반짝였다.

로완은 무릎을 꿇고 물가에 손을 댔다. 가루는 손가락에 달라붙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젖은 흙의 시큼한 냄새 사이로 낯익은 향이 섞여 있었다.

정화 도관을 닦을 때 쓰는 푸른 염료 냄새였다.

“이게 은색 조각에서 나온 가루야?”

한스가 속삭였다.

“아니.”

로완은 손가락 끝을 등불 아래로 가져갔다. 은빛 사이에 아주 옅은 푸른 얼룩이 보였다.

“조각이 오래 묻혀 있었다면 배수로 가까운 곳에만 남아야 해. 이건 물을 따라 여기까지 새로 흘러왔어.”

에르단도 가까이 다가왔다. 그는 로완의 손가락을 보고 미간을 좁혔다.

“정화 도관의 염료라고?”

“도관 안쪽을 확인해야 합니다. 가루가 물을 붙잡는 성질이라면 배수로를 열어도 소용없어요. 위에서 물을 신목 쪽으로 다시 끌어들이고 있을 겁니다.”

“그건 추측이다.”

“그럼 확인하면 됩니다.”

에르단은 곧장 대답하지 않았다. 북쪽 결계가 한 번 더 낮게 울렸다. 도관을 건드리는 동안 외곽 수호진을 더 세게 유지해야 한다는 계산이 그의 얼굴에 스쳤다.

실비아가 수정판을 품에 넣었다.

“도관 입구를 열자. 에르단은 북쪽 선을 감시하게. 이상이 커지면 즉시 알리고.”

“알겠습니다.”

이번 대답은 마지못한 반발보다 짧은 동의에 가까웠다.

정화 도관 입구는 담장 아래의 돌판으로 가려져 있었다. 한스와 로완이 돌판을 들어 내자 차가운 습기가 얼굴로 밀려왔다. 안쪽 벽에는 푸른 염료 자국이 길게 남아 있었고 그 위로 은색 가루가 젖은 막처럼 들러붙어 있었다.

로완은 삽 끝으로 막을 아주 조금 긁어 냈다. 가루를 떼자 아래쪽 돌 틈에서 물이 가늘게 흘렀다. 물은 바깥 배수구가 아니라 신목 뿌리 쪽으로 기울어진 도관을 타고 있었다.

“보세요.”

그는 삽날을 물길에 대지 않았다. 대신 도관 옆 흙에 손바닥만 한 대지 룬을 얹었다. 룬의 빛은 흙을 깨거나 물을 만들어 내지 않았다. 차가운 물이 지나가는 길만 가느다란 파문으로 드러냈다.

파문은 은색 가루가 붙은 구간에서 꺾여 신목 쪽으로 흘렀다.

“가루가 물을 잡고 방향을 틀고 있습니다.”

에르단의 입술이 굳었다.

“도관은 결계 정화와 연결돼 있다. 막아 버리면 북쪽 선이 비어.”

“막지 않습니다. 여기서 물만 옆 배수선으로 빼면 돼요.”

“그 짧은 틈에 결계가 꺼지면?”

“그래서 당신이 외곽을 지키고 실비아 부교수님이 수정판을 보는 겁니다.”

로완은 도관의 젖은 벽을 바라봤다.

“저 가루를 그냥 두면 내일 아침에도 신목 아래는 다시 젖어 있을 겁니다. 그때는 접종한 부위만 걷어 내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어요.”

한스가 입술을 깨물었다. 그는 한 손에 마른 모래 주머니를 들고 있었다. 로완이 준비하라고 했던 재료였다.

“내가 뭘 하면 돼?”

“가루가 떨어지는 자리에 모래를 얇게 깔아. 물이 고이지 않도록 숯가루도 조금 섞고. 절대 꾹 누르지는 마.”

“알았어.”

한스는 이번에는 이유를 되묻지 않았다. 그는 모래를 한 줌씩 조심스레 뿌렸다. 젖은 가루가 모래에 닿자 번들거리던 표면이 조금씩 흐트러졌다.

로완은 룬의 파문을 따라 도관 바깥쪽에 얕은 홈을 냈다. 물이 빠질 길은 넓을 필요가 없었다. 신목으로 향하던 흐름이 한 번만 방향을 바꾸면 됐다.

실비아의 은빛 결계가 담장 밖에서 얇게 떨렸다.

“북쪽 선이 내려간다.”

에르단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울렸다.

“로완. 더 길게 끌지 마라.”

로완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손끝의 룬이 물길을 보여 주고 있었다. 은색 가루가 남은 마지막 틈만 끊으면 됐다.

“지금입니다.”

한스가 숯가루를 뿌렸다. 로완은 삽날로 은색 막을 들어 천 위에 받았다. 그 아래에서 갇혀 있던 물이 얕은 홈을 따라 배수로 쪽으로 흘렀다.

수정판의 은빛이 크게 출렁였다.

관리 마법사들이 일제히 지팡이를 들었다. 에르단은 북쪽 탑을 향해 지팡이를 세웠고 실비아는 외곽 결계의 선을 한 겹 더 둘렀다.

로완은 물이 신목 쪽으로 되돌아가지 않는지만 보았다.

몇 번의 숨이 지나갔다.

파문은 배수로를 향해 곧게 뻗었다. 수정판의 빛도 흔들림을 멈추고 고른 은색으로 가라앉았다.

에르단이 천천히 지팡이를 내렸다.

“북쪽 선은 유지된다.”

그 말에 한스가 길게 숨을 내쉬었다. 로완도 그제야 어깨의 힘을 조금 풀었다. 그러나 그는 뿌리 쪽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을 서두르지 않았다. 물길 하나를 바로잡았다고 나무가 회복한 것은 아니었다.

천을 다시 걷자 접종 부위의 흙은 낮보다 덜 젖어 있었다. 흰 균사 한 가닥이 부엽토에서 뻗어 나와 은빛 뿌리 끝을 아주 느리게 감싸고 있었다.

로완은 숨을 죽였다.

균사는 뿌리 표면을 덮지 않았다. 가는 망처럼 주변에 머물며 여러 갈래로 갈라졌다. 뿌리도 그것을 밀어내지 않았다.

신목 줄기 안에서 은빛 맥이 한 번 조용히 뛰었다.

한스가 거의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물었다.

“이번에는 된 거야?”

“시작은 됐습니다.”

로완은 뿌리 주변에 천을 다시 덮었다.

“내일까지 이 상태를 지키면 균사가 더 깊게 퍼질 거예요. 그래도 다른 뿌리에 넓히는 건 그다음입니다.”

에르단은 신목과 도관을 번갈아 봤다. 그는 여전히 편안해 보이지 않았다. 다만 정화 주술을 올리라는 명령도 내리지 않았다.

“새벽까지 외곽 수호진을 유지한다.”

그가 관리 마법사들에게 말했다.

“뿌리 쪽에는 손대지 마라.”

로완은 그 말을 듣고도 고맙다는 인사를 하지 않았다. 치료에 필요한 최소한의 선택일 뿐이었다. 에르단도 그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새벽빛이 담장 위로 번질 무렵 검게 처져 있던 잎 하나가 가장자리를 아주 조금 세웠다. 바람에 흔들린 것과는 달랐다. 잎맥을 따라 흐르던 잿빛이 옅어지고 있었다.

실비아가 그 잎을 오래 바라봤다.

“은색 가루는 내가 봉인해 두겠다. 푸른 염료까지 남아 있으니 정화 도관을 만진 자를 좁힐 수 있겠지.”

“도관 출입 기록도 봐야 합니다.”

로완은 은색 가루가 담긴 천을 바라봤다.

“누군가는 물길을 잘 알고 있어요. 봉인 조각만 묻고 떠난 게 아닙니다. 치료가 시작된 뒤에도 도관을 이용했습니다.”

실비아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기록은 내가 확보하겠다.”

로완은 고개를 끄덕였다. 신목의 잎 하나가 들렸다고 모든 것이 끝난 건 아니었다. 흙 속에서는 아직 썩은 뿌리도 남아 있었고 정원 밖에는 물을 되돌리려는 손도 있었다.

그는 배수로를 향해 흐르는 물을 마지막으로 확인했다.

이번에는 물이 신목을 향해 돌아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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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남의 이름 뒤에 숨어 곡을 쓰다 과로사한 무명 작곡가 강하진이, 음악이 마법이 되는 판타지 아카데미의 마력 제로 낙제생 하진으로 빙의한다. 퇴학 직전 24시간 루프와 [신들의 작곡 시스템]을 이용해 지구의 화성학과 거장들의 선율을 대기 에테르 유도식으로 변환하며, 악보 한 장으로 아카데미와 제국을 뒤흔드는 천재 작곡가의 대마법 성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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