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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의 천재 식물학자4화

아카데미의 천재 식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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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수호 신목의 뿌리를 살려내다

배수로가 열리자 돌바닥 아래에 갇혀 있던 물이 낮은 곳을 찾아 흘렀다.

로완은 물이 빠진 자리에 쪼그리고 앉았다. 손가락으로 흙을 집어 보니 검은 진흙이 힘없이 뭉개졌다. 손바닥에는 오래 젖은 지하실 같은 시큼한 냄새가 남았다.

물길을 냈다고 흙이 곧 살아나는 것은 아니었다. 숨이 막힌 토양은 뿌리만 죽이는 게 아니었다. 뿌리 곁에서 양분과 물을 나누던 작은 생명들도 함께 사라진다.

에르단이 열린 돌 세 장을 내려다봤다.

“이제 됐겠지. 결계 문양을 복구해야 한다.”

“아직 아닙니다.”

로완은 드러난 뿌리 쪽을 가리켰다. 검게 썩은 가는 뿌리 사이로 은빛을 간신히 붙잡은 뿌리 몇 가닥이 늘어져 있었다.

“죽은 부분을 걷어 낸 건 응급 처치입니다. 이 뿌리가 다시 물과 양분을 가져가려면 주변 흙부터 숨을 쉬어야 해요.”

“정화 주술을 재개하면 마나가 그 일을 대신할 수 있다.”

“마나가 산소를 대신하지는 못합니다.”

로완은 손끝에 묻은 진흙을 천으로 닦았다.

“지금 마나를 다시 흘려 넣으면 습기만 늘어납니다. 뿌리가 버티려면 공기층과 균근이 필요합니다.”

한스가 옆에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균근?”

로완은 살아 있는 뿌리 끝 하나를 들어 보였다. 은빛 표면에 머리카락보다 가는 흰 실이 끊어진 채 붙어 있었다.

“뿌리와 함께 사는 균입니다. 나무는 이 균에게 당을 주고 균은 뿌리가 혼자 끌어오기 어려운 물질을 가져다줘요. 신목도 원래는 이 녀석들과 같이 자랐을 겁니다.”

실비아가 천천히 무릎을 굽혔다. 그녀는 끊긴 흰 실을 바라보다가 손을 거뒀다.

“정화 의식이 그것들까지 없앤 건가.”

“침수도 한몫했습니다. 물이 차면 균사도 숨을 못 쉽니다.”

에르단의 눈빛이 매서워졌다.

“야생 균을 결계 안에 들이자는 말인가? 정원 바깥의 오염원을 신목에 붙였다가 결계가 흔들리면 누가 책임지지?”

그는 고집만 부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북쪽 결계가 흔들리는 밤마다 관리 마법사들이 가장 먼저 호출됐을 것이다. 신목이 쓰러질 경우 자신의 판단 하나가 아카데미 전체의 위험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두려움도 이해는 갔다.

하지만 두려움이 물을 거꾸로 흐르게 하지는 않는다.

“아무 균이나 쓰지 않습니다.”

로완은 정원 담장 쪽을 바라봤다.

“신목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건강하게 사는 균사만 가져오겠습니다. 그리고 모든 뿌리에 붙이지 않아요. 살아 있는 뿌리 끝 한 구획에만 시험 접종합니다. 반응이 나쁘면 바로 걷어 낼 수 있습니다.”

실비아가 물었다.

“시간은 얼마나 필요하지?”

“해 지기 전까지 재료를 준비하고 접종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정화 주술은 결계가 무너지지 않을 만큼만 남겨야 합니다.”

“안 된다.”

에르단이 지팡이를 세게 짚었다.

“북쪽 결계는 이미 약해졌다. 정화를 낮추는 건 위험하다.”

“그 정화가 뿌리에 물을 더 얹고 있습니다.”

로완은 신목 위를 올려다봤다. 검게 처진 잎들이 미동도 없이 매달려 있었다.

“결계를 지키려면 결계의 심장부터 살려야 합니다.”

잠시 말이 없었다.

실비아는 떨어진 검은 잎 하나를 주워 손바닥에 올렸다. 잎맥까지 번진 얼룩을 바라보던 그녀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두 시간이다. 그동안 정화 주술은 외곽 유지에 필요한 만큼만 남긴다.”

“부교수님.”

“식물 관리 권한은 내게 있다. 이 두 시간의 결과는 내가 책임지겠다.”

에르단의 턱이 굳었다. 그는 즉시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그러나 푸른 로브의 관리 마법사들에게 손을 내렸다.

물빛 마나가 신목 뿌리에서 거둬지자 축축한 정원은 전보다 더 조용해졌다.

로완은 한스에게 작은 삽을 건넸다.

“담장 쪽 참나무 아래를 얕게 파 봐. 흙을 뒤집지 말고 낙엽 아래만 걷어 내.”

“왜 거기야?”

“돌바닥 밖이라 물이 잘 빠지고 잎도 건강합니다. 오래 살아 있는 나무 뿌리 곁에는 맞는 균사가 남아 있을 가능성이 커요.”

두 사람은 정원 외곽으로 향했다.

수호 신목의 그늘을 벗어나자 흙 냄새부터 달랐다. 참나무 아래에는 마른 잎이 여러 겹 쌓여 있었고 흙은 손가락 사이에서 부드럽게 풀렸다. 한스가 삽날을 얕게 밀어 넣자 부엽토 아래로 하얀 실이 거미줄처럼 퍼져 나왔다.

“이거 봐. 뿌리에 붙어 있어.”

“좋아. 삽으로 퍼 올리지 말고 천을 밑에 밀어 넣어.”

로완은 한스가 균사 덩어리를 끊지 않도록 손목을 잡아 방향을 바꿔 줬다. 흙 속의 흰 실은 가늘었지만 참나무 잔뿌리를 단단히 감고 있었다.

그는 균사와 부엽토를 천 위에 얹고 숯가루와 마른 모래를 조금씩 섞었다. 젖은 토양이 다시 달라붙지 않게 하고 균사가 숨 쉴 틈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한스가 소매로 이마를 닦았다.

“이것만 넣으면 나무가 괜찮아지는 거야?”

“아니. 물이 빠져야 하고 살아 있는 뿌리가 남아 있어야 합니다. 이건 그 뿌리가 다시 일을 시작하도록 도와주는 거야.”

“그럼 아직도 위험하네.”

“그래서 서두르되 함부로 하면 안 돼.”

로완은 말끝을 흐리지 않았다. 병든 나무 앞에서 희망만 크게 말하는 건 치료가 아니었다.

그때 배수로 쪽에서 에르단의 목소리가 들렸다.

“로완. 이리 와 봐라.”

로완이 돌아가자 에르단은 앞서 꺼낸 은색 봉인 조각을 천 위에 올려 두고 있었다. 조각이 빠진 자리에서는 물이 잘 흐르고 있었지만 조금 떨어진 흙 표면에는 다시 얇은 웅덩이가 생기고 있었다.

로완은 웅덩이에 손을 넣었다. 물은 배수로를 향해야 하는데 손끝에서는 반대쪽으로 끌리는 미세한 마나가 느껴졌다.

“조각 하나로 끝난 게 아닙니다.”

그는 고인 물의 가장자리를 따라 손가락을 움직였다. 흙 아래에서 차갑고 얇은 울림이 이어졌다.

“여기에도 선이 있어요. 물길이 신목 쪽으로 돌아가게 만들어졌습니다.”

“공식 결계는 아니다.”

에르단이 즉시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부정이 아니라 확인에 가까웠다.

실비아가 수정판을 꺼내 바닥 위에 올렸다. 수정판 안에서 북쪽 결계의 문양이 희미하게 떠올랐다. 은빛 선은 공식 문양을 따라가지 않고 배수로 바깥을 비스듬히 가로지르고 있었다.

“연결 문양이 다르군.”

실비아의 손가락이 수정판 위에서 멈췄다.

“외곽 결계석과도 이어지지 않는다.”

에르단이 조각을 집어 들었다.

“보조 봉인일 수 있다. 누군가 결계를 보강하려고 묻었을지도 몰라.”

“보강이라면 왜 물길을 막습니까?”

로완은 그가 든 조각을 바라봤다.

“의도는 모릅니다. 다만 이 상태로 두면 배수로를 열어도 신목 주변에 물이 다시 고일 겁니다.”

“선을 끊으면 결계가 흔들릴 수 있다.”

“결계 중심에는 손대지 않겠습니다. 대지 룬으로 물의 방향만 확인하고 배수선에 박힌 조각만 뽑을 겁니다.”

“만약 북쪽 결계가 무너지면?”

로완은 잠시 신목을 봤다. 잎 하나가 줄기에서 떨어져 젖은 돌바닥을 미끄러졌다.

정답은 간단하지 않았다. 봉인을 건드리는 순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 그는 알지 못했다. 그렇다고 물을 뿌리 쪽으로 돌려보내는 장치를 두고 치료를 시작할 수도 없었다.

“그때는 제가 즉시 멈추겠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걸 그대로 둘 수 없습니다.”

실비아가 로완 옆에 섰다.

“내가 수정판으로 결계의 변화를 보겠다. 에르단은 외곽 수호진을 준비해. 중심선에 이상이 생기면 즉시 로완에게 알린다.”

에르단은 긴 숨을 내쉬었다.

“얕게만 연다. 뿌리 가까이는 건드리지 마라.”

로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배수로 가장자리에 대지 룬을 얹었다. 룬의 빛은 흙을 파헤치는 마법이 아니었다. 땅속에 남은 물의 움직임을 가느다란 파문으로 드러내는 보조에 가까웠다.

파문은 은색 선을 따라 신목 쪽으로 모였다.

“여기입니다.”

한스가 삽으로 흙을 아주 얇게 걷어 냈다. 진흙 아래에서 길쭉한 은색 조각 두 개가 모습을 드러냈다. 조각들은 배수로를 향한 물길을 가로막은 채 뿌리 쪽으로 비스듬히 박혀 있었다.

로완은 천으로 조각을 감싼 뒤 첫 번째 것을 천천히 뽑았다.

수정판의 빛이 한순간 크게 흔들렸다.

관리 마법사들이 동시에 지팡이를 들었다. 에르단의 시선이 수정판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외곽 결계는?”

“유지되고 있습니다.”

실비아가 짧게 답했다.

로완은 두 번째 조각도 빼냈다.

고여 있던 물이 낮은 배수로를 향해 한꺼번에 쏟아졌다. 검은 진흙이 밀려 나가며 뿌리 주변의 흙이 조금씩 드러났다. 수정판의 빛도 흔들림을 멈추고 일정한 은색으로 가라앉았다.

에르단은 말없이 돌바닥을 바라봤다. 결계는 무너지지 않았다. 오히려 갇혀 있던 마나가 습기에 뭉치지 않고 흙을 따라 고르게 퍼졌다.

“이건 결계를 위한 봉인이 아니었습니다.”

로완이 말했다.

“누가 묻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건 나중에 확인해야 합니다.”

실비아는 은색 조각들을 수정 상자에 넣고 봉인했다.

“내가 보관하겠다. 오늘 정원에 드나든 자들의 기록도 확인하지.”

로완은 더 묻지 않았다. 지금 필요한 건 범인을 찾는 일이 아니라 살아 있는 뿌리가 버틸 자리를 만드는 일이었다.

그는 신목 곁으로 돌아와 가장 가는 은빛 뿌리 하나를 골랐다. 검게 물러진 부분에서 충분히 떨어져 있었고 끝부분도 아직 단단했다.

“한스. 이 주변 흙만 손바닥만큼 걷어 내.”

“전부 붙이는 게 아니고?”

“여기만 먼저 한다. 반응을 봐야 해.”

로완은 뿌리 아래에 마른 모래를 얇게 깔았다. 그 위로 숯가루를 아주 적게 뿌리고 참나무 아래에서 가져온 균사 덩어리를 올렸다. 흙은 손으로 눌러 다지지 않았다. 균사가 스스로 뿌리와 맞닿을 빈틈을 남겨야 했다.

관리 마법사 하나가 불안한 얼굴로 물었다.

“이제 마나를 넣습니까?”

“아니요. 한 방울도 더 넣지 마세요.”

로완은 실비아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결계 바깥만 지켜 주세요. 뿌리 쪽에는 힘을 밀어 넣지 말고요.”

실비아가 지팡이를 들었다. 이번에는 물빛 마나가 아니라 잎맥처럼 가는 은빛이 정원 외곽을 감쌌다. 그 빛은 신목에 닿지 않고 바람과 어둠만 밀어 냈다.

잠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한스의 숨소리마저 들릴 만큼 정원이 고요했다.

로완은 흙 위에 시선을 고정했다. 균사 한 가닥이 젖은 부엽토에서 몸을 폈다. 가는 흰 실은 마른 모래 사이를 지나 은빛 뿌리 끝에 닿았다.

실은 망설이듯 멈췄다가 뿌리를 천천히 감쌌다.

그 순간 신목의 줄기 안에서 은빛 맥이 한 번 밝아졌다.

낮은 울림이 돌바닥을 타고 정원 전체에 퍼졌다.

관리 마법사들이 지팡이를 들어 올렸다. 로완은 즉시 손을 뻗어 막았다.

“주술을 올리지 마세요. 나무가 반응하는 겁니다.”

그는 줄기의 빛이 더 거세지지 않는지 지켜봤다. 만약 마나가 폭주하면 접종한 흙을 걷어 내야 했다. 하지만 은빛 맥은 잠깐 밝아졌다가 잔잔하게 가라앉았다.

검게 처진 잎들 사이에서 잎 하나가 아주 조금 들렸다.

회복이라 부르기에는 작은 변화였다. 그래도 신목은 처음으로 새 흙과 균사를 밀어내지 않았다.

실비아의 눈가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살아날 수 있겠나?”

“오늘은 살 길을 만든 겁니다.”

로완은 뿌리 주변을 다시 천으로 덮었다.

“며칠 동안 배수로를 열어 둬야 합니다. 정화 주술은 지금 수준보다 높이면 안 되고요. 내일 아침에 접종한 구획을 확인한 뒤에 다른 뿌리로 넓힐지 정하겠습니다.”

에르단은 신목을 올려다보다가 낮게 말했다.

“그 기간에 북쪽 결계가 크게 흔들리면 치료는 중단이다.”

“그때도 뿌리 상태를 보고 판단하겠습니다.”

로완은 물러서지 않았다.

“신목을 살리는 일과 결계를 지키는 일을 서로 반대로 놓을 필요는 없어요.”

실비아가 젖은 돌바닥 위로 한 걸음 나왔다.

“치료 기간 동안 로완은 내 지시에 따라 신목 뿌리를 관리한다. 필요한 재료와 출입은 내가 허가하겠다.”

한스가 로완을 돌아봤다. 놀란 눈빛이었다.

로완은 기뻐할 틈이 없었다. 은빛 뿌리 끝에 붙은 가느다란 균사는 이제 막 자리를 잡기 시작했을 뿐이었다. 밤사이 물이 다시 차오르거나 누군가 정화 주술을 올리면 오늘 한 일은 모두 허사가 된다.

해가 담장 너머로 기울었다.

로완이 사용한 천과 삽을 정리하는 동안 정원 바깥의 그림자 하나가 멈춰 섰다. 그림자는 실비아가 수정 상자에 넣은 은색 조각을 오래 바라봤다.

그 손이 담장 위로 잠깐 올라왔다가 천천히 물러났다.

회수하지 못한 봉인의 주인은 아직 정원 가까이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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