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술은 화학으로 합니다

46화: 검은 계곡의 매복과 전하 중화 촉매
요정림으로 향하는 특별 수송마도 행렬은 제국 국경 외곽의 험준한 지형인 ‘검은 계곡(Dark Valley)’을 통과하고 있었다.
스팀-마도 엔진을 장착한 육중한 기갑 마차 세 대를 중심으로, 크로이츠 공작가에서 파견한 수십 명의 정예 철갑 기사들과 요정림의 엘프 호위병들이 삼엄한 경계를 유지하며 행군했다. 마차 내부에는 요정림의 동력 원석을 치료하기 위해 특수 합성한 ‘나노 규소 촉매 복원 세라믹’ 시제품 용액 상자들이 가득 실려 있었다.
우현은 마차 안에서 휴대용 정밀 분석 장치를 이용해 복원용 세라믹의 열역학적 거동을 시뮬레이션하고 있었다. 하나는 옆에서 마나 농도 측정용 프리즘 시약병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계곡 상단에서 우르릉거리는 굉음이 전장을 울렸다.
콰콰콰콰콰—!
“매복이다! 적의 지진 마법이다! 전원 진형을 유지하라!”
크로이츠 가문의 기사단장이 소리쳤다. 계곡 양쪽 벽면의 거대한 암석들이 무너져 내리며 행렬의 전후방 도로를 완전히 폐쇄해 버렸다. 이어서 계곡 위쪽의 절벽 틈새에서 검은 가운을 입은 마도사들과 오스본 가문의 휘장을 가린 사설 용병 기사들이 일제히 쏟아져 나왔다.
그들은 제국 수도에서 도망친 마탑의 광신도 잔당들과 오스본 공작가의 탈영병들이었다.
그들을 이끄는 자는 전직 마탑의 원로인 개릭이었다. 그는 마탑의 몰락을 초래한 우현에게 복수하고, 복원 세라믹의 기술 배합식을 빼앗아 재기를 노리고 있었다.
“화염독시(Corrosive Fire Arrows) 일제 사격! 한 놈도 살려 보내지 마라!”
개릭의 명령에 따라, 마법사들이 시전한 독성 화염 화살 수백 발이 공중을 뒤덮으며 행렬을 향해 빗발쳤다. 화살끝에는 철갑을 부식시키고 방어 마법막을 좀먹는 강한 산성 독성 마력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기사들이 급히 방패벽을 형성하고 방어 마법 장벽을 펼쳤으나, 독성 화살이 장벽에 부딪힐 때마다 치이익 소리와 함께 장벽이 빠르게 부식되며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장벽이 녹아내립니다! 오래 버틸 수 없습니다!”
기사들의 비명 속에서 우현은 냉정하게 마차 문을 열고 무대로 나섰다. 그의 손에는 연녹색의 마도 실린더를 장착한 원통형 격발 장치인 ‘마나 중화 방어 프리즘(Mana-Neutralizing Defense Prism)’이 들려 있었다.
“방어용 전하 중화 촉매(Charge-Neutralizing Catalyst Gas)를 분사합니다.”
우현이 격발 장치의 방아쇠를 당겼다.
쉬이이이이익—!
마차 주변에서 엄청난 양의 무색 가스가 뿜어져 나와, 순식간에 기갑 행렬 전체를 둘러싸는 반구형의 가스 장벽막을 형성했다.
날아오던 독성 화염 화살들이 이 가스 영역에 진입하는 순간, 믿을 수 없는 변화가 일어났다. 화살 끝에서 사납게 일렁이던 붉은 불꽃과 독성 마력들이, 가스와 닿자마자 물에 젖은 성냥처럼 즉각 꺼져 버린 것이다.
가스 내부의 중화 촉매가 마력을 구성하는 이온 전하(Ionic Charge)를 전기 화학적으로 흡착해 강제로 방전시켜 버린 결과였다. 마력을 잃어버린 독성 화살들은 그저 썩은 나뭇가지 조각으로 변해 기사들의 철갑 옷 위로 툭툭 힘없이 떨어져 나갔다.
“무…… 무슨 마법이 발동 직후에 소멸하는 거지?”
절벽 위에서 이를 지켜보던 개릭 원로가 비명을 질렀다.
우현은 아리아를 바라보며 조용히 끄덕였다.
“아리아. 이제 마탑의 잔당들을 청소할 시간입니다. 제가 새로 만들어 드린 촉매 반지를 사용하십시오.”
아리아가 그녀의 하얀 손가락에 끼워진 은색 반지를 쳐다보았다.
반지 중앙에는 고순도 루비 결정 구조 안에 나노 슬릿(Nano-Slit)이 설계된 ‘미세 촉매 포커싱 링(Micro-Catalyst Focusing Ring)’이 장착되어 있었다. 그녀의 폭주하기 쉬운 고밀도 빙결 마력을 격자 단위로 초안정적으로 유도하고 증폭해 주는 특수 연성 장치였다.
아리아는 차가운 눈빛으로 절벽 위의 매복지를 가리키며 마력을 개방했다.
“서리꽃의 감옥(Frostbloom Prison).”
카아아아앙—!
그녀의 손가락 끝에서 방출된 한기가 촉매 반지를 통과하는 순간,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밀도와 속도를 지닌 백색의 냉기 빔으로 응축되어 나갔다.
냉기는 허공의 수분을 격자 구조로 순식간에 고속 결정화하며 절벽 위로 휘몰아쳤다. 보통의 빙결 마법보다 마력 소모량은 10분의 1로 줄었지만, 파괴력과 빙결 속도는 수십 배 뛰어난 촉매 마법의 위력이었다.
콰콰콰콰콰—!
절벽 위의 매복해 있던 마탑의 잔당들과 용병 기사들은 회피할 틈도 없이, 발밑에서부터 차오르는 무자비한 얼음 결합 속에 순식간에 통째로 갇혀버렸다. 그들의 갑옷과 살결, 시전하려던 마법 서클까지 완벽하게 얼어붙어 은백색의 거대한 얼음 조각상 군단으로 변해버렸다.
개릭 원로 역시 상반신만 간신히 남긴 채 온몸이 단단한 동토(Permafrost) 속에 파묻혀 공포에 질린 눈빛으로 떨고 있을 뿐이었다.
습격 개시부터 전멸까지, 단 3분밖에 걸리지 않은 경이로운 일방적 전투였다.
지켜보던 엘프 대장 엘레나는 큰 경탄을 감추지 못했다.
“경이로운 전술이군요……. 마력을 완벽히 제어하는 촉매 기술과 크로이츠 영애의 강력한 마법이 결합하니, 고위 마법사 삼십 명의 매복 부대가 눈 녹듯이 지워지는군요.”
우현은 가볍게 격발 장치를 회수하며 말했다.
“마법은 자연의 에너지를 빌려 쓰는 방식일 뿐입니다. 그 흐름의 촉매 작용을 이해하면 적의 무기는 무력화하고, 아군의 효율은 극한으로 끌어올릴 수 있지요. 방해물은 치워졌으니 수송을 재개합시다.”
기사들이 계곡을 가로막던 빙결 잔해와 무너진 바위들을 치워 도로를 정리했다.
절대합성의 연금술사가 이끄는 기갑 행렬은 아무런 피해도 없이 검은 계곡의 덫을 부수고, 신비한 요정림의 경계를 향해 계속해서 전진했다. 그들의 앞길을 가로막으려던 기득권의 마지막 보루마저 차가운 얼음 속에 파묻혀 분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