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술은 화학으로 합니다

3화: 마나 폭주와 붉은 선혈
에센셜 아카데미 지하에 위치한 중앙 보존실은 지상과는 공기부터가 달랐다.
두꺼운 석조 벽면을 따라 고대 룬 문자들이 은은한 청색 광채를 발하며 실내 온도를 차갑게 유지하고 있었다. 사방으로 뻗은 연성 목재 선반 위에는 등급별 마나 결정과 연금술의 원재료로 쓰이는 희귀 약초들이 정갈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확실히 낭비가 심하군.”
우현은 양손을 바지 주머니에 찌른 채 보존 세공 장치라고 불리는 거대한 구체 형태의 마법 장치를 올려다보았다.
헤르만 교수의 임명장 덕분에 합법적으로 드나들게 된 이곳은 그에게 거대한 화학공학 실험실과 다름없었다. 하지만 전공자의 시선으로 본 이세계의 보존 장치는 기가 찰 정도로 비효율적이었다.
보존 장치는 에테르 마나를 인위적으로 포집해 내부의 온도와 습도를 고정하는 열역학적 닫힌계(Closed System)여야 했다. 그러나 룬의 각인 형태가 뒤틀려 있어 마력이 끊임없이 외부로 누출되고 있었다.
열역학 제2법칙에 따른 엔트로피의 무분별한 증가. 마력의 발산(Dissipation) 현상이었다.
‘룬의 배열 형태를 분자가 결합하는 나노 다공성 격자 구조로 수정하면 에너지 소실율을 90% 이상 줄일 수 있겠어.’
우현이 수첩에 깃펜으로 복잡한 기하학적 화학 구조식을 끄적이고 있던 바로 그때였다.
쿵!
묵직한 청동으로 만들어진 보존실의 이중문이 둔탁한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우현이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문이 반쯤 열리더니, 누군가 비틀거리며 보존실 안으로 쓰러지듯 밀고 들어왔다.
“하아…… 하윽……!”
거친 신음소리와 함께 들어온 이는 붉은색 줄무늬가 새겨진 최고급 마법과 단복을 입은 은발의 소녀였다.
그녀는 양손으로 자신의 가슴팍을 움켜쥔 채, 심장이 터질 것처럼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투명하리만치 하얀 피부 위로, 불규칙하게 명멸하는 붉고 푸른빛의 마력 맥동이 핏줄을 타고 목덜미와 이마까지 무섭게 타고 올라오는 것이 눈에 띄었다.
아카데미 마법과 수석이자, 공작가의 천재 장녀인 아리아 폰 크로이츠였다.
“아리아?”
우현이 직관적으로 그녀를 알아채고 다가갔다.
하지만 그녀는 대답할 여유조차 없는 듯했다. 아리아의 붉은 입술 사이로 억눌린 비명이 새어 나오더니, 이내 붉은 선혈이 바닥을 적셨다.
투둑, 툭.
차가운 대리석 바닥 위로 번진 핏방울은 일반적인 피가 아니었다. 핏방울 자체에서 타오르는 마나의 잔열이 피어오르며 스스스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마나 폭주로군.”
우현은 바닥으로 완전히 고꾸라지는 아리아의 어깨를 붙잡아 부축했다.
그녀의 몸에 손이 닿는 순간, 손끝이 타들어 가는 듯한 극심한 고열이 전해졌다. 아리아의 마력 회로는 이미 정상적인 한계치를 아득히 초과해 제멋대로 날뛰고 있었다. 고밀도의 에테르 에너지가 신경계를 난타하며 상위 중추인 뇌 신경까지 역류하기 일보 직전인 위태로운 상태였다.
“으, 윽…… 저리 가…… 폭발…… 할지도 몰라…….”
아리아는 희미해져 가는 의식 속에서도 자신을 붙잡은 우현을 밀어내려 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다 갈라져 쇳소리가 났다.
그녀는 마력 폭주가 시작되자 본능적으로 온도를 낮추고 에너지를 억누를 수 있는 차가운 보존실을 찾아온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현재 보존실의 세공 장치는 노후화되어 그녀의 폭발적인 마나 열기를 받아내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십시오. 여기서 혼자 버티다간 3분 안에 뇌가 타버릴 겁니다.”
우현은 냉정하게 상황을 분석했다.
화학 반응으로 치면 이것은 가연성 가스가 가득 찬 고압 반응기에 스파크가 튄 격이었다. 가만히 두면 폭압을 견디지 못하고 반응기 자체가 산산조각이 난다. 즉, 아리아의 머리가 터지거나 전신의 마력 회로가 완전히 붕괴되어 폐인이 될 터였다.
그녀의 폭주하는 마나를 분자 단위로 흡수하고 완충해 줄 ‘안정성 나노 다공성 배위 결정(MOF)’이 절실히 필요한 타이밍이었다.
“하으으윽!”
아리아의 전신에서 붉은 오오라가 폭발적으로 휘몰아쳤다. 보존실 내부의 냉기가 순식간에 뜨거운 열기로 변하며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우현은 눈을 찌푸린 채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 보존실 안에 그녀의 목숨을 구할 화학적 정렬 물질의 원재료가 존재할 터였다.
천재 공작 영애의 목숨과, 우현의 아카데미 생활이 걸린 일생일대의 위기가 이 차가웠던 지하 보존실을 붉은 열기로 가득 채우며 급박하게 전개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