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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로 귀환한 절대마법사8화

지구로 귀환한 절대마법사

지구로 귀환한 절대마법사

8화: 낯익은 얼굴들

지하상가의 비상등이 주기적으로 붉은빛을 토해냈다.

타일 바닥을 적신 얕은 물 위로 붉은 조명이 반사될 때마다 벽면의 녹슨 셔터들이 일렁였다. 출구 통로가 막혔다는 단말의 경보음은 짧게 끊어지며 복도 전체로 울려 퍼졌다.

장현수는 방패 손잡이를 세게 쥐었다.

"출구 막이 이 정도로 흔들리는 건 E급 게이트에서 보기 드문 일입니다. 내부 마력이 꼬이면서 차원 틈이 늘어난 것 같아요."

민아는 단말 지도를 가리켰다. 지도상의 출구 구간은 온통 붉은 점선으로 덮여 있었다.

"후퇴선이 막혔으면 중앙 통로를 확인하는 수밖에 없어요. 통로 안쪽에 마력 결집점이 흐트러진 구역이 있을 겁니다."

진우는 차가운 시멘트 벽에 손을 얹었다. 손상된 코어가 안쪽에서 요동쳤다. 기진맥진한 마력이 체내를 찌르고 들어왔지만 그 가느다란 마력의 결을 따라가자 복도 끝 중앙 광장의 형상이 읽혔다.

그곳에는 단순히 차원 반응이 꼬인 것만이 아니었다. 무겁게 짓눌린 마력 덩어리가 구조물을 짓누르고 있었고 그 너머에서 거친 무기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사람 소리가 난다."

진우의 말에 장현수가 고개를 돌렸다.

"몬스터가 아니라 사람이요?"

"쇠가 부딪치는 소리와 비명이 섞여 있다. 최소 세 명 이상이다."

민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녀는 단말의 찌그러진 게이트 입장 목록을 빠르게 넘겼다.

"아침 일찍 들어온 '샛별' 길드 파티일 수 있어요. 태성 씨네 팀이 우리보다 한 시간 먼저 3구역 신청을 냈었거든요."

박도윤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E급 파티가 거기에 갇힌 거면…… 이미 늦은 거 아닌가요?"

"늦었는지 아닌지는 눈으로 보고 판단해."

민아가 검자루를 잡았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소형 길드 헌터들은 대형 길드의 화려한 지원을 받지 못했다. 위험이 터지면 가장 먼저 고립되고 가장 나중에 언급되는 이들이었다.

장현수도 도끼를 고쳐 쥐며 한숨을 내쉬었다.

"좋습니다. 중앙 광장까지만 확인합니다. 안쪽이 완전히 무너졌으면 우리도 돌아나올 길을 찾아야 합니다."

파티는 중앙 통로를 따라 신중하게 발을 옮겼다. 천장 배관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진우의 방호 조끼 위로 떨어졌다. 진우는 허리춤의 회복 물약을 만지작거리며 안주머니의 검은 룬 조각을 떠올렸다.

광장에 가까워질수록 공간을 찌르는 이질적인 마력 파동이 선명해졌다. 그 마력은 단순한 마수의 기운이 아니라 차원 균열을 강제로 비틀어 놓은 듯한 굳은 결을 지니고 있었다.


중앙 광장의 철제 셔터는 찌그러진 채 반쯤 내려와 있었다.

틈새로 매캐한 핏비린내와 마수의 악취가 흘러나왔다. 민아가 셔터 밑으로 몸을 낮추고 안쪽을 살폈다.

광장 중앙의 거대한 콘크리트 기둥 둘 중 하나가 이미 반통막으로 부서져 있었다. 그 파편 더미 뒤에 세 명의 헌터가 쪼그려 앉아 있었다. 그들의 장비는 찢겨 있었고 바닥에는 피 칠갑이 된 방패가 굴러다녔다.

그들을 둘러싼 것은 십여 마리의 강화 고블린과 덩치가 소만 한 흑갈색 곰 형태의 변종 마수였다.

"태성 씨!"

민아가 낮게 읊조렸다. 파편 뒤에 갇힌 사내의 어깨에는 깊은 핑곗자국 같은 베인 상처가 나 있었다. 사내는 부상당한 동료 둘을 몸으로 가린 채 부러진 창을 겨누고 있었다.

유라가 활을 쥐며 혀를 찼다.

"저 덩치 큰 놈은 D급 변종이에요. E급 던전에 저런 게 왜 있어?"

"마력 결집점이 터지면서 아래쪽 생태가 위로 밀려 올라온 겁니다."

장현수가 방패로 셔터 틈을 밀어 올렸다.

"우리가 시선을 끕니다. 유라 씨는 원거리에서 눈을 노려요. 도윤 씨는 내 뒤에 붙어서 놈들이 측면으로 돌지 못하게 막아요."

"알겠습니다!"

장현수가 광장 안으로 뛰어들며 방패를 크게 두드렸다.

쿵! 쿵!

"여기다, 이 징그러운 놈들아!"

고블린 무리가 고개를 돌렸다. 흑갈색 변종 마수도 붉은 눈을 번뜩이며 장현수를 향해 포효했다. 민아가 그 틈을 타 신속하게 측면으로 돌아 갇혀 있던 태성 팀의 앞으로 나아갔다.

"민아 씨? 어떻게 여기까지……!"

태성이 경악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민아는 단호하게 검을 겨누며 말했다.

"말은 나중에 해요. 일어설 수 있는 사람부터 뒤로 빠져요!"

하지만 상황은 좋지 않았다. 변종 마수가 앞발로 바닥을 내리치자 붕괴하던 콘크리트 기둥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콰콰콱 하는 소리와 함께 천장의 거대한 대리석 상판과 시멘트 덩어리들이 균열을 일으키며 아래로 기울었다.

상판이 떨어지는 위치는 부상당한 헌터들이 누워 있는 바로 위였다.

"위험해!"

장현수가 방패를 들고 뛰어들려 했지만 앞을 막아선 고블린 셋 때문에 발이 묶였다. 민아가 검을 내던지고 상판을 받치려 달렸으나 인간의 신체 능력으로는 톤 단위의 낙석을 막을 수 없었다.

낙석이 헌터들의 머리 위를 덮치기 직전이었다.


진우가 움직였다.

그는 큰 소리를 내지도, 화려한 마력의 빛을 흩뿌리지도 않았다. 그저 왼발을 바닥에 가볍게 내딛고 손가락 끝을 허공에 살짝 튕겼다.

1서클 응용 마법, '미세 풍압'과 '마력 굴절'.

지구의 헌터 체계에서는 기운을 모아 폭발시키는 기술이 일반적이었지만 진우의 마법은 물리 법칙의 결을 비트는 정교함에 있었다.

공기가 미세하게 일렁였다. 떨어지던 거대한 시멘트 상판의 낙하 궤적이 마치 무형의 쿠션에 부딪힌 것처럼 아주 살짝 옆으로 틀어졌다.

쿵!

낙석은 부상당한 헌터들의 머리 위가 아니라 그 바로 옆 50센티미터 지점의 타일 바닥으로 떨어졌다. 자갈과 먼지가 사방으로 튀었지만 인명 피해는 없었다.

"어……?"

태성과 갇혀 있던 헌터들은 자신들의 눈을 믿지 못했다. 분명 머리가 깨질 순간이었는데 낙석이 비껴간 것이었다.

그 기적 같은 순간을 만들어낸 진우는 이미 변종 마수의 측면에 도달해 있었다.

진우는 빌린 방호 조끼의 끈을 매만지며 단검 손잡이를 쥔 채 마수의 뒷다리 관절을 가볍게 찍었다. 마수에게 고위 공격을 퍼붓는 대신 관절 마디 사이로 가느다란 마력의 쐐기를 박아 넣었다.

쿠웅!

거대한 흑갈색 마수가 억센 비명을 지르며 한쪽 무릎을 바닥에 꿇었다. 마력점이 파괴된 뒷다리가 더 이상 체중을 견디지 못한 탓이었다.

"지금이다! 현수 씨, 목을!"

민아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장현수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둔중한 도끼를 휘둘렀다. 묵직한 쇠날이 마수의 목덜미를 깊게 가르고 들어갔다. 유라의 화살 세 발이 연달아 눈과 목의 상처에 박혔다.

쿠구구……!

변종 마수가 거대한 몸집을 비틀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남은 고블린들도 수장을 잃자 비명을 지르며 어둠 속으로 도망쳤다.

광장 안에 짧은 침묵이 찾아왔다.

태성은 무릎을 꿇은 채 먼지를 뒤집어쓴 진우를 넋을 놓고 바라봤다. 진우는 무심한 표정으로 단검에 묻은 검은 피를 닦아 안주머니에 넣었다.

그의 눈에 갇혀 있던 헌터들의 얼룩진 얼굴이 들어왔다. 공포와 안도감이 범벅된 그 눈빛들은 먼 이세계 아르카디아의 전장에서 보았던 어린 의용병들의 얼굴과 너무나 닮아 있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떨면서도 누군가가 구하러 와주기를 바라던 그 눈빛들.

진우는 속으로 씁쓸하게 읊조렸다.

백 년이 지나고 세계가 바뀌어도 살아남으려는 사람들의 얼굴은 변하지 않는다. 자신이 이 사람들을 모른 척 지나치지 못한 것은 영웅심 따위가 아니었다. 그저 다시는 그런 눈빛을 한 채 죽어가는 이들을 내버려두고 싶지 않은 오래된 흉터 때문이었다.

민아가 진우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녀의 숨소리는 거칠었지만 눈빛은 맑게 빛났다.

"방금 그 낙석…… 진우 씨가 한 거죠?"

"운이 좋았을 뿐이다. 바람이 불했고 구조물이 비스듬히 떨어졌다."

진우는 건조하게 대답했으나 민아는 속지 않았다. 그녀는 깊은 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였다.

"고마워요. 정말로."

장현수도 도끼를 등에 짊어지며 진우의 어깨를 툭 쳤다.

"임시 E급이라는 말, 취소하겠습니다. 당신이 없었으면 오늘 우리도 저 밑에 깔렸을 겁니다."


하지만 위기는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

광장 한가운데에 떠 있는 검푸른 마력 응어리가 비정상적인 진동을 일으키고 있었다. 콘크리트 기둥이 무너지면서 파열된 마력 결집점이었다.

그 응어리가 요동칠 때마다 출구 방향에서 붉은 비상 경보가 더욱 크게 울렸다.

"저게 출구 통로를 막고 있는 원인이에요."

유라가 파열된 마력 응어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함부로 부수면 안 돼요. 저 마력 덩어리가 터지면 게이트 막 전체가 붕괴해서 상가가 묻힙니다."

장현수가 이마의 땀을 닦았다.

"부술 수도 없고 내버려둘 수도 없으면 어떻게 합니까?"

진우는 파열된 마력 응어리로 천천히 걸어갔다.

가까이 다가가자 코어 안쪽이 다시 한번 저릿하게 반응했다. 응어리 표면에서 가느다랗게 뿜어져 나오는 마력의 결에는 이 세계의 게이트와는 다른 이질적인 룬의 잔향이 얽혀 있었다.

그것은 전날 공터에서 주웠던 검은 룬 조각의 차원 결합 방식과 매우 유사했다. 누군가가 게이트의 자연스러운 순환을 억지로 틀어쥐고 에너지를 모으려 했던 흔적이었다.

진우는 오른 손가락을 펴서 마력 응어리 중심부에 가만히 댔다.

"진우 씨! 위험해요!"

민아가 소리쳤지만 진우는 멈추지 않았다.

그는 억지로 응어리를 파괴하는 대신 아르카디아의 고대 룬 해석 체계를 응용했다. 손끝에서 얇은 마력 실을 흘려보내 엉켜 있던 마력 매듭을 하나씩 어루만지고 풀어냈다.

스스스스……

거칠게 요동치던 검푸른 응어리가 진우의 손길이 닿자 거짓말처럼 결이 정돈되기 시작했다. 꼬여 있던 차원 마력이 순식간에 기화하며 부드러운 바람이 되어 광장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동시에 단말에서 끊임없이 울리던 붉은 경보음이 멈추었다.

지하상가의 비상등이 붉은 빛을 거두고 원래의 주황색 현광 빛을 되찾았다. 벽면에 붙어 있던 형광 표식들도 하나둘 다시 들어왔다.

"경보가 멈췄어요! 출구 통로 마력 농도가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유라가 단말을 확인하며 기쁨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장현수와 민아는 넋을 잃고 진우를 바라봤다. 마력 폭주를 손가락 하나로 달래듯 풀어버리는 광경은 헌터 등급 체계에서는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태성 팀의 부상자들도 부축을 받으며 일어섰다. 태성이 진우에게 다가와 깊이 고개를 숙였다.

"목숨을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강진우 헌터님. 이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진우는 그들의 인사를 받으며 담담하게 말했다.

"몸을 추스르고 어서 나가자. 출구가 다시 막히기 전에."

일행은 부상당한 헌터들을 나누어 부축하고 중앙 광장을 빠져나왔다. 지나쳐 온 지하상가 복도는 더 이상 위협적인 붉은빛으로 넘쳐나지 않았다.

형광 표식의 은은한 빛이 나가는 길을 똑바로 비추고 있었다. 진우는 모두가 무사히 그 빛을 따라 걸어가는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았다.

자신이 돌아온 지구는 낯설고 위험한 게이트로 가득했지만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체온은 여전히 따뜻했다. 부모님을 찾고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는 길은 멀고 험하겠지만 이런 사람들을 지키는 일이 결코 무의미하지 않음을 진우는 체감했다.


게이트 막을 통과해 밖으로 나오자 차갑지만 신선한 새벽 공기가 허파를 채웠다.

가람신도시 외곽 공터에는 이미 협회 구급차와 구조 차량들이 사이렌을 울리며 대기하고 있었다. 부상당한 태성 팀 헌터들이 간호진에게 이송되는 동안 민아와 장현수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어쨌든 모두 살아 돌아왔네요."

민아가 진우를 돌아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진우의 시선은 구급차 너머 공터 입구에 멈춰 있었다.

그곳에는 낯선 검은색 승용차 세 대가 서 있었다. 차량 문이 열리고 정장 차림 위에 아레스 길드의 문양이 새겨진 방호 조끼를 걸친 남성들이 내렸다.

맨 앞에 선 사내는 묵직한 기운을 풍기는 A급 헌터의 보좌관이자 현장 단속반장인 서도현이었다.

서도현은 태블릿 단말을 든 채 일행을 향해 천천히 걸어왔다. 그의 차가운 눈빛이 민아와 장현수를 지나 강진우에게 고정되었다.

"푸른하늘 길드 파티군요. 그리고…… 임시 등록자 강진우 헌터."

서도현이 멈춰 서며 건조하게 말했다.

"E급 게이트 내부에서 비정상적인 마력 파열과 공간 변형이 감지되었습니다. 협회 및 아레스 길드 현장 관리 규칙에 따라 방금 탈출한 전원의 장비 검사와 강진우 헌터의 현장 행동에 대한 면담을 진행하겠습니다."

장현수가 인상을 쓰며 나섰다.

"우리는 방금 갇힌 사람들을 구해서 나왔습니다. 단속반이 조사할 일은 무사히 탈출한 헌터가 아니라 게이트 관리가 비정상적이었던 이유 아닙니까?"

"그 원인을 확인하기 위한 절차입니다."

서도현이 조용히 대답하며 진우를 정면으로 바라봤다.

"강진우 헌터. 잠시 함께 가주셔야겠습니다."

새벽 안개 속에서 아레스 길드의 단속반원들이 진우 일행의 주위를 은밀하게 둘러싸기 시작했다. 진우는 안주머니에 들어 있는 검은 룬 조각을 묵직하게 느끼며 시선을 올렸다.

지구에서의 조용한 일상은 여전히 쉽게 허락되지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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