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로 귀환한 절대마법사

7화: 첫 번째 원정
가람신도시 외곽의 빈 공터에는 새벽 안개가 낮게 깔려 있었다.
울타리 너머에 선 게이트는 검푸른 막처럼 흔들렸다. 가까이 갈수록 차가운 쇠 냄새와 젖은 흙 냄새가 섞여 났다.
강진우는 빌린 방호 조끼의 끈을 한 번 더 당겼다. 허리춤에는 회복 물약 한 병만 걸었다. 검은 룬 조각은 안주머니 깊숙이 넣어 두었다.
"강진우 헌터죠?"
키 큰 남자가 진우를 훑어봤다. 푸른하늘 길드의 장현수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민아에게 시선을 옮겼다.
"임시 E급을 정말 데려갈 겁니까? 오늘 반응이 어제보다 넓어요. 뒤에서 문제 생기면 제가 먼저 수습해야 합니다."
"그래서 제가 인솔을 맡았어요. 진우는 전열에 안 세워요. 표식 확인과 후방 경계만 맡습니다."
민아의 대답은 단호했다.
진우는 장현수에게 말했다.
"지시를 따르겠다. 내 판단이 필요하면 먼저 말하겠다."
장현수는 잠시 그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 지키세요. 안에서는 잘난 사람보다 대열을 지키는 사람이 오래 삽니다."
일행은 네 명이었다. 앞에는 방패와 도끼를 든 장현수, 그 뒤에는 검을 든 민아와 활을 멘 유라가 섰다. 진우는 마지막 자리를 맡았다. 박도윤이라는 젊은 헌터는 단검 손잡이를 만지작거리며 게이트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의 손등에는 마르지 않은 땀이 맺혀 있었다. 첫 원정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진우는 그 조급한 시선을 알아볼 수 있었다. 두려움을 먼저 밀어내려는 사람은 종종 가장 빠르게 앞으로 나갔다.
민아는 모두의 시선을 모았다.
"첫 구역만 확인하고 돌아와요. 전리품 욕심내지 말고 신호가 울리면 멈춥니다. 도윤 씨는 혼자 튀어나가지 말고요."
"고블린 몇 마리겠죠."
"몇 마리여도 뒤를 보이면 물립니다."
민아가 진우에게 작은 표식을 건넸다.
"벽에 붙여요. 돌아갈 때 이걸 따라오면 돼요."
진우는 표식을 손바닥 위에 올렸다. 단순한 형광석 조각이었다. 그러나 길을 잃지 않기 위해 누군가가 남긴 흔적이라는 점은 오래된 전장의 깃발과 다르지 않았다.
게이트 막을 통과하는 순간, 귓속이 눌렸다.
안쪽은 오래된 지하상가였다. 금이 간 타일 위로 얕은 물이 흐르고 녹슨 셔터들이 양쪽 통로를 막고 있었다. 멀리서 금속을 긁는 소리가 났다.
천장에 매달린 간판들은 글자가 반쯤 지워져 있었다. 진우는 그 낯선 풍경이 이상하게 익숙하다고 생각했다. 사람이 떠난 뒤에도 물건만 남아 길을 흉내 내는 장소는 전쟁이 지나간 도시에도 있었다.
다만 그곳에서는 길을 잃은 병사들이 서로의 이름을 불렀다. 여기서는 단말의 지도와 형광 표식이 그 역할을 대신했다. 민아가 앞서 남긴 표식을 확인할 때마다 진우는 저 작은 빛을 따라 모두가 돌아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진우는 물 위의 마나 잔향을 살폈다. 몬스터가 지나간 흔적은 여럿이었다. 다만 그 뒤로 흐르는 가느다란 줄기가 있었다. 마치 깊은 곳에서 누군가 물을 끌어당기는 듯한 방향이었다.
"왼쪽 통로는 비었어요."
그가 낮게 말하자 유라가 활시위를 당겼다.
"어떻게 알아요?"
"발자국이 오른쪽으로 꺾였다. 마력도 그쪽에 남았다."
장현수는 대답 대신 손을 들었다. 대열은 오른쪽으로 움직였다.
첫 번째 셔터 앞에서 박도윤이 먼저 멈췄다.
"안에 있어요. 제가 열게요."
"기다려요."
민아의 말이 끝나기 전에 셔터 안쪽에서 짧은 비명이 터졌다. 고블린 하나가 틈으로 화살을 쏘았다.
진우는 손가락을 들어 바람을 얇게 꺾었다. 화살은 박도윤의 어깨를 스치지 못하고 벽에 박혔다.
"오른쪽 위에 둘 더 있다."
유라의 화살이 어둠을 갈랐다. 고블린 하나가 셔터 위에서 떨어졌고 장현수가 방패로 앞을 막았다. 민아는 틈으로 뛰어든 적의 목을 베었다.
박도윤이 당황해 뒤로 물러났다. 그의 발뒤꿈치가 물웅덩이를 밟는 순간, 진우는 바닥 아래의 얕은 진동을 느꼈다.
"뒤로 세 걸음."
도윤이 물러나자 타일 틈에서 작은 손들이 튀어나왔다. 숨어 있던 고블린들이 발목을 낚아채려 했다.
장현수가 욕설을 삼키며 방패를 내리쳤다. 진우는 바람을 한 번 더 밀어 타일 조각을 틈 안으로 쓸어 넣었다. 적은 통로로 나오지 못했고 민아가 남은 둘을 정리했다.
전투가 끝난 뒤 장현수는 손등의 피를 닦았다. 그는 진우를 돌아봤다.
"후방 경계가 저런 것까지 보는 겁니까?"
"보이는 만큼만 본다."
"그만큼이 많아 보이는데요."
민아가 대꾸했다.
"그래도 오늘은 정한 자리에서 움직였죠."
박도윤은 말없이 쓰러진 고블린의 마석을 수거 주머니에 넣었다. 그는 진우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아까는 고맙습니다."
"다음에는 신호를 기다려라."
"네."
짧은 대답이었지만 도윤의 손은 더 이상 단검을 쥐어뜯지 않았다.
유라는 고블린 화살촉을 장갑 낀 손으로 집어 들었다가 곧바로 버렸다. 화살대에는 검은 얼룩이 묻어 있었다. 그녀는 주변을 둘러보며 낮게 말했다.
"이상하네요. 먹이가 많은 구역도 아닌데 정찰병이 너무 넓게 퍼져 있어요."
장현수는 셔터 너머의 어둠을 바라봤다.
"그래서 첫 구역만 본다고 한 겁니다. E급이라도 놈들이 움직이는 방식까지 쉬운 건 아니죠."
민아는 수거 주머니의 입구를 닫았다.
"보고를 남기고 다음 갈림길까지만 확인해요. 이상하면 바로 돌아섭니다."
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싸움에서 이긴 뒤 더 깊이 들어가는 것은 습관이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이기는 일보다 무사히 나가는 일이 먼저였다.
장현수는 셔터 안쪽을 살핀 뒤 단말에 첫 구역 확인을 남겼다. 아직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런데 복도 깊은 곳에서 흐르던 마력이 조금 더 선명해졌다.
그것은 몬스터의 기운이 아니었다. 지하상가의 천장과 셔터를 스치며 한 방향으로 흘렀다. 흐름의 끝이 아니라 시작점이 자신을 향해 기울어져 있었다.
가슴 안쪽이 뜨거워졌다.
손상된 코어가 제멋대로 맥박했다. 받아들이지 말라고 명령해도 얇은 마력이 틈으로 스며들었다.
진우는 숨을 고르고 손을 내렸다. 여기서 힘을 키우면 통로 전체가 반응할 수 있었다.
"진우 씨?"
민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괜찮다."
"얼굴이 하얘요."
"조금 쉬면 된다."
그는 처음으로 먼저 휴식을 요청했다. 민아는 이유를 캐묻지 않고 손을 들었다.
"정지. 셔터 뒤 확인하고 여기서 물 마셔요."
장현수는 지시를 곧장 따랐다. 그는 출입구 반대편을 가리켰다.
"십 분만 쉽니다. 그 뒤에도 반응이 이상하면 철수해요."
그러나 뒤쪽 통로에서 고블린들의 발소리가 겹쳐 들렸다. 방금 놓친 무리가 돌아온 것이 아니었다. 수가 너무 많았다.
장현수가 방패를 세웠다.
"후방 열립니다."
좁은 복도 끝에서 누런 눈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앞에서는 물러날 길이 없었고 뒤에서는 고블린들이 몰려왔다.
진우는 통로 바닥의 갈라진 선을 보았다. 지하 구조는 이미 약해져 있었다. 큰 마법은 천장을 무너뜨릴 것이다.
그는 손끝을 타일에 댔다. 마력 한 줄을 가느다랗게 긋고 그 위에 봉인의 뜻을 얹었다.
빛도 거의 나지 않았다.
고블린들이 선을 넘으려는 순간, 타일 사이에서 차가운 바람이 솟았다. 발목까지 차오른 압력이 적들의 걸음을 붙들었다. 장현수와 민아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앞줄을 베었다.
유라의 화살이 뒤를 꿰뚫었고 박도윤도 떨리는 손으로 단검을 휘둘렀다.
마지막 고블린이 쓰러지자 봉인선은 먼지처럼 사라졌다.
진우는 벽에 손을 짚었다. 코어 안으로 흘러든 기운이 거칠게 부딪혔다. 회복 물약을 꺼내 마셨지만 속이 쓰릴 뿐이었다.
민아가 그의 앞을 막아섰다.
"더 들어가면 안 돼요. 출구로 돌아가요."
진우도 그 판단이 옳다는 것을 알았다. 자신만의 문제라면 버틸 수 있었다. 그러나 코어의 이상이 대열을 무너뜨리면 그것은 더 이상 자기 일만이 아니었다.
"그래야 한다."
그때 벽에 붙인 형광 표식이 한꺼번에 꺼졌다.
지하상가의 조명이 깜빡이며 붉은빛으로 바뀌었다. 멀리 출구 쪽에서 낮은 경보음이 울렸다.
장현수가 단말을 확인했다.
"출구 통로 반응이 올라갑니다. 게이트 막이 불안정하대요."
"나갈 수 있어요?"
유라가 묻자 민아는 대답하지 못했다. 단말의 지도에서 그들이 지나온 통로만 붉게 번지고 있었다.
진우는 검게 식은 타일 틈을 바라봤다. 그 아래에서 미세한 빛이 새어 나왔다. 검은 룬 조각에서 느꼈던 결이 아주 희미하게 겹쳤다.
하지만 그는 입을 다물었다. 지금 필요한 것은 확신 없는 이름이 아니었다.
"출구가 막혔다면 원인을 찾아야 한다."
민아가 진우를 바라봤다. 그녀의 시선은 그의 창백한 얼굴에서 잠시 멈췄다.
"혼자 먼저 가지 않는다는 약속 기억하죠?"
"기억한다."
그녀는 짧게 숨을 내쉬었다.
"그럼 한 구역만 더 봐요. 모두 같이요. 현수 씨는 앞을 맡고 유라 씨는 제 옆에 붙어요. 도윤 씨는 진우 씨 뒤를 봐요."
장현수는 출구 쪽 지도와 어두운 복도를 번갈아 봤다. 그러고는 도끼를 고쳐 쥐었다.
"원인은 찾되 욕심내지 맙시다. 길이 열리면 바로 돌아갑니다."
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혼자라면 이미 흐름을 거슬러 달려갔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각자의 자리를 지키는 세 사람이 곁에 있었다.
지하상가 깊은 곳에서, 진우의 코어가 다시 한번 낯선 마력에 응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