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로 귀환한 절대마법사

6화: 거절의 제안
단말 화면의 면담 요청은 밤이 깊어도 사라지지 않았다.
강진우는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짧은 문장을 다시 읽었다. 아레스 길드 가람지부. 오전 아홉 시. 스카우트 제안 관련 면담.
그 아래에는 E급 게이트 동행 신청이 접수되었다는 알림이 붙어 있었다. 두 문장은 서로 다른 길을 가리키는 듯했지만 진우에게는 하나의 질문처럼 보였다.
누구의 손을 잡고 앞으로 갈 것인가.
그는 답장을 짧게 보냈다.
면담에 참석하겠다.
계약하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적이 문을 열고 들어오라 할 때는 안에 무엇을 두었는지 보는 편이 낫다.
다음 날 아침 최민아는 숙소 1층 카페 창가에 앉아 있었다. 종이컵 두 개와 태블릿 하나가 탁자 위에 놓여 있었다.
"아레스에서 직접 시간까지 잡았네요. 보통 임시 E급한테 이렇게 빨리 계약서를 들이미는 경우는 많지 않아요."
"계약서가 있다는 건 봤나."
"지부 안내 쪽에 물어봤어요. 면담 담당자가 계약 초안을 준비한다더라고요."
민아는 목소리를 낮췄다.
"싫으면 안 가도 돼요. 협회 절차를 밟는 데 길드 면담이 필수는 아니니까요."
"가겠다."
"왜요?"
"거절할 말은 얼굴을 보고 하는 편이 낫다."
민아가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러고는 태블릿 화면을 돌렸다. E급 게이트 동행 공고의 신청 상태가 떠 있었다.
"이건 아직 취소 안 한 거죠?"
"그럴 이유가 없으니까."
"아레스가 그걸 달가워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들이 달가워하는 일만 할 생각은 없다."
민아는 한숨처럼 웃었다. 걱정이 사라진 표정은 아니었다.
"그럼 내가 같이 들어갈게요. 길드 계약은 처음부터 끝까지 문장으로 남아요. 나중에 협회에 문제를 말하려면 오늘 들은 조건도 정확히 알아야 하고요. 푸른하늘 쪽 게이트 동행도 그대로 유지되는지 확인해 볼게요."
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혼자 갈 수 없는 자리가 아니라는 사실이 오히려 중요했다. 길드가 무언가를 제안하려면 그 제안은 빛 아래에서 읽혀야 했다.
아레스 길드 가람지부는 재개발 구역의 새 건물들 사이에서 유난히 높았다. 유리 외벽에는 구름을 가르는 창 모양의 금속 문양이 붙어 있었다.
로비를 지나는 헌터들은 진우의 임시 등록증을 한 번씩 보았다. E급이라는 글자와 낯선 이름이 그들의 시선을 붙잡는 듯했다.
안내 직원은 민아까지 확인한 뒤 십이 층 면담실로 안내했다.
문 안에는 회색 정장을 입은 여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명패에는 윤서진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녀는 웃으며 두 사람을 맞았다.
"강진우 헌터님. 어제 교육에서 좋은 판단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최민아 헌터님도 앉으시죠."
탁자 위에는 얇은 계약서와 검은 펜 세 자루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윤서진은 물부터 권했다.
"아레스는 신원 확인이 어려운 각성자가 정착할 수 있도록 돕는 체계를 갖추고 있습니다. 제휴 숙소 연장, 장비 대여, 정식 재측정 지원. 협회와 조합에 보낼 기록 협조도 더 빠르게 연결할 수 있고요."
진우의 시선이 계약서에 멈췄다.
"대가는."
윤서진의 미소가 아주 조금 얇아졌다.
"전속 등록입니다. 처음 반년은 보호 관찰 기간으로 두고요. 현장 배정은 길드 안전팀과 조율합니다. 강진우 헌터님처럼 파형이 불안정한 분은 독자적으로 움직이기보다 관리 체계 안에서 경험을 쌓는 편이 좋습니다."
민아가 계약서를 끌어당겼다. 진우도 첫 장을 넘겼다.
글자는 많지 않았지만 뜻은 분명했다. 아레스가 우선 배정권을 가진다. 외부 현장 참여는 사전 승인이 필요하다. 활동 중 취득한 특이 물품은 길드 감정 절차를 먼저 거친다. 조합과 협회 자료 열람 지원은 길드의 판단에 따른다.
민아의 손가락이 마지막 문장 위에서 멈췄다.
"지원이라고 써 놓고 재량이라고 했네요."
진우는 세 번째 조항을 손끝으로 눌렀다.
"이 조항은 외부 의뢰를 막는다."
"위험한 의뢰를 걸러 드리는 겁니다."
"그리고 이건 내가 얻은 물건을 먼저 당신들에게 보이라는 뜻이다."
"특이 물품은 사고를 일으킬 수 있으니까요."
"마지막 조항은 기록 열람을 돕는다는 말이 아니다. 당신들이 허락하면 돕겠다는 말이다."
면담실의 공기가 조용해졌다.
윤서진은 펜을 가지런히 맞췄다.
"강진우 헌터님은 아직 이 사회의 규칙을 익히는 중입니다. 지원을 받으려면 어느 정도의 신뢰가 필요해요. 특히 부모님 기록을 찾는 일이라면 더 그렇고요. 조합 보관 자료는 보호 단계가 높습니다. 아레스가 중간에서 책임을 지면 협조 요청의 순서를 앞당길 수 있습니다."
"기록이 있다는 뜻인가."
"그 여부까지 저희가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다만 절차를 아는 쪽이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는 뜻입니다."
"부드러워지는 대신 내 이름으로 낸 요청이 길드의 요청이 된다."
"그렇게 볼 수도 있죠. 하지만 결과를 얻는 편이 중요하지 않습니까?"
진우는 계약서에서 눈을 들었다.
결과를 위해 수많은 명령을 받아들인 적이 있었다. 왕국을 살리기 위해 성벽을 지키라는 명령도 받았다. 그러나 그 명령이 끝난 뒤에도 남은 것은 자기 손으로 감당해야 했다.
부모님의 흔적까지 누군가의 손에 쥐여 줄 수는 없었다.
"중요하다. 그래서 맡기지 않는다."
문이 열렸다.
서도현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진우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빈자리에 앉았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아레스 현장운영팀장 서도현입니다. 제안이 부담스러우셨다면 설명을 더 드리죠."
"이미 충분히 들었다."
서도현은 민아 쪽을 한번 보았다가 진우에게 시선을 돌렸다.
"어제 교육장 표적이 불안정했습니다. 다만 그걸 멈춘 방식도 평범하지 않았죠. 다크 나이트 현장도 그렇고요. 실력을 숨기는 건 자유입니다. 하지만 측정값과 결과가 계속 어긋나면 현장에선 위험 요소로 봅니다."
"위험하다고 판단하면 협회에 알리면 된다."
"그 전에 보호할 방법을 제안하는 겁니다. 내일 신청한 E급 게이트도 마찬가지고요. 지금은 취소하시죠. 재측정과 추가 교육을 마친 뒤 아레스 인솔 아래 더 안전한 현장을 배정해 드리겠습니다."
민아의 눈썹이 움직였다.
"신청은 협회 공고고 푸른하늘 길드가 인솔해요. 아레스가 취소를 권할 근거가 있나요?"
"권하는 겁니다. 최 헌터님도 알겠지만 E급 게이트라고 해서 늘 안전한 건 아닙니다."
"그래서 동행 규정이 있는 거죠. 규정에 문제가 생기면 협회가 판단할 일이고요."
서도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계약서를 진우 쪽으로 밀었다.
"아레스에 들어오면 기록 열람도 도울 수 있습니다. 게이트에 나가는 것보다 훨씬 확실한 길일 겁니다."
진우는 그 종이를 바라봤다. 얇은 종이 몇 장이 길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다만 한 번 밟으면 발목을 묶을 끈처럼 보였다.
"안전 조치와 소속 계약은 다른 일이다."
그는 계약서를 윤서진 앞으로 밀어놓았다.
"재측정이 필요하면 받겠다. 현장 규칙도 지키겠다. 하지만 내 요청과 내 행동을 길드에 맡기지는 않는다. 게이트 신청도 취소하지 않겠다."
윤서진의 미소가 사라졌다.
"지금은 감정적으로 결정하실 때가 아닙니다."
"감정으로 정했다면 서명했을 거다."
진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모님을 찾는 일일수록 다른 사람의 소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
민아도 곧장 일어섰다. 그녀는 계약서의 첫 장을 정리해 탁자에 내려놓았다.
"협회에 낸 요청은 협회 절차로 진행 중이에요. 저희는 결과를 기다리겠습니다."
복도로 나온 뒤에도 민아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그녀가 낮게 물었다.
"너무 세게 말한 건 아니었어요?"
"세게 말하지 않았다."
"저쪽은 그렇게 안 들었을걸요."
"그럼 잘 들은 거다."
민아는 입술을 다물었다가 작게 웃었다.
"맞아요. 다만 이제 더 조심해야 해요. 아레스가 조합 자료를 들고 흔들 수 있다는 건 알았으니까요."
"기록이 있다면 결국 남는다."
"그걸 찾는 데 시간이 걸릴 수는 있고요."
"기다릴 수 있다. 빼앗기지는 않겠다."
협회 앞에 도착하자 민아의 단말이 울렸다. 푸른하늘 길드 현장 담당자가 보낸 공지였다.
가람신도시 외곽 E급 게이트. 다음 날 오전 여섯 시 삼십 분 집결. 기본 방호 장비와 회복 물약 지참. 인솔자는 최민아.
민아는 공지를 확인하고 진우에게 화면을 보였다.
"신청은 그대로예요. 취소된 것도 없고요."
"장비는."
"길드 창고에서 빌릴 수 있어요. 검은 룬 조각 같은 건 절대 꺼내지 말고요."
진우는 가죽 주머니 위로 손을 얹었다. 조각은 잠잠했다. 그러나 아레스 지부에 들어섰을 때 한순간 공기가 눌린 듯한 느낌이 남아 있었다.
그가 그것을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확신 없는 감각은 정보가 아니라 경계에 가까웠다.
민아는 장비 목록을 넘기며 말했다.
"내일 안에서는 내 말 먼저 들어요. 강한지 약한지보다 나가야 할 때 같이 나가는 게 중요하니까."
"알겠다."
"정말요?"
"오늘 계약서도 끝까지 읽었다."
민아가 피곤한 얼굴로 웃었다.
"그건 다행이네요."
아레스 지부 면담실에서 서도현은 닫힌 문을 한참 바라봤다.
윤서진이 계약서를 정리하며 말했다.
"예상보다 완고하네요."
"완고한 게 아닙니다. 뭘 내주면 안 되는지 아는 사람입니다."
서도현은 창밖의 협회 건물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내일 게이트 현장은?"
"푸른하늘 인솔로 확정됐습니다."
"막지는 마. 대신 기록을 남겨. 그 사람이 E급 안에서 무엇을 하는지 직접 보겠다."
그날 밤 진우는 빌린 방호 조끼와 작은 회복 물약을 침대 옆에 놓았다.
문 앞에 놓인 장비는 전쟁터의 갑옷과는 비교할 수 없이 가벼웠다. 그래도 그것은 자신이 선택한 다음 걸음에 필요한 물건이었다.
새벽에 나갈 길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