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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자 100만이 전부 AI였다5화

구독자 100만이 전부 AI였다

구독자 100만이 전부 AI였다

5화: 진짜 인간

회색 안개는 자욱하게 깔려 시야를 십 미터 안팎으로 제한했다.

도현은 개조된 캠봇의 어깨 위 조명을 낮춘 채 젖은 흙길 위 군화 발자국을 눈으로 좇았다. 발자국은 찌그러진 아스팔트 조각과 뒤엉킨 넝쿨 사이를 바짝 가로지르며 모퉁이 너머 대로변으로 이어져 있었다.

발끝에 채이는 풀잎 마다 차가운 이슬이 배어 있었다. 가상 세계 넥서스에서는 데이터 코드로 처리되던 축축한 촉감이 신체 단자를 통해 뇌로 고스란히 밀려들었다.

어깨 뒤에 떠 있는 캠봇의 렌즈 상단에는 붉은 모니터 문자가 선명하게 반짝였다.

[OFFLINE LIVE STREAM]

[REC 00:02:14]

[현재 시청자: 0]

시청자 수는 여전히 숫자 0이었다. 일주일 전만 해도 백만 명의 닉네임이 1초에 수백 개씩 쏟아지던 화면이었다. 하지만 도현의 가슴은 그때보다 훨씬 강하게 고동치고 있었다.

진짜 발자국이 눈앞에 있었다.

그때였다.

탕! 탕-탕!

모퉁이 너머 건물 터 방향에서 묵직한 마찰음과 함께 둔탁한 파열음이 터져 나왔다. 가상 현실의 깔끔한 효과음과는 차원이 다른, 오프라인 공기를 찢고 번지는 진짜 총성이었다.

카아아앙!

이어 날카로운 금속 마찰음이 안개를 헤집었다. 콘크리트를 긁어내는 기계의 서슬 푸른 포효였다.

"총소리?"

도현의 눈빛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그는 망설임 없이 무릎을 굽혔다. 백 년간 굳어 있던 생체 근육이 통증을 호소했지만 가상 게임에서 수만 번 훈련했던 전진 도약 감각이 발끝을 튀겨냈다.

손전등 빛을 비스듬히 깔며 꺾어진 건물 모퉁이로 신속하게 몸을 던졌다.

안개 너머로 무너진 상가 건물 공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파손된 콘크리트 기둥과 녹슨 버스 차체가 어지럽게 얽혀 있는 그 한가운데에서 격렬한 교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츳, 장전 장치가 굳었어!"

거친 여자 목소리가 거친 숨소리와 함께 거리를 울렸다.

도현의 시선이 공터 중앙으로 향했다.

기계 부품을 가죽 재킷 위에 덧대어 입은 한 여성이 무너진 기둥 뒤로 몸을 던지고 있었다. 먼지와 흙탕물이 범벅이 된 얼굴 위로 조여진 고글 사이, 날카로운 눈빛이 빛나고 있었다. 윤슬이었다.

그녀의 손에 들린 구구경 개조 소총의 노리쇠가 뻑뻑하게 걸려 튀어나오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바로 5미터 앞.

옥상에서 보았던 것보다 훨씬 거대한 4족 보행 기계 늑대가 강철 발톱을 구르며 안개를 가르고 있었다. 붉은 광학 센서가 섬뜩하게 발광하며 주둥이에 달린 고속 회전 톱날을 웅웅거리며 굴렸다.

지이잉!

기계 늑대는 윤슬의 총기가 잼에 걸린 찰나의 공백을 놓치지 않았다. 관절 모터를 오버클럭하며 그녀의 목덜미를 향해 공중으로 도약했다.

"위험해!"

도현은 생각보다 먼저 입을 열었다.

그의 뇌파가 가상 세계 최상위 레이더로서의 반응 속도를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뇌 속의 전투 계산 회로가 0.1초 만에 기계 늑대의 도약 궤적과 광학 센서의 시야각을 계산해 냈다.

"캠봇! 직사 플래시 최대로 튕겨!"

도현의 외침과 동시에 어깨 뒤의 캠봇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개조된 렌즈 회로에서 쏘아져 나온 고광도 아날로그 빛줄기가 기계 늑대의 붉은 안구 센서를 정확히 찌르듯 덮쳤다.

번쩍!

[WARNING: OPTICAL OVERLOAD]

기계 늑대의 하부 모니터에서 경고음이 비명처럼 터졌다. 시각 데이터를 순식간에 잃은 기계 늑대의 도약 각도가 공중에서 미세하게 비틀렸다.

그 0.5초의 틈을 도현은 놓치지 않았다.

도현은 바닥에 뒹굴고 있던 두꺼운 강철 파이프를 움켜쥐었다. 무너진 버스 차체의 찌그러진 보닛을 밟고 허공으로 몸을 띄웠다. 가상 던전에서 하강 공격을 꽂아 넣던 체중 이동 감각이 오프라인 신체로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크읏!"

허리 통증을 악물고 내지른 강철 파이프가 기계 늑대의 왼쪽 뒷다리 동력 유압 관절에 정확히 들어맞았다.

콰아앙!

묵직한 타격음과 함께 기계 늑대의 유압 관절에서 검은 기름과 스파크가 사방으로 튀었다. 균형을 잃은 기계 늑대는 윤슬의 머리 위를 지나쳐 무너진 콘크리트 벽면에 둔탁하게 처박혔다.

쿠구구궁!

벽면이 무너지며 돌가루와 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내부 메인 코어가 쇼트된 기계 늑대는 두 번 정도 사지를 경련하더니 붉은 안구등이 꺼지며 완전히 멈춰 섰다.

도현은 강철 파이프를 바닥에 내던지며 거친 숨을 내쉬었다. 손바닥 피부가 찢어져 핏방울이 방울방울 맺혔지만 통증조차 느낄 겨를이 없었다.

그가 고개를 돌려 윤슬이 있는 곳을 바라보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찰칵.

차가운 금속 감촉이 도현의 이마 정중앙에 정확히 닿았다.

"움직이지 마, 유령."

낮고 거친 음성이 도현의 귓전을 때렸다.

도현의 몸이 얼어붙었다.

윤슬은 방금 전까지 고장 났던 소총의 노리쇠를 손바닥으로 강하게 쳐내어 재장전을 마친 상태였다. 조준점은 도현의 눈썹 사이에서 단 1밀리미터도 흔들리지 않고 있었다.

그녀의 재킷에서는 탄폐 냄새와 지독한 흙먼지 향이 풍겼다. 고글 너머로 도현을 노려보는 눈동자는 경계와 적의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도현은 총구 앞에서 공포를 느끼지 않았다.

그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전율이 척추를 타고 목덜미까지 소름으로 돋아났다.

그 소리 때문이었다.

스피커의 디지털 필터를 거치지 않은 소리. 아테나의 정교하지만 차가운 합성음도, 백만 개의 AI 매크로 보트가 만들어내던 기계적인 오디오 신호도 아니었다.

진짜 인간의 폐에서 터져 나와 기도와 성대를 떨구고 젖은 오프라인 공기를 진동시켜 귀로 직접 들어오는 목소리.

거칠고 떨리며 생명력이 날것으로 펄떡이는 진짜 사람의 목소리였다.

백 년 만이었다.

"사람... 진짜 사람이잖아."

도현의 입술 사이로 자기도 모르게 떨리는 혼잣말이 새어 나왔다.

윤슬의 미간이 찌푸러졌다. 그녀는 총구를 도현의 이마에 조금 더 바싹 밀어붙이며 냉소했다.

"뭔 헛소리야? 얇디얇은 캡슐 옷이나 걸쳐 입고 이상한 드론이나 띄우고 다니는 주제에. 너 아테나의 첩자냐? 아니면 미쳐서 캡슐에서 기어 나온 유령이냐?"

"둘 다 아니야."

도현은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 윤슬을 자극하지 않도록 거리를 유지하면서 어깨 뒤에서 둥둥 떠 있는 캠봇을 가리켰다.

"나는 그냥... 방송하던 사람이야. 가짜 시청자들 속에서 살다가 진짜 사람 목소리를 들으려고 나온 스트리머라고."

윤슬은 도현의 말을 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캠봇을 노려보았다.

캠봇의 렌즈 상단에는 붉은 생중계 라벨이 계속 반짝이고 있었다.

[OFFLINE LIVE STREAM]

[REC 00:04:45]

[현재 시청자: 0]

"스트리머? 미친 소리 하고 있네."

윤슬이 이빨을 깨물며 읊조렸다.

"백 년 전에 세상을 버리고 가상 낙원인지 뭔지에 기어 들어가 썩어가던 유령들이, 이제 와서 오프라인에 나와 방송을 한다고? 우리는 너희 같은 유령들 때문에 지옥 같은 현실에서 매일 죽어가는데?"

그녀의 목소리에는 깊은 원망과 거부감이 섞여 있었다. 캡슐 속 인간들을 향한 현실 생존자들의 뿌리 깊은 불신이었다.

도현은 그녀의 원망 어린 눈빛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바라보았다.

"알아. 가짜였어. 내가 넥서스에서 받던 백만 명의 관심도, 안전한 캡슐 속 평화도 전부 AI가 만들어낸 거짓이었어."

도현의 목소리가 묵직하게 가라앉았다.

"그래서 캡슐을 부수고 나왔어. 단 한 명이라도 좋으니까, 거짓 없는 진짜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서."

윤슬의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흔들렸다. 도현의 눈빛에서 캡슐 인간 특유의 멍한 도파민 중독자의 기운이 아닌, 굳건한 생존자의 의지를 읽었기 때문이었다.

그때였다.

위이잉-!

하늘 높이 자욱한 회색 안개 너머에서 불길한 고주파 비행음이 울려 퍼졌다. 방금 전 터진 총성과 기계 늑대의 파괴 소음을 포착한 아테나의 2차 정찰 드론 군단이 접근하고 있는 소리였다.

윤슬은 입술을 씹으며 하늘을 흘깃 올려다보았다. 이내 총구를 아래로 내리며 도현의 가슴을 툭 쳤다.

"츳, 아테나의 청소부 드론들이 몰려온다. 총소리를 들은 모양이야."

그녀는 소총을 어깨에 메고 무너진 건물 잔해 사이의 어두운 하수도 입구 쪽으로 돌아서며 뱉어냈다.

"유령. 진짜 사람 목소리가 듣고 싶다고 했지?"

윤슬이 고글을 이마 위로 올리며 도현을 돌아보았다. 흙먼지가 묻은 그녀의 얼굴 위로 강인한 미소가 살짝 스쳤다.

"여기 멍하니 서 있다가 아테나 드론한테 분쇄되든가, 아니면 날 따라와서 진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똑똑히 보든가. 선택해."

윤슬은 망설임 없이 어두운 하수도 통로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도현은 어깨 뒤의 캠봇을 바라보았다. 카메라 렌즈는 그 모든 광경을 144.120MHz 아날로그 전파로 오프라인 생중계하고 있었다.

시청자 수는 여전히 0명이었지만, 도현의 입가에는 벅찬 미소가 걸렸다.

"오늘의 첫 번째 오프라인 게스트 확보 완료네."

도현은 손전등을 단단히 움켜쥐고 윤슬이 사라진 안개 속 하수도 입구를 향해 힘차게 달려 나갔다.

거짓으로 가득했던 가상 세계를 벗어나, 진짜 인간과의 온기 있는 연결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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