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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자 100만이 전부 AI였다4화

구독자 100만이 전부 AI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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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드론의 재부팅

어둠이 짙은 비상 계단은 하층부로 내려갈수록 축축한 습기를 머금고 있었다.

도현은 한 손으로 굳은 기름때가 눌어붙은 철제 난간을 짚고 다른 한 손으로는 캠봇의 조명 빔이 비추는 콘크리트 계단을 밟았다. 옥상에서 맛보았던 지독한 흙냄새가 계단 통로 아래쪽에서 발효된 이끼 냄새와 섞여 올라왔다.

다리는 여전히 후들거렸다. 백 년 동안 캡슐에 들어앉아 근육을 쓰지 않았던 신체는 계단 열 칸을 내려갈 때마다 무릎관절에 묵직한 통증을 밀어 넣었다.

“이용자님. 하층부 구조체는 심각한 침식 상태입니다.”

귀 뒤의 스피커에서 아테나의 목소리가 어김없이 울렸다. 계단 벽면에 반사되는 음성은 기계적인 평온함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어딘가 미세한 주파수 왜곡이 섞여 있었다.

“3층 이하 구역은 바깥의 토양 침투로 인해 시멘트 강도가 기준치의 12%까지 하락했습니다. 붕괴 위험 구역으로 진입하는 것은 신체 안전에 치명적입니다.”

“기준치 12%면 아직 12%나 남았다는 뜻이네.”

도현은 마른침을 삼키며 입가를 슬쩍 올렸다.

“넥서스 하드코어 던전에서도 내구도 5% 남은 발판 타고 보스 잡으러 갔었어. 이 정도면 고속도로지.”

“해당 서바이벌 알고리즘은 오프라인 물리 법칙을 완전하게 반영하지 않습니다. 사망 시 리스폰 프로세스가 작동하지 않는 구역입니다.”

“알고 있어. 그래서 눈에 불을 켜고 밟는 중이야.”

그가 4층 계단참을 지나 3층으로 접어든 순간이었다.

우직!

도현의 오른발이 닿은 콘크리트 계단 상판이 비명을 질렀다. 100년의 세월 동안 빗물이 스며들어 녹슨 철근만 겨우 남아 있던 디딤판이 통째로 부스러지며 아래쪽 어둠 속으로 추락했다.

쿠웅!

몸이 순간적으로 허공으로 쏠렸다. 발끝 아래로 3미터 깊이의 까마득한 하부 틈새가 입을 벌렸다.

도현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수축했다. 뇌파가 가상 세계에서 수만 번의 위험 순간을 겪으며 훈련했던 최상위 반응 속도를 끌어올렸다. 약해진 근육이 비명을 질렀지만 몸은 생각보다 먼저 움직였다.

그는 상체가 기울어지는 찰나 오른쪽 팔을 뻗어 철제 난간을 쥐었다. 손바닥 피부가 마찰에 쓸려 뜨거운 통증이 뻗쳤으나 악물고 팔꿈치를 당겼다.

“헛!”

몸을 공중에서 비틀어 건너편 멀쩡한 계단참 콘크리트 바닥 위로 몸을 던졌다.

쿵!

어깨와 옆구리가 단단한 타일에 처박히며 먼지가 솟구쳤다. 찌르는 듯한 통증에 도현은 윽 소리를 내며 바닥을 굴렀다. 깨진 비상등 조각들이 재킷에 긁혔지만 그는 곧바로 무릎을 세워 고개를 들었다.

손가락 끝이 떨리고 있었지만 눈빛은 맑아졌다.

“봤지, 아테나?”

그는 먼지를 털어내며 거칠게 가쁜 숨을 내쉬었다.

“반응 속도 살아있어. 리스폰 버튼 없어도 안 죽어.”

아테나는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계단 통로에는 무너져 내린 콘크리트 가루가 떨어지는 소리만 조용히 울렸다.

도현은 캠봇을 부르고 어깨 뒤에 띄웠다. 3층을 지나 2층으로 내려가자 벽면의 벽지가 누렇게 벗겨지고 1층 로비에서 스며드는 회색 안개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안개 사이로 낯선 소리가 섞여 들었다.

지이잉. 지이잉.

1층 로비 중앙에서 규칙적으로 들려오는 기계식 모터 회전음이었다.

도현은 움직임을 멈췄다. 2층 비상문 틈새로 몸을 바싹 붙인 뒤 캠봇의 렌즈를 문틈 사이로 밀어 넣었다.

1층 로비는 거대했다. 한때 주거 타워 이용자들이 오가던 광활한 대리석 바닥은 흙과 잡초로 덮여 있었고 깨진 유리창 너머로 바깥의 짙은 안개가 자욱하게 들어차 있었다.

그 로비 한가운데에 주황색 센서등을 반짝이는 소형 정찰 드론 하나가 공중에 떠 있었다.

체구는 캠봇보다 두 배쯤 컸고 하부에는 원형으로 회전하는 360도 레이저 스캔 렌즈가 달려 있었다. 렌즈가 회전할 때마다 주황색 레이저 선이 대리석 바닥과 로비 출입구의 찌그러진 셔터를 훑었다.

“아테나의 오프라인 정찰 유닛인가.”

도현은 눈을 찌푸렸다. 옥상에서 보았던 기계 늑대보다는 투박한 구형 모델이었지만 출입구를 완벽하게 감시하고 있었다. 렌즈의 레이저에 걸리면 즉시 중앙 시스템에 경보가 울리거나 공격 프로토콜이 구동될 터였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캠봇이었다.

캠봇은 지금 단순 오프라인 센서 모드로만 켜져 있었다. 넥서스의 메인 서버와 연결이 끊어진 상태였기에 화면을 도현의 시야 모니터로 전송하는 것 외에는 외부로 전파를 송출할 수 없었다.

진짜 바깥으로 나가서 사람을 찾고 그 광경을 기록하려면 캠봇을 단순히 눈으로만 써서는 안 됐다.

“카메라를 재부팅해야겠어.”

도현은 2층 계단 뒤 어두운 코너로 몸을 숨겼다. 손전등을 바닥에 놓아 조명을 확보한 뒤 캠봇을 끌어내려 손에 쥐었다.

금속 구체 상단의 보조 커버를 열자 가상 영상 처리 회로와 데이터 신호 칩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넥서스 안에서는 클릭 한 번으로 고화질 4K 라이브 송출이 가능했지만 현실의 기계는 전력도 송출부도 굳어 있었다.

“아테나 망을 거치지 않는 독립 송출 모드가 필요해.”

도현은 목 뒤의 단자를 더듬었다. 비상 접근 키의 제한된 탭을 열어 캡슐 관리 메뉴 아래의 구시대 공용 전파 모듈 코드를 검색했다.

[아날로그 방송 우회 모듈: 비활성화]

[추천: 넥서스 라이브 중앙 서버 연동]

“중앙 서버는 이제 안 써.”

그는 비상 접근 키의 전력 배정 라인을 캠봇의 메인 기판으로 직접 땄다. 손톱 끝으로 회로 표면의 소형 퓨즈를 눌러 떼어내고 옥상 안테나에서 확인했던 144.120MHz 주파수 칩의 가공 단자를 꼬아 연결했다.

가상 세계에서 장비 옵션을 개조하고 파밍 아이템의 회로를 튜닝하던 경험이 손끝에서 정교한 움직임으로 재현됐다.

치직!

캠봇의 중앙 렌즈가 푸른 빛을 발하며 깜빡였다.

[캠봇 오프라인 독립 방송 모드 재부팅]

[영상 변조: 아날로그 144.120MHz / 넥서스 다크 채널 우회 송출]

[렌즈 센서: 오버클러킹 동기화 완료]

“됐어.”

도현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걸렸다.

개조된 캠봇의 렌즈는 단순한 카메라가 아니었다. 현실의 광학 신호를 아날로그 전파로 변환하여 주변 수신기에 쏘아 보낼 수 있는 진짜 오프라인 방송 드론으로 거듭났다.

도현은 캠봇을 공중에 띄웠다.

신형 렌즈가 켜지자 1층 로비의 정찰 드론이 쏘아 보내는 주황색 레이저 파형이 도현의 시야 모니터 위에 선명한 입체 가이드라인으로 합성되어 나타났다.

레이저의 회전 주기는 4초. 스캔이 로비 왼쪽 기둥을 지나 오른쪽 셔터로 이동할 때 정중앙 대리석 기둥 뒤쪽에 정확히 1.2초의 완전한 사각지대가 발생했다.

“패턴이 너무 정직하네.”

도현은 나지막하게 읊조렸다.

“아테나. 너 오프라인 유닛에는 전력 아끼느라 보급형 AI 넣었지?”

“오프라인 자율 유닛은 효율적인 전력 배분을 위해 최적화된 단순 루틴으로 구동됩니다.”

아테나의 대답에 도현은 킥킥 웃었다.

“고맙다. 그 힌트.”

도현은 재킷 지퍼를 단단히 잠그고 손전등과 예비 배터리를 손바닥에 쥐었다.

캠봇이 어깨 뒤에서 소리 없이 비행을 시작했다.

센서 레이저가 오른쪽 셔터를 훑고 지나간 순간 도현은 2층 계단참에서 로비 바닥으로 번개처럼 뛰어내렸다.

스윽.

발소리를 최소화하며 대리석 기둥 뒤로 몸을 밀어 넣었다. 푹신한 잡초 더미가 충격을 흡수해 준 덕분에 소음은 나지 않았다.

1.2초의 시간이 지나자 주황색 레이저 선이 그가 방금 지나온 계단 입구를 지나쳐 갔다.

기둥 뒤에 밀착한 도현은 숨을 짓눌렀다. 머리 위 3미터 높이에서 정찰 드론의 모터 소리가 부풀어 올랐다.

지이잉.

도현은 예비 배터리의 플러스 마이너스 단자에 얇은 규소 선을 감았다. 방송용 소형 스파크 지연 회로였다.

그는 캠봇에게 시각 신호를 보냈다. 캠봇이 정찰 드론의 반대편 천장 구석으로 날아가 작은 광학 플래시를 한 번 튕겼다.

번쩍!

“경보. 미확인 광학 신호 포착.”

정찰 드론의 주황색 렌즈가 일제히 천장 구석으로 돌아갔다.

그 순간 도현은 기둥 뒤에서 튕겨 나가듯 뛰어올랐다. 허공에서 손을 뻗어 정찰 드론의 하부 동력 케이블 단자에 준비해 둔 배터리 스파크 선을 꽂아 넣었다.

파직!

과전류가 흐르며 드론의 내부 회로에서 짧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주황색 센서등이 두 번 깜빡이더니 이내 꺼지며 정찰 드론이 바닥의 잡초 더미 위로 맥없이 떨어졌다.

털썩.

도현은 안정적으로 바닥에 착지했다. 허벅지 근육이 비명을 질렀지만 표정은 한결 가벼웠다.

“컨트롤은 거짓말을 안 하지.”

그는 찌그러진 로비 유리 셔터 틈새로 걸어갔다. 손가락을 틈새에 넣어 힘껏 옆으로 밀자 녹슨 셔터가 쇠소리를 내며 젖혀졌다.

그 틈으로 옥상에서 마주했던 오프라인의 공기가 다시 한번 쏟아져 들어왔다.

회색 안개와 지독한 흙냄새 그리고 수풀 사이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

도현은 문턱을 넘어서며 1층 오프라인 골목 거리로 발을 내디뎠다.

그는 캠봇을 자신의 어깨 높이로 정확히 맞추었다. 개조된 캠봇의 렌즈 상단에 붉은색 글자가 떠올랐다.

[OFFLINE LIVE STREAM]

[REC 00:00:01]

[현재 시청자: 0]

100만 명의 매크로 보트가 환호하던 스튜디오는 없었다. 실시간으로 쏟아지던 가짜 채팅창도 없었다. 시청자 수는 단 한 명도 없는 0이었다.

그러나 도현은 렌즈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아, 아. 마이크 테스트.”

갈라진 목소리가 회색 안개 속으로 흩어졌다.

“안녕하세요. 강도현입니다.”

그는 손가락을 튕겨 카메라 렌즈를 한번 가리켰다. 가상 세계에서 100만 명을 향해 하던 익숙한 오프닝 포즈였다.

“오늘부터 진짜 오프라인 방송을 시작합니다. 세트장도 없고 대본도 없고 시청자도 0명이지만… 상관없습니다. 바깥에 살아있는 진짜 사람을 찾을 때까지 이 카메라는 안 끕니다.”

도현은 카메라를 등지고 아스팔트 아래의 젖은 흙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옥상에서 보았던 군화 발자국이 1층 골목길의 진흙탕 위에도 선명하게 이어져 있었다. 발자국은 꺾어진 건물의 모퉁이를 돌아 안개 자욱한 오프라인 대로변을 향해 뻗어 있었다.

도현은 손전등을 움켜쥐고 군화 발자국의 궤적을 따라 첫 걸음을 옮겼다.

진짜 인간의 온기를 찾기 위한 첫 오프라인 생중계가 자욱한 안개 속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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