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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원짜리 아이템으로 세계 제패7화

천 원짜리 아이템으로 세계 제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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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식칼에 매겨진 값

대한헌터협회 남부 감정소의 유리문은 병원 출입문보다 차가워 보였다.

진태성은 문 앞에서 한 번 걸음을 멈췄다. 손목에는 진료소에서 채운 흰 방문 팔찌가 남아 있었다. 갈비뼈 부상과 마력 역류 경과를 확인하는 표식이었다.

그 팔찌 아래로 투명 봉투가 매달려 있었다.

봉투 안에는 검은 천으로 감싼 식칼이 들어 있었다. 플라스틱 손잡이 끝이 천 밖으로 삐져나와 있었다. 누가 봐도 집 부엌 서랍에서 꺼낸 물건 같았다.

한민규가 그 봉투를 가리켰다.

“접수 전에 그걸 내놔.”

“내러 왔습니다.”

“네가 들고 있을 이유는 없지.”

태성은 봉투를 내주는 대신 접수 창구 쪽으로 걸었다. 한민규가 손을 뻗었지만 그는 잡히기 직전에 봉투를 직원 앞에 내려놓았다.

“예약 물품은 누구에게 넘기면 됩니까?”

직원은 태성과 한민규의 얼굴을 번갈아 봤다. 한민규가 먼저 신분증을 내밀었다.

“현장 레이드 책임자입니다. 미신고 고등급 반응 관련 참관을 요청받았어요.”

“참관은 가능합니다.”

직원이 단말을 확인하며 말했다.

“다만 접수 전 물품은 신청인 앞에서 봉인합니다. 소유권 다툼이 있으면 감정 뒤 별도 절차로 넘기고요.”

한민규의 입가가 굳었다.

“현장에서 나온 물건이야.”

태성은 주머니에서 접힌 종이 두 장을 꺼냈다. 폐기 예정 주방용 칼 인수 기록과 F급 쇠갑 늑대 송곳니 인수 기록이었다. 종이 가장자리는 밤새 만져서 더 구겨져 있었다.

“현장에서 정식으로 받은 물건입니다. 여기 기록도 있고요.”

직원이 바코드를 스캔했다. 화면에 폐기 인수 번호와 태성의 이름이 떴다.

“기록 확인됐습니다. 현 시점에서 임의 압수 사유는 없습니다.”

“그 송곳니가 이 칼을 이렇게 만들었다고?”

한민규가 낮게 물었다.

태성은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걸 확인하려고 감정 받는 겁니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다만 전부도 아니었다.

직원이 검은 천을 풀었다. 식칼의 날이 형광등 아래에서 검은 은빛을 냈다. 손잡이 이음새에는 싼 플라스틱의 거친 선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접수대 감지기가 식칼 가까이 다가가자 붉은 눈금이 빠르게 올라갔다.

삐이익.

직원의 손이 멈췄다.

“D급 반응입니다.”

대기석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고개를 들었다. 식칼과 화면을 번갈아 보는 눈빛이었다.

한민규가 헛웃음을 흘렸다.

“폐기 식칼이 D급이 됐다고?”

“폐기 처리된 순간부터 싸다고 성능까지 싸야 한다는 규정은 없을 텐데요.”

태성은 봉인 스티커가 상자 뚜껑을 가로지르는 모습을 지켜봤다. 자신의 이름과 접수 번호가 찍힌 스티커였다. 아주 얇은 종이 한 장인데도 조끼 속에 코어를 숨겨 두었을 때보다 믿음직해 보였다.

상자가 감정실 쪽으로 옮겨졌다. 한민규는 태성의 옆을 비켜 주지 않았다.

“보스방에서 본 붉은빛은 뭐였지?”

“무너지는 천장 사이에서 난 빛 말입니까?”

“내가 본 건 네 손 근처였어.”

태성은 왼팔을 천천히 내렸다. 아침부터 팔꿈치 안쪽이 계속 당겼다.

“살려고 움직인 손이었죠. 팀장님은 그때 제 손보다 출구를 먼저 찾으셨고요.”

“말 돌리지 마.”

“말을 돌릴 이유가 없습니다. 감정 결과가 나오면 기록으로 남을 테니까요.”

한민규는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감정소 복도에는 사방을 비추는 카메라가 있었다. 여기서 사람을 붙잡고 조끼를 뜯어 볼 수 없다는 것도 태성은 알고 있었다.

그는 그 사실에 기대지 않으려고 했다. 규정은 약한 쪽을 오래 지켜 주지 않는다. 그래도 지금은 그 규정의 틈 하나가 필요했다.

감정실 문이 열렸을 때 태성은 한민규보다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

방 한가운데에는 두꺼운 유리판으로 둘러싼 측정대가 있었다. 수정 구슬이 박힌 팔이 봉인 상자 위에 떠 있었고 그 아래에서는 가느다란 마력선이 실처럼 흔들렸다.

흰 가운을 입은 감정사 오세진이 봉인을 확인했다.

“신청인 진태성 씨. 물품에 대해 아는 만큼만 말씀해 주세요. 추측은 기록하지 않습니다.”

태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폐기 예정 주방용 칼과 쇠갑 늑대 송곳니를 인수했습니다. 손질하다가 마력 반응이 생겼고요.”

“어떤 손질입니까?”

“날이 휘어 있어서 펴고 갈았습니다.”

한민규가 즉시 끼어들었다.

“보스방에서 나온 C급 코어와 관련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오세진은 단말에 그 말을 입력하지 않았다. 대신 식칼 위로 수정판을 내렸다.

“가능성은 검사로 보죠.”

푸른 빛이 날 위를 천천히 훑었다. 화면에는 식칼의 외형 도면과 내부의 희미한 마력선이 겹쳐 떠올랐다. 뿌리처럼 얽힌 선들 사이로 이빨을 닮은 톱니 무늬가 보였다.

오세진의 표정이 조금 바뀌었다.

“외형 소재는 저가 주방용 강재와 플라스틱입니다. 내부 마력 회로는 D급 기준을 넘었고요.”

“D급?”

태성이 되물었다.

“물품 자체가 저장하고 내보내는 마력량이 그렇습니다. 무작정 두꺼운 방어판을 부술 힘은 없어요.”

한민규가 팔짱을 꼈다.

“그럼 이 반응은 왜 이렇게 높지?”

“늑대 계열 마수의 압축 결이 날의 이음새에 깊게 박혀 있습니다. F급 송곳니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밀도입니다.”

태성의 목 뒤가 서늘해졌다.

오세진은 곧바로 말을 이었다.

“그렇다고 C급 코어를 썼다고 판정할 수는 없습니다. 감정기는 완성된 물품의 성질을 읽습니다. 촉매가 무엇이었는지 과거까지 되감지는 못합니다. 원형 코어가 남아 있거나 고유 파장이 뚜렷해야 합니다.”

한민규의 시선이 식칼을 찔렀다. 코어는 없었다. 조끼 속도 비어 있었다.

태성은 그제야 손가락에 들어간 힘을 조금 풀었다.

“등록은 됩니까?”

“기능 시험 후에요. D급이면 D급답게 쓸 수 있는지 봐야 합니다.”

오세진이 옆의 시험대를 가리켰다. 철제 고정구 사이에 쇠갑 늑대의 흉갑 표본이 세워져 있었다. 철빛 외피가 겹겹이 이어진 물건이었다.

태성은 표본을 보는 순간 배 속이 단단해졌다. 저 갑피는 보스가 아닌 평범한 쇠갑 늑대에게서 떼어 낸 것이었다. 그래도 자신이 예전에 칼날조차 제대로 대지 못했던 물질이었다.

“표면 절단 시험입니까?”

“정면 타격과 약점 타격을 각각 봅니다. 신청인이 직접 할 수 있겠습니까?”

한민규가 먼저 대답했다.

“본인이 하게 하죠. 자기 물건이라면서.”

태성은 식칼을 받았다. 손잡이가 손바닥에 닿자마자 왼팔의 통증이 되살아났다. 보관 칸의 잘린 걸쇠와 함께 팔꿈치까지 번졌던 무거움이 떠올랐다.

이 칼은 아무 데나 휘두르는 물건이 아니다.

그는 시험대 앞에 섰다. 정면 갑피는 굴곡 없이 매끈했다. 여기를 세게 치면 칼의 힘보다 자기 팔이 먼저 망가질 것이다.

태성은 시선을 아래로 옮겼다. 표본 옆면에 손가락 두 개 너비의 연결 고리가 있었다. 갑피 조각이 겹치면서 생긴 틈이었다. 오래된 표본이라 고리 한쪽에는 아주 가는 금도 나 있었다.

“정면 시험부터 하세요.”

오세진이 말했다.

태성은 날을 갑피 한가운데에 댔다. 팔 전체를 쓰지 않고 손목 힘만으로 눌렀다.

끼익.

칼날이 미끄러지며 가느다란 흠집만 남겼다. D급이라면 그 정도가 맞는 결과였다.

한민규가 작게 코웃음 쳤다.

“끝인가?”

“약점 시험이 남았습니다.”

태성은 손잡이를 고쳐 잡았다. 왼팔이 이미 묵직했지만 아직 한 번도 제대로 힘을 쓰지 않았다.

그는 연결 고리의 금에 날끝을 세웠다. 힘을 크게 모으지 않았다. 날이 찾아야 할 곳을 정확히 찾게 하는 편이 중요했다.

[강철 울음 식칼]

[이음새 절단 보정 활성]

눈앞에 떠오른 글자가 짧게 흔들렸다.

태성은 숨을 들이마셨다. 갈비뼈가 쑤셨다. 그래도 칼을 멈추지 않았다.

서걱.

연결 고리가 너무 쉽게 갈렸다.

쇠갑의 한쪽 판이 고정구에서 빠져나와 바닥에 떨어졌다. 무거운 소리가 유리벽 안을 울렸다.

동시에 태성의 왼팔이 아래로 잡아당겨졌다. 팔꿈치 안쪽을 둔한 망치로 친 듯한 통증이 퍼졌다. 식칼을 놓치지 않으려고 쥔 손가락이 하얗게 질렸다.

그는 한 걸음 물러나 벽을 짚었다.

“태성 씨?”

오세진이 다가왔지만 태성은 손을 들었다.

“괜찮습니다. 두 번은 하지 마세요.”

한민규의 눈빛도 달라져 있었다. 의심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방금 잘린 단면은 그도 부정할 수 없었다.

오세진은 잘린 고리를 집게로 들어 확대경 아래에 놓았다. 단면은 뜯긴 흔적 없이 매끈했다.

“정면 파괴력은 D급입니다.”

그가 천천히 말했다.

“하지만 C급 이하 방어체의 구조적 약점과 이음새를 상대로 하면 B급 절단 장비에 준하는 결과를 냅니다. 전술 조건이 지나치게 뚜렷하군요.”

한민규가 낮게 물었다.

“D급 물건이 B급 장비만큼 자른다고?”

“전부를 자르는 게 아닙니다. 저기 정면 갑피에는 흠집뿐이었죠. 맞는 곳을 찾았을 때만 비정상적으로 날카롭습니다.”

태성은 통증 때문에 식은땀이 나는 얼굴로 웃었다.

“그러면 가격도 조건부로 매겨집니까?”

오세진이 그를 힐끗 봤다.

“첫 질문이 그겁니까?”

“제 물건이니까요.”

“등록부터 하죠.”

감정사는 단말에 결과를 입력했다. 태성은 화면이 돌아갈 때마다 그 글자를 놓치지 않고 읽었다.

[D급 조건부 전술 아티팩트]

[강철 울음 식칼]

[효과: C급 이하 방어체의 약점 및 금속 이음새 절단 보정]

[제한: 정면 방어체 상대 성능 저하. 연속 사용 시 사용자 팔에 강한 반동 누적]

“제한도 빠짐없이 넣어 주세요.”

태성이 말했다.

“감춰서 팔 생각 없습니까?”

“그랬다가 사람 팔 나가면 싼값도 못 받습니다.”

오세진은 짧게 웃고 제한 항목을 확정했다. 이어 등록 화면을 태성 앞으로 돌렸다.

“신청인 진태성 명의로 임시 등록합니다. 이의가 있어도 물품 보류 사유가 확정되기 전에는 신청인에게 반환됩니다.”

한민규가 앞으로 나섰다.

“이의 제기합니다. 보스방 사건과 연계한 정밀 조사가 필요해요.”

“접수해 드리죠.”

오세진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하지만 조사와 등록은 별개입니다. 현재 나온 결과만으로 원래 인수 기록을 무효로 만들 수는 없어요.”

한민규는 반박하지 못했다. 대신 태성을 향한 눈빛이 더 차가워졌다.

“좋아. 조사에서 보자.”

태성은 식칼을 받아 봉투에 넣었다. 손잡이는 여전히 싼 플라스틱이었다. 그런데 그 안에는 이제 협회 등록 번호와 자기 이름이 붙어 있었다.

누구에게 빼앗기지 않으려면 더 많은 기록이 필요하다. 더 많은 물건도 필요했다.

그때 오세진의 단말이 짧게 울렸다.

감정사는 화면을 읽고 눈을 가늘게 떴다.

“관리국에서 면담 요청이 왔군요.”

“누구요?”

“강이현 팀장입니다. 감정 결과를 전달받자마자 직접 보겠다고 했습니다.”

한민규의 얼굴이 굳었다. 태성은 그 반응까지 놓치지 않았다.

그 이름이 어떤 무게인지는 아직 몰랐다. 다만 한민규가 쉽게 넘길 수 없는 사람이란 건 알 수 있었다.

태성은 봉투 속 식칼을 한 번 내려다봤다.

첫 물건의 값은 매겨졌다.

이제 그 값을 알고 찾아온 사람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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