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원짜리 아이템으로 세계 제패

6화: 감정 반응의 값
휴게실 의자는 사람을 쉬게 하려고 만든 물건이 아니었다.
진태성은 등받이에 기대지 못한 채 의자 끝에 걸터앉아 있었다. 조끼 안쪽의 금속 보강대가 갈비뼈를 누를 때마다 숨이 얕아졌다. 철판 뒤에 묶인 쇠갑 늑대왕의 코어는 잠잠하다가도 한 번씩 미지근한 열을 뿜었다.
그 열이 피부를 뚫고 나올 때마다 복도 감지기의 붉은 불빛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삐익.
마침내 감지기가 다시 울었다.
휴게실 문가의 안전요원이 단말을 확인했다. 한민규는 화면을 보지도 않았다. 처음부터 태성 쪽만 보고 있었다.
“또 반응했네.”
“복도에 사람도 많이 지나다니는데요.”
“반응 위치가 네 가슴 앞이라고 했어.”
태성은 조끼 지퍼 위에 손을 얹었다. 손바닥 아래에서 코어가 아주 작게 뛰었다.
한민규가 팔짱을 풀었다.
“붕대 갈아야 한다며. 그때 보강대도 확인하지.”
“내일 오전에 정식 감정 예약이 잡혀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확인하면 안 된다는 규정은 없지.”
안전요원이 난처한 얼굴로 둘 사이에 섰다.
“강제 확인은 감정관 입회가 필요합니다. 다만 내일은 신체 반응과 소지품 반응을 따로 분리해서 봅니다.”
그는 단말 화면을 태성 쪽으로 기울였다.
“몸에 붙인 물건이면 숨겨도 의미가 없습니다. 위치가 잡히면 재검사를 반복할 수 있어요.”
협박보다 정확한 말이었다.
태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자기 몸에 남은 역류 반응이 걱정되는 부상자처럼 보이려고 했다. 하지만 속은 다르게 굳어 갔다.
코어를 조끼에 묶어 둔 건 시간을 산 것뿐이었다.
내일 감정소에 들어가면 철판 뒤의 빈틈도 드러난다. 한민규는 코어의 모양을 몰라도 된다. 미신고 고등급 물품 하나가 몸에 숨겨져 있었다는 기록만 남으면 충분했다.
“붕대는 지금 갈겠습니다.”
태성이 말하자 안전요원이 응급 상자와 휴대 감지기를 꺼냈다.
“물품 보관 칸을 쓰세요. 문은 닫아도 되지만 잠그면 안 됩니다. 제가 앞에 있겠습니다.”
한민규가 따라붙으려 했다.
그때 복도 반대편에서 누군가 그를 불렀다. 보스방 붕괴 보고와 관련해 확인할 것이 있다는 목소리였다. 한민규는 태성을 한 번 노려본 뒤 안전요원에게 말했다.
“문에서 눈 떼지 마.”
“규정대로 하겠습니다.”
한민규의 구두 소리가 멀어졌다.
태성은 그제야 물품 보관 칸으로 들어갔다. 문 아래로 복도 불빛이 얇게 스며들었다. 바깥에는 안전요원의 발끝이 그대로 멈춰 있었다.
도망칠 틈은 아니었다.
결정할 틈이었다.
태성은 조끼 지퍼를 조심스럽게 내렸다. 갈비뼈 쪽 붕대를 풀자 철판 뒤에 끼워 둔 냉각팩이 나왔다. 팩은 이미 미지근했고 그 안의 수건 조각은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수건을 한 겹 벗기자 붉은 코어가 모습을 드러냈다.
손바닥만 한 덩어리는 아직도 살아 있는 짐승의 심장처럼 빛을 밀어 냈다.
[고급 촉매 인식]
[외부 감정 간섭 지속]
[권장: 촉매 사용 또는 안전한 처분]
“처분은 무슨.”
태성은 낮게 중얼거렸다.
코어 하나면 적어도 몇 달치 월세와 치료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지 모른다. 감정소를 통과한 뒤 정식으로 팔 수만 있다면 말이다.
하지만 그 ‘통과한 뒤’가 문제였다.
미신고 고등급 물품을 몸에 숨긴 사람이 코어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을 리 없었다. 한민규가 보스방에서 본 빛을 들먹이면 설명은 더 꼬인다. 코어를 내놓는 순간에는 왜 짐꾼이 보스의 목 안쪽 물건을 갖고 있느냐는 질문이 돌아온다.
태성은 보관 칸 선반 위에 놓인 작은 비닐봉지를 열었다. 어젯밤 받아 둔 폐기 물품 인수 영수증과 F급 송곳니 인수 영수증이 접힌 채 들어 있었다.
아까운 돈을 내고 남긴 기록이었다.
누군가에게는 구겨진 종이 두 장일 뿐이다. 하지만 태성에게는 적어도 하나의 물건이 자기 손으로 들어온 과정이었다. 훔치지 않았고 빼돌리지 않았고 폐기 절차를 거쳤다는 증거.
그는 주머니에서 식칼을 꺼냈다.
[E급 아티팩트: 갑피 절단 식칼]
은회색 칼날은 물자국을 닦아 낸 뒤에도 싸구려 손잡이를 벗어나지 못했다. 손잡이의 이음새에는 여전히 플라스틱 선이 보였다.
그래도 이 칼은 태성이 만든 물건이었다.
효자손으로 죽지 않을 틈을 만들었다면 식칼은 다음 선택지를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 태성에게 필요한 건 코어를 품고 버틸 다른 은닉처가 아니었다.
코어를 가치로 바꿀 방법이었다.
그가 식칼을 손바닥 위에 올리자 눈앞에 익숙한 창이 떠올랐다.
[합성 후보 확인]
[베이스: E급 아티팩트 갑피 절단 식칼]
[촉매: C급 보스 코어 쇠갑 늑대왕의 코어]
[개념 일치도: 83%]
[예상 결과: 고강도 절단 계열]
[주의: 촉매 소모]
태성의 손가락이 멈췄다.
촉매 소모.
글자 네 개가 코어보다 무거웠다.
이걸 쓰면 다시 팔 수 없다. 다음 더 좋은 물건을 만들 재료도 사라진다. 지금의 자신에게 C급 코어는 몇 번을 계산해도 아까운 카드였다.
그런데도 코어는 조끼 안에 넣어 둘 수 없었다.
값을 아끼다가 증거까지 빼앗기는 것보다는 지금 자기 손으로 값을 정하는 편이 나았다.
태성은 코어를 식칼 옆에 내려놓았다.
“돈이 된다고 다 남겨 두면 망해.”
말은 코어에게 한 것이 아니었다. 아까운 걸 놓지 못해 늘 뒷순위로 밀리던 자기 자신에게 한 말이었다.
그는 효자손을 꺼냈다.
연분홍 플라스틱 손바닥 끝에서 투명한 갈고리들이 하나씩 펼쳐졌다. 어둑한 보관 칸 안에서 갈고리 끝만 푸르게 빛났다.
[마력 포획의 손 활성화]
[연성 준비]
태성은 코어 위로 갈고리를 내렸다.
붉은 마력 결이 솟구쳤다.
갈고리 하나가 결을 걸자 손등부터 팔꿈치까지 검푸른 핏줄이 다시 욱신거렸다. 역류 후유증이 남은 팔이 칼에 찔린 것처럼 저렸다.
[마력 과부하]
[사용자 마력 잔량 위험]
“아니까 좀 조용히 해.”
이번에는 코어를 억지로 뽑아내지 않았다.
태성은 갈고리를 천천히 움직여 붉은 결을 식칼 칼등의 은회색 선으로 옮겼다. F급 송곳니에서 남은 날카로운 결이 먼저 반응했다. 그 위로 쇠갑 늑대왕의 단단하고 무거운 결이 덮였다.
칼날이 덜덜 떨렸다.
낮고 긴 소리가 보관 칸 안을 울렸다. 금속이 우는 소리 같았다.
코어의 붉은빛이 갈고리를 타고 태성의 손가락 쪽으로 번졌다. 순간 손목까지 뜨거워졌다. 이대로 놓치면 코어의 마력이 몸을 타고 들어올 것 같았다.
태성은 이를 악물고 효자손을 비틀었다.
긁어 낸다.
잡아당긴다.
원래 이 물건이 하던 일은 깊은 곳의 가려운 데를 찾아내는 것이었다. 지금도 다르지 않았다. 코어 안에서 제멋대로 들끓는 결을 찾아 식칼의 금과 이음새로 밀어 넣는다.
싸구려 칼은 완성품이 아니었다.
그래서 오히려 들어갈 자리가 있었다.
[가성비의 영주 보정]
[저가 베이스 한계 확장]
빨간빛과 은회색 빛이 한꺼번에 번졌다.
태성은 눈을 감지 않았다.
딱.
코어 표면에 금이 갔다.
금은 밖으로 벌어지지 않고 칼날을 향해 접혔다. 붉은 조각들이 차례로 녹아들더니 끝내 한 점의 빛도 남기지 않았다.
보관 칸에 남은 것은 금속 냄새와 태성의 거친 숨뿐이었다.
효자손의 빛이 꺼졌다.
태성의 왼팔도 힘없이 떨어졌다. 그는 벽에 어깨를 기대고 한참을 숨만 골랐다.
손바닥 위의 식칼이 미세하게 울렸다.
칼날은 전보다 두꺼워졌지만 날은 더 얇아 보였다. 검은 은빛 표면을 따라 짧은 톱니 무늬가 늑대 이빨처럼 새겨져 있었다.
[D급 아티팩트: 강철 울음 식칼]
[단단한 갑피와 금속의 이음새를 가른다]
[효과: C급 이하 방어체의 약점과 이음새 절단 보정]
[제한: 연속 사용 시 사용자 팔에 강한 반동이 누적된다]
“D급.”
태성은 헛웃음도 제대로 짓지 못했다.
C급 보스 코어를 썼다. 고작 E급 식칼이 D급이 된 게 손해인지 이득인지 지금은 계산할 수 없었다.
다만 조끼 안은 비어 있었다.
그 사실만큼은 분명했다.
그는 보관 칸 문에 달린 얇은 금속 걸쇠를 보았다. 시험하지 않으면 새 물건의 값을 모른다. 하지만 무턱대고 휘두르면 제한 문구가 말한 반동이 어느 정도인지도 모른다.
태성은 칼을 걸쇠에 가볍게 댔다.
밀어 넣은 힘은 손가락 하나로 누른 정도였다.
서걱.
걸쇠가 소리 없이 잘렸다.
동시에 왼팔이 아래로 꺾일 듯 무거워졌다. 팔꿈치 안쪽을 누군가 망치로 내리친 것 같은 통증이 번졌다.
태성은 칼을 놓칠 뻔했다.
“한 번 휘두른 값도 만만치 않네.”
그는 아픈 팔을 품에 끌어안았다. 강한 물건이 생겼다고 자기 몸이 갑자기 강해진 건 아니었다. 오히려 이 칼은 태성이 약하다는 사실을 더 정확하게 알려 줬다.
그래도 쓸 곳을 고르면 된다.
정면으로 부수지 못하면 이음새를 자른다. 막힌 문이 있으면 경첩을 노린다. 태성이 지금까지 살아남은 방식도 그랬다.
그 순간이었다.
삐이이이익!
복도 감지기가 이전보다 길고 날카롭게 울었다.
태성의 표정이 굳었다.
코어는 사라졌다. 그런데 감지기의 붉은빛은 문 아래 틈까지 밀려 들어왔다.
문밖에서 한민규의 목소리가 들렸다.
“진태성. 문 열어.”
이번 목소리에는 기다릴 생각이 없었다.
태성은 잘린 걸쇠를 바닥에서 주워 손바닥에 쥐었다. 실험 흔적까지 감출 시간은 없었다. 애초에 D급 반응을 숨긴다는 발상부터 늦었다.
그는 식칼과 영수증을 함께 집어 들었다.
문을 열자 한민규의 시선이 곧바로 칼날에 박혔다.
“그 고물이 왜 그렇게 됐지?”
태성은 아무 말 없이 F급 송곳니 인수 영수증과 폐기 물품 인수 영수증을 내밀었다.
“둘 다 기록 남기고 받은 겁니다.”
“그 말이 지금 이 반응을 설명해?”
“설명은 내일 감정소에서 하죠.”
한민규가 영수증을 받아 들었다. 종이를 보는 척했지만 눈은 계속 식칼 쪽에 남아 있었다.
“보스방에서 난 붉은 빛이랑 관계없다고 말할 수 있나?”
태성은 조끼 지퍼를 끝까지 올렸다. 철판 뒤는 비어 있었다. 붕대도 냉각팩도 코어도 더는 없었다.
대신 손안의 식칼은 숨길 수 없을 만큼 선명한 반응을 내고 있었다.
“제가 아는 건 하나입니다.”
태성은 식칼을 한 번 내려다봤다.
“내일 감정소 문이 열리면 이 칼도 같이 들어간다는 거요.”
한민규의 입가가 굳었다.
“그때까지 네가 그걸 들고 있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압수할 근거가 있으면 절차대로 하시죠.”
태성은 영수증을 도로 받아 주머니에 넣었다.
“없으면 감정 예약 시간까지는 제 물건입니다.”
한민규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안전요원이 단말을 확인하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반응 물품은 내일 감정 접수 시 봉인 확인을 받으면 됩니다. 현재로서는 임의 압수 사유가 부족합니다.”
태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완전히 이긴 건 아니었다. 한민규의 의심은 오히려 더 짙어졌다. 감정소에서 D급이라는 결과가 나오면 질문도 더 날카로워질 것이다.
그래도 코어를 조끼 속에 품은 채 끌려가지는 않는다.
그는 칼을 숨기지 않았다.
숨길 물건은 없어졌다.
이제 남은 건 내일 감정소가 이 식칼의 값을 얼마로 매길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