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으로
이세계 유일의 24시 마트 영주님8화

이세계 유일의 24시 마트 영주님

이세계 유일의 24시 마트 영주님

AD
스폰서 광고

8화: 짐을 부치면 목숨이 가볍다

밤새 쏟아지던 비는 새벽안개가 걷히며 잦아들었다.

폐창고 문이 삐걱거리며 열리자 상자 칸막이 안에서 잠을 청했던 모험가들이 하나둘 밖으로 나왔다. 진흙탕 위에서 떨지 않은 덕분인지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살았군. 진짜로 바닥에서 물이 안 샜어.”

“담요가 얇아서 걱정했는데 바람을 막아 주니 견딜 만했소.”

도끼전사는 리아에게 나무표를 내밀고 자신의 전투 도끼를 돌려받았다. 리아는 장부에 퇴실 시각을 적고 표를 수거하며 꼼꼼히 확인했다.

“손상된 장비는 없으십니까?”

“없소. 은화 두 닢에 이 정도면 거저요.”

퇴실은 순조로웠다. 하지만 창고 밖 빈터로 나온 모험가들이 배낭을 챙겨 메는 순간 표정들이 일제히 굳어졌다.

그들의 등 뒤에는 전날 던전 깊은 곳에서 캐낸 바위도마뱀 가죽 뭉치와 단단한 마수 뼈, 광석 자루가 묵직하게 매달려 있었다. 성인 남성의 몸무게에 맞먹는 무게였다.

“크윽… 이걸 지고 도시까지 언덕길을 사흘이나 걸어가야 한단 말이지.”

도끼전사가 허리를 삐걱거리며 신음했다.

“비가 와서 진흙길일 텐데 짐까지 무거우면 발이 푹푹 빠질 거요. 길목에서 산적이나 늑대 무리라도 만나면 칼이나 제대로 휘두르겠소?”

그때 야영지 구석에서 서성이던 왜소한 노새 상인 하나가 다가왔다. 낡은 마차를 끈 그는 뱀 같은 눈으로 모험가들의 짐을 훑었다.

“이보시오 전사 양반들. 그 무거운 걸 지고 가다간 허리만 상하오. 내가 특별히 마차에 실어 줄 테니 그 바위도마뱀 가죽 한 뭉치를 은화 세 닢에 넘기시오. 광석 자루도 은화 닷 닢이면 쳐주지.”

“뭐라고? 도시 공방에 가져가면 가죽 한 장에 은화 스무 닢은 받는 물건이다!”

“그건 무사히 도시 문턱을 넘었을 때 얘기지요. 가다가 늑대 밥이 되면 은화는커녕 목숨값도 안 남소. 여기서 털고 가는 게 남는 장사라니까?”

상인의 능글맞은 흥정에 도끼전사가 주먹을 쥐었지만 선뜻 반박하지 못했다. 실제로 무거운 짐 때문에 던전 귀환길에 변을 당하는 모험가가 부지기수였다.

바드가 어깨를 주무르며 진우에게 다가왔다.

“점장 양반. 혹시 저 창고 한구석에 이 짐들을 며칠만 보관해 줄 수는 없겠소? 요금은 따로 낼 테니.”

진우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안 돼. 창고는 사람 눕는 자리야. 피비린내 나는 마물 가죽이랑 뼈를 쌓아 두면 냄새 배어서 오늘 밤엔 아무도 못 자. 쥐나 벌레라도 꼬이면 어쩌려고?”

“그럼 이 짐들을 다 짊어지고 가란 말이오? 저 사기꾼 상인 놈에게 헐값에 던지긴 억울한데!”

진우는 턱을 괴고 빈터를 바라보았다.

모험가들이 던전에서 목숨 걸고 캐낸 전리품을 처리하지 못해 쩔쩔매고 있었다. 짐을 보관해 달라는 수요는 결국 짐을 안전하게 옮기고 싶다는 뜻이었다.

‘보관할 공간이 부족하다면 보관할 게 아니라 보내 버리면 되잖아.’

지구 편의점에서는 포스터 한 장만 붙어 있어도 전국 어디로나 짐을 부칠 수 있었다.

그 순간 진우의 눈앞에 푸른색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띠링!]

[안전 보관 및 물류 수요가 정점에 도달했습니다.]
[24시 마트 부가 서비스: 'AZA 24 편의점 택배'가 임시 개방됩니다.]
[기본 보급: 규격 방수 상자(중형) 10개 / 완충 에어캡 1롤 / 표준 접수 저울 1대]
[임시 발송 거점: 인근 3개 상업 도시 길드 집하소 및 인증 무구점 연계]

진우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바드. 짐을 맡겨 둘 필요 없어. 그냥 네가 원하는 도시로 바로 보내.”

“보내다니? 누구더러?”

“내가 보내 준다고. 여기서 접수하면 사흘 안에 도시 공방 문 앞까지 배달된다.”

주변에 있던 모험가들의 시선이 일제히 진우에게 쏠렸다.

“도련님, 짐을 배달한다고요? 우리에게는 마차도 짐말도 없습니다.”

리아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진우를 말렸다. 짐을 맡았다가 분실하거나 상하기라도 하면 영지 평판이 바닥으로 떨어질 수 있었다.

“걱정 마, 리아. 배송망은 이미 시스템… 아니, 내가 계약해 둔 특수 통상로가 있어. 우리가 할 일은 규격을 맞추고 송장을 똑바로 적는 거야.”

진우는 매장 옆 빈 테이블을 창고 앞으로 끌어왔다. 시스템에서 보급된 단단한 방수 상자와 뽁뽁이 완충재를 바닥에 내려놓자 리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상자는 기름을 먹인 것처럼 매끄럽군요. 물이 전혀 스며들지 않겠습니다.”

“물만 안 새는 게 아니라 충격도 막아 줘. 리아, 깃펜이랑 새 장부 꺼내. 오늘부터 여기가 AZA 24 택배 접수처야.”

진우는 접수대 앞에 나무 팻말을 세우고 굵은 글씨로 규칙을 적어 내려갔다.

[AZA 24 던전 부산물 위탁 발송 안내]
1. 규격 상자 포장 필수 (방수 상자 및 완충재 기본 제공)
2. 기본 배송료: 10kg 이하 규격 상자당 은화 3닢 (도착지 길드 수령 기준)
3. 1차 세척 및 건조 필수 (부패물, 미건조 혈흔 반입 불가)
4. 위험물 발송 금지 (미안정 마석, 폭발성 독낭, 살아있는 마물 제외)
5. 송장 번호와 수령인 서명 대조 후 배송 완료

팻말을 다 읽은 모험가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은화 세 닢? 은화 세 닢만 내면 도시까지 짐을 날라 준다고?”

“저 상인 놈한테 떼일 돈 생각하면 은화 세 닢은 껌값이지!”

상인이 사색이 되어 소리쳤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마차도 없는 풋내기 영주가 무슨 수로 대륙 길드를 거쳐 배송을 한단 말이오? 가다가 짐 다 잃어버리고 오리발 내밀 게 뻔하오!”

리아가 차가운 눈빛으로 검집을 잡으며 상인을 쏘아보았다.

“폰 그라트 가문의 이름과 영지의 명예를 걸고 발송합니다. 접수 시 물품의 상태와 무게를 장부에 기록하고 발송인에게 영수증을 교부합니다. 만약 우리 과실로 분실될 경우 접수 시 감정가의 전액을 보상합니다.”

리아의 단호한 선언에 상인은 입을 닫고 뒤로 물러섰다.

첫 번째로 나선 것은 바드였다.

“점장 양반, 내가 먼저 해 보겠소. 바위도마뱀 가죽 세 뭉치랑 단단한 턱뼈요. 오델 상업 도시의 '망치와 모루' 대장간으로 보내야 하오.”

“좋아. 일단 저울 위에 올려 봐.”

바드가 가져온 가죽 뭉치를 저울에 올리자 정확히 8.5kg을 가리켰다.

진우는 가죽 표면을 확인했다. 다행히 흙은 털어냈지만 피 찌꺼기가 약간 묻어 있었다.

“바드, 물로 핏물 한 번만 더 헹구고 마른 천으로 닦아 와. 젖은 상태로 밀봉하면 상자 안에서 썩어.”

“알겠소!”

바드는 군말 없이 우물가로 뛰어가 가죽을 씻어 왔다. 마른 천으로 물기를 닦아내자 진우는 방수 상자 바닥에 완충재를 깔고 가죽과 턱뼈를 차곡차곡 넣었다.

상자 틈새마다 완충재를 꼼꼼하게 채워 넣은 뒤 테이프로 단단히 밀봉했다. 흔들어도 안에서 소리가 나지 않았다.

리아는 접수용 양식지에 깃펜을 놀렸다.

“발송인 방패전사 바드. 수령인 오델 상업 도시 망치와 모루 대장간 마스터 브룬. 품목 바위도마뱀 가죽 3장, 턱뼈 1세트. 중량 8.5kg. 접수 요금 은화 3닢.”

리아는 동일한 내용이 적힌 종이 두 장 중 한 장을 바드에게 건넸다.

“이 송장 영수증을 잘 보관하십시오. 오델 도시 길드 수령처에 이 종이를 보여주면 상자를 찾을 수 있습니다.”

바드는 손에 쥔 종이를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러면 끝이오? 내가 저 무거운 걸 메고 산길을 안 걸어가도 된단 말이오?”

“끝이야. 넌 몸만 가볍게 던전에 다시 들어가든 도시로 가든 마음대로 해.”

바드는 허공에 주먹을 내지르며 환호했다.

“만세! 어깨 부서질 뻔했는데 살았다! 얘들아, 던전 2층 한 번 더 돌자!”

오르딘이 헛기침하며 옆에서 물었다.

“점장, 혹시 그 푸른 캔 비약… 핫나인은 아직 재입고되지 않았소?”

“핫나인은 어젯밤에 다 팔렸어. 다음 보급품 들어올 때까지 품절이니까 오늘은 물이나 마시고 조심해서 들어가.”

“아쉽군. 그래도 짐이 없으니 한결 낫겠소.”

등 뒤의 짐이 사라지자 모험가들의 기동성이 완전히 달라졌다. 무거운 전리품 때문에 하루 만에 귀환해야 했던 이들이 다시 던전 공략에 나설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다른 모험가들도 앞다투어 줄을 섰다.

“나도 보내 주시오! 흑랑 가죽 두 장이오!”

“난 세인트 무역 도시 길드로 마수 발톱 다섯 개!”

진우는 손을 들어 줄을 진정시켰다.

“차례대로 해. 위험물 검사는 철저히 한다. 독주머니 덜 떼어낸 건 절대 접수 안 받으니까 알아서 손질하고 가져와.”

리아가 엄격하게 물품을 검수하고 진우가 포장과 라벨링을 맡았다. 상자들은 포장되자마자 AZA 24 옆 전용 집하함으로 옮겨져 시스템 배송망으로 전송되었다.

오전 동안 접수된 택배는 총 다섯 건. 임시 개방 한도를 정확히 채웠다.

[띠링!]

[AZA 24 편의점 택배 1차 발송이 완료되었습니다.]
[접수 완료: 5건 / 총 수익: 은화 17닢 (초과 중량 포함)]
[물류망 개척 1단계가 활성화됩니다.]
[시스템 포인트 +250P 적립]

정오가 되자 빈터는 다시 조용해졌다.

짐을 부친 모험가들은 홀가분한 발걸음으로 던전 입구로 향하거나 야영지 식사 자리에서 여유롭게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리아는 접수 장부를 정리하며 진우를 바라보았다.

“도련님. 물건을 파는 것보다 짐을 옮겨 주는 일이 사람들을 더 기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손님이 진짜로 원하는 건 물건 자체가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거니까.”

진우가 미소를 지으며 계산대 위 먼지를 털어내던 찰나 야영지 입구 쪽에서 거친 흙먼지가 일었다.

말을 탄 병사 두 명이 AZA 24 앞 공터를 매서운 눈초리로 훑어보고 있었다. 그들의 갑주에는 이웃 영주 로델 가문의 문장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저기가 그 소문의 잡화점인가 보군.”

“상인들의 마차가 줄어들고 있다더니 쥐새끼처럼 장사를 벌이고 있었군그래.”

병사들은 진우와 리아를 한 번 노려본 뒤 말머리를 돌려 거칠게 달려 나갔다.

리아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로델 영주의 순찰병들입니다. 우리 영지 경계선까지 들어온 건 처음입니다.”

“손님이 몰리고 돈이 돌기 시작했으니 파리들이 꼬이는 건 시간문제였지.”

진우는 멀어지는 병사들의 뒷모습을 보며 덤덤하게 중얼거렸다.

“어디 올 테면 와 보라지. 손님 뺏길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으니까.”

AD
스폰서 광고
YOU MAY ALSO LIKE

이런 작품은 어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