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급 파티 매니저가 항구 경제를 접수함

4화: 대장장이 아린을 무기로 쓰지 말 것
방파제 고리에 묶인 줄이 한 번 팽팽해졌다가 느슨해졌다.
창고 안쪽의 검은 물도 그 움직임을 따라 숨을 쉬는 듯했다. 물은 문턱 아래로 물러났다가 잠시 뒤 돌계단을 핥으며 다시 올라왔다. 미르카가 물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종아리의 비늘에는 아직 물방울이 매달려 있었다.
세아는 방수 천 위에 올린 기록지를 내려다봤다. 수위선 옆에는 짧은 선이 세 개 그어져 있었다.
“같은 간격이에요. 줄이 당겨질 때마다 더 빨라져요.”
“그럼 더 미룰 수 없습니다.”
페른은 창고 쪽으로 턱을 들었다.
“바크 씨가 안쪽 장치를 봐야겠군요. 원인을 아는 사람이 손을 대야 빨리 끝납니다.”
아린은 젖은 앞치마 주머니에서 송곳을 꺼내려다 멈췄다. 그의 렌즈 너머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나는 여기서 장비를 고쳤지. 안에 들어가겠다고 계약한 적은 없어.”
“장치를 납품한 쪽이잖습니까.”
“반려된 의견서를 낸 쪽이지.”
아린의 목소리는 높지 않았다. 그래서 더 단단하게 들렸다.
“납품 목록에는 내 이름이 남아도 검수 의견은 잘 지우더군. 그때는 내 말이 쓸모없다더니 이제는 내 몸까지 필요한가 봐.”
페른의 입가가 굳었다.
“그런 감정싸움을 할 때가 아닙니다. 정오가 지나면 의뢰 미이행으로 처리될 수 있어요. 조수갈매기 쪽도 손해 아닙니까?”
말은 일행 전체를 향해 있었지만 눈길은 아린에게 붙어 있었다. 기술자가 위험한 곳까지 들어가 주면 결함을 만든 쪽은 설명할 일이 줄어든다. 한결은 그 계산이 지나치게 익숙해 보였다.
한결은 가방에서 검수 기록지 한 장을 더 꺼냈다. 젖지 않도록 기름종이를 밑에 받치고 빈칸을 가리켰다.
“작업 범위를 적겠습니다. 아린 씨는 외부 장비 검수와 줄 조작만 합니다. 내부 진입자는 미르카 씨와 저입니다.”
“그건 임의로 정할 일이 아닙니다.”
“의뢰서에 기술자의 잠수 의무가 있습니까?”
페른은 답하지 않았다.
“없다면 작업자가 하지 않겠다고 한 일을 위험에 밀어 넣을 수는 없습니다. 철수 신호는 세아 씨가 맡고요. 수위가 허리 아래를 넘거나 줄이 두 번 연속 당겨지면 전원 철수. 이 조건은 확인자 서명 아래에 붙입니다.”
“서기님이 확인한 수위 변화 시각도 같이요.”
세아가 덧붙였다. 그녀는 기록지 모서리를 단단히 눌렀다.
페른은 세아의 말에 잠시 시선을 피했다. 그는 처음부터 종이를 빈칸으로 남기는 데 익숙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미 첫 장에는 자신의 이름이 있었다. 한결은 그가 그 사실을 잊지 못하게 기록지를 펴 둔 채 기다렸다.
미르카가 팔 보호구의 황동 격자를 손톱으로 두드렸다.
“둘이 들어가면 느려. 내가 줄만 보고 먼저 다녀오면 돼.”
“줄이 걸렸을 때 혼자 있으면 더 느립니다.”
한결이 말했다.
“안쪽에 고리와 쇠사슬이 있다는 것만 확인했어요. 수심도 바닥 상태도 모릅니다. 먼저 들어가는 건 빠른 사람이 아니라 돌아올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미르카의 꼬리가 바닥을 한 번 쳤다. 반박을 기다리는 표정이었다. 한결은 덧붙이지 않았다. 위험을 설명하는 말이 길어질수록 누군가는 그 말을 겁으로 바꿔 들을 수 있었다.
세아가 조용히 미르카의 부력끈 매듭을 다시 눌렀다.
“나올 때까지 내가 신호 셀게. 세 번 치면 바로 줄을 놓아요.”
미르카는 잠시 세아의 손을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린은 그동안 분해해 둔 여과통 부품 앞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그는 푸른빛 공명핵을 손바닥 위에서 굴린 뒤 부식되지 않은 황동 관절 하나를 골랐다. 얇은 가죽끈은 세 가닥으로 쪼개고 갈고리 줄 사이에 작은 고리를 만들었다.
“이건 당기는 장치가 아니야.”
아린이 완성된 고리를 줄에 걸며 말했다.
“안쪽에서 줄이 갑자기 잡아당겨지면 먼저 이 관절이 빠진다. 갈고리는 버려도 사람 팔은 버리지 않는다는 뜻이지.”
페른이 비웃듯 숨을 뱉었다.
“갈고리 하나 값이 얼마인지는 압니까?”
“알아.”
아린은 고리를 시험 삼아 당겼다. 황동 관절이 짧게 울리고 정해 둔 힘에서 딸깍 풀렸다.
“그래서 수리비보다 싼 장비를 지급하면 안 되는 거고.”
한결은 기록지의 장비 항목 아래에 새 줄을 만들었다. ‘공명핵 임시 구동. 황동 관절 분리 고리. 외부 조작 및 기술 의견: 아린 바크.’
“회수품 정산에 넣겠습니다. 부품값만이 아니라 작업 시간과 기술 의견까지요.”
아린의 손이 멈췄다.
“기술 의견은 종이 한 장인데.”
“그 종이 때문에 누가 물속에 들어가도 되는지 달라집니다. 값이 없으면 다음에도 공짜로 빼앗길 겁니다.”
한결은 펜을 들어 아린에게 보였다.
“금액은 의뢰 뒤에 협의합니다. 다만 지금 여기서 제공했다는 사실은 남기죠.”
아린은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끝내 고개를 끄덕인 것은 허락이라기보다 거래가 성립했다는 표시에 가까웠다.
“말 바꾸지 마.”
“기록이 있으니까요.”
페른은 기록지를 받아 들지 않았다. 한결은 그 앞에 확인자 칸을 내밀었다.
“서기님도 보셨습니다. 지급품을 분해한 이유와 대체 장비의 용도입니다.”
“이건 조합 승인 없이 만든 장치입니다.”
“그럼 조합이 승인한 안전 장비를 지금 가져오십시오.”
한결은 창고 앞에 남은 텅 빈 천막을 보았다.
“그 전까지는 현장 판단으로 움직이겠습니다. 서명하지 않아도 됩니다. 대신 서기님이 장비 상태를 확인하지 않고 작업을 재촉했다는 기록을 이의 제기란에 남기죠.”
페른의 입술이 얇아졌다. 멀리서 정오 종을 준비하는 종지기의 망치 소리가 들렸다. 그는 결국 펜을 쥐고 짧게 이름을 적었다.
세아가 수위선을 다시 살폈다.
“지금부터 낮아져요. 다음 역류까지 길어야 마흔 초예요.”
아린이 공명핵의 선을 갈고리 손잡이에 감았다. 푸른 빛이 물 위에 번졌다. 흐름이 약해지는 동안 미르카는 줄을 잡고 철문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보호구의 격자가 줄을 움켜쥔 손을 감쌌다.
한결은 그녀보다 두 걸음 뒤를 따랐다. 등불은 왼손에 들고 오른손은 벽을 짚었다. 물은 장화 위를 넘었지만 바닥이 갑자기 꺼지는 곳은 없었다. 세아가 방파제 쪽에서 기록판을 들고 외쳤다.
“진입 시각. 수위 종아리 아래. 인원 둘.”
페른은 바깥에 남아 적었다. 그가 물가 가까이 서지 않는 모습이 등불 그림자에 길게 비쳤다.
창고 안쪽 첫 통로는 화물 상자들로 절반쯤 막혀 있었다. 불어난 나무가 벽에 부딪힐 때마다 젖은 속살 냄새가 났다. 천장에서는 검은 물이 실처럼 떨어지고 있었다.
미르카가 손을 들어 멈추라는 신호를 보냈다.
바닥을 따라간 쇠사슬은 부서진 배수구 옆을 지나 벽 아래 철문으로 이어져 있었다. 철문은 사람 하나가 겨우 드나들 만한 크기였고 가운데에는 둥근 손잡이 대신 쇠사슬을 감는 축이 박혀 있었다.
“수문이네.”
미르카가 낮게 말했다.
한결은 손잡이 위를 비추었다. 녹슨 철문 가장자리에는 붉은 밀랍이 군데군데 묻어 있었다. 오래된 녹은 검게 눌어붙었는데 밀랍만은 아직 선명했다. 봉인을 찍은 무늬는 방파제 사무실의 서류철에서 본 항만조합 인장과 같았다.
“최근에 손댄 겁니다.”
“그걸 어떻게 알아?”
“녹 위에 찍혀 있어요. 물에 오래 잠겼으면 이 정도로 남지 않았을 겁니다.”
미르카는 수문 앞 물을 손끝으로 저었다. 물살은 철문 틈으로 빠져나가기보다 반대쪽으로 끌려가고 있었다. 누군가 안쪽에서 물길을 막아 두었다가 조절하는 것처럼.
밖에서 세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십 초.”
한결은 물러서려다 수문 옆 벽돌 틈에 낀 종이 봉투를 발견했다. 주변은 물에 젖어 검게 변했는데 봉투 표면은 마른 채였다. 손가락으로 집어 들자 종이는 아직 빳빳했다.
앞면에는 조합 인장이 눌려 있었다. 그 아래 글자는 물에 번졌지만 마지막 두 글자만 남아 있었다.
종결.
“이건 뭐야?”
미르카가 물었다.
“현장 발견물.”
한결은 봉투를 등불 가까이 가져갔다. 봉투는 비어 있었다. 돈도 명단도 없었다. 다만 막 접힌 종이의 자국과 손으로 여러 번 만진 가장자리만 남아 있었다.
그때 바깥에서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페른이 물가를 피해 통로 입구까지 다가와 봉투를 본 순간 얼굴이 굳었다.
“그건 작업과 관계없는 쓰레기입니다.”
“마른 쓰레기가 수문 옆에 끼어 있군요.”
한결은 봉투를 기록판 사이에 넣었다.
“인장과 발견 위치를 적겠습니다.”
“그럴 권한이 어디 있습니까?”
“확인자 서명 아래에요. 서기님이 현장 조건으로 인정한 기록입니다.”
페른은 대답하지 못했다. 물은 다시 발목을 밀어 올렸다. 아린이 바깥에서 줄을 두 번 짧게 흔들었다. 공명핵의 빛도 한 번 흔들렸다.
“열 초.”
세아의 목소리가 이번에는 더 컸다.
미르카가 수문 축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조금만 더 있으면 이거 돌릴 수 있어.”
“오늘은 안 엽니다.”
한결이 말했다.
“안쪽 수심도 모르고 축이 어디에 연결됐는지도 모릅니다. 봉투 하나를 얻으려고 둘을 가둘 수는 없어요.”
미르카가 한결을 노려봤다. 그러나 곧 줄을 잡아당겨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도 적어. 내가 들어갔다가 네가 겁먹어서 나왔다고 바꾸지 말고.”
“철수 사유. 수문 구조 미확인과 수위 상승.”
한결은 바로 받아 적었다.
수문 너머에서 금속을 천천히 긁는 소리가 났다.
끼이익.
미르카의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철문 아래 틈으로 검은 물이 한 번 크게 부풀었다. 그것이 물살인지 안쪽에서 움직인 무언가 때문인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아린이 줄을 세 번 강하게 당겼다.
미르카가 먼저 몸을 돌렸다. 한결은 봉투를 가슴 쪽에 붙인 채 뒤따랐다. 역류가 통로를 덮치기 직전 둘은 철문 밖으로 빠져나왔다.
방파제 위로 올라서자 분리 고리가 딸깍 하고 풀렸다. 갈고리 줄은 창고 안쪽에서 한 번 세게 당겨졌지만 미르카의 손목까지 끌고 가지는 못했다.
아린이 고리를 집어 들고 짧게 숨을 내쉬었다.
“그래. 이럴 때 쓰는 거야.”
세아는 젖은 손으로 기록지를 감쌌다. 그녀가 적은 마지막 줄에는 진입 인원과 철수 시각, 수문 봉인, 현장 발견물이라는 말이 차례로 남았다.
페른은 그 줄을 보지 않았다. 그는 정오 종소리가 울리기 전에 창고 안쪽만 바라보고 있었다.
한결은 마른 봉투의 인장을 다시 내려다봤다.
사고를 끝내는 데 쓰일 돈이 있었다면 그 돈은 아직 누구의 손에도 들어가지 않았다. 누군가는 그 자리를 다시 찾으러 올 것이다.
그리고 그보다 먼저 수문 너머의 긁는 소리가 무엇인지 알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