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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질려서 101회차를 시작했다3화

신이 질려서 101회차를 시작했다

신이 질려서 101회차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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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방송 사고

강남역 사거리 상공을 찢고 열린 푸른빛 균열은 거대한 상처처럼 박혀 있었다.

찢어진 차원문 사이로 검은 안개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고 도로 한복판에는 아스팔트를 짓이기며 뛰쳐나온 늑대 형상의 마수들이 포효하고 있었다.

크아아아악!

몸길이만 3미터에 달하는 송곳니 늑대 무리였다. 강철보다 단단한 가죽과 성인 남자의 허리를 한 입에 동강 낼 수 있는 거대한 턱을 가진 E급 최상위 마수.

백 번의 삶 동안 준혁이 수도 없이 썰어 넘겼던 녀석들이었다.

"전원 방어선 사수해! 각성자 협회 증원이 올 때까지 버텨야 한다!"

경찰 방패를 든 기동대원들이 바리케이드를 세우며 필사적으로 소리쳤다. 그러나 마수의 날카로운 발톱이 스치기만 해도 방탄 방패가 두 동강 났다. 비명과 굉음이 도로를 뒤덮었다.

그 아수라장의 한가운데에 어색한 표정으로 철제 롱소드를 쥐고 서 있는 청년이 있었다.

‘박민우.’

준혁은 횡단보도 건너편 편의점 파라솔 밑에 선 채 청년의 머리 위에 떠오른 시스템 표식을 읽었다.

[Casting: Sub_Actor]

[돌발 퀘스트: 시민을 지키는 방패가 되어라!]

[보상: 1,000G, 시청자 주목도 상승]

[실패 패널티: 사망 위험 극대화]

실소가 절로 새어 나왔다.

메인 퀘스트를 거부하자마자 시스템이 준비한 대체 주연이었다. F급 강화계 각성자로 오늘 갓 협회에 등록된 사회 초년생. 저 녀석은 아무것도 모른 채 시스템이 띄운 돌발 퀘스트의 얄팍한 문구에 낚여 사지로 내몰린 것이었다.

"준혁 님! 저기 보세요!"

허공에 뜬 엘리스가 파랗게 질린 표정으로 준혁의 팔을 잡아끌었다.

"저 사람 그냥 두면 죽어요! 준혁 님이 나서셔야 해요. 지금 들어가서 검을 휘두르면 시청자들도 환호할 거예요!"

준혁은 대답 대신 손에 든 캔커피를 땄다. 칙 하는 소리와 함께 달콤 쌉싸름한 향이 번졌다.

"내가 왜?"

"네? 하, 하지만 영웅의 의무가……!"

"영웅의 의무 같은 건 시스템 규약 어디에도 안 적혀 있어. 방금 확인했잖아."

준혁은 캔커피를 홀짝이며 느긋하게 난간에 등을 기댔다.

그의 눈앞 허공에서 관조자들의 반투명한 시선이 분주하게 맴돌기 시작했다.

[관조자 '칼날깎는노인': "저놈 뭐야? 각성자 지원금 10만 골드 챙긴 놈이 캔커피 마시면서 구경하고 있네?"]

[관조자 '도파민중독자7': "아니 게이트 앞까지 왔길래 각성기 한 방 갈겨줄 줄 알았더니 진짜 팝콘 뜯는 거임? 실화냐?"]

[관조자 '사이다감별사': "에이, 츤데레인 척하면서 마지막에 멋지게 뛰어들겠지. 저런 클리셰 한두 번 보나."]

[관조자 '시청료아까워': "빨리 썰어라! 고구마 먹이지 말고!"]

채팅창이 달아오를수록 준혁의 입꼬리는 비틀려 올라갔다.

녀석들은 여전히 이 세계를 대본대로 굴러가는 3류 액션 영화로 보고 있었다. 주인공이 위기의 순간에 난입해 약자를 구하고 화려한 스킬로 보스를 베어 넘기는 정석적인 그림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기다려 봐. 너희가 좋아하는 하이라이트는 지금부터니까."

준혁이 중얼거렸다.

그 순간 전방에서 처절한 굉음이 터졌다.

쿠우웅!

무리 중에서도 유난히 거대한 은회색 털의 리더 늑대가 기동대의 방어선을 완전히 부수고 돌진했다. 철제 바리케이드가 종잇장처럼 구겨져 날아갔다.

"으, 으아아악!"

대체 주연으로 낙점된 박민우가 기겁하며 검을 휘둘렀지만 늑대의 단단한 가죽에 흠집 하나 내지 못했다. 오히려 늑대의 거대한 앞발에 튕겨 나가 아스팔트 바닥을 굴렀다.

크르르르!

피 맛을 본 늑대의 시선이 주변을 훑었다. 그리고 도로 건너편에서 태연하게 커피를 마시고 있는 준혁을 포착했다.

마수의 붉은 눈동자에 살기가 번뜩였다.

쿵! 쿵! 쿵!

지면을 박차며 은회색 늑대가 쇄도했다. 시속 80킬로미터가 넘는 맹렬한 속도였다. 거대한 아가리가 찢어지며 시퍼런 송곳니가 준혁의 목덜미를 겨냥했다.

[관조자 '무신강림': "왔다! 지금 발도술 박아라!"]

[관조자 '도네이션폭격기': "보스급 1타 처치 시 5,000G 후원 간다!"]

[알림: 시청자 후원 미션이 활성화되었습니다.]

엘리스가 비명을 질렀다.

"피하세요! 아니, 공격하세요! 스킬 창을 여세요!"

하지만 준혁은 허리춤의 단검에 손도 대지 않았다.

마수의 숨결에서 풍기는 역한 피비린내가 코끝을 찔렀다. 0.1초 뒤면 그의 두개골이 부서져 나갈 찰나였다.

슈우욱!

준혁은 단 반 걸음 뒤로 물러났다.

정확히는 고개를 3센티미터 왼쪽으로 기울이고 오른발의 축을 5도 비틀었을 뿐이었다.

콰아앙!

늑대의 거대한 주둥이가 준혁의 뺨을 스치듯 지나쳐 허공을 물었다. 턱이 맞부딪히며 딱 하는 파열음이 울렸다.

준혁의 옷깃 하나 건드리지 못한 완벽한 헛스윙이었다.

"……어?"

엘리스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채팅창의 글자들도 일순간 멈칫했다.

크르르?

자신의 공격이 빗나갔다는 사실을 믿지 못한 늑대가 고개를 돌리며 왼쪽 앞발을 휘둘렀다. 아스팔트를 파고들며 날아오는 부채꼴 모양의 휩쓸기 공격이었다.

보통의 각성자라면 방패로 막거나 뒤로 굴러 피해야 할 궤적이었다.

하지만 준혁은 구르지 않았다.

그는 늑대의 앞발이 날아오는 궤적의 정중앙이자 관절이 꺾이는 사각지대로 반 보 파고들었다.

쉬익!

날카로운 발톱 세 개가 준혁의 가슴팍 바로 앞 허공을 허무하게 갈랐다. 털끝 하나 스치지 않았다.

준혁은 여전히 오른손에 캔커피를 든 채였다. 심지어 커피는 한 방울도 쏟아지지 않았다.

"패턴이 100년 전이랑 똑같네. 업데이트 좀 하지 그랬냐."

준혁이 늑대의 콧등을 향해 차갑게 웃었다.

100번의 회귀였다. 이 송곳니 늑대라는 몬스터가 어떤 각도에서 근육을 수축시키고 몇 프레임 뒤에 타격 판정이 발생하는지 준혁은 눈을 감고도 잴 수 있었다.

이 세계의 모든 마수는 고차원 게임 엔진이 짜놓은 정밀한 스크립트대로 움직였다. 공격 모션의 선딜레이와 후딜레이 그리고 히트박스의 유효 범위까지 전부 데이터로 정해져 있었다.

그 데이터를 머릿속에 통째로 외우고 있는 준혁에게 이런 직선형 공격은 느려 터진 슬로우 모션에 불과했다.

크아아아악!

모욕감을 느낀 늑대가 광란의 연타를 쏟아붓기 시작했다.

물어뜯기, 앞발 내려찍기, 꼬리 후려치기, 회전 도약.

콰쾅! 콰과광!

주변 도로가 박살 나며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러나 그 거대한 파괴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에서 준혁은 물 흐르듯 가볍게 몸을 흔들 뿐이었다.

상체를 살짝 젖히고 고개를 갸웃하며 발뒤꿈치를 살짝 들어 올린다.

그 미세한 움직임 하나하나가 늑대의 모든 공격 판정을 1밀리미터 차이로 빗나가게 만들었다.

마치 몬스터를 상대로 광대놀음을 하듯 격투 게임에서 상대를 능욕하는 완벽한 티배깅 무빙이었다.

[관조자 '도파민중독자7': "????? 저거 무빙 뭐임?"]

[관조자 '칼날깎는노인': "아니 왜 공격을 한 대도 안 때려? 왜 딜을 안 넣는데?!"]

[관조자 '발도장쿵쿵': "피하는 거 개 쩌는데 개 킹받네 ㅋㅋㅋㅋ 저 새끼 지금 마수 놀리고 있는 거 맞지?"]

[관조자 '운영자나와라': "스킬 딜량 0 실화냐? 사이다 액션 보러 왔는데 왜 슬랩스틱 코미디를 찍고 자빠졌어!"]

[알림: 시스템 전투 분석 로그에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전투 상태 지속 시간: 3분 12초 / 누적 피해량: 0 / 회피율: 100%]

[경고: Viewer_Satisfaction 지표가 비정상 패턴을 기록 중입니다.]

엘리스가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준혁 님! 제발 한 대만 때려주세요! 시스템이 전투 등급을 산출하지 못해서 에러 로그가 폭주하고 있어요!"

"내가 왜 때려? 때리면 칼날 상하잖아."

준혁은 늑대가 헐떡이며 잠시 숨을 고르는 틈을 타 캔커피의 마지막 한 모금을 마셨다.

"크르르…… 허억…… 헉……."

3분 동안 전력으로 허공을 난타한 늑대는 혓바닥을 길게 늘어뜨린 채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가상 현실 엔진의 스태미나 수치가 바닥을 친 탓이었다.

마수의 인공지능 루틴에 '공격이 일절 통하지 않는 목표'에 대한 대처법 따위는 입력되어 있지 않았다. 늑대의 눈에는 공포와 혼란이 가득했다.

준혁은 다 마신 빈 캔을 늑대의 이마에 툭 던졌다.

탱그랑.

알루미늄 캔이 콧등에 맞고 떨어지자 늑대의 이성의 끈이 완전히 끊어졌다.

크와아아아앙!

마수는 남아 있는 모든 마력을 폭주시키며 준혁을 향해 몸 전체를 내던지는 결사의 육탄 돌격을 감행했다. 방향 전환도 불가능한 무모한 직선 돌진이었다.

준혁은 기다렸다는 듯 뒤편에 서 있던 두꺼운 콘크리트 지하철 방호벽 쪽으로 발을 옮겼다.

그리고 늑대가 코앞까지 도달한 바로 그 0.01초의 순간 옆으로 훌쩍 몸을 비켰다.

콰아아아앙!

엄청난 굉음과 함께 늑대의 머리통이 지하철 환풍구 콘크리트 벽에 그대로 처박혔다.

쩍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벽면이 움푹 파였고 늑대는 뇌진탕을 일으키며 네 다리를 바르르 떨더니 그대로 거품을 물고 쓰러졌다.

[몬스터 '은빛송곳니 늑대 리더'가 [기절] 및 [자멸] 상태이상에 빠졌습니다.]

[누적 가한 피해: 0]

[전투 종료 판정 불가.]

침묵이 내려앉았다.

방어선 뒤에서 덜덜 떨며 지켜보던 기동대원들과 박민우는 턱이 빠질 듯한 표정으로 굳어 있었다. 피 흘리며 싸워야 할 무시무시한 E급 마수가 한 청년의 발걸음 몇 번에 제풀에 지쳐 벽에 대가리를 박고 뻗어 버렸으니 그럴 만도 했다.

"어…… 어?"

박민우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준혁은 쓰러진 늑대를 돌아보지도 않고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었다.

"멍하니 있지 말고 가서 막타나 쳐. 공짜 경험치잖아."

"네? 아, 네! 넵!"

박민우가 허둥지둥 달려들어 기절한 늑대의 목덜미에 칼을 꽂았다.

그 순간 관조자들의 채팅창이 폭발했다.

[관조자 '도파민중독자7': "와 ㅋㅋㅋㅋㅋ 진짜 미친놈이네 ㅋㅋㅋㅋㅋ 손 하나 안 대고 보스를 자살시켰어 ㅋㅋㅋㅋㅋ"]

[관조자 '사이다감별사': "이게 무슨 사이다야! 개답답한데 묘하게 계속 보게 되네 젠장"]

[관조자 '악플러1호': "운영자 새끼 일 안 하냐? 저런 트롤러 영구정지 안 시키고 뭐함?"]

[관조자 '어둠의관조자': "흥미롭군. 시스템의 공격 프레임을 완벽히 꿰뚫고 있어. 1,000G 후원."]

[1,000G가 후원되었습니다.]

[수신자: 강준혁]

준혁은 피식 웃었다.

시청률을 올리고 싶어 안달 난 운영자와 쾌락을 바라는 관조자들의 얼굴에 엿을 제대로 먹였다. 정석적인 영웅물을 기대했던 그들에게 준혁이 선사한 것은 완벽한 방송 사고였다.

그때 박민우가 처치한 늑대의 시체에서 희미한 빛과 함께 작은 결정체 하나가 굴러떨어졌다.

탁.

푸르스름한 빛을 뿜는 E급 마석이었다.

박민우는 준혁의 눈치를 보며 마석을 건네려 했다.

"저, 저기…… 이거 형님이 잡으신 거나 다름없는데……."

"됐어. 막타 친 놈이 가져가는 게 룰이지."

준혁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슬쩍 손을 뻗어 마석의 표면을 손가락으로 훑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디버그 명령어를 호출했다.

'디버그 패널. 타겟 아이템 소스코드 스캔.'

파직!

준혁의 시야 한구석에 반투명한 검은 콘솔창이 작게 떠올랐다.

[Item: Low_Magic_Stone_E]

[Mana_Capacity: 12.5 / Float32]

[Security_Level: None]

[Read/Write: Accessible (Debug Level 1)]

준혁의 눈이 가늘어졌다.

마석의 데이터 구조가 암호화조차 되어 있지 않았다. 평범한 부동소수점 변수로 마력 수치가 훤히 노출되어 있었다.

'수정 권한이 열려 있군.'

100번 구르는 동안에는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시스템의 날것 그대로의 밑바닥이었다.

이 허술한 데이터 변수 하나만 손보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기형적인 마석을 만드는 것도 일조차 아니었다.

준혁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걸렸다.

방송을 망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녀석들이 구축해 놓은 경제 시스템과 자원까지 밑바닥부터 털어먹어야 진짜 복수였다.

"엘리스."

준혁이 허공을 향해 나직하게 불렀다.

"네, 네? 준혁 님…… 저 지금 운영자님 로그 감시대에 보고서 쓰느라 정신이……"

"강남에서 제일 큰 각성자 암시장이 어디지?"

엘리스의 파란 눈동자가 경악으로 물들었다.

"아, 암시장이요? 거긴 미등록 마석을 거래하는 불법 구역인데요!"

"알아."

준혁은 주머니에서 손을 빼며 등을 돌렸다.

"돈 복사하러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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