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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질려서 101회차를 시작했다2화

신이 질려서 101회차를 시작했다

신이 질려서 101회차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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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영웅은 은퇴했습니다

깨진 메인 퀘스트의 파편이 허공에서 한 조각씩 꺼져 갔다.

푸른빛 창은 마지막까지 문장을 붙들고 있었다. 지구를 구하라. 최초의 각성자가 되어라. 인류의 희망이 되어라.

그 문장들이 검은 노이즈 속으로 잠겨 사라지자 고시원 방 안은 기묘할 만큼 조용해졌다.

엘리스는 두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준혁과 허공을 번갈아 보았다. 늘 환하게 떠 있던 홀로그램 소녀의 얼굴에는 처음 보는 종류의 공포가 떠올라 있었다.

"메인 퀘스트가 정말로 사라졌어요. 이건 취소가 아니라 파손이에요."

"보면 몰라?"

"그럼 보상도 사라져요! 영웅의 검도, 각성 지원금도, 시청자 호감도도 전부요!"

준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곰팡이 냄새가 밴 벽지와 물때 낀 싱크대가 눈에 들어왔다. 지금 그의 주머니에는 버스 카드와 동전 몇 개뿐이었다.

그래도 그는 웃었다.

"그 지원금은 보상이 아니야."

엘리스가 눈을 깜빡였다.

"네?"

"영웅이 될 놈을 게이트까지 밀어 넣으려고 먼저 던져 주는 미끼지."

준혁이 손을 들었다.

"디버그 패널. 메인 퀘스트 잔여 참조값 표시."

파직!

허공에 떠오른 검은 창이 깨진 퀘스트 파일의 흔적을 훑었다. 엘리스의 푸른 창이 항의하듯 몇 번 흔들렸지만 이번에는 막을 수 없었다.

[Target: Main_Quest_001.lua / Status: Deleted]

[Linked reservation found.]

[Prepaid_Awakener_Grant: 100,000G]

[Classification: First Hero Casting Fee]

준혁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역시였다.

그 돈은 위험 수당도, 전투 보상도 아니었다. 가난한 청년 하나를 게이트로 밀어 넣고 카메라가 원하는 방식으로 싸우게 만들기 위한 출연 계약금이었다.

엘리스가 다급하게 손을 저었다.

"그건 안내상 지원금이에요. 게이트 공략에 참여하시면 정식 지급되는……"

"정식 지급이 아니라 예약 지급이겠지. 취소 조건도 열어 봐."

잠깐의 정적 뒤 콘솔에 작은 문장이 더 떠올랐다.

[Cancellation authority: Administrator or higher]

[Quest deletion does not revoke a completed identity verification.]

엘리스의 입술이 멎었다.

준혁은 무릎 위에 놓인 낡은 외투를 집어 들었다. 백 번의 삶 동안 그는 누군가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면 아무리 더러운 퀘스트라도 받아야 한다고 믿었다. 그 믿음은 수많은 죽음을 자극적인 장면으로 편집하게 만들었다.

"오메가가 직접 손대기 전까지 저 돈은 내 거야."

"준혁 님. 그 돈을 받으시면 더더욱 게이트에 가야……"

"아니."

준혁이 문고리를 잡았다.

"받고 안 간다."


고시원 계단을 내려가는 동안 스마트폰 재난 알림이 연달아 울렸다.

—강남역 인근 비정상 마력 반응 감지.

—미등록 각성자는 가까운 각성자 지원센터로 이동하십시오.

복도 끝에서 담배를 피우던 관리인이 고개를 내밀었다.

"학생, 밖에 무슨 일 났어? 경찰차가 막 지나가던데."

준혁은 잠시 발을 멈췄다.

이 남자는 첫 게이트 뒤 피난민을 받아 주려 문을 열었다가 마수에게 죽었다. 준혁은 그 장면을 백 번 보았다.

"문 잠그세요. 오늘은 누구든 함부로 들이지 말고요."

"뭐?"

"뉴스만 믿지 마세요. 해 지기 전에는 방에 들어가 계시고."

관리인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담배를 비벼 껐다.

허공에서 투명한 렌즈 세 개가 낮게 따라붙었다.

[관조자 '체인저99': "시작부터 도망 엔딩? 지원센터까지 가는 건 그래도 각성 준비인가?"]

[관조자 '별빛사냥꾼': "이런 애들이 막상 게이트 열리면 제일 먼저 달려감. 국룰임."]


강남 각성자 지원센터는 평소의 주민센터처럼 보이려고 애쓰고 있었다.

유리문 안쪽에는 플라스틱 의자와 ‘각성자 긴급 등록’ 현수막이 급하게 놓여 있었다. 직원들의 얼굴은 창백했고 복도 끝에서는 누군가가 울음을 삼켰다.

전광판에는 강남역 부근의 푸른 균열과 방패를 든 특수 대응반이 보였다.

화면 구석에는 붉은 글자가 반복됐다.

[D급 게이트 안정화까지 00:42:18]

그 숫자를 보는 순간 준혁의 손끝이 굳었다.

마흔두 분 뒤 첫 번째 마수가 나온다. 그 뒤로 열세 명이 다치고 한 명이 죽는다. 원래의 대본에서 준혁은 그 마수를 베고 관조자들은 용기의 시작이라며 후원을 쏟아냈다.

이번에는 그 장면을 주지 않을 것이다.

"다음 분이요."

접수 창구의 직원이 준혁을 불렀다.

"강준혁 씨 맞으시죠? 마력 반응이 확인됐습니다. 최초 각성자 긴급 등록 대상이세요. 축하드립니다."

직원은 말하면서도 축하한다는 표정을 짓지 못했다. 서류 묶음과 카드 단말기를 밀어놓은 손이 떨렸다.

"여기 신분 확인하시고 계좌 등록을 하시면 초기 각성 지원금이 지급됩니다. 그리고 이쪽에 게이트 참여 동의서를……"

준혁은 서류를 넘겼다.

맨 앞장은 신분 등록 신청서였다. 두 번째 장에는 긴급 배정 동의서가 붙어 있었다. 문서 아래쪽의 작은 글씨가 눈에 걸렸다.

[등록자는 재난 단계 발령 시 시스템이 지정한 현장에 우선 배정될 수 있음]

준혁이 손가락으로 그 문장을 눌렀다.

"이건 안 씁니다."

직원이 당황했다.

"하지만 최초 각성자분은 보통 함께…… 지금 현장이 급해서요."

"보통이라는 말은 규정이 아니라는 뜻이죠."

"그, 그건 맞지만 지원금은 참여 의지가 있는 분에게……"

엘리스가 준혁의 옆에서 애원하듯 말했다.

"준혁 님, 여기서 서명만 하시면 돼요. D급이면 위험하지 않아요. 이전에도 언제나……"

그녀는 끝맺지 못했다.

이전에도 언제나 준혁은 갔다.

그가 가면 모두가 안심했다. 그가 피를 흘리면 시스템은 감동적인 음악을 깔았다. 그가 살아 돌아오면 사람들은 박수를 쳤다. 그리고 몇 년 뒤 더 거대한 비극을 향해 그를 다시 밀어 넣었다.

준혁은 펜을 내려놓았다.

"지원금 신청서와 동의서는 별개예요. 신분 등록만 처리해 주세요."

직원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시스템 안내에는 한 묶음으로 표시됩니다. 제가 임의로 분리하면……"

"당신이 분리하는 게 아닙니다. 원래부터 분리돼 있어요."

준혁은 직원에게 들리지 않게 낮게 말했다.

"디버그 패널. 지급 승인 조건 표시."

검은 창이 서류 위에 겹쳤다.

[Grant_Eligibility]

[1. Identity verified: Complete]

[2. Awakener registration: Complete]

[3. Attendance obligation: Optional addendum]

[Payment lock: Awaiting user confirmation]

준혁은 마지막 줄을 바라보다가 손가락을 튕겼다.

[Command: Grant_Confirmation.Accept()]

띠링.

직원 앞 단말기가 먼저 반응했다. 화면을 들여다본 직원의 눈이 커졌다.

"지, 지급 승인? 잠시만요. 등록이 끝났다고요?"

그녀는 동의서와 단말기 화면을 몇 번이나 번갈아 보았다. 시스템이 스스로 승인한 절차를 인간 직원이 거부할 수는 없었다.

준혁은 신분 확인 패드에 엄지를 댔다.

[초기 각성 지원금 100,000G가 지급되었습니다.]

금빛 숫자가 잔액란에 떠올랐다.

십만 G은 지금의 준혁에게 한동안 쉴 방과 장비를 고를 선택권이었다.

엘리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이건 시스템의 의도와 달라요. 지원금을 받으셨으면……"

"의도는 네가 정해. 규정은 내가 읽는다."

준혁은 카드 단말기에서 손을 뗐다.

허공의 렌즈들이 한꺼번에 밝아졌다.

[관조자 '아카샤정주행': "와, 동의서만 빼고 보상 수령한 거야? 이게 되네?"]

[관조자 '체인저99': "지금이라도 출동하면 되지. 돈 받고 영웅 되는 전개면 깔끔한데."]

[관조자 '별빛사냥꾼': "설마 진짜 먹튀?"]

준혁은 그 문장을 읽고 코웃음을 쳤다.

"그래. 먹튀다."


센터 밖에서 사이렌이 길게 울렸다.

전광판의 시간이 00:31:06으로 바뀌었다. 방금까지 안내 데스크에만 매달리던 사람들이 유리문 쪽으로 몰려가 화면을 올려다봤다.

누군가가 낮게 중얼거렸다.

"저 안에서 진짜 괴물이 나온다는 거야?"

"D급이면 헌터들이 알아서 한다잖아."

"그 헌터는 어디 있는데?"

사람들의 목소리가 조금씩 높아졌다.

직원은 준혁을 붙들 듯 창구 밖으로 나왔다.

"강준혁 씨. 지금이라도 동의하시면 현장까지 지원 차량을 보내 드릴 수 있어요. 최초 공략 추가 보상도 있고요."

엘리스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준혁 님은 할 수 있어요. 이 세계가 위험해지면……"

준혁은 창밖의 푸른 균열을 바라보았다.

저 문 안에는 아직 아무도 없다. 아직은 죽은 사람도 없다.

그 사실이 목을 조였다.

그가 한 걸음만 내디디면 열세 명은 다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한 명도 죽지 않을지도 모른다. 백 번 동안 그래 왔으니까.

그러나 그가 늘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시스템은 다음 위기를 더 쉽게 만들었다. 누군가가 영웅을 기다리는 세계는 결국 영웅이 없으면 무너지는 세계가 됐다.

준혁은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 한 명을 살리려고 내가 다시 대본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어."

"무슨…… 말씀을……"

"내가 안 가면 누군가는 살아남는 법을 배워야 해."

준혁은 휴대폰으로 방금 지급된 돈의 일부를 보증금 계좌로 이체했다. 남은 금액은 생활비와 장비 구매용 지갑으로 나눴다. 손이 멈추지 않았다.

이것은 도망칠 돈이 아니었다.

누구의 허락도 받지 않고 움직이기 위한 첫 번째 자금이었다.

그는 유리문을 향해 걸었다. 직원이 놀라 뒤따라왔다.

"현장에 가시는 거예요?"

"아니."

문이 열리자 관조자의 렌즈들이 다시 그의 주위로 몰려들었다. 준혁은 렌즈 하나를 똑바로 바라봤다.

"오늘부터 영웅은 은퇴했다."

"너희가 원하는 건 누군가 죽기 전에 달려들어 목숨을 구하는 장면이겠지."

"그 장면은 없다. 내 목숨값은 내가 챙긴다. 이 세계가 필요하면 너희가 직접 살려 봐."

[경고: 핵심 아바타의 출연 거부가 감지되었습니다.]

[Viewer_Expectation 값이 비정상적으로 하락합니다.]

[대체 주연 후보를 탐색합니다.]

마지막 문장을 본 순간 준혁의 걸음이 멈췄다.

대체 주연.

시스템은 빈자리를 그냥 두지 않는다. 준혁이 빠지면 누군가 다른 사람을 첫 게이트의 제물로 세울 것이다.

그 이름이 아직 보이지 않는 것이 더 나빴다.

준혁은 강남역과 반대 방향으로 두 걸음 걸었다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게이트에 들어가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누가 대본의 다음 희생양으로 선택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관조자의 렌즈를 향해 입꼬리를 올렸다.

"좋아. 주연을 바꾸겠다면 구경은 해 줘야지."

준혁의 발끝이 푸른 균열이 떠 있는 강남역 쪽을 향했다.

이번에는 검을 들고 뛰어들 영웅으로서가 아니었다.

시스템이 가장 아끼는 방송을 망가뜨릴 관객으로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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