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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트 앞 24시 해장국집5화

게이트 앞 24시 해장국집

게이트 앞 24시 해장국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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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뚝배기 평화 협정

아침 안개가 채 걷히지 않은 새벽 여섯 시 성동 게이트 앞 횡단보도는 여느 때보다 팽팽한 기운으로 얼어붙어 있었다.

원인은 24시 해장국집 앞 좁은 인도에 늘어선 줄이었다.

푸른색 경장갑을 두른 블루 소드 헌터 서준혁과 길드원 셋이 먼저 와서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그 맞은편 골목에서 붉은 망토와 육중한 흑철 판갑을 두른 대여섯 명의 장정이 쿵쾅거리며 걸어왔다.

가슴팍에 선명하게 새겨진 포효하는 사자 문양. 국내 랭킹 2위 공략 길드 ‘붉은 사자’의 제2공격대였다.

선두에 선 거구의 사내 한상진이 굳은 표정으로 식당 간판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목덜미와 팔뚝에는 화염계 마수와 사투를 벌이고 나온 흔적인 붉은 반점이 울긋불긋 돋아 있었다. 던전 심층부의 열기와 마나 역류로 목이 바짝 타들어가는지 그는 헛기침을 뱉어냈다.

“여기가 그 차우성이 혓바닥을 놀리며 찬양하던 국밥집이란 말이지.”

서준혁이 고개를 들고 차갑게 응수했다.

“말조심하십시오. 우리 길드장님을 그렇게 부르는 건 예의가 아닙니다.”

한상진이 코웃음을 쳤다. 묵직한 대검을 바닥에 쿵 내려놓자 보도블록 사이로 미세한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예의? 차우성이 은퇴 번복하려고 삼류 식당이랑 손잡고 언론 플레이를 펼친다는 소문이 파다한데 무슨 예의를 찾나? 뼈다귀 국물에 마나 회복제라도 몰래 탔겠지.”

“검증도 안 된 모함을 늘어놓으실 거면 당장 돌아가시죠.”

“돌아가? 웃기는군. 우리도 밤새 4단계 게이트를 뚫고 나와서 속이 뒤집어질 지경이다. 정말로 마나 화상이 가라앉는지 내 눈으로 직접 씹어 삼켜봐야겠어.”

두 길드의 헌터들이 일제히 무기 손잡이에 손을 얹었다. 좁은 인도 위로 푸른 마력과 붉은 열기가 충돌하며 살벌한 살기가 피어올랐다. 새벽 출근길을 지나던 일반 시민들이 기겁하며 발걸음을 돌릴 정도였다.

그때 식당 유리문이 벌컥 열렸다.

앞치마를 두른 미아가 손에 양념통과 번호표 뭉치를 든 채 밖으로 쑥 걸어 나왔다.

“거기 붉은 망토 아저씨들. 무기 바닥에 찍지 마세요. 보도블록 깨지면 사장님이 물어내라고 해요.”

살기를 뿜어대던 한상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A급 공격대장의 위압감을 정면으로 맞고도 소녀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번호표를 뜯어 내밀었다.

“십사 번 십오 번이에요. 밖에서 싸우거나 살기 뿜으시면 대기표 바로 압수하고 영업 방해로 게이트 관리국에 신고합니다.”

“뭐? 꼬맹아 지금 내가 누군지 알고…….”

“알아요. 붉은 사자 길드 한상진 대장님이시잖아요. TV에서 봤어요. 그래도 줄은 서셔야 해요. 아까 블루 소드 분들도 줄 서서 기다렸어요.”

미아는 한상진의 손바닥에 번호표를 찰싹 쥐여주고는 서준혁 쪽을 돌아보았다.

“서준혁 님 일행분들 먼저 들어오세요. 안쪽에 네 자리 났어요.”

서준혁은 승리감 섞인 미소를 지으며 일어섰다. 한상진은 손바닥에 쥐인 번호표 ‘15’를 내려다보며 어처구니없다는 듯 헛숨을 들이켰다.

“이깟 종이 쪼가리 하나로 날더러 밖에서 떨라는 건가?”

“네. 추우시면 가게 옆 온풍기 바람 쐬고 계세요. 십 분이면 자리 나요.”

미아는 문을 쾅 닫고 쏙 들어가 버렸다. 남겨진 붉은 사자 대원들은 멍하니 닫힌 문을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십오 분 뒤 문이 다시 열렸다.

“십오 번 손님 네 분 들어오세요.”

식당 안으로 들어선 한상진과 대원들은 다시 한번 헛웃음을 삼켰다. 안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좁았다. 네모난 4인용 테이블 세 개와 2인용 테이블 세 개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하필이면 빈자리는 방금 들어간 블루 소드 일행의 바로 옆 테이블이었다.

한상진이 덩치에 맞지 않게 삐걱거리며 의자에 앉았다. 흑철 갑주가 부딪히는 소리가 요란했다. 옆 테이블에 앉은 서준혁과 어깨가 닿을 정도로 좁은 간격이었다.

“좁아터졌군.”

“갑옷이나 벗고 앉으시죠. 쇠 냄새가 진동합니다.”

서준혁이 젓가락을 가지런히 놓으며 쏘아붙였다.

“내 갑옷에 불만 있으면 네가 자리를 비우든가.”

두 사람이 좁은 식탁 사이에서 찌릿한 시선을 주고받는 사이 주방 쪽에서 묵직한 소리가 들려왔다.

달그락.

태현이 커다란 쟁반에 김이 펄펄 솟구치는 뚝배기 네 개를 얹고 다가왔다.

탁. 탁.

뚝배기가 테이블 위에 차례로 놓였다. 짙은 갈색의 사골 육수 위로 붉은 고추기름이 알싸하게 퍼져 있었고 그 위에는 산더미 같은 시래기와 들깨가루 굵직한 대파가 소복하게 얹혀 있었다. 뚝배기 안쪽에서는 보글보글 거품이 솟구치며 진하고 구수한 고기 향이 홀 전체를 단숨에 장악했다.

살벌하던 살기와 쇠 냄새가 순식간에 구수한 사골 냄새에 덮여 사라졌다.

태현은 물병과 깍두기 단지를 쿵 내려놓으며 한상진을 덤덤하게 바라보았다.

“뜨거우니까 조심해서 드세요. 그리고 숟가락 말고 딴 거 잡고 설쳐대다 뚝배기 엎으면 밥값 세 배로 물립니다.”

한상진의 눈썹이 꿈틀했다.

“주인장. 냄새는 그럴듯하다만 내 속이 지금 화염 마나 과부하로 다 타버리기 직전이다. 엉터리 음식을 먹고 속이 더 뒤집어지면 책임을 질 수 있나?”

태현은 행주로 테이블을 훔치며 대꾸했다.

“화염 마수 피 뒤집어쓰고 체내에 불순물이 쌓였을 땐 자극적인 것보다 푹 고아낸 기름기 없는 국물이 맞아요. 고춧가루 덜 넣고 콩나물 우린 맑은 육수 섞었으니까 헛소리 말고 국물부터 들이켜요.”

태현은 뒤도 안 돌아보고 주방으로 쑥 들어가 버렸다.

한상진은 뚝배기를 내려다보았다. 펄펄 끓는 국물 표면에서 올라오는 향이 이상하리만치 코끝을 편안하게 찔렀다. 목구멍이 바짝 말라 침조차 삼키기 힘들던 통증 속에서 식욕이라는 원초적인 감각이 불쑥 고개를 들었다.

“대장님. 그냥 한 모금 드셔 보시죠.”

뒤따라온 붉은 사자 대원이 목을 축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한상진은 뚝배기 옆에 놓인 쇠숟가락을 들었다. 숟가락 끝으로 조심스레 국물을 떠올렸다. 진한 육수가 숟가락을 타고 넘쳐흘렀다.

후후 불어 한 모금 입에 넣는 순간.

“……!”

한상진의 두 눈이 번쩍 뜨였다.

뜨거운 국물이 혀를 거쳐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순간 가슴 속을 짓누르던 칼칼하고 메마른 불길이 거짓말처럼 사그라들었다. 묵직하고 깊은 사골의 감칠맛 뒤로 시원하고 달큰한 배추와 콩나물의 맛이 부드럽게 맴돌았다.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속 깊은 곳까지 뜨거운 기운이 전해졌다.

체내 마나 순환로 곳곳에 엉겨 붙어 타는 듯한 통증을 유발하던 화염 잔류 찌꺼기들이 국물의 온기를 타고 부드럽게 녹아내리는 감각이었다.

한상진은 자기도 모르게 숟가락질을 멈추지 못했다.

두 모금 세 모금. 국물을 들이켤 때마다 굳어 있던 위장이 스르르 풀리고 목덜미의 붉은 반점이 옅어지며 온몸에서 후끈한 땀이 배어 나왔다.

“어…… 대장님 안색이 돌아오는데요?”

대원들의 경악 섞인 목소리에도 한상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큼직한 뼈다귀에 붙은 고기를 젓가락으로 뜯어 입에 넣었다. 이틀 동안 가마솥에서 고아낸 고기는 씹을 필요도 없이 혀 위에서 사르르 흩어졌다.

옆 테이블에서 밥을 먹던 블루 소드의 도윤이 뚝배기를 긁다 말고 힐끗 쳐다보았다.

“거기 깍두기 국물도 살짝 넣어 드시면 더 시원합니다.”

한상진이 흠칫하며 숟가락을 멈추었다. 서준혁과 눈이 마주쳤다.

평소라면 게이트 독점권을 두고 멱살을 잡았을 라이벌 길드의 얼굴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양쪽 모두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으며 뚝배기를 비우는 처지였다.

서준혁이 말없이 자기 테이블에 있던 깍두기 집게를 건넸다.

“잘 익었습니다.”

한상진은 헛기침을 한 번 뱉고는 집게를 받아 들었다.

“……흠. 고맙군.”

새빨갛게 익은 무 깍두기 두 조각을 밥 위에 얹어 국물에 말아 넣었다. 아삭한 소리와 함께 새콤하고 시원한 즙이 퍼지며 국밥의 맛을 한층 더 끌어올렸다.

붉은 사자 대원들도 더 이상 눈치를 보지 않고 뚝배기에 코를 박았다.

후루룩 쩝쩝 들이켜는 소리만이 좁은 식당 안을 가득 채웠다. 살벌하던 살기는 온데간데없고 뚝배기 바닥을 긁는 숟가락 소리만 경쾌하게 울려 퍼졌다.

식사를 마친 한상진은 빈 뚝배기 바닥을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가슴을 짓누르던 답답함이 사라지고 머리가 맑아져 있었다. 손목에 찬 마나 측정기를 확인하니 엉망으로 날뛰던 생체 마나 파형이 완벽한 정현파를 그리며 안정되어 있었다.

‘이건…… 포션 따위가 아니다. 진짜 치료다.’

한상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지갑을 꺼냈다. 계산대 앞으로 걸어가자 미아가 계산기를 두드렸다.

“네 분 삼만 육천 원입니다.”

한상진은 신용카드를 내밀며 주방 안쪽의 태현을 쳐다보았다.

“사장님.”

태현이 설거지를 하다 말고 고개를 돌렸다.

“속은 좀 풀렸습니까?”

“……완벽하더군요. 아까 헛소리한 건 사과하겠습니다.”

한상진은 카드를 받아 챙기며 덧붙였다.

“앞으로 우리 붉은 사자 2공격대도 성동 게이트에서 나올 때마다 들르겠습니다. 혹시 블루 소드 녀석들이 여기서 텃세를 부리면 말씀하십시오. 우리가 치워드리겠습니다.”

식당 문을 열고 나가려던 서준혁이 뒤를 돌아보며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렸다.

“누가 누구를 치운다는 겁니까? 대기표나 얌전히 뽑으시죠.”

한상진이 씩 웃었다.

“당연히 뽑을 거다. 여기서는 대기표가 법이니까.”

태현은 계산대 옆 자판기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나가실 때 믹스커피 한 잔씩 뽑아 드세요. 그리고 밖에서 또 싸우면 다음엔 소금 뿌립니다.”

“하하. 명심하겠습니다.”

식당 문이 열리고 붉은 사자와 블루 소드 헌터들이 나란히 문밖으로 걸어 나갔다. 좁은 골목길에 아침 햇살이 환하게 내리쬐고 있었다.

미아는 대기표 뭉치를 새로 채워 넣으며 태현을 향해 환하게 웃었다.

“사장님. 이제 우리 집 완전 평화 구역이네요.”

태현은 가마솥 뚜껑을 열며 피식 웃었다.

“평화는 무슨. 손님 밀려오기 전에 깍두기나 더 썰어 놔.”

구수한 해장국 냄새가 맑은 아침 공기 속으로 은은하게 퍼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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