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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트 앞 24시 해장국집4화

게이트 앞 24시 해장국집

게이트 앞 24시 해장국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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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해장국 레이드

미아의 휴대폰은 저녁 내내 쉬지 않고 울렸다.

“네. 예약은 아직 안 받아요. 오시면 대기표부터 드릴게요.”

그녀는 통화를 끊자마자 얇은 종이를 한 장 찢었다. 대기표 위에 적힌 숫자는 벌써 스물셋이었다.

식당 안은 평소보다 훨씬 빽빽했다. 게이트 관리국 직원 둘이 창가에서 국물을 떠먹고 있었고 퇴근한 헌터들은 젖은 방어구를 의자 밑에 세워 둔 채 빈 뚝배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녁 게이트가 닫힐 시간마다 찾아오던 얼굴들이었다.

태현은 주방에서 우거지를 다듬다가 미아 쪽을 봤다.

“전화 너무 많이 오면 나한테 넘겨.”

“사장님은 국 끓이세요. 전화보다 그게 더 급해요.”

미아는 수화기를 어깨에 끼운 채 계산대 아래에서 새 펜을 꺼냈다. 손은 바빴지만 목소리는 처음 손님을 받던 때처럼 또렷했다.

“네. 단체도 따로 자리는 못 빼 드려요. 먼저 오신 분들 순서대로 드셔야 해요.”

태현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전화가 늘어난 일은 반가웠다. 하지만 한꺼번에 몰린 손님을 전부 받을 수는 없었다. 가게 안의 테이블은 여섯 개뿐이었고 뚝배기를 끓일 화구도 네 개였다.

무엇보다 지금 줄을 선 사람들을 밀어내고 싶지 않았다. 그들은 값비싼 회복제를 살 형편이 없어서 밤마다 이곳을 찾던 사람들이었다.

그때 식당 앞에 검은 승합차 두 대가 멈췄다.

문 쪽을 보던 헌터 하나가 숟가락을 든 채 굳었다.

“저거 블루 소드 차 아니야?”

승합차 문이 열리고 차우성이 먼저 내렸다. 모자는 쓰지 않았지만 창백하던 얼굴에는 전날보다 분명한 혈색이 돌고 있었다. 그의 뒤로 방패를 멘 거구의 남자와 짧은 단검을 찬 여자, 치료사 로브를 걸친 여자가 차례로 모습을 드러냈다.

블루 소드 길드원 여덟 명이었다.

미아는 잠깐 숨을 삼켰다. 그러나 곧 대기표 묶음을 들고 문 앞으로 갔다.

“아홉 분이시네요. 지금은 자리가 없어서 대기표를 드려야 해요.”

서준혁의 눈썹이 움직였다.

“블루 소드 길드장님이 오셨는데도요?”

“알아요.”

미아는 웃는 얼굴을 유지했다.

“그래도 먼저 오신 손님들이 계세요.”

서준혁이 가게 안을 훑었다. 막 던전에서 나온 듯한 F급 헌터 둘과 낡은 제복 차림의 관리국 직원이 보였다. 그들에게 양보를 부탁하면 될 일이라는 표정이었다.

태현이 주방 문가로 나왔다.

“대기 순서는 안 바꿉니다.”

“길드장님은 몸 상태가 완전하지 않습니다.”

“알아요. 그래서 국도 천천히 드시라고 할 겁니다.”

태현은 차우성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조금 기다리실 수 있겠어요?”

차우성은 대기표를 받아 들었다. 종이 위의 숫자를 확인한 그는 아무렇지 않게 의자 쪽으로 걸어갔다.

“기다리죠. 어제 나도 기다려서 먹었습니다.”

서준혁이 낮게 불렀다.

“길드장님.”

“준혁아.”

차우성은 대기 의자에 앉으며 말끝을 끊었다.

“오늘은 길드장이 아니라 손님이다. 다들 앉아.”

길드원들이 서로 눈치를 보다가 의자에 나눠 앉았다. 단검을 찬 여자는 손가락 끝을 주무르고 있었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려 물컵 가장자리에 작은 파문이 생겼다.

태현은 그 모습을 보며 주방으로 돌아왔다.

“미아야. 저쪽 테이블에는 고춧가루 따로 줄게.”

“왜요?”

“속이 약한 사람이 둘 있어. 맑은 국물도 조금 준비하고.”

미아는 대답 대신 엄지를 들었다.

자리가 나기까지 사십 분이 걸렸다. 블루 소드 길드원들은 누구 하나 재촉하지 않았다. 차우성이 눈을 감고 호흡을 고르는 동안 정찰자 지수는 손을 무릎 위에 얹은 채 창밖만 바라봤다. 도윤이라 불린 방패병은 물도 한 모금씩만 삼켰다.

미아가 두 테이블을 닦고 손짓했다.

“여덟 분 먼저 앉으세요. 길드장님은 저쪽 창가에 한 자리 나왔어요.”

“같이 앉지 않아도 됩니다.” 차우성이 말했다. “순서대로 주세요.”

서준혁은 입술을 다물었다. 태현은 그제야 그의 얼굴에서 불만 말고도 걱정을 읽었다. 길드장을 오래 보좌한 사람이라 더 예민할 수밖에 없었다.

뚝배기에 사골 국물을 담는 동안 태현은 한 사람씩 살폈다. 지수의 손은 균열 파동을 오래 맞은 사람처럼 계속 떨렸다. 도윤의 얼굴은 회복제를 과하게 들이부은 헌터 특유의 누런 빛이 돌았다. 치료사 혜진은 남의 마나를 채워 주느라 자기 안을 오래 비워 둔 듯 눈 밑이 짙었다.

태현은 고춧가루를 평소보다 적게 넣었다. 들깨를 넉넉히 풀고 오래 삶은 우거지와 부드러운 고기를 담았다. 도윤 앞에는 선지를 빼고 맑은 국물을 곁들였다.

“처음에는 국물부터 드세요. 맵거나 속이 불편하면 바로 말씀하시고요.”

혜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길드장님에게도 이렇게 말씀하셨나요?”

“네. 아픈 사람한테는 다 똑같이 말해요.”

혜진의 입가에 희미한 웃음이 걸렸다.

지수가 먼저 숟가락을 들었다. 김 사이로 들깨 향과 진한 고기 향이 올라왔다. 그는 국물을 한 모금 머금은 뒤 눈을 감았다.

따뜻함이 목을 지나 배까지 내려갔다. 손끝을 조이던 차가운 감각이 조금씩 풀렸다. 지수는 자신도 모르게 떨리는 손을 테이블 위로 올렸다.

물결이 없었다.

“지수야?”

옆자리의 길드원이 묻자 지수는 한참 뒤에야 고개를 들었다.

“손이 안 떨려.”

도윤은 맑은 국물을 경계하듯 바라봤다. 던전에서 돌아온 뒤에는 무언가를 먹기만 해도 속이 뒤집혔다. 버티기 위해 회복제를 들이켰고 그럴수록 위장은 더 굳어 갔다.

하지만 국물 한 모금은 예상보다 조용히 넘어갔다. 그는 두 번째 숟가락에서야 고기를 씹었다. 푹 삶긴 고기가 이 사이에서 풀리자 뱃속 깊은 곳의 긴장이 스르르 가라앉았다.

“도윤 오빠가 고기 먹는 거 오랜만이네요.”

혜진의 말에 도윤은 대답하지 못했다. 대신 고개만 끄덕이고 밥을 국물에 말았다.

창가의 차우성도 천천히 뚝배기를 비우고 있었다. 그는 서두르지 않았다. 국물 한 숟가락을 삼킨 뒤 숨을 고르고 또 한 숟가락을 떴다. 손목 측정기를 보던 윤서민의 표정이 점점 굳었다.

“길드장님. 회복률이 올라가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폭주 징후는 없어요.”

서준혁이 측정기를 들여다봤다. 수치는 폭발적으로 뛰지 않았다. 바닥을 기던 마나가 안정된 곡선을 그리며 조금씩 올라가고 있었다.

차우성은 국물을 내려다보며 낮게 말했다.

“급하게 밀어 넣는 느낌이 아니군.”

“배부터 편해야 할 것 같았어요.” 태현이 말했다.

혜진도 숟가락을 내려놓고 손바닥을 폈다. 늘 마나를 건넨 뒤에는 안쪽이 텅 빈 방처럼 느껴졌다. 지금은 그 방에 불이 하나 켜진 듯했다.

“내 마나가 돌아오는 게 느껴져요.”

주변 테이블의 손님들은 말을 아꼈다. 누구도 함부로 감탄하지 않았다. 다만 블루 소드 길드원들이 남김없이 밥을 먹는 모습에 조용히 웃는 사람은 있었다.

마지막 뚝배기가 비워진 뒤에야 서준혁이 태현에게 다가왔다.

“사장님. 아까 말은 취소하겠습니다. 그래도 후원은 생각해 보시죠. 전용석을 만들자는 뜻이 아니라 주방을 넓히고 사람을 더 구하면 됩니다.”

태현은 싱크대 옆에 쌓인 빈 뚝배기를 봤다. 미아 혼자 계산과 대기표와 서빙을 돌보고 있었다. 넓은 주방과 직원은 분명 필요했다.

하지만 넓어지는 것과 먼저 먹는 자리를 파는 일은 달랐다.

“후원 얘기는 나중에 하죠.”

태현은 조심스레 말했다.

“지금은 가게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해야 해요. 오늘 먼저 줄 선 분들 자리를 내드리면 제가 만들고 싶은 집이 아니게 됩니다.”

차우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날보다 허리가 곧았다.

“맞는 말입니다.”

그는 길드원들을 바라봤다.

“전용석 이야기는 끝이다. 우리도 다음부터 대기표를 받고 온다. 길드원들이 몰려와서 다른 손님 불편하게 만드는 일도 없게 해.”

도윤이 빈 뚝배기를 들었다.

“그럼 조를 나누면 되겠네요. 오늘 먹은 사람은 다음번에 늦게 오고.”

지수가 웃으며 덧붙였다.

“레이드보다 어려운 작전인데요.”

“해장국 레이드지.” 혜진이 말했다. “규칙은 지켜야 성공이에요.”

짧은 웃음이 테이블 사이로 번졌다. 서준혁도 결국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길드 게시판에도 그렇게 올리겠습니다.”

차우성은 계산대 앞에서 카드를 내밀었다. 미아가 금액을 찍으려 하자 그가 먼저 말했다.

“후원금은 받지 말라고 했으니 식사값만 받으세요.”

“해장국 한 그릇 구천 원입니다.”

“아홉 그릇이면 팔만 천 원이군요.”

차우성은 정확한 금액을 결제했다. 그리고 출입문을 열기 전 가게 안을 한 번 돌아봤다. 블루 소드 길드장이 다녀갔다는 사실보다 여전히 다음 번호를 기다리는 손님들이 더 눈에 들어오는 순간이었다.

“다음에도 손님으로 오겠습니다.”

그들이 떠난 지 십여 분 뒤 미아의 휴대폰이 또 울렸다. 이번에는 차우성이 올린 게시글의 알림이었다.

[성동 게이트 맞은편 해장국집에서 식사했습니다. 음식이 약이라고 말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몸이 지친 사람이라면 한 그릇 먹고 쉬어 갈 만합니다. 예약이나 특혜를 요구하지 마십시오. 그곳에서는 모두 손님이고 대기표 순서대로 들어갑니다.]

댓글은 순식간에 늘어났다. 효과가 진짜냐는 질문도 있었고 블루 소드가 줄을 섰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중 미아의 시선을 붙잡은 것은 낯선 길드에서 온 전화였다.

“네. 여기가 해장국집 맞아요.”

미아는 태현을 보고 입꼬리를 올렸다.

“줄은 설 테니까 메뉴부터 알려 달래요.”

태현은 다시 끓기 시작한 사골 냄비를 바라봤다. 좁은 주방 안에 국물 향이 가득 찼다.

“해장국 하나뿐이라고 해.”

미아가 웃으며 대답을 전했다.

“네. 저희는 해장국 하나예요. 대신 천천히 드셔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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