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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그래프로 갓물주3화

미래 그래프로 갓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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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기회를 사는 속도

저장해 둔 번호에서 다시 진동이 울렸다.

도준은 바닥에 놓인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화면에는 방금 입력한 이름이 떠 있었다.

모르는 번호 1

세 번째 울림이었다. 도준은 침을 한 번 삼킨 뒤 통화 버튼을 오른쪽으로 밀었다. 스피커를 귀에 대자마자 귓가로 익숙하면서도 낯선 기계음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한도준 고객님 되십니까?”

“맞는데요. 어디시죠?”

“네, 희망플러스 파이낸셜 김민수 과장입니다. 고객님 기존 대출 만기 안내 및 신용 평점 변동에 따른 대환 상품 안내차 연락드렸습니다.”

도준의 미간이 좁아졌다.

“대환 상품이요?”

“고객님께서 등록하신 직장 정보가 이번 달로 계약 만료 예정으로 조회되어서요. 이렇게 되면 기존 1금융권 소액 신용대출 연장이 불가능해집니다. 다음 달부터는 연 19.9퍼센트 대부업 전용 금리로 자동 전환되거나 전액 일시 상환 청구가 들어갈 수 있습니다.”

상대의 목소리는 지나칠 정도로 사무적이었다. 직장을 잃는다는 사실이 전산망에 등록되자마자 금융권은 기다렸다는 듯 덫을 좁혀 오고 있었다.

“제가 이미 이번 달 이자는 따로 빼뒀습니다.”

“이번 달만 막는다고 끝날 문제가 아닙니다. 일주일 내로 소득 증빙이 갱신되지 않으면 한도가 전액 회수됩니다. 대신 저희 쪽 햇살플러스 대환을 쓰시면 수수료 8퍼센트만 선납하시고……”

도준은 말을 끝까지 듣지 않았다.

“필요 없습니다.”

“고객님, 지금 안 막으시면 신용불량자로 넘어가실 텐데요?”

“내가 알아서 합니다.”

도준은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방 안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냉기가 발목을 타고 올라왔다. 월급쟁이로 남아 있는 한 세상은 언제든 이런 식으로 숨통을 조여 올 터였다. 계약직의 만료 날짜 하나에 신용등급이 곤두박질치고 빚의 이자는 배로 뛴다. 이것이 자본이 없는 자에게 세상이 씌우는 굴레였다.

‘결국 답은 하나뿐이야.’

도준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지를 갈아입고 겉옷을 걸쳤다.

물류센터로 향하는 발걸음은 평소보다 빨랐다.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반장과 조장이 정산 서류를 정리하고 있었다.

“도준이 왔냐? 몸은 좀 괜찮고?”

“네, 조장님. 저 이번 달 일한 일당이랑 주휴수당 정산 바로 받을 수 있을까요?”

조장이 안경을 고쳐 쓰며 컴퓨터 모니터를 두드렸다.

“원래는 다음 주 금요일 일괄 지급인데 사정이 급하냐?”

“네, 병원비 때문에 급하게 필요해서요.”

조장은 도준의 낯빛을 살피더니 서랍에서 서류철을 꺼냈다.

“너 그동안 결근 한 번 없이 잔업까지 다 뛰어 줬으니까 내가 소장님한테 미리 결재 올려둘게. 사인부터 해라.”

도준은 볼펜을 쥐고 빠르게 서명했다.

잠시 후 휴대폰으로 입금 알림이 떴다.

입금 468,000원 (물류정산)

기존에 남아 있던 자투리 잔고와 합치자 손에 쥔 현금은 약 52만 원이 되었다. 물류센터에서 뼈 빠지게 상자를 나르고 얻은 마지막 노동의 대가였다.

도준은 물류센터 정문을 빠져나오며 곧바로 증권 계좌로 50만 원을 이체했다.

‘이 50만 원을 쥐고 한 달을 멍하니 기다릴 순 없어.’

아진전자의 거대한 붉은선은 여전히 한 달 뒤에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지금 50만 원으로 살 수 있는 수량은 고작 십여 주 남짓이었다. 아무리 폭등한다 한들 수백만 원 수준에 그칠 터였다.

인생을 통째로 바꾸려면 최소 수천만 원의 종잣돈이 아진전자에 들어가야 했다. 그러려면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이 50만 원을 서너 배 이상 불려 놓아야 했다.

도준은 편의점 파라솔 의자에 앉아 증권 앱을 켰다.

눈앞에 수많은 종목의 미래 그래프가 펼쳐졌다. 그는 손가락을 빠르게 놀리며 코스닥 기술주와 중소형주 차트를 훑어 내려갔다.

대부분의 종목은 완만하게 꺾이거나 지루하게 횡보하고 있었다. 하지만 도준이 찾는 것은 그런 평범한 선이 아니었다. 짧은 기간 안에 용틀임하듯 튀어 오르는 날카로운 궤적이었다.

화면을 멈춘 곳은 코스닥 상장사 ‘루멘옵틱스’였다.

현재 주가는 전일 대비 7.4퍼센트 급락한 4,120원이었다.

차트 탭 위에 겹쳐진 붉은선이 도준의 망막을 강하게 찔렀다.

‘이건…….’

루멘옵틱스의 1년 그래프는 기괴할 정도로 극적인 V자를 그리고 있었다.

오늘 오후 2시경까지는 끝없이 미끄러져 바닥을 파고들었다. 하지만 내일 오전 9시가 되는 순간 선이 수직으로 솟구치더니 하루 종일 상한가 선에 붙어 있었다. 그리고 모레 오전 9시 40분 무렵 전고점을 뚫고 6,300원 선까지 치솟은 뒤 급격하게 파란선으로 꺾여 내려앉았다.

도준은 뉴스 탭을 눌렀다.

[단독] 루멘옵틱스, 주요 고객사 납품 계약 해지설에 하한가 근접

루멘옵틱스 토론방: 대표 야반도주했냐? 상폐 가나?

절대 사지 마라. 바닥 밑에 지하실 있다.

공포에 질린 개인 투자자들의 절규가 게시판을 도배하고 있었다. 실제로 호가창에는 실망 매물과 투매 물량이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중이었다.

하지만 도준의 눈에 보이는 미래는 전혀 달랐다.

지금 쏟아지는 악재는 거짓이거나 일시적인 해프닝이었다. 공포가 극에 달해 주가가 바닥을 칠 때가 바로 미래 그래프가 가리키는 거대한 반등의 시발점이었다.

도준은 시계를 확인했다.

오후 1시 48분.

루멘옵틱스의 주가는 어느덧 마이너스 13퍼센트까지 밀려 3,850원까지 떨어져 있었다. 호가창 아래쪽에 걸려 있던 매수 잔량이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도준은 떨리는 손가락으로 매수 주문창을 켰다.

단가 3,840원에 130주. 보유 현금 50만 원을 전부 털어 넣는 시장가 분할 매수 주문이었다.

‘남들이 공포에 질려 던질 때 산다.’

주문 전송 버튼을 눌렀다.

체결 알림음이 귓가를 울렸다.

체결 완료: 루멘옵틱스 130주 매수 (평균단가 3,845원)

매수하자마자 주가는 3,820원까지 추가로 밀렸다. 계좌 평가 손익에 마이너스 1.2퍼센트가 찍혔다.

하지만 도준은 동요하지 않았다. 그래프 속 붉은선은 3,800원 부근에서 완만한 둥근 바닥을 형성한 뒤 내일 아침을 향해 곧게 뻗어 있었다.

그는 편의점 커피를 마시며 장 마감까지 자리를 지켰다.

오후 3시 30분, 루멘옵틱스는 결국 마이너스 14.2퍼센트인 3,810원으로 장을 마감했다. 도준의 계좌에는 당일 손실 4,550원이 찍혀 있었다.

원룸으로 돌아온 도준은 낡은 이불 위에 누웠다. 천장의 얼룩을 바라보며 그는 조용히 숨을 골랐다. 내일 아침이면 모든 것이 결정된다.

다음 날 아침 8시 40분.

도준은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을 떴다. 세수를 하고 휴대폰을 켜자 증권사 장전 공시 알림이 떠 있었다.

[공시] 루멘옵틱스, 주요 고객사 납품 계약 해지설 사실무근…… 북미 빅테크 독점 공급 계약 체결

도준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역시 그랬어.’

오전 9시 정각, 장이 열리자마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루멘옵틱스는 시초가부터 전일 대비 18퍼센트 갭상승으로 출발했다. 그리고 개장 3분 만에 상한가인 4,950원으로 직행했다.

호가창의 매도 잔량은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었고 상한가 매수 대기 잔량만 수백만 주가 쌓였다.

게시판은 어제의 절망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광기에 휩싸였다.

와, 어제 투매한 흑우들 피눈물 흘리겠네.

이거 최소 3연상 각이다. 무조건 홀딩해라!

지금이라도 상따 따라붙어야 하나요?

도준의 계좌 잔고는 단 하루 만에 64만 원으로 불어나 있었다. 평가 수익률은 플러스 28.7퍼센트였다.

사람들은 내일도 상한가를 갈 것이라며 흥분했지만 도준은 종이에 적어 둔 메모를 다시 확인했다.

루멘옵틱스. 내일 오전 9시 40분 전량 정리.

미래 그래프는 모레 오전 6,300원을 찍고 급락하는 그림이었다. 내일 장 초반의 추가 갭상승 구간이 바로 세력이 물량을 털고 나가는 마지막 출구였다.

다음 날 아침, 예상대로 루멘옵틱스는 다시 한번 15퍼센트 이상 급등하며 출발했다.

개장 직후 주가는 거침없이 치솟아 6,100원, 6,250원을 차례로 돌파했다.

도준은 긴장된 눈으로 초 단위로 움직이는 시계를 응시했다.

오전 9시 38분.

주가가 6,320원을 터치하는 순간, 미래 그래프 위의 붉은선 끝에서 푸른빛이 깜빡이기 시작했다.

‘지금이다.’

도준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보유 수량 130주 전량 매도 버튼을 눌렀다.

체결 완료: 루멘옵틱스 130주 전량 매도 (체결가 6,300원)

총 입금액 819,000원.

단 이틀 만에 50만 원이 81만 원으로 변했다.

도준이 매도 버튼을 누른 지 불과 3분 뒤인 9시 43분, 호가창에 수십만 주의 거대한 폭탄 매물이 쏟아져 내렸다. 주가는 순식간에 플러스 20퍼센트에서 마이너스 5퍼센트로 곤두박질쳤다. 게시판은 다시 한번 비명과 곡소리로 뒤덮였다.

도준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욕심에 눈이 멀어 1분만 늦었어도 수익의 대부분을 반납할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그는 곧바로 다음 종목을 탐색했다. 멈출 시간이 없었다.

그날 오후 도준은 또 다른 단기 반등주 ‘동아정밀’의 반일짜리 급등 파동을 찾아내 81만 원 전액을 투입했다. 당일 오후 1시 매수 후 장 마감 직전 12퍼센트의 수익을 확정 지으며 매도했다.

그렇게 이틀간의 치열한 매매가 끝났을 때, 도준의 계좌에 찍힌 최종 예수금은 1,542,000원이었다.

불과 며칠 전 18만 원으로 시작했던 잔고가 마침내 150만 원이라는 숫자로 바뀐 것이었다.

“150만 원…….”

도준은 화면 속 숫자를 손끝으로 매만졌다.

손에 쥔 돈의 무게가 달라지자 머릿속의 계산도 전혀 다른 차원으로 올라섰다. 이제는 아진전자가 폭등할 때 의미 있는 수익을 건져 올릴 수 있는 진짜 자본이 마련된 것이었다.

그는 심호흡을 하고 아진전자의 차트를 열었다.

현재 가격은 45,200원.

지루한 횡보세를 이어가던 아진전자의 미래 그래프 위로 드디어 도준이 기다리던 결정적 구간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다음 주 초반, 주가가 일시적으로 38,000원 선까지 급락하는 마지막 ‘골파기(눌림목)’ 구간.

그리고 그 깊은 골짜기를 지나자마자 수직으로 치솟아 1년 내내 붉은 기둥을 세우는 거대한 폭등의 서막.

도준의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

단순한 개인들의 매수세로는 이런 궤적이 나올 수 없었다. 보이지 않는 거대한 자본의 손길이 밑바닥에서 아진전자의 물량을 소리 없이 집어삼키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도준은 주먹을 쥐었다.

거인들이 파놓은 함정의 가장 깊은 바닥.

그곳이 바로 자신이 가진 150만 원 전부를 던져 넣을 약속의 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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