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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무조사 피하려다 국민 헌터의 계약 연인이 되었다9화

세무조사 피하려다 국민 헌터의 계약 연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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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감찰 사제의 시험

마차의 문이 열리고 검은 사제복을 입은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은빛 자수가 촘촘히 박힌 옷깃과 가슴에 달린 제국 재무부의 금빛 인장. 델마르 교단의 상급 감찰관이자 재무부 특별 감사관인 루시안 벨로크였다.

그는 계단을 내려오며 영지 광장과 던전 입구를 천천히 훑었다. 말끔하게 정돈된 보행로와 질서정연하게 움직이는 직원들, 그리고 나란히 서서 자신을 기다리는 두 사람에게 시선이 멎었다.

루시안의 눈빛이 미세하게 가늘어졌다.

"이거 뜻밖의 환영이군요."

그의 목소리는 기름칠한 쇳소리처럼 미끄러웠다.

"델마르 제국의 찬란한 검이자 교단의 자랑이신 카일 폰 델마르 경께서 어찌 이런 변방의 흙먼지 날리는 영지에 계십니까."

에블린은 맞잡은 카일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카일이 입을 열기 전에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벨로크 감찰관님. 에셀 영지의 영주 에블린입니다."

루시안은 에블린을 아래위로 훑었다. 그녀의 붉은 머리카락과 녹색 눈동자, 그리고 카일의 손을 쥐고 있는 손가락 끝까지 집요하게 살폈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에셀 영주. 소문대로 참으로 당돌하신 분이군요. 재무부의 사전 예고를 받고도 이렇게 여유로우실 줄은 몰랐습니다."

"황실과 교단에 부끄러울 것 없는 영지니까요. 손님을 맞이하는 것은 영주의 기본 소양이지요."

에블린은 흐트러짐 없는 미소를 지었다.

루시안의 시선이 다시 카일에게로 향했다.

"델마르 경. 수도에서는 경이 북부 정화 임무 중 행방이 묘연해져 교단 본당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한가롭게 영주의 손을 잡고 계시다니 대체 무슨 연유입니까?"

카일의 서늘한 청안이 루시안의 얼굴에 내리꽂혔다.

"공식 일정 사이에 비공개 휴식을 취하는 것은 헌터 헌장 제7조에 보장된 권리다. 교단이 내 사적인 휴식까지 통제할 권한은 없을 텐데."

"사적인 휴식이라."

루시안이 입꼬리를 비틀었다.

"제국 최고의 헌터가 하필이면 최근 기괴할 정도로 수익이 폭증해 감찰 대상이 된 던전에 머문다라. 단순한 휴식치고는 시기가 참으로 공교롭군요."

"공교로울 것 없습니다."

에블린이 차분하게 말을 받았다.

"카일 님께서는 제 개인 손님이시자 에셀 던전의 안전 점검을 맡아 주신 특별 자문 위원이시니까요. 세부 계약 사항과 장부는 모두 접견실에 준비되어 있습니다. 밖에서 서 계시게 할 수는 없으니 안으로 모시지요."

루시안은 던전 입구 쪽에서 질서정연하게 이동하는 슬라임들을 한 번 더 쳐다본 뒤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영주께서 얼마나 완벽하게 장부를 꾸며 놓으셨는지 직접 확인해 보지요."


영주성 접견실의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탁자 위에는 한스가 밤새 정리한 재정 장부와 에셀 코인 유통 내역서, 그리고 아침에 서명한 던전 안전 자문 계약서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루시안은 자리에 앉자마자 품에서 두꺼운 감찰 지침서를 꺼내 펼쳤다. 그는 차를 권하는 한스의 손길을 거칠게 물리치며 곧바로 장부를 집어 들었다.

"에셀 코인이라."

루시안의 손가락이 장부의 특정 항목을 탁탁 두드렸다.

"던전 내부에서만 유통되는 마법 화폐로 환전 수수료를 챙기고 내부 소비액은 제국 재무부 신고에서 누락시켰군요. 이것만으로도 명백한 조세 포탈 혐의가 성립합니다."

"말씀을 정정해 주시지요, 감찰관님."

에블린이 곧바로 반박 서류를 내밀었다.

"제국 상법 제4조 3항에 따르면 던전 내부 전용 재화는 '자율 구역 내 자가 소비 물품'으로 분류되어 직접 과세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또한 제국 던전 자치 조약에 따라 영지 내 자율 화폐의 발행 권한은 영주에게 위임되어 있지요. 저희는 환전 시 발생하는 공식 수수료 3퍼센트에 대해서만 성실히 세금을 납부하고 있습니다."

루시안의 눈썹이 꿈틀했다. 그가 넘기던 서류에는 에블린이 짚어 준 법령의 세부 조항과 과거 황실 판례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첨부되어 있었다.

"법을 아주 잘 아시는군요, 영주님."

"변방의 영주가 살아남으려면 황실의 법도를 누구보다 철저히 공부해야 하니까요."

"그렇다면 이건 어떻습니까?"

루시안이 카일의 이름이 적힌 계약서를 집어 들었다.

"S급 헌터의 안전 자문료와 회복 지원비 명목으로 지출된 막대한 금액. 헌터 개인 후원금 면세 조항을 악용해 영지의 순이익을 고의로 비용 처리한 흔적이 역력합니다. 델마르 경이 실제로 이곳에서 안전 점검을 수행했다는 객관적 증거가 있습니까?"

카일이 조용히 서류 한 장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내가 직접 작성한 에셀 던전 1구역 안전 진단 보고서다. 입구 병목 구간 해소 방안과 슬라임 동선 분리, 그리고 마나 배출구의 구조적 결함을 지적해 두었다."

루시안이 보고서를 훑었다. 실제로 현역 최상위 헌터의 날카로운 시각이 담긴 전문적인 분석이었다.

루시안의 미간이 좁아졌다. 서류상으로는 어떠한 틈도 찾을 수 없었다. 세무적으로도 법리적으로도 완벽하게 방어벽이 쳐져 있었다.

루시안은 서류를 덮고 안경을 고쳐 썼다.

"장부와 계약서는 그럴듯하군요. 하지만 서류는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는 법입니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직접 던전 내부를 확인해야겠습니다. 델마르 경이 자문했다는 그 마나 배출구와 영지의 핵심 시설인 정화석 구역을 실사하겠습니다."

에블린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정화석 구역은 카일이 성흔의 고통을 달래던 곳이자 에블린의 던전 시스템 권능이 가장 짙게 얽혀 있는 핵심 공간이었다. 외부인의 마나 탐색이 들어가면 정상적인 던전 구조가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날 위험이 있었다.

하지만 거절할 명분은 없었다. 거부는 곧 감찰 불응으로 이어질 터였다.

"안내하겠습니다."

에블린은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대답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던전 1구역으로 들어서자 은은한 푸른빛의 마나 미풍이 일행을 감쌌다.

루시안은 주변의 아늑한 분위기에 현혹되지 않고 품에서 은색의 나침반 형태를 띤 기구를 꺼냈다. 델마르 교단이 고위 성직자나 S급 헌터의 마력 파동을 측정할 때 사용하는 성광 측정기였다.

"이곳의 마나 순환은 일반적인 자연 던전과 다릅니다."

루시안이 계측기를 든 채 정화석이 매설된 벽면으로 다가갔다.

"마나가 단순히 방출되는 것이 아니라 특정 대상에게 집중되도록 인위적으로 조율된 흔적이 있군요. 이것은 단순한 관광 시설이 아닙니다."

측정기의 바늘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 순간 카일의 호흡이 미세하게 거칠어졌다. 교단의 측정기가 내뿜는 고유 주파수가 카일의 등에 새겨진 성흔을 자극하고 있었다. 카일의 푸른 눈동자에 억눌린 마력이 희미하게 일렁였다.

루시안이 그 기색을 놓칠 리 없었다. 그는 즉시 측정기를 카일 쪽으로 겨누며 한 걸음 다가섰다.

"델마르 경? 마력 파동이 불규칙하군요. 마치 금지된 주술이나 오염된 마력에 노출된 것처럼……."

일촉즉발의 위기였다. 카일의 성흔 오염이 확인되거나 에셀 던전이 불법 마나 개조 구역으로 판명되면 모든 것이 끝장나는 순간이었다.

에블린은 망설이지 않고 보폭을 넓혀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았다.

그녀는 발밑의 던전 바닥을 향해 의식을 집중했다. 머릿속에 던전 관리자 창이 푸른 격자망으로 펼쳐졌다.

'시스템, 슬라임 카페 배기구 전면 개방. 환전소 마나 정류석의 순환 밸브를 역방향으로 전환해.'

쿠구궁.

던전 벽면 깊은 곳에서 미세한 공명이 일어났다.

순식간에 슬라임들이 뿜어내던 알칼리성 마나 거품과 수천 개의 에셀 코인에 충전되어 있던 정화 잔향이 통로 전체로 쏟아져 나왔다. 서로 다른 성질의 마나가 격렬하게 부딪치며 대기 중에 거대한 마나 난기류를 형성했다.

삐이익!

루시안이 들고 있던 성광 측정기에서 날카로운 경고음이 터져 나오며 바늘이 통제 불능으로 뱅글뱅글 돌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루시안이 눈을 찌푸리며 귀를 막았다.

에블린은 태연하게 손뼉을 쳤다.

"아, 조심하세요. 카일 님이 아침에 지적해 주셨던 마나 배출구의 과부하 현상입니다. 손님이 몰리는 시간대에는 슬라임들의 점액 마나와 환전소의 마력석이 충돌해 일시적인 측정 오류가 발생하거든요. 보시다시피 카일 님의 안전 점검이 아니었다면 큰 사고로 이어질 뻔했지요."

루시안은 과열되어 연기를 뿜는 측정기를 황급히 거두었다.

그의 얼굴이 수치심과 분노로 붉게 달아올랐다. 던전의 구조적 결함이라는 핑계 앞에서는 교단의 첨단 장비가 무용지물이 되어 버린 셈이었다.

카일은 에블린의 등 뒤에서 자신의 고통이 거짓말처럼 잦아드는 것을 느꼈다. 그녀가 난기류를 일으키는 척하며 정화석의 흐름을 교묘하게 비틀어 자신을 감싸 준 덕분이었다.

카일의 시선이 에블린의 작은 어깨에 머물렀다. 이 작은 영주는 제국의 거대한 두 권력 앞에서도 단 한 치의 틈을 허용하지 않고 있었다.


던전 입구로 다시 돌아왔을 때 루시안의 태도는 이전보다 훨씬 험악해져 있었다.

장부에서도 마나 측정에서도 결정적인 약점을 잡지 못한 그는 마차 앞에 멈춰 서서 에블린을 서늘하게 노려보았다.

"에블린 에셀 영주."

루시안이 마침내 숨겨 두었던 발톱을 드러냈다.

"교묘한 말솜씨와 던전의 속임수로 오늘은 넘어갈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내 눈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그는 품에서 붉은 봉인이 찍힌 교단 최고위 감찰 영장을 꺼내 들었다.

"제국 재무부와 교단은 에셀 영지가 델마르 경의 명성을 도용해 불법 자금을 세탁하고 있다는 중대한 제보를 받았습니다. 경과의 안전 자문 계약과 후원 명목의 체류가 순수한 관계가 아닌 위장 계약이라는 의혹입니다."

에블린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저희는 이미 합법적인 서류를 제출했습니다."

"서류 따위는 상관없습니다!"

루시안이 서류를 에블린의 면전에 들이밀며 목소리를 높였다.

"제국 법률에 따르면 위장 계약을 통해 국세를 포탈하고 성직자를 기만한 행위는 영지 몰수형 및 이단 방조죄에 처해집니다. 내일 정오, 영지 중앙 광장에서 교단과 재무부 합동 공개 청문회를 열겠습니다. 그 자리에서 두 분의 관계가 '진실한 연인'이자 순수한 후원 관계임을 온 영지민과 감찰단 앞에서 완벽하게 증명하지 못한다면……."

루시안의 입가에 잔인한 미소가 번졌다.

"에셀 영지는 즉시 제국에 몰수될 것이며 영주 당신은 쇠사슬에 묶여 황도 감옥으로 압송될 것입니다."

사방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광장에 서 있던 영지 직원들과 주민들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영지의 존망이 통째로 흔들리는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에블린은 주먹을 꽉 쥐었다. 상대는 법과 제도를 무기 삼아 그녀의 숨통을 조여 오고 있었다.

그 팽팽한 침묵을 깨고 카일이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의 차가운 눈동자가 루시안을 정면으로 겨누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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