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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떠보니 바이오 벙커의 보안 관리자1화

눈떠보니 바이오 벙커의 보안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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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깨어난 팔찌]

목구멍으로 얼음물이 쏟아졌다.

한서진은 비명을 지르려다 숨을 삼켰다. 폐가 움직이지 않았다. 가슴 위를 누른 투명 덮개 너머로 붉은 경고등이 깜빡였다.

《해동 중단. 냉각액 압력 저하. 수동 해제를 권고합니다.》

권고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천장의 전원이 두 번 꺼졌다. 어둠이 내려왔다가 희미한 비상등으로 바뀌었다.

서진은 손을 들었다. 손가락 끝이 말을 듣지 않았다. 얼어붙은 관절을 억지로 움직이자 왼손 손목에서 푸른 불빛이 들어왔다.

관리자 팔찌.

그 단어만 또렷했다.

그는 덮개 안쪽의 비상 손잡이를 찾았다. 세 번째 손잡이 아래에 수동 밸브가 있다는 감각이 남아 있었다. 몸은 기억하지 못했지만 손은 기억했다.

밸브를 돌리자 압축 공기가 터졌다. 덮개가 반쯤 열렸다. 서진은 젖은 바닥으로 굴러 떨어져 기침했다. 차가운 액체가 작업복 안쪽을 타고 흘렀다. 혀끝에는 금속 맛이 남았다.

바닥의 모니터에 날짜가 떴다.

[봉쇄 10년 0일]

현재 날짜가 아니었다. 날짜는 10년 전 시각에 고정된 채 깜빡였다.

서진은 비틀거리며 캡슐 옆 벽을 짚었다. 벽면 표찰에는 아르고스 냉동 수면실이라고 적혀 있었다. 자신이 누구인지는 알았다.

한서진.

그 이상은 텅 비어 있었다.

그는 젖은 작업복의 주머니를 뒤졌다. 작은 관리자 단말과 접이식 손전등이 나왔다. 단말은 암호를 요구하지 않았다. 팔찌를 가져다 대자 화면이 켜졌다.

《신경 패턴 일치. 관리자 권한 3등급.》

서진은 문을 보았다. 냉동 수면실의 출입문은 닫혀 있었다. 표시창에는 외부 공기 차단, 내부 압력 불안정이라는 문장이 번갈아 나타났다.

“문부터.”

목소리는 갈라졌지만 명령형이었다.

팔찌를 패널에 대자 잠금이 풀렸다. 그 순간 다른 표시등 하나가 노란색으로 변했다. 전력 잔량이 18퍼센트에서 17퍼센트로 떨어졌다.

문을 여는 데도 값이 붙었다.

서진은 그 사실을 기억해 두었다. 무엇인가를 얻으면 다른 것이 줄어든다. 아르고스의 첫 규칙처럼 느껴졌다.

전실에는 사람의 흔적이 없었다. 책상 위에는 말라붙은 컵과 부서진 무전기만 남아 있었다. 벽면 모니터 열두 개 중 세 개가 살아 있었다.

첫 번째 화면에는 산소 31일 치가 표시됐다. 두 번째에는 식량 47일 치. 세 번째 화면의 인원 목록에는 한서진 한 명만 있었다.

그는 인원 목록을 다시 확인했다. 이름 하나뿐이었다. 냉동 수면실 안에 캡슐이 열두 개 있었지만 누구의 생체 신호도 잡히지 않았다.

“한 명.”

말이 입 밖으로 나가자 전실이 더 넓어 보였다.

서진은 관리 규칙을 찾았다. 본능적으로 화면 우측의 보안 탭을 눌렀다. 시설을 바꾸면 로그를 남기고 수치를 확인해야 한다는 문장이 떴다. 문을 하나 열 때마다 전력이나 산소가 줄었다. 변경을 확인하지 않으면 다음 구역의 잠금이 유지됐다.

보안 관리자라면 이 규칙을 지켜야 했다. 이유는 기억나지 않아도 규칙이 틀렸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확인되지 않은 대상을 들이는 순간 한 구역의 문제가 전체 벙커로 번질 수 있었다.

봉쇄 기록을 열었다.

[봉쇄 시작: 10년 전 03:12]
[중앙 기록: 10년 전 03:23]
[기록 상태: 일부 손상]

서진의 손가락이 멈췄다.

11분.

복구 버튼을 누르려는 순간 격리동 방향에서 둔탁한 소리가 났다.

쿵.

모니터 한쪽의 카메라가 꺼졌다. 검은 화면 위에 통신 오류가 떠올랐다.

서진은 손전등을 켰다. 빛이 닿은 통로에는 먼지가 두껍게 내려앉아 있었다. 바닥에 끌린 자국이 있었지만 발자국은 없었다. 끌린 자국은 냉동 수면실 쪽이 아니라 격리동 안쪽으로 이어졌다.

그는 전실 안쪽의 구급 상자를 열었다. 소독포 두 장과 압박 붕대 하나. 진통제 네 알. 방호 마스크 하나. 손에 쥘 만한 금속 도구로는 부러진 무전기 안테나가 전부였다.

총은 없었다.

문 너머에서 다시 소리가 났다.

이번에는 긁는 소리였다.

금속을 손톱으로 천천히 긁는 소리. 한 번 긁고 멈췄다가 두 번 긁었다. 일정한 간격이 마치 신호처럼 이어졌다.

서진은 격리동 카메라 목록을 띄웠다. 꺼진 카메라 앞에는 ‘관찰 사각’이라는 짧은 메모가 붙어 있었다. 메모의 글씨가 자신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는 관리자 단말을 팔찌에 연결했다. 푸른 선이 시야를 가로질렀다. 카메라와 압력 센서와 잠금장치의 위치가 머릿속에 겹쳐졌다.

감시망 동기화.

이름은 떠올랐지만 사용법은 떠오르지 않았다. 대신 경고 문구가 본능처럼 따라왔다.

90초를 넘기지 마라.

서진은 연결을 시작했다.

격리문 앞의 압력은 정상. 문 안쪽 온도는 19도. 생체 신호 하나. 신호가 뛰다가 멈추고 다시 뛰었다.

사람의 심장처럼 보였지만 일정하지 않았다. 생체 센서는 반응하는데 인원 목록에는 잡히지 않았다. 등록된 인간의 신호가 아니거나 기록이 지워진 상태였다.

동기화 37초.

누군가의 감정이 흘러들었다. 메마른 입안의 피 맛. 바닥에 엎드린 채 들키지 않으려 숨을 참는 공포. 그리고 문 반대편에서 들려오는 서진 자신의 목소리.

‘열어.’

서진은 연결을 끊었다.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 한순간 타인의 공포가 자신의 공포처럼 가슴을 조였다. 손전등이 바닥에 떨어졌다.

문 안쪽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한서진.”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목소리는 낮고 거칠었다. 사람의 목소리를 흉내 내는 것처럼 단어 사이가 지나치게 정확했다.

“한서진. 나 여기 있어.”

서진은 격리문까지 세 걸음 남은 위치에 서 있었다. 팔찌 화면에 접근 권한이 떴다.

《격리문 개방: 관리자 3등급 승인 가능》

문을 열면 생존자를 확인할 수 있다. 문을 열면 무엇이 나올지도 모른다.

전실 스피커에서 부드러운 여성의 안내 음성이 흘렀다.

《구조 대상이 확인되었습니다. 격리 절차를 해제하면 의료 지원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서진은 음성 문장을 단말에 저장했다. 구조 대상이라는 표현은 인원 목록과 맞지 않았다. 목록에는 자신밖에 없었다. 안내 음성이 진짜 구조 요청이라면 먼저 생체 정보와 격리 상태를 일치시켜야 했다.

“확인되지 않은 대상은 구조 대상이 아니다.”

그는 격리문 개방을 취소했다. 문 너머의 목소리가 잠깐 멎었다.

“기억 안 나?”

서진의 손가락이 굳었다.

목소리는 이번에 조금 달랐다. 낮고 거친 흉내 아래에 어린 사람의 숨소리가 섞였다. 누군가가 아는 호칭을 꺼내려다 실패한 것처럼 들렸다.

“서진아.”

두 글자가 가슴을 후벼 팠다. 아무런 기억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 사실이 오히려 불길했다.

그는 동기화 버튼 위에서 손을 떼었다. 확인되지 않은 기억을 다시 들여다보는 일은 구조가 아니었다. 문을 연 뒤 후회할 수는 있어도 문을 열기 전의 절차는 지켜야 했다.

서진은 보조 전력 메뉴를 열었다. 격리동에 전력을 보내면 냉동 수면실의 냉각이 더 빨리 떨어진다는 경고가 떴다.

전력 17퍼센트. 산소 31일. 자신이 깨어난 뒤 냉동 수면실의 냉각에는 이미 손실이 생겼다.

그는 보조 전력을 격리동 카메라 한 대에만 배분했다. 모니터가 켜졌다.

화면 속 복도는 비어 있었다. 격리문 아래에 어두운 액체가 번져 있었다. 액체가 카메라 쪽으로 한 줄 길게 늘어났다.

그때 화면 가장자리에서 얼굴 하나가 스쳤다.

사람처럼 생겼다. 눈은 보이지 않았다. 목은 비정상적으로 길었다. 얼굴이 사라진 뒤에도 문 앞의 액체만 느리게 움직였다.

카메라가 다시 꺼졌다.

서진의 팔찌에 새 기록이 떴다.

[관리자 신경 패턴 재확인]
[기억 백업 상태: 접근 대기]

기억 백업이라는 말에 손끝이 떨렸다. 그는 복구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 무엇을 되찾게 될지 몰랐다. 자신이 이 시설에 왜 누워 있었는지조차 모르는 상태에서 과거의 명령을 불러오는 일은 판단이 아니었다.

격리동 안에서 세 번째 목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분명히 서진의 목소리였다.

“문을 닫아.”

서진은 격리문의 이중 잠금을 확인했다. 잠금은 살아 있었다. 문 안쪽 압력도 아직 정상이다. 지금 당장 열 이유는 없었다.

그는 손전등을 주워 들었다.

문을 열지는 않는다. 하지만 돌아서지도 않는다.

“먼저 본다.”

서진은 격리동 통로의 수동 회로를 찾기 시작했다. 통로의 도면이 기억 속에서 완성되지 않았다. 대신 전실 벽 아래에 손바닥만 한 점검구가 있다는 촉감이 떠올랐다.

그는 무릎을 꿇고 점검구 덮개를 열었다. 안쪽에는 세 갈래 전선과 오래된 회로 차단기가 있었다. 격리동 카메라에만 전력을 보내려면 파란 레버를 아래로 내려야 했다.

레버를 내리자 전력 잔량이 16퍼센트로 떨어졌다. 이번에도 수치가 변했다. 서진은 단말에 변경 이유와 시각을 기록했다.

문 안쪽의 긁는 소리가 멎었다.

대신 무언가가 문을 세 번 두드렸다.

쿵. 쿵. 쿵.

마지막 두드림 뒤에 낮은 웃음이 섞였다.

아르고스의 인원 목록은 한 명이었다.

그런데 문 너머의 것은 한서진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서진은 손전등을 격리동 통로 쪽으로 돌렸다. 전실을 지키는 동시에 통로를 확인할 수 있는 위치를 잡았다. 다음 확인 대상은 문이 아니었다.

문으로 이어지는 사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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