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혼당하고 주식으로 대박 났다

2화: 열한 분의 가격
거래 확인창의 숫자는 지나치게 단정했다.
투자금 이천만 원. 레버리지 백 배. 예상 청산가는 현재가 바로 위에 붉은 글씨로 떠 있었다. 비트코인이 고작 일 퍼센트쯤 더 오르면 통장에 남은 돈은 사라진다.
결혼식장 계약금도 아니고 유리 명의 전세에 묶인 보증금도 아니었다. 화면에 적힌 이천만 원은 현우가 마지막까지 손에 쥐고 있던 자기 돈이었다.
그 돈까지 잃으면 월세와 카드값을 걱정하는 수준이 아니었다. 보증금 천오백만 원을 돌려받으려면 상담도 받고 서류도 준비해야 했다. 유리와 준석이 돈이 없는 사람을 얼마나 쉽게 밀어붙이는지 방금 전까지 똑똑히 봤다.
손가락이 확인 버튼 위에서 멈췄다.
차트 오른쪽에서 붉은 선이 다시 아래를 향했다. 새벽 두 시 십이 분. 곧게 떨어지는 선 끝은 화면 아래로 잘려 있었다.
현우가 주문 금액에 이천만 원을 입력하자 붉은 선이 아주 조금 들렸다.
그는 눈을 비볐다. 선은 원래 있던 자리보다 높아져 있었다. 청산가에 닿을 가능성이 커졌다는 뜻처럼 보였다.
“내가 들어가면 달라진다는 거야?”
현우는 금액을 백만 원으로 바꿨다. 붉은 선이 다시 낮게 가라앉았다. 오백만 원을 넣자 미세하게 들렸고 이천만 원을 넣자 다시 흔들렸다.
미래를 보여 주는 능력이 만능일 리 없었다. 자신이 큰 돌을 던지면 물결도 바뀐다. 그러니 차트가 가리킨 바닥만 믿고 전부를 한 번에 던질 수는 없었다.
현우는 주문창을 닫지 않고 메모 앱을 열었다. 유리의 메시지와 전세 보증금 이체 내역이 들어 있는 증거 폴더의 비밀번호를 다시 확인했다. 파일이 남아 있는 한 오늘의 모욕도 언젠가는 계산서가 된다.
그는 숨을 길게 내쉬고 주문 방식을 지정가로 바꿨다. 한 번에 시장을 건드리지 않도록 주문 수량을 잘게 나눴다. 수수료가 조금 더 나갈 수 있어도 지금 필요한 건 멋진 승부가 아니었다. 차트가 가리킨 시간 안에 살아남는 일이었다.
첫 주문을 넣었다.
짧은 체결음이 울렸다.
포지션 창에 빨간색 숏 표시가 생겼다. 두 번째 주문과 세 번째 주문도 차례로 체결됐다. 평균 진입가는 현우가 본 붉은 선의 시작점보다 조금 아래였다.
숫자만 보면 간단했다. 하락하면 번다. 오르면 잃는다.
하지만 화면 아래의 경고문은 그 단순한 문장을 잔인하게 바꿔 놓고 있었다. 가격이 청산가에 닿는 순간 거래소는 현우에게 다시 생각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 손절 버튼을 누를 시간도 없이 포지션을 가져간다.
현우는 계산기를 켰다가 껐다. 이백만 원만 남겨 두고 진입할까 하는 생각이 몇 번이나 고개를 들었다. 그러면 잃어도 다시 일어설 돈은 남는다. 대신 차트가 맞아도 오늘 필요한 만큼의 돈을 만들 수 없다.
유리는 현우가 가진 것을 알고 있었다. 결혼 자금의 액수도, 그 돈을 모으느라 명절 선물조차 줄였다는 사실도 안다. 그래서 천오백만 원을 내놓지 않겠다는 말이 더 쉬웠을 것이다. 현우가 목소리를 높여 봐야 결국 월세방으로 돌아갈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테니까.
현우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돈을 잃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빼앗긴 것을 되찾을 힘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 차이를 잊지 않으려 그는 마지막 주문을 천천히 눌렀다.
마지막 주문을 넣을 때 손끝이 식었다. 이천만 원 전부가 포지션 증거금으로 바뀌었다.
“여기서 물러나면 결국 다시 뺏기는 쪽이야.”
누구에게 들려주려는 말은 아니었다. 현우 자신이 가장 먼저 믿지 못하는 말이었다.
가격이 위로 한 칸 튀었다.
포지션 손익은 시작하자마자 마이너스였다. 십만 원이 빠지고 삼십만 원이 빠졌다. 차트의 캔들은 얇은 몸통을 만들며 예상선보다 빠르게 위로 기어갔다.
청산가까지의 숫자가 줄어들었다.
현우는 의자 끝에 걸터앉았다. 마우스를 쥔 손이 저절로 손절 버튼으로 움직였다. 지금 닫으면 적어도 전부를 잃지는 않는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그렇게 할 것이다.
하지만 화면 위의 붉은 선은 반등 뒤에 꺾여 있었다.
휴대폰이 울렸다.
[유리: 진짜로 답 안 할 거야? 나도 복잡해. 내일 아침에 계약 얘기하자.]
현우는 메시지를 끝까지 읽고도 대화창을 열지 않았다.
복잡하다는 말은 편리했다. 미안하다는 말도 없고 돈을 돌려주겠다는 말도 없다. 계약 이야기를 하자는 건 결국 자신이 정한 조건을 받아들이라는 뜻일 뿐이었다.
가격이 한 번 더 올랐다.
손실은 백만 원을 넘었다. 심장이 너무 크게 뛰어서 체결음조차 들리지 않았다. 붉은 선이 흔들렸다. 현우가 넣은 주문을 시장이 밀어낸 것처럼 선의 모양이 조금씩 바뀌었다.
그는 화면을 확대했다. 붉은 선의 낙폭은 여전했지만 꺾이는 시점이 몇 초 뒤로 밀려 있었다. 같은 미래가 아닌 것 같았다.
순간 목덜미가 서늘해졌다. 주문을 작게 나누었다고 해도 이천만 원은 그에게 전부였다. 그 전부가 차트를 바꾼 것이라면 지금 믿고 있는 선은 이미 낡은 정보일 수 있다.
손절 버튼이 눈앞에서 깜빡이는 듯했다.
현우는 한 번만 더 차트를 바꿔 보려다 멈췄다. 주문을 줄이고 늘릴수록 선이 흔들렸다. 확인하려고 움직이는 행동 자체가 미래를 더 흐릴 수 있다.
“이제는 봐야 해.”
그는 마우스를 책상 가장자리로 밀어 놓았다.
그는 손을 마우스에서 뗐다.
공포가 시키는 대로 버튼을 누르는 순간 이 거래는 차트와 상관없는 도박이 된다. 현우는 스스로 정한 기준을 떠올렸다. 붉은 선이 사라지지 않는 한 급하게 움직이지 않는다. 예상이 틀린 징후가 나오면 미련 없이 끊는다.
시계가 두 시 십 분을 가리켰다.
호가창의 매수 물량이 줄었다가 다시 채워졌다. 작은 반등을 노린 주문들이 서로를 밀어 올렸다. 현우는 입술을 깨물며 숫자가 변하는 속도를 따라갔다.
두 시 십일 분 오십 초.
차트 위 붉은 선이 깊게 떨렸다. 그 끝에 가느다란 검은 봉 하나가 생겼다.
아홉 초.
현우는 숫자를 세지 않으려 했지만 눈이 저절로 시계로 갔다. 방 안은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만 들릴 만큼 조용했다. 창밖의 도로에는 가끔 택시 한 대가 지나갔다. 세상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새벽을 향해 가고 있었다.
여덟 초.
유리에게서 메시지가 하나 더 왔다.
[유리: 말 길게 하지 말고 내일 오면 돼. 준석 오빠도 같이 있을 거야.]
현우는 알림을 지웠다. 손실 숫자가 백오십만 원을 넘어갔다. 그 이름을 보는 순간 손절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커졌지만 그건 거래와 아무 상관없는 감정이었다.
다섯 초.
그는 화면 밖을 보지 않기로 했다.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미 넣은 주문과 이미 지나간 시간을 되돌리는 버튼은 없었다.
열 초 뒤 첫 장대음봉이 화면을 찢었다.
호가창의 매수 물량이 순식간에 비었다. 가격은 계단을 밟을 새도 없이 떨어졌다. 손익 숫자가 마이너스를 지우고 플러스로 넘어갔다.
천만 원.
이천만 원.
현우는 숨을 멈췄다. 결혼 준비를 하며 몇 달을 쪼개 모은 돈보다 큰 숫자가 몇 초 만에 화면을 지나갔다.
붉은 선은 아직 아래로 향하고 있었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더 벌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차트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능력은 방향을 보여 줄 뿐 욕심의 끝까지 책임져 주지 않는다.
삼천만 원 수익이 찍히자 현우는 전량 청산 버튼을 눌렀다.
손가락은 떨렸지만 망설이지는 않았다.
체결이 끝난 뒤 잔고 화면이 새로 고쳐졌다. 오천만 원을 조금 넘는 숫자가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현우는 등받이에 기대지 못했다. 이 돈이 현실인지 확인하려고 거래 내역을 세 번이나 열었다. 진입과 청산 가격, 수수료, 실현 손익을 모두 캡처해 암호 폴더에 저장했다.
웃음은 나오지 않았다.
방금 전까지 그는 이천만 원을 잃을까 봐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지금 화면에는 그 두 배가 넘는 수익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도 유리가 돌려주지 않겠다고 한 천오백만 원은 여전히 제자리에 걸려 있었다.
현우는 잔고의 숫자를 손가락으로 가렸다. 가리고 나서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불과 십여 분 전까지 자신을 짓누르던 공포가 아직 가슴에 남아 있었다.
이 돈으로 유리를 찾아가고 싶은 충동이 올라왔다. 휴대폰 화면을 들이밀며 누가 아무것도 없는 사람인지 보여 주고 싶었다.
그는 휴대폰을 뒤집어 책상 위에 놓았다.
보여 주는 순간 이 돈은 또다시 저들의 말에 끌려다니는 도구가 된다. 현우에게 필요한 건 상대의 표정이 아니라 반환받을 금액과 서류였다.
현우는 메모장을 열었다.
[전세 보증금과 결혼 비용 정산 내역을 서면으로 보내. 내가 이체한 천오백만 원과 결혼 자금 사용 내역을 확인한 뒤 반환을 요구하겠다.]
문장을 다 쓰고 한참 바라봤다. 화가 난 문장으로는 아무것도 돌려받지 못한다. 오전이 되면 법률 상담 예약부터 잡는다. 통화 녹음과 이체 내역도 정리할 생각이었다.
그는 메시지를 임시 저장했다.
그때 처음 보는 번호가 화면을 채웠다.
현우는 진동하는 휴대폰을 내려다봤다. 발신 지역도 표시되지 않았다. 하지만 누구인지 짐작하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통화 버튼을 누르자 낮고 느긋한 목소리가 들렸다.
“강현우 씨죠?”
윤준석이었다.
현우는 잔고 화면을 끄지 않은 채 대답했다.
“맞습니다.”
“내일 만나서 얘기합시다. 유리도 힘들어해요. 서로 피곤하게 만들지 말고 좋게 끝내죠.”
그 말투에는 사과도 부탁도 없었다. 이미 현우가 고개를 숙일 거라고 결정한 사람의 목소리였다.
몇 분 전의 현우라면 그 말에 목이 막혔을 것이다. 하지만 화면 한쪽에는 자신이 직접 선택해 만든 숫자가 남아 있었다.
현우는 창밖이 희미하게 밝아지는 쪽을 보았다.
“좋게 끝내자는 말은 돈을 돌려준 다음에 하세요.”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준석이 낮게 웃었다.
“그 돈 때문에 이러는 겁니까?”
현우의 눈빛이 식었다.
“아뇨. 그 돈부터 시작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