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으로
뼈만 치료하는 정골 네크로맨서2화

뼈만 치료하는 정골 네크로맨서

뼈만 치료하는 정골 네크로맨서

AD
스폰서 광고

2화: 은종이 울리는 골목

빗속의 그림자

발끝이 흙탕물을 튀겼다.

도윤은 허리를 바짝 숙인 채 좁은 골목길을 내달렸다. 차가운 빗줄기가 얼굴을 때렸고 숨을 들이쉴 때마다 축축한 곰팡이 냄새가 목구멍을 찔렀다.

“사령술사가 남쪽 샛길로 빠졌다!”

뒤편에서 거친 고함이 메아리쳤다.

짤랑, 짤랑.

날카로운 쇠종 소리가 빗소리를 가르고 귓전을 울렸다. 종소리가 울릴 때마다 골목 양옆에 붙은 판잣집들의 덧문이 쾅쾅 닫혔다.

창틈으로 도윤을 내다보던 주민들은 공포에 질려 빗장을 걸어 잠갔다. 죽은 자의 뼈를 일으킨 존재를 향한 원초적인 두려움이었다.

‘단순한 부랑자를 쫓는 기세가 아니다.’

도윤은 호흡을 가다듬으며 골목의 형태를 살폈다.

빗물이 고인 바닥은 진흙과 오물이 뒤섞여 미끄러웠다. 등 뒤에서 외침이 이어졌다.

“백은성당의 정화대를 피할 수는 없다! 부정한 망령을 부린 죄인은 즉시 무릎을 꿇어라!”

백은성당.

도윤은 달리는 와중에도 그 단어를 곱씹었다. 폐창고 앞에서 마주쳤던 흰 망토와 은빛 표식의 무리들이 바로 백은성당의 정화대인 모양이었다.

그들은 도윤이 사람을 구하려 했다는 사실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저 흩어져 있던 유골이 움직였다는 결과 하나만으로 사형선고를 내릴 듯 쫓아오고 있었다.

“큭…….”

손목 안쪽에서 묵직한 뻐근함이 밀려왔다.

창고에서 이름 없는 시신의 부러진 손목을 맞추던 순간 느껴졌던 서늘한 압박감이 아직 뼈마디 사이에 남아 있었다.

움직임에는 이상이 없었지만 체력이 빠르게 깎여 나가고 있었다.

저 멀리 골목 앞쪽에서도 쇠종 소리가 울렸다.

앞뒤에서 길을 막아서며 포위망을 좁혀 오고 있었다. 양옆은 사람 키를 넘는 낡은 돌벽과 무너져 가는 판자 울타리뿐이었다.

도윤은 멈추지 않고 주변을 훑었다.

오른쪽 담벼락 아래 버려진 상자와 가마니 더미 뒤편으로 사람 하나가 들어갈 만한 틈이 보였다. 판자벽이 비바람에 삭아 구멍이 뚫린 폐가였다.

그는 망설임 없이 가마니 더미 속으로 몸을 던졌다.

진흙탕을 구르며 좁은 틈을 비집고 들어가자 퀴퀴한 마른 짚 냄새가 코를 찔렀다. 도윤은 숨을 죽인 채 바닥에 엎드렸다.

등 뒤로 거친 발소리와 함께 흰 망토의 사내들이 달려 지나갔다.

“흔적이 끊겼다!”

“이 앞쪽 막다른 길목을 샅샅이 뒤져라!”

쇠종 소리가 골목 저편으로 멀어졌다. 도윤은 거친 숨을 천천히 내쉬며 흙바닥에 등을 기댔다.

어둠 속의 탈구

폐가 내부는 생각보다 어두웠다.

부서진 서까래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희미한 달빛만이 바닥을 비추고 있었다. 안도의 숨을 내쉬려던 찰나 도윤의 목덜미로 서늘한 쇠붙이의 감촉이 닿았다.

“움직이지 마…….”

쇳소리가 섞인 노인의 목소리였다.

도윤은 턱을 살짝 든 채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날이 부러진 쇠꼬챙이가 자신의 목을 겨누고 있었다.

어둠에 눈이 익숙해지자 짚단 뒤에 웅크리고 있던 노인의 모습이 드러났다. 뼈만 앙상하게 남은 몸에 헤진 누더기를 걸치고 있었다.

하지만 위협하는 손길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떨리고 있었다.

쇠꼬챙이를 쥔 노인의 오른팔은 기이한 각도로 처져 있었다. 어깨 끝의 둥근 윤곽이 사라지고 평평하게 깎여 있었으며 팔꿈치는 몸통에 닿지 못한 채 겉돌았다.

‘견관절 전방 탈구.’

도윤의 시선이 본능적으로 노인의 어깨 관절을 훑었다.

뼈의 위치와 관절의 어긋남이 머릿속에 해부도처럼 그려졌다. 무거운 짐에 깔려 관절구가 앞으로 빠져나간 형태였다.

“성당 놈들의 첩자냐 아니면 도둑놈이냐…….”

노인은 고통으로 이를 갈며 쇠꼬챙이를 들이댔다. 말을 할 때마다 어깨 신경이 눌리는지 노인의 입술이 파랗게 질려 떨렸다.

도윤은 천천히 양손을 들어 손바닥을 보여 주었다.

“첩자도 도둑도 아닙니다. 쫓기다 숨어든 것뿐입니다.”

“밖에서 사령술사 어쩌고 하는 소리가 다 들렸다!”

“저는 사람을 해치지 않습니다.”

도윤은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오른쪽 어깨가 빠져 있군요. 쇄골 아래쪽으로 뼈머리가 밀려나 신경을 누르고 있습니다. 손가락 끝이 저리고 숨을 들이쉴 때마다 통증이 찌를 텐데요.”

노인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네놈이 그걸 어떻게 알아?”

“눈으로 보아도 관절의 윤곽이 어긋나 있습니다. 그리고 뼈를 보면 다친 방향이 느껴집니다.”

도윤은 장갑을 낀 손을 가볍게 내밀었다.

“이대로 두면 영구적인 마비가 올 수 있습니다. 제가 맞춰 드릴 수 있습니다.”

“성당 사제 놈들도 은화 세 닢 없이는 기도 한 번 안 해 주는데 어디서 굴러먹던 놈이 뼈를 맞춘다는 거냐!”

“돈을 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도윤은 노인의 떨리는 눈을 정면으로 마주 보았다.

“다만 팔을 만져도 되는지 먼저 여쭙는 겁니다. 손을 대도 되겠습니까? 통증이 잠깐 심해질 수 있지만 그대로 두는 것보다는 나을 겁니다.”

불신과 고통이 뒤엉킨 침묵이 흘렀다. 마침내 노인의 손에서 힘이 빠지며 쇠꼬챙이가 짚단 위로 툭 떨어졌다.

“……마음대로 해라. 어차피 이대로 팔이 썩으나 매한가지다.”

“동의하신 것으로 알겠습니다.”

도윤은 무릎을 꿇고 노인의 곁으로 다가앉았다.

그는 노인의 오른쪽 팔꿈치를 조심스럽게 감싸 쥐었다. 손끝을 통해 노인의 뼈에 새겨진 마지막 통증의 파편이 스며들어 왔다.

무거운 나무 상자에 깔려 억지로 팔을 뻗던 순간의 충격. 관절이 뚝 소리를 내며 제자리를 이탈하던 고통. 골흔은 노인이 겪었던 사고의 순간을 정확하게 알려 주고 있었다.

‘어깨뼈의 관절와 아래로 상완골두가 걸려 있다.’

도윤은 힘으로 억지로 밀어 넣지 않았다. 관절 정복에서 중요한 것은 완력이 아니라 정확한 각도와 회전이었다.

그는 노인의 팔꿈치를 90도로 굽힌 채 몸통에 밀착시켰다.

“숨을 천천히 내쉬십시오. 힘을 빼야 합니다.”

노인이 거친 숨을 내뱉는 순간 도윤은 노인의 팔을 바깥쪽으로 천천히 회전시켰다.

스르륵.

어긋나 있던 근육과 건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노인의 입에서 신음이 터져 나왔다. 도윤은 멈추지 않고 상완을 들어 올리며 안쪽으로 부드럽게 감아 넣었다.

쿵.

작지만 묵직한 마찰음과 함께 뼈가 관절와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큭……!”

노인이 상체를 크게 들썩였다가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도윤은 손을 떼지 않고 어깨의 외형을 손끝으로 확인했다. 깎여 있던 어깨 선이 둥근 본래의 모습을 되찾아 있었다. 쇄골 아래를 압박하던 뼈의 돌출도 사라졌다.

“손가락을 움직여 보십시오.”

노인은 멍한 표정으로 자신의 오른손을 내려다보았다. 부들부들 떨리던 손가락이 주먹을 쥐었다 펴며 움직였다. 찌르던 통증이 사라지고 뻐근한 둔통만이 남아 있었다.

“어……? 뼈가 들어갔어?”

노인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자신의 어깨를 왼손으로 더듬었다.

“성당의 치유 기적도 없이 맨손으로 맞췄다고?”

“부러진 것이 아니라 관절이 빠진 것이라 제자리를 찾아 준 것뿐입니다.”

도윤은 바닥에 떨어져 있던 천 조각을 주워 노인의 팔을 목에 걸어 고정했다.

“당분간 팔을 위로 들거나 무거운 것을 들면 안 됩니다. 인대가 아물 때까지 최소 열흘은 고정해 두셔야 합니다.”

노인은 넋이 나간 눈으로 도윤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눈빛에서 의심이 걷히고 깊은 경외가 차올랐다.

“자네 진짜 사령술사인가?”

“저는 그저 뼈를 맞추는 사람입니다.”

도윤의 담담한 대답에 노인은 마른침을 삼켰다.

“그럼 더더욱 조심해야 해. 백은성당 놈들은 빈민가에서 다친 놈들을 거들떠보지도 않지만 누군가 허락 없이 사람을 고치거나 유골을 건드리면 기를 쓰고 잡아 죽이려 드니까.”

노인이 목소리를 낮추며 덧붙였다.

“성당 놈들은 가난한 자들이 죽으면 시체를 거두어 가서는 장례도 제대로 치르지 않고 어디론가 빼돌린다네. 그러니 자네처럼 뼈를 만지는 자를 가만둘 리가 없지.”

성당이 시신을 빼돌린다.

도윤은 그 말을 가슴속에 새겼다. 폐창고의 유골들과 성당 순찰대의 집착이 머릿속에서 희미하게 연결되는 느낌이었다.

“이곳을 빠져나가려면 어디로 가야 합니까?”

도윤이 묻자 노인은 부서진 판자벽 너머 북쪽을 가리켰다.

“북쪽으로 세 골목을 지나면 약초 골목이 나오네. 거기엔 성당 놈들을 끔찍하게 싫어해서 그자들의 손길을 거부하는 독종 약사 계집이 하나 있지. 자네가 다치지 않고 숨을 곳을 찾는다면 그 근처가 제일 안전할 게야.”

고동치는 뼈

폐가를 나섰을 때 빗줄기는 한결 가늘어져 있었다.

차가운 밤안개가 골목 바닥을 낮게 깔며 흐르고 있었다. 도윤은 노인이 알려 준 북쪽 방향을 향해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성당 순찰대의 쇠종 소리는 멀리 남쪽 골목으로 흩어져 더는 들리지 않았다.

품속에 넣어 둔 부적이 다시금 미세하게 진동했다.

따뜻한 온기가 아니었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바늘이 가슴을 찌르는 듯한 날카로운 박동이었다. 도윤은 셔츠 안쪽으로 손을 넣어 부적을 감싸 쥐었다.

부적 안의 유골 조각이 반응하고 있는 방향은 명확했다.

수도 에르데른의 중심부 안개 낀 밤하늘 위로 웅장하게 솟아 있는 백은빛 거대 성당의 돔 지붕 쪽이었다. 그곳에서 수많은 뼈들이 짓눌리고 뒤틀리는 듯한 둔탁한 공명이 부적을 통해 전해져 오고 있었다.

‘이 부적에 깃든 유골은 대체 무엇과 연결되어 있는 거지?’

전이되기 직전 시체 수습 현장에서 미처 구하지 못했던 동료의 유골.

그 유골이 어째서 이 낯선 세계의 거대한 성당과 공명하는지 도윤으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자신이 이곳에 떨어진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며 저 성당 깊은 곳에 풀지 못한 거대한 매듭이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도윤은 부적을 쥐었던 손을 거두고 작업 장갑을 단단히 고쳐 맸다.

지금 당장 성당의 비밀을 파헤칠 힘은 없었다. 신분도 돈도 없는 도망자의 처지에서 살아남으려면 한 걸음씩 확실한 거점을 마련해야 했다.

그는 노인이 말했던 약초 골목의 어귀로 접어들었다.

남부 빈민가의 다른 곳들과 달리 이곳은 골목 양옆으로 말린 풀 냄새와 쌉싸름한 약재 향이 짙게 배어 있었다. 길게 늘어선 처마 밑에는 정체 모를 약초 다발들이 빗물을 피해 빼곡히 매달려 있었다.

인적이 끊긴 골목은 고요했다.

도윤이 숨을 고르며 어두운 골목 안쪽을 살피던 바로 그때였다.

덜컹, 콰당탕!

무거운 나무 상자가 돌바닥에 메어 꽂히며 산산조각 나는 둔탁한 파열음이 골목을 뒤흔들었다.

“아악!”

찢어지는 듯한 어린 비명이 뒤이어 터져 나왔다.

도윤은 반사적으로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약초 상점들의 처마 끝 비에 젖은 돌계단 아래에 거대한 약재 궤짝이 엎어져 있었다. 그 무너진 궤짝 아래에 왜소한 체격의 소년 하나가 깔려 바둥거리고 있었다.

“으흑…… 다리가, 다리가……!”

소년의 비명 속에서 뼈가 으스러지는 듯한 불길한 파동이 도윤의 감각을 때렸다.

단순한 타박상이 아니었다.

빗물에 미끄러져 계단에서 굴러떨어지며 무거운 궤짝의 모서리가 소년의 정강이를 정면으로 찧은 것이었다.

도윤의 잿빛 눈동자가 가라앉았다.

쫓기는 도망자의 신분이라는 경고가 머릿속을 스쳤지만 그의 발은 이미 비명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고통에 찬 뼈의 소리를 듣고도 외면하는 것은 그의 방식이 아니었다.

AD
스폰서 광고
YOU MAY ALSO LIKE

이런 작품은 어때요?

내 악보는 대마법이 된다 표지소설
연재중 12%
#아카데미#판타지#음악

내 악보는 대마법이 된다

평생 남의 이름 뒤에 숨어 곡을 쓰다 과로사한 무명 작곡가 강하진이 음악이 마법이 되는 판타지 아카데미의 마력 제로 낙제생 하진으로 빙의한다. 퇴학 직전 24시간 루프와 [신들의 작곡 시스템]을 이용해 지구의 화성학과 거장들의 선율을 대기 에테르 유도식으로 변환하며 악보 한 장으로 아카데미와 제국을 뒤흔드는 천재 작곡가의 대마법 성장기.

16화2026.0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