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으로
블라인드 아포칼립스10화

블라인드 아포칼립스

블라인드 아포칼립스

AD
스폰서 광고

10화: 첫 번째 희생자

방재실 쪽에서 울린 전자음은 세 번째로 이어지지 않았다.

— 삑.

마지막 비프음이 짧게 끊긴 뒤 벽체 안쪽 배선에서 릴레이가 튀는 마른 소리가 났다. 딸깍거리며 금속 접점이 맞물리는 소리는 누군가 카드키를 정상적으로 긁었을 때 나는 소리가 아니었다.

수아가 한결의 팔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카드키를 댄 소리가 아니에요.”

“단말기입니까?”

“전압이 떨어졌다가 다시 올라갈 때 나는 리셋 비프음이에요. 방재실 외벽 단말기 전원이 불안정해요.”

한결은 숨을 고르며 복도의 공기를 짚었다.

정문 보조 셔터에 덧댄 생수 팔레트 아래에서는 여전히 둔탁한 긁힘이 울리고 있었다. 밖의 존재가 틈새를 찾아 철판을 문지르는 소리가 길게 이어졌다. 그러나 지금 더 급한 것은 머리 위 환풍구에서 쏟아져 내리는 붉은 냄새였다. 달고 끈적한 쇠비린내가 통로의 천장을 짓누르듯 내려앉고 있었다.

“방재실로 갑니다. 대열 풀지 마세요.”

한결이 낮게 속삭이며 손바닥을 두 번 두드렸다. 이동 신호였다.

수아가 앞장서서 타일 벽의 요철을 더듬었다. 지우는 민석의 손목을 단단히 잡았고 한결은 민석의 반대편 어깨를 짚었다. 박두식은 맨 뒤에서 팔레트 밧줄을 확인한 뒤 묵직한 발소리로 뒤를 따랐다. 뒤이어 다른 생존자들도 벽을 짚으며 조심스럽게 발을 뗐다.

통로를 걷는 동안 민석의 몸은 끊임없이 떨렸다.

민석의 이마에서 흘러내린 땀이 한결의 손등 위로 뚝뚝 떨어졌다. 체온이 비정상적으로 높았다. 손목 안쪽의 맥박은 마치 전력 질주를 하는 사람처럼 가파르게 요동치고 있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목구멍 안쪽에서 가래 끓는 듯한 마찰음이 났다.

“민석 씨.”

한결이 낮게 불렀다.

“손가락 하나 펴 보세요.”

민석의 엄지가 느리게 올라왔다. 반응은 있었지만 올라오는 속도가 아까보다 확연히 둔했다. 손가락 끝이 허공을 긁듯 파르르 경련하고 있었다.

“둘.”

검지는 끝내 올라오지 않았다. 대신 민석의 입술 사이로 마른 신음이 새어 나왔다.

방재실 전실에 도착하자 수아가 손잡이를 잡았다. 도어록 레버를 내리자 묵직한 철문이 삐걱거리며 열렸다. 안쪽에서 흘러나오는 공기는 서늘했지만 완전히 안전하지는 않았다. 방재실 안쪽 천장 그릴에서도 미세한 공기 순환음이 들려오고 있었다.

“모두 안으로 들어오세요. 발밑에 전선 트레이가 있으니 조심하세요.”

수아가 문을 잡아주며 생존자들을 차례로 들였다.

박두식이 마지막으로 들어서자마자 문을 밀어 닫았다. 묵직한 걸쇠가 맞물리며 철컥 소리가 났다. 외부 복도의 냄새는 일단 차단되었지만 방재실 내부의 긴장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방재실 벽면에는 비상 담요로 덮어둔 CCTV 모니터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검은 비닐과 은박 담요로 꽁꽁 싸맸지만 모니터 기판이 뿜어내는 미열이 좁은 방 안의 온도를 묘하게 덥히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도 은박 담요 가장자리가 미세하게 들썩이며 내부의 전자기적 열기를 전해왔다.

“수아 씨. 환기 차단 스위치 위치를 찾을 수 있겠습니까?”

한결이 물었다.

“제어반 메인 패널 아래쪽이에요. 왼쪽 세 번째 열에 댐퍼 수동 개폐 레버가 모여 있어요. 네모난 토글스위치 옆에 세로로 배열된 레버예요.”

수아가 더듬거리며 제어반으로 다가갔다. 신발 밑창이 바닥 전선 몰딩을 밟는 바스락 소리가 났다.

그때 지우가 쥐고 있던 민석의 손이 거칠게 비틀렸다.

“아앗!”

지우가 짧게 비명을 질렀다.

민석이 지우의 손을 거칠게 뿌리치고 벽 쪽으로 비틀거리며 물러섰다. 뒤통수가 배전함 철판에 쾅 부딪혔다.

“민석 씨!”

한결이 손을 뻗었지만 민석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바닥에 웅크렸다. 민석은 양손으로 머리를 쥐어싸매며 바닥을 굴렀다.

“시끄러워…… 제발 그만해…….”

민석의 목소리가 찢어질 듯 갈라져 나왔다.

“머릿속에서…… 계속 부르잖아…… 문을 열라고…… 불을 켜라고…….”

박두식이 허리춤에서 쇠파이프를 쥐며 앞으로 나섰다. 금속이 옷깃을 스치는 소리가 사납게 울렸다.

“놈이 미쳐가고 있어. 지금 제압해야 해.”

“가만히 계세요.”

한결이 박두식을 가로막으며 민석을 향해 몸을 낮췄다.

“민석 씨. 내 목소리 들립니까? 지금 들리는 건 환청입니다. 안개를 직접 보지 않아도 냄새와 잔상 때문에 뇌가 착각하는 거예요. 눈가리개에 손대지 마세요.”

민석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턱을 덜덜 떨며 웃기 시작했다.

— 큭. 흐, 흐흐.

그 웃음소리는 아까 매장에서 들었던 변이자의 마찰음과 정확히 같았다. 사람의 성대에서 억지로 쥐어짜 내는 불쾌한 떨림이었다. 침이 기도를 막고 역류하는 듯한 소리였다.

지우가 귀를 막으며 한결의 등 뒤로 숨었다.

“아저씨…… 저 웃음…… 아까 그 괴물 소리예요…….”

“수아 씨! 스위치 빨리 내려요!”

한결이 외쳤다.

수아의 손가락이 제어반 하단의 레버를 하나씩 젖히기 시작했다. 손톱이 금속 패널을 긁으며 레버를 아래로 꺾었다.

철컥. 웅.

환기 모터가 하나씩 멎으며 덕트 안의 기류가 꺾이는 소리가 났다. 그러나 마지막 세 번째 레버를 내리려는 순간 민석이 비명을 질렀다.

“아아아악!”

민석의 손이 자신의 얼굴로 올라갔다. 눈을 덮고 있던 셔츠 천을 두 손으로 쥐어뜯었다.

“민석 씨, 안 돼!”

한결이 몸을 던졌지만 민석의 손가락이 천을 잡아당기는 속도가 더 빨랐다.

투둑.

눈가리개가 바닥으로 찢겨 떨어졌다.

어둠 속에서 공기가 얼어붙었다.

눈가리개를 벗어던진 민석의 거친 숨이 방재실 안에 가득 찼다. 비록 방재실 조명은 꺼져 있었지만 모니터를 덮은 은박 담요 틈새와 천장 비상 유도등에서 희미한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민석은 그 미세한 빛을 향해 고개를 번쩍 들었다.

“보여…….”

민석이 중얼거렸다.

“붉은 게…… 다 보여…….”

그의 동공 안쪽에서 실핏줄이 터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뼈마디가 뒤틀리는 뚝뚝 소리와 함께 민석의 온몸이 활처럼 휘어졌다. 입에서 허연 거품 섞인 침이 흘러내려 타일 바닥을 적셨다.

— 캬아아아악!

더 이상 사람의 비명이 아니었다.

완전히 변이한 민석이 허공을 긁으며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수아를 향해 덮쳐들었다.

수아는 제어반 모서리에 등을 부딪치며 비명을 삼켰다.

한결은 눈을 감은 채 민석의 돌진음을 귀로 쫓았다. 젖은 발바닥이 바닥을 박차는 소리, 옷감이 바람을 가르는 궤적. 녀석의 체중이 오른쪽으로 쏠려 있었다.

“팀장님, 왼쪽!”

한결이 소리치며 몸을 날렸다.

한결의 어깨가 민석의 가슴팍에 정면으로 부딪혔다. 쾅 하는 둔탁한 충격과 함께 두 사람이 바닥을 굴렀다.

민석의 손톱이 한결의 팔뚝을 사납게 할퀴었다. 살점이 찢겨 나가는 통증이 번졌지만 한결은 이를 악물고 민석의 양 손목을 꺾어 눌렀다.

사람의 힘이 아니었다. 팔 근육이 비정상적으로 팽창해 한결의 완력을 밀어내려 하고 있었다. 민석의 입이 찢어질 듯 벌어지며 한결의 목덜미를 물어뜯으려 들었다.

— 흐흐, 도현아…… 문 열어……!

민석의 입에서 김도현의 목소리와 자신의 비명이 뒤섞여 튀어나왔다.

그때 박두식의 육중한 체중이 민석의 다리 위를 덮쳤다.

“이 괴물 자식이!”

박두식이 쇠파이프로 민석의 목덜미를 내리누르며 바닥에 결착시켰다. 민석이 발버둥 치며 방재실 캐비닛을 발로 찼다. 쾅, 쾅 하는 금속 소음이 좁은 방 안을 뒤흔들었다.

“수아 씨! 마지막 레버 내려요!”

한결이 짓눌린 목소리로 외쳤다.

수아가 떨리는 손으로 제어반 끝의 레버를 마저 젖혔다.

철컥!

마지막 환풍기가 완전히 멎었다. 덕트에서 쏟아지던 기류가 마침내 차단되었다.

“한결 씨! 장비 랙 안으로 밀어 넣어요!”

수아가 외벽 쪽에 설치된 대형 통신 랙의 철망 문을 활짝 열었다. 서버가 빠져나가 텅 비어 있는 강철 보관함이었다.

한결과 박두식은 온 힘을 다해 날뛰는 민석을 끌고 가 랙 안으로 밀어 넣었다.

쿵!

민석의 몸이 철망 안쪽으로 처박히자 수아가 망설임 없이 문을 닫고 빗장을 질렀다.

철컹!

자물쇠가 채워지는 소리와 함께 민석의 몸이 철망을 사납게 들이받았다. 쾅! 쾅! 손톱으로 철망을 긁어대는 끔찍한 소리가 이어졌지만 두꺼운 통신 랙은 부서지지 않았다.

철망 너머에서 민석의 붉은 눈이 번뜩이고 있을 터였다. 그러나 누구도 그쪽을 바라보지 않았다.

방재실 안에는 거친 숨소리만이 가득 찼다.

한결은 찢어진 팔뚝을 감싸 쥐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손가락 틈으로 흘러내린 피가 타일을 적셨다.

지우는 구석에 웅크린 채 소리 없이 흐느끼고 있었다.

“민석 삼촌…… 괴물이 됐어…….”

박두식이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쇠파이프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의 목소리는 분노와 공포로 짓눌려 있었다.

“봤지? 내 말이 맞았어. 눈가리개를 벗는 놈은 그 순간 끝이야.”

한결은 젖은 입술을 닦아내며 고개를 들었다.

“민석 씨는…… 이미 매장에서 휴대폰 화면의 붉은 잔상을 봤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환청을 견디지 못하고 벗은 겁니다.”

“그걸 네가 어떻게 장담해?”

박두식이 한 걸음 다가오며 험악하게 쏘아붙였다. 그의 발소리는 타일 바닥을 짓이기듯 무거웠다.

“저 녀석 말고 다른 놈들은? 여기 있는 너나, 저 계집애나, 나 모르게 슬쩍 눈을 뜬 놈이 없다고 누가 증명하지?”

방재실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뒤쪽에 숨죽이고 있던 다른 생존자들의 숨소리가 일제히 굳었다. 옷자락이 바스락거리는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침묵 속에서 불신의 씨앗이 싹트고 있었다.

눈을 가리고 있는 한 누구도 상대방의 눈동자를 확인할 수 없다. 옆에 서 있는 사람이 아직 온전한 사람인지, 아니면 이미 안개를 보고 변이를 억누르고 있는 시한폭탄인지 알 길이 없었다.

철망 안에서 민석이 또다시 기괴하게 웃었다.

— 흣, 흐흐…… 다 봤잖아…… 너희도 다 봤잖아…….

한결은 욱신거리는 팔을 누르며 주먹을 쥐었다.

안개의 공포보다 더 끔찍한 것이 폐쇄된 방재실 안을 채우기 시작했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인간들이 서로를 향해 겨누는 의심의 시선이었다.

AD
스폰서 광고
YOU MAY ALSO LIKE

이런 작품은 어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