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법사의 교양 수업에 낙제란 없다

7화: 막힌 길의 이름
교양 101 강의실에는 불꽃 하나 피어오르지 않았다.
수업 시작 종이 울린 뒤에도 학생들은 책상 위의 촛불을 건드리지 못했다. 엘리안이 칠판에 적어 둔 새 과제 때문이었다.
첫째, 오늘은 불꽃을 발동하지 말 것.
둘째, 손목과 손가락 끝에서 새는 마력을 세 번 기록할 것.
셋째, 흐름이 꺾이는 지점을 표시할 것.
시엘은 과제지를 나눠 주며 기록 기준을 설명했다.
"마력의 양은 측정구 수치로 적습니다. 손목의 통증은 강도와 시간을 나누어 기록하십시오. 추측은 관찰란과 분리해야 합니다."
"불꽃도 없이 그런 걸 어떻게 봅니까?"
뒷자리의 학생이 손을 들었다.
"보이지 않는 걸 적으라는 말과 다르지 않습니까?"
"불꽃은 마력이 밖으로 나온 결과입니다. 오늘은 결과가 나오기 전의 길을 확인합니다."
엘리안이 출석부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대답했다.
학생들이 마지못해 손목을 책상 위에 올렸다.
레온은 왼손을 펴고 오른손으로 첫 칸을 채웠다. 숨을 한 번 들이마시자 손가락 끝에 아주 작은 푸른 빛이 맺혔다. 그는 빛을 없애고 수치를 적었다.
마력 누출 2단위.
두 번째 호흡에서는 손끝이 따뜻해졌다. 세 번째 숨을 들이마시는 순간 손목 안쪽이 움찔했다.
흐름이 멈췄다.
레온은 본능적으로 마력을 밀어 넣었다. 멈춘 곳을 뚫어야 한다고 생각한 순간 손목 안쪽에서 차가운 반동이 튀어 올랐다.
그는 이를 악물고 손을 거뒀다.
"멈춘 시점은?"
엘리안의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렸다.
"셋째 숨을 들이마신 직후입니다. 멈춘 다음 되돌아왔습니다."
"되돌아온 것과 네가 밀어 넣은 힘이 튕겨 나온 것은 구분했나?"
"아직 못 했습니다."
"그럼 못 했다고 적어라.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하는 순간부터 기록은 거짓말이 된다."
레온은 빈칸에 문장을 적었다.
셋째 숨 뒤 손목 안쪽에서 흐름 정지. 밀어 넣자 반동 발생. 원인은 미확인.
시엘이 그 기록을 흘끗 보았다. 그녀는 손가락 끝의 온도 변화와 마력 누출량을 나누어 적고 있었다.
"강사님. 이 현상이 표준식의 넷째 박자와 같은 종류라면 원인을 비교할 수 있지 않을까요?"
"비교할 수 있습니다. 다만 레온의 몸에서 일어난 일과 교재의 공식에서 일어난 일을 먼저 따로 기록해야 합니다."
그때 뒷문이 열렸다.
헤이든 발몬트가 문가에 서 있었다. 한 손에는 공개 검증 기록을 옮겨 적은 양피지가 들려 있었다.
"참관을 허락해 주십시오."
그의 목소리는 어제보다 낮았다.
엘리안은 시엘이 비워 둔 마지막 자리를 턱짓했다.
"등록 수강생은 아니니 과제를 제출할 의무는 없습니다. 구경만 하다 나갈 생각이면 돌아가십시오."
헤이든은 양피지를 책상 위에 펼쳤다.
"제 손목이 굳은 이유를 확인하고 싶습니다. 넷째 박자의 측정값만으로는 원인을 찾지 못했습니다."
"수치만 옮겨 적었군. 네 몸에서 무엇이 일어났는지는 적지 않았어."
"기억이 정확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다시 확인해야지."
엘리안은 칠판 한쪽에 작은 원을 그리고 세 점을 이었다.
"마력은 길이다. 길이 막혔을 때 벽을 부수는 것만이 방법은 아니다. 어디에서 돌아섰는지부터 찾아라."
레온은 손목을 내려다보았다. 그 감각이 나타날 때마다 그는 손을 떨쳐 냈다. 아프다는 사실을 들키면 또 실패할 것 같아서였다.
엘리안이 그의 과제지 아래에 손가락을 대었다.
"다음 기록에서는 멈춘 지점 앞에서 힘을 주지 마라. 멈추면 멈춘 대로 숨을 유지해."
"그렇게 하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을 텐데요."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순간에만 보이는 것도 있다."
수업은 조용히 이어졌다. 강의실에는 펜이 종이를 긁는 소리와 학생들이 숨을 세는 소리만 남았다.
레온은 눈을 감았다. 한 번. 두 번. 그리고 세 번째 숨.
손목 안쪽에서 흐름이 멈췄다.
이번에는 밀어 넣지 않았다. 멈춘 힘이 어디로 향하는지 느끼려 했다. 굳어 있던 흐름이 미세하게 떨리더니 손바닥이 아닌 팔꿈치 쪽으로 돌아나갔다.
레온은 그 방향을 따라가려 했다.
순간 손목이 저릿하게 굳었다. 책상 아래에서 마력이 한 번 울렸다.
"멈춰."
엘리안의 손가락이 책상 모서리를 두드렸다.
"지금 네가 막은 것은 마력이 아니다. 다시 실패할까 봐 만든 벽이다."
레온의 숨이 거칠어졌다.
어릴 때부터 마법을 시도할 때마다 손목이 굳었다. 그는 집중력이 부족하다는 말을 믿고 손목을 더 세게 붙잡았다. 붙잡을수록 흐름은 더 빠르게 되돌아왔다.
"벽을 없애라는 말씀이십니까?"
"부수라는 말이 아니다. 네가 벽을 세운 이유를 확인하고 손을 치워라."
엘리안은 물이 반쯤 담긴 잔을 책상 위에 올렸다. 손가락으로 잔 바닥을 치자 수면이 둥글게 흔들렸다.
"물을 앞으로 밀면 벽에 부딪혀 돌아온다. 잔을 기울이면 흐를 길이 생긴다. 마력도 같다."
"하지만 제 마력은 잔이 아닙니다."
"그래서 네가 직접 기울여야 한다. 힘을 빼되 흐름이 지나갈 길은 남겨 둬."
레온은 다시 눈을 감았다.
세 번째 숨이 손목 안쪽에 닿았다. 흐름은 또 멈췄다. 이번에는 손목을 붙잡지 않았다. 몸이 먼저 움찔했지만 그 반응까지 기록할 대상으로 남겨 두었다.
마력은 반동을 일으키지 않았다.
손목 안쪽에서 가느다란 선 하나가 갈라졌다. 한 줄은 손바닥으로 이어졌고 다른 한 줄은 팔꿈치 쪽으로 돌아갔다. 레온은 어느 쪽도 억지로 당기지 않았다.
숨을 내쉬자 손가락 끝에서 푸른 점이 떠올랐다.
작은 불씨였다.
레온은 눈을 뜨지 않았다. 불씨는 흔들렸지만 꺼지지 않았다.
강의실 뒤쪽에서 누군가 숨을 삼켰다.
시엘은 즉시 측정구를 가져왔다. 유리 표면의 수치가 천천히 올라갔다.
마력 소모 3단위.
마동 수치는 1.1에서 멈췄다. 손목 통증은 없었다.
레온이 눈을 떴다. 손톱만 한 불씨는 전과 달랐다. 억지로 붙잡고 있는 느낌이 없었다. 불씨는 그의 숨을 따라 흔들리며 제자리에 있었다.
"꺼뜨리지 마. 지금은 키우지도 말고 유지해. 네가 만든 길이 어디까지 이어지는지 확인한다."
엘리안의 말이 끝나자 불씨가 갑자기 커졌다.
레온의 손목 안쪽에서 막혔던 마력이 한꺼번에 풀려나왔다. 그는 불씨를 누르려 손을 움켜쥐었다.
"잡지 마!"
헤이든이 먼저 소리쳤다.
그의 시선은 레온의 손목에 박혀 있었다. 공개 검증 때 자신의 손이 굳었던 순간과 똑같은 움직임이었다.
"손을 닫으면 되돌아옵니다. 손가락 사이로 흘려보내야 합니다!"
헤이든은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달은 듯 입을 다물었다.
레온은 손가락을 폈다. 불씨가 다시 작아졌고 흘러나온 마력은 손끝을 지나 촛불의 심지에 닿았다.
꺼져 있던 촛불이 맑은 푸른색으로 켜졌다.
측정구의 숫자가 멈췄다.
마력 소모 4단위.
마동 수치 0.8.
시엘은 봉인용 분필로 측정구 주변에 선을 그었다.
"손목 역류 없음. 불씨 유지 시간 18초. 발동 과정에서 영창 없음."
엘리안은 레온의 손을 살폈다. 손목은 멀쩡했고 손가락 끝에도 떨림이 없었다.
"이제 네가 말해라. 무엇을 고쳤지?"
레온은 촛불을 바라보았다.
"막힌 곳을 밀지 않았습니다. 돌아오는 흐름을 붙잡지 않았고 손끝까지 지나갈 길을 남겼습니다."
"정확하다."
엘리안은 칠판의 작은 원에 선 하나를 더 그었다.
"마력 기혈은 힘으로 넓히는 통로가 아니다. 흐름이 이어질 수 있게 장애를 치우는 길이다. 레온은 오늘 자기 손으로 첫 장애를 치웠다."
학생들이 일제히 레온을 바라보았다.
레온은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열등생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움츠러들던 어깨가 조금 펴졌다.
헤이든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도 해 보겠습니다. 제 손목이 굳은 지점부터 다시 기록하겠습니다. 표준식을 증명하려 하지 않고 제가 무엇을 막았는지 확인하겠습니다."
엘리안은 수치만 빽빽한 그의 양피지를 받아 들었다. 몸의 감각을 적는 칸은 비어 있었다.
"좋습니다. 빈칸을 채워 오십시오. 표준식을 쓴다고 같은 실수를 반복할 필요는 없습니다."
헤이든이 잠시 망설이다 물었다.
"세 줄 공식도 배울 수 있습니까?"
강의실의 공기가 굳었다.
엘리안은 그를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과제부터 제출하십시오. 관찰 없는 공식은 또 다른 암기일 뿐입니다."
헤이든은 양피지를 가슴에 안았다.
"제출하겠습니다."
수업 종료 종이 울렸지만 학생들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손목을 기록한다는 과제가 자기 마력의 지도를 그리는 일이 되어 있었다.
시엘은 새 양식을 만들었다.
"강사님. 다음부터는 흐름의 시작점과 정체 지점 그리고 출구를 따로 표시하게 하겠습니다. 마력 소모와 마동 수치도 함께 적으면 서로의 기록을 비교할 수 있습니다."
"좋습니다. 이름은?"
"마력 흐름 지도 어떻습니까?"
"지나치게 정직하지만 쓸 만하군."
엘리안은 칠판 아래에 과제를 적었다.
다음 과제: 자신의 마력 흐름 지도를 작성할 것.
시엘은 세부 항목을 덧붙였다. 호흡 횟수, 정체 지점, 반동 여부, 출구, 마력 소모량. 마지막 칸에는 한 줄이 추가되었다.
‘모르는 부분은 모른다고 쓸 것.’
레온은 자신의 과제지 가장자리에서 그 문장을 발견했다.
"강사님. 제 불씨는 성공한 겁니까?"
엘리안은 레온의 과제지를 받아 들고 맨 아래 평가란에 적었다.
검증 보류.
레온의 얼굴이 굳었다.
"아직 보류입니까?"
"오늘 네가 확인한 것은 한 번의 안정된 흐름이다. 길 전체를 확인한 것은 아니다. 성공을 서두르면 다시 막힌 곳을 만들 수 있어."
엘리안은 과제지를 돌려주었다.
"하지만 잘못된 시작은 아니군. 다음 지도를 제출하면 다시 판단하겠다."
레온은 평가란의 두 글자를 바라보았다. A도 아니고 칭찬도 아니었다. 그런데 가슴은 이상하게 가벼웠다.
이번에는 누군가가 자신을 대신해 재능 있다고 판정하지 않았다. 자신이 무엇을 느끼고 어떻게 바꾸었는지 직접 말할 수 있었다.
"알겠습니다. 다음에는 흐름 전체를 기록해 오겠습니다."
엘리안은 출석부를 들었다.
"모두 제출 기한을 기억하십시오. 마력 흐름 지도는 사흘 뒤 첫 종이 전까지입니다. 지각 제출은 F학점 심사 대상입니다."
학생들이 동시에 신음했다.
시엘은 과제 양식을 정리했다. 그때 복도 밖에서 누군가 그녀에게 대조 사본을 보여 달라고 재촉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엘의 손이 기록 봉투 위에서 멈췄다.
엘리안은 닫힌 문 쪽을 바라보았다. 푸른 눈동자에 차가운 빛이 스쳤다.
"조교. 봉인부터 확인하십시오."
시엘이 봉투를 품에 안았다.
"누가 와도 원본과 사본을 구분하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구분은 하십시오. 숨길 필요는 없습니다. 기록을 읽을 자격이 있는지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
레온은 막힘이 풀린 손목을 내려다보았다. 손끝에는 푸른 불씨의 온기가 남아 있었다.
문고리가 천천히 돌아갔다.
엘리안은 칠판의 새 과제를 가리켰다.
"오늘 수업은 끝났다. 다음에는 자기 안의 길을 들고 오십시오. 남의 공식을 베껴 온 사람은 입장하지 못합니다."
문밖에 선 학부 조교의 그림자가 기록 봉투 위로 길게 드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