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법사의 교양 수업에 낙제란 없다

6화: 약간의 오차
돌가루가 가라앉기 전에 베르나르 하르트만 교수가 단상 앞으로 나섰다.
그의 구두가 깨진 방어벽 조각을 밟을 때마다 날카로운 마찰음이 났다. 붉게 달아오른 구멍 너머로 아침빛이 길게 스며들었다. 소강당 한쪽 벽이 무너진 자리에는 아직도 백청색 불꽃의 잔광이 가느다랗게 흔들리고 있었다.
"실습을 중단한다. 즉시."
베르나르의 목소리가 먼지 낀 공기를 갈랐다.
"학생 하나가 통제하지 못한 불꽃으로 아카데미 시설을 파손했다. 시연자는 징계를 받고 비인증 공식은 폐기되어야 한다."
그의 손가락 끝이 레온을 겨눴다.
레온의 어깨가 움찔했다. 그는 손바닥을 쥐었다 폈다. 조금 전까지 불꽃을 받치고 있던 손에는 화상도 통증도 없었다. 그런데도 무너진 석벽을 마주하자 손끝이 차갑게 식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레온이 고개를 숙였다.
"강사님이 지시하신 대로 인력만 조절했는데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수리비도 제가..."
"네가 한 일은 지시를 정확히 따른 것이다."
엘리안이 그의 말을 끊었다.
엘리안은 출석부를 단상 위에 내려놓고 파손된 방어벽 앞에 쪼그려 앉았다. 검게 그을린 돌가루를 손끝에 묻힌 뒤 벽 안쪽을 천천히 훑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백청색 불꽃이 벽을 정면으로 뚫은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갈라진 돌 틈에는 더 오래된 마력선이 숨어 있었다. 충격을 흡수해야 할 차단식이 중간에서 두 번 꺾인 채 서로를 밀어내고 있었다.
엘리안이 끊어진 문양 하나를 가리켰다.
"교수님. 이 방어벽의 마지막 정기 점검이 언제였습니까?"
"그게 지금 무슨 상관이지?"
"상관이 많습니다."
엘리안은 벽에 새겨진 고리 셋을 차례로 짚었다.
"첫 번째 고리는 충격을 받아들이고 두 번째 고리는 그 힘을 옆으로 흘려보내야 합니다. 그런데 셋째 고리가 역방향 보정문으로 막혀 있군요. 들어온 힘을 분산하지 못하고 안쪽으로 다시 밀어 넣었습니다."
객석의 웅성거림이 차츰 잦아들었다.
마법학부생들 중 몇 명은 파손면을 보려고 자리에서 반쯤 일어났다. 엘리안은 그들을 향해 손을 내밀지 않았다. 굳이 막지 않아도 벽 안쪽의 뒤틀린 마력선은 누구나 볼 수 있을 만큼 선명했다.
"표준식의 넷째와 다섯째 박자와 같군요. 한쪽에서 억지로 꺾고 다른 쪽에서 다시 붙잡습니다. 겉으로는 단단해 보여도 충격이 들어오면 먼저 자기 힘끼리 부딪칩니다."
베르나르의 표정이 굳었다.
"방어벽은 마법학부가 허가한 안전 장치다. 임시 강사가 몇 마디 본 것으로 결함을 단정할 수는 없어."
"단정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드러난 흔적을 읽었을 뿐입니다."
엘리안은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돌 틈에 남은 마력 잔향이 푸른 실선으로 떠올랐다. 실선은 셋째 고리에서 서로 맞부딪힌 뒤 벽 바깥을 향해 튀어 나갔다. 레온의 불꽃은 그 틈을 지나갔을 뿐이었다.
잠시 후 푸른 실선이 사라지자 소강당은 더 조용해졌다.
"어제 말씀드린 대로 방어벽 수리비는 제 연구비에서 공제하십시오."
엘리안이 레온 쪽으로 돌아섰다.
"하지만 레온의 징계는 없습니다. 안전선 안에서 같은 촉매석으로 정해진 시연을 했고 교수님도 그 조건과 기록에 서명하셨습니다. 학생에게 시설 관리의 책임까지 씌울 생각은 없으시겠지요."
베르나르의 시선이 단상 옆 양피지로 향했다.
검증 조건 아래에는 그의 이름이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같은 마력량과 같은 촉매석. 세 번의 시연. 발동 중 신체 반응까지 기록한다는 조항.
그가 레온을 처벌하려면 자신이 허가한 공개 검증 자체가 부당했다는 말부터 꺼내야 했다.
"기록은 학부 보관실로 넘겨라."
한참 뒤에야 베르나르가 말했다.
"오늘 일은 학부가 따로 조사한다. 그때까지 관련 자료는 외부에 유출되어서는 안 된다."
시엘이 기록 판자를 품에 안은 채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원본은 학부에 제출하겠습니다."
그녀의 말투는 평소보다도 또렷했다.
"다만 공개 검증 규정상 시연자와 참관 기록관은 대조 사본을 보관할 권리가 있습니다. 촉매석의 순도와 실내 온도, 각 시연의 수치, 발동자의 신체 반응을 모두 대조한 뒤 원본과 사본에 봉인을 찍겠습니다."
베르나르가 시엘을 노려보았다.
"라인하르트 영애가 교양 강사의 편을 드는 건가?"
시엘의 루비빛 눈동자가 가늘게 빛났다.
"저는 기록의 편을 듭니다."
시엘은 양피지 위에 적힌 숫자를 가리켰다.
"측정구가 거짓말을 했다는 근거가 있다면 함께 적겠습니다. 없다면 이 결과를 보관실 깊은 곳에 넣어 두는 것 역시 기록을 훼손하는 일입니다."
객석 뒤편에서 누군가 숨을 들이켰다.
베르나르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의 조교 둘이 슬그머니 서로의 눈치를 봤다. 조금 전까지 레온의 실수를 기다리던 마법학부생들도 고개를 숙인 채 양피지만 바라보았다.
엘리안은 시엘을 잠시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오늘부터 과제 자료와 출석 기록은 시엘 조교가 관리하십시오. 귀찮은 서류를 맡길 사람이 필요했거든요."
시엘의 눈이 크게 뜨였다.
기쁨이 얼굴에 드러나는 것은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그녀는 곧 자세를 바로잡고 기록 판자를 가슴에 단단히 안았다.
"맡겨 주십시오. 한 장도 빠뜨리지 않겠습니다."
엘리안은 이번에는 레온을 향해 말했다.
"그리고 너는 수리비 걱정을 그만해라. 다음부터는 힘을 낼 줄 아는 것만큼 힘이 빠져나갈 자리를 찾으면 된다."
레온은 무너진 방어벽과 멀쩡한 자신의 손목을 번갈아 보았다.
그는 아주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예. 이번에는 피하지 않고 찾아보겠습니다."
베르나르는 파손된 벽과 시엘의 기록 판자 사이를 몇 번이나 바라보다가 조교들에게 손짓했다. 그는 실습 중단이라는 말을 다시 꺼내지 못한 채 소강당을 떠났다.
그 뒷모습이 문 밖으로 사라진 뒤에야 객석의 숨죽인 소리가 한꺼번에 터졌다.
"방어벽도 같은 식이었다고?"
"그럼 우리가 외우던 주문도 다 저런 식으로 마력을 버린 건가?"
"일곱 단위로 저 벽을..."
엘리안은 출석부를 집어 들었다.
"잡담은 과제지에 쓰십시오. 소강당 사용 허가가 나기 전까지 다음 수업은 원래 강의실에서 합니다. 지각하면 F입니다."
그 한마디에 웅성거리던 교양반 학생들이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다음 날 교양 101 강의실의 문은 수업 시작 십 분 전부터 열리지 않았다.
문 앞 복도에 학생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기 때문이다.
검은 전공 로브를 걸친 마법학부생들이 창문 틈으로 교실 안을 들여다보았다. 다른 교양 과목 책을 든 학생들까지 발끝을 세우고 안쪽 빈자리를 세었다.
"정말 일곱 단위로 방어벽을 뚫었다더라."
"임시 강사가 아니라 숨은 고위 마법사일지도 몰라."
"그 수업만 들으면 나도..."
"조용히 하십시오."
시엘의 목소리가 복도를 가로질렀다.
그녀는 교실 문 앞에 작은 책상을 놓고 출석부 사본을 펼쳐 두었다. 옆에는 전날 밤새 정리한 검증 자료 봉투가 단정하게 쌓여 있었다.
"등록 명부에 없는 학생은 안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창문을 막으면 수강생들이 수업을 듣지 못합니다."
한 전공생이 불만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청강만 하겠다는 건데 너무한 것 아닙니까?"
"청강은 구경이 아닙니다."
이번에는 레온이 대답했다.
그는 평소보다 곧은 자세로 교실 문 옆에 서 있었다. 손목 붕대 아래에서는 아직 미세한 당김이 남아 있었지만 목소리는 흔들리지 않았다.
"이 수업은 과제를 내고 기록을 남기는 수업입니다. 할 생각이 없다면 자리를 차지할 이유도 없습니다."
그 말에 교실 안에 앉아 있던 기존 수강생들이 하나둘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 늦게 오던 학생도 이미 맨 앞줄에 앉아 있었다. 어제의 폭발을 구경한 뒤에야 몰려든 사람들에게 자리를 내줄 생각은 없어 보였다.
그때 복도 끝의 학생들이 조용히 갈라졌다.
헤이든 발몬트가 구겨진 양피지 한 장을 손에 든 채 서 있었다. 그의 로브 소매 아래로는 어제 경련한 손목이 희미하게 드러났다.
엘리안이 사람들 사이를 지나 문 앞에 섰다. 그는 헤이든의 손에 든 양피지를 보고 물었다.
"발몬트 군도 수강생이었던가?"
헤이든의 얼굴이 붉어졌다.
"...검증 때 제 시연 기록을 분석해 보려 왔습니다."
"분석을 했습니까?"
"아직은 아닙니다. 넷째 박자에서 왜 손목이 굳는지 모르겠습니다."
엘리안은 양피지를 받지 않았다.
"모른다는 답은 제출할 수 있습니다. 다만 어디까지 확인했고 어느 지점부터 모르는지를 적어야 합니다. 자기 손실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자기 마력을 쓴 사람입니다."
헤이든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다 구겨진 양피지를 펴서 품에 넣었다.
"...적어 오겠습니다."
"그럼 들어오십시오. 빈자리는 하나뿐이니 늦지 말고."
엘리안은 복도에 남은 학생들을 둘러보았다.
"명부에 없는 학생은 복도를 비우십시오. 이 수업은 어제의 숫자를 구경하는 자리를 팔지 않습니다. 다음 학기 등록 때 신청하십시오. 그때도 과제를 낼 각오가 있다면 말입니다."
청강생들이 아쉬운 표정으로 물러났다. 몇몇은 아직도 문을 돌아보았지만 시엘이 출석부를 덮는 순간 더는 버티지 못하고 복도 끝으로 흩어졌다.
엘리안이 교실 안으로 들어가자 학생들이 일제히 자리에 앉았다.
칠판에는 전날의 세 줄 공식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 아래 엘리안은 새 과제를 적었다.
첫째, 오늘은 불꽃을 발동하지 말 것.
둘째, 손목과 손가락 끝에서 새는 마력을 세 번 기록할 것.
셋째, 흐름을 억지로 누르지 말고 어디에서 꺾이는지 표시할 것.
분필 소리가 멎자 교실은 조용해졌다.
"불꽃을 크게 만드는 과제가 아닙니다."
엘리안이 학생들을 둘러보았다.
"어제의 일은 약간의 실습 오차였습니다. 오차가 무섭다면 다음부터는 오차가 생기는 자리를 먼저 찾으면 됩니다. 마력은 겁을 낸다고 사라지지 않습니다. 길을 잃게 만든 이유를 찾을 때 비로소 말을 듣습니다."
레온은 새 과제지를 내려다보았다.
손목 안쪽에 남은 미세한 당김이 다시 의식되었다. 그것은 예전처럼 살을 찢는 통증이 아니었다. 셋째 숨을 들이쉴 때마다 어딘가에 걸렸다가 되돌아오는 가느다란 흐름이었다.
그는 그 흔적을 두려워하지 않고 손끝으로 더듬었다.
그리고 과제지 첫 줄에 또박또박 적기 시작했다.
‘셋째 숨을 들이쉴 때 손목 안쪽에서 마력이 한 번 멈춘다.’
이번에는 그 멈춤을 외면하지 않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