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도 공학자의 전설 무기 공방

2화: 불꽃의 궤적
손등을 스친 불꽃은 짧았지만 매서웠다.
화상 자국 위로 붉은 수포가 순식간에 차올랐다. 살갗이 타는 냄새와 함께 차가운 쇳가루 냄새가 코를 찔렀다.
“스승님!”
마라가 들고 있던 가죽끈을 내던지며 달려왔다. 작업대 아래에 있던 물통을 단숨에 끌어당겼다.
“손 빼요! 얼른 물에 넣어요!”
이안은 이를 악물고 손을 물속에 밀어 넣었다.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얼음장 같은 냉기가 손등의 열기를 덮쳤다. 통증이 뼈마디까지 번졌지만 시선은 물통이 아니라 작업대 위의 석궁에 고정되어 있었다.
푸른 룬 홈에서 가느다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홈 안쪽에 머물던 푸른빛이 불규칙하게 깜빡거리다 사그라졌다.
“그러게 손도 성치 않으면서 왜 무리하게 긁어요? 경비대 물건 망치면 우리 진짜 끝장이에요!”
마라의 목소리에 원망과 두려움이 뒤섞여 있었다.
이안은 물속에서 떨리는 손가락을 천천히 쥐었다 폈다. 왼손 검지는 여전히 뻣뻣했지만 다행히 신경이 마비되지는 않았다.
“내 손이 흔들려서 튄 게 아니야.”
“네?”
“마나가 갇혀 있었어.”
이안은 젖은 손을 건져 올려 낡은 가죽 행주로 감쌌다. 욱신거리는 통증 속에서도 머릿속은 서늘할 정도로 맑아졌다.
그는 송곳을 다시 집어 들지 않고 작업대 구석의 숯 집게를 들어 석궁의 룬 홈을 가리켰다.
“두 번째 장인이 룬을 새로 팠다고 했지.”
“네. 길드에서 룬술사를 불러서 홈을 더 깊게 팠어요.”
“그 룬술사는 마나를 넣기만 하고 빠져나갈 길을 터주지 않았어. 금속이 뒤틀리면서 홈 안쪽이 짓눌렸고 그 틈에 마나 잔향이 고여 있었던 거야.”
금속 내부의 응력과 마나의 흐름.
잔류 응력을 제거하지 않은 소재에 무리하게 압력을 가하면 크랙이 생기듯 룬 회로 역시 물리적인 통로가 막히면 마나가 밖으로 터져 나온다.
“그럼 어떡해요? 긁을 때마다 터지면 깎지도 못하잖아요.”
“식히고 달래야지.”
이안은 화덕으로 다가갔다. 바닥에 깔린 숯더미에서 미지근한 잔열이 올라오고 있었다.
“마라. 젖은 천 세 장 가져와. 그리고 송풍기를 아주 약하게 밟아.”
“불을 지피게요? 석궁 몸체는 나무라서 타 버려요!”
“불에 넣는 게 아니야. 열만 쐬는 거다.”
마라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이안을 보았지만 곧 젖은 천을 가져왔다.
이안은 나무 손잡이와 개머리판을 젖은 천으로 꼼꼼히 감쌌다. 룬이 새겨진 금속 뭉치만 드러낸 뒤 숯더미 위 공중에 조심스럽게 걸쳤다.
따뜻한 복사열이 닿자마자 굳어 있던 룬 홈이 희미하게 푸른빛을 뿜었다.
“송풍기 천천히.”
마라가 발판을 규칙적으로 밟자 숯의 붉은 기운이 은은하게 번졌다.
이안은 다른 천에 찬물을 적셔 룬 홈 반대편 금속 끝에 살짝 댔다.
쉬이익.
수증기가 피어오르며 금속 뭉치 내부에서 온도 차가 만들어졌다. 갇혀 있던 마나 잔향이 따뜻한 곳에서 차가운 곳으로 천천히 이동하며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푸른빛이 마침내 잔잔한 물결처럼 가라앉았다.
“……빛이 얌전해졌어요.”
“열과 냉각으로 마나의 긴장을 풀어 준 거야. 이제 깎을 수 있어.”
이안은 석궁 뭉치를 꺼내 작업대 위에 올렸다.
밤은 더 깊어졌다. 대장간 밖 골목에서는 차가운 밤바람이 문틈을 덜컹거리며 흔들었다.
작업대 위에는 기름 램프 하나만이 노란 불빛을 던지고 있었다.
“폐철 조각 줘.”
이안이 손을 내밀자 마라가 바닥 상자에서 주워 올린 쇳조각 서너 개를 건넸다. 광산 운반차 바퀴에서 떨어져 나온 고철들이었다. 녹이 두껍게 슬어 있었고 두께도 제각각이었다.
“이걸로 뭘 만든다고요?”
“받침.”
이안은 목탄을 집어 들고 작업대 상판에 간단한 단면도를 그렸다.
“활대가 한쪽으로 휘는 건 왼쪽 지지대가 0.5밀리미터 정도 낮기 때문이야. 헤르만이 덧댄 금속 고리가 오른쪽만 짓눌러서 불균형이 더 심해졌지.”
“영점 오…… 뭐요?”
마라가 눈을 깜빡였다. 이 세계에는 아직 정밀한 수치 단위가 없었다. 대장장이들은 대개 손톱 반 절이나 종이 석 장 두께 같은 감각적 표현을 썼다.
“손톱 두께의 절반쯤 되는 오차야. 그 미세한 차이가 격발 순간에 엄청난 하중으로 벌어져 활대를 부러뜨리는 거다.”
이안은 폐철 하나를 바이스에 물렸다.
“이 폐철을 갈아서 정확히 그 두께의 얇은 받침판을 두 개 만들어야 해. 하나는 왼쪽 홈 밑에 깔아 높이를 맞추고 다른 하나는 반대편 충격을 분산시키는 완충판으로 쓴다.”
“제가 할게요. 스승님 손은 지금 망치도 못 쥐잖아요.”
마라가 거친 줄을 집어 들었다.
“그냥 깎으면 안 돼. 힘을 고르게 줘야 면이 평평해진다. 가운데만 파먹으면 쓰레기가 돼.”
이안은 마라의 어깨 뒤에 서서 줄의 각도를 바로잡아 주었다.
“팔꿈치를 들지 마. 어깨 전체로 밀어. 밀 때만 힘을 주고 당길 때는 힘을 빼.”
마라의 눈빛이 진지해졌다. 입술을 꽉 깨문 채 줄을 밀기 시작했다.
서걱. 서걱. 서걱.
일정한 쇠 긁는 소리가 대장간 안에 울려 퍼졌다.
처음에는 손끝이 흔들려 철판 모서리가 깎여 나갔지만 이안이 옆에서 호흡을 짚어 주자 점점 매끄러운 평면이 드러났다.
“잘하고 있어. 그 상태로 세 번 더 밀고 뒤집어.”
마라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고글 안쪽의 눈동자가 오직 쇳조각의 단면에만 고정되어 있었다.
그사이 이안은 고운 줄을 오른손에 쥐었다. 왼손은 붕대로 감은 채 금속 뭉치를 단단히 누르는 지지대로만 썼다.
고운 줄 끝이 룬 홈의 튀어나온 턱에 닿았다.
사각. 사각.
마나 잔향이 빠져나간 홈은 더 이상 반발하지 않았다. 이안은 손끝의 촉각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원래 이안의 몸이 지닌 금속 감각이 정밀 공차 감각과 맞물려 선명한 지도를 그렸다.
어디가 솟아 있고 어디가 패였는지가 손바닥의 울림만으로 전해졌다.
그는 송곳으로 홈의 수평을 맞추며 불필요하게 튀어나온 찌꺼기들을 조심스럽게 긁어냈다.
“스승님. 다 갈았어요.”
마라가 숨을 헐떡이며 얇아진 폐철 조각 두 개를 내밀었다.
이안은 철편을 등불에 비춰 보았다. 표면에 미세한 줄 자국이 남아 있었지만 전체적인 두께는 놀라울 정도로 균일했다.
“훌륭해.”
짧은 칭찬에 마라의 얼굴이 살짝 풀렸다. 그녀는 쑥스러운 듯 소매로 이마를 훔쳤다.
“시키는 대로 밀었을 뿐이에요. 예전에는 이렇게 가르쳐 준 적도 없으면서.”
“앞으로는 매번 이렇게 할 거다.”
이안은 얇은 폐철 받침을 석궁의 파인 지지대 밑에 밀어 넣었다.
딱.
경쾌한 마찰음과 함께 받침이 금속 홈에 빈틈없이 물려 들어갔다. 유격이 전혀 없었다.
이어서 부러진 활대 끝을 튼튼한 가죽끈과 구리 철사로 엇갈려 감아 조였다. 새 활대만큼의 탄성은 나오지 않겠지만 룬의 힘이 균일하게 전달된다면 충분히 버틸 수 있는 구조였다.
“이제 조립한다.”
나사를 조이자 석궁의 모든 부품이 하나의 덩어리로 단단하게 맞물렸다.
방아쇠를 가볍게 당겨 보았다. 찰칵 하는 소리가 묵직하면서도 맑게 울렸다.
동틀 녘의 푸르스름한 안개가 대장간 뒷마당을 덮고 있었다.
마당 구석에는 오래된 짚단과 흙을 쌓아 만든 임시 표적이 서 있었다.
차가운 새벽 공기가 폐 속으로 들어오자 밤샘 작업으로 무겁던 머리가 맑아졌다.
“정말 쏴 봐요? 그러다 또 부러지면 어떡해요?”
마라가 화살 한 발을 손에 쥔 채 불안하게 물었다.
“시험하지 않은 무기는 무기가 아니라 흉기야. 실전에서 쏘다 터지는 것보다 여기서 터지는 게 낫다.”
이안은 석궁을 건네받았다.
무게 중심이 이전과 확연히 달랐다. 한쪽으로 쏠리던 불쾌한 무게감이 사라지고 양손 사이에 안정적으로 안착했다.
그는 화살을 시위에 걸고 방아쇠 뭉치 상단에 하급 마석을 밀어 넣었다.
지잉.
마석이 홈에 닿자마자 푸른빛이 룬 회로를 따라 번져 나갔다.
이번에는 불꽃이 튀지 않았다. 빛은 좌우로 균일하게 갈라져 활대 양끝으로 부드럽게 흘러 들어갔다. 폐철 받침이 마나의 충격을 양쪽으로 고르게 나누어 주고 있었다.
이안은 숨을 멈추고 15미터 전방의 짚단 표적을 겨누었다.
화상 입은 손등이 시위에 스치며 아릿한 통증을 보냈지만 검지는 방아쇠의 압력을 차분하게 계산하고 있었다.
탁.
방아쇠가 풀리는 순간 경쾌한 파열음이 공기를 갈랐다.
투화앙!
푸른 섬광을 머금은 화살이 흔들림 없이 일직선으로 뻗어 나갔다.
퍽!
화살은 짚단 중앙에 깊숙이 박히며 뒤편의 흙더미를 뒤흔들었다. 흙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마라의 입이 딱 벌어졌다.
“……날아갔어.”
“궤적이 흔들리지 않았어.”
이안은 활대를 살폈다. 묶어 놓은 가죽끈과 구리 철사는 팽팽함을 유지하고 있었고 룬 홈 주변에도 아무런 균열이나 그을음이 없었다.
완벽한 수리였다. 출력은 원래 군용 규격보다 조금 낮아졌지만 명중률과 안정성은 이전보다 훨씬 뛰어났다.
마라가 짚단으로 달려가 화살을 확인하고는 흥분한 얼굴로 돌아왔다.
“스승님! 똑바로 박혔어요! 진짜로 고쳤어요!”
그녀는 고글을 머리 위로 밀어 올리며 활짝 웃었다. 이안이 이 공방에 들어온 이래 처음 보는 순수한 미소였다.
이안은 석궁을 내리며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
손끝에 남아 있는 둔탁한 반동의 잔향.
현대에서 기계를 설계하고 완성품의 진동을 손으로 느꼈을 때의 쾌감이 온몸의 피를 뜨겁게 데웠다.
비록 낯선 몸과 마법이라는 미지의 힘 속이지만 역학과 물리의 기본 원리는 결코 배신하지 않았다.
아침 햇살이 대장간 창문을 통해 비스듬히 쏟아져 들어왔다.
작업대 위에는 기름때를 닦아내고 정돈된 경비대 석궁이 나무 상자 안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마라는 상자 옆에 앉아 턱을 괸 채 석궁을 바라보았다.
“이제 전달병이 오면 은화 여섯 닢을 받겠네요. 선금 제하고 나면 네 닢이지만…… 그래도 오늘 굶지는 않겠어요.”
“은화 네 닢으로 뭘 할 수 있지?”
이안의 질문에 마라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
“밀가루 한 포대 사고 숯 한 수레 채우면 끝이에요. 이틀 치 밥값과 땔감이죠.”
“그리고 사흘 뒤에는 압류지.”
마라는 입술을 깨물었다.
석궁 수리는 성공했지만 공방의 위기는 조금도 해결되지 않았다. 장부에 적힌 총 채무는 은화 80닢. 석궁 하나를 고쳐서 벌 수 있는 돈으로는 턱없이 모자랐다.
사흘 안에 은화 80닢을 마련하지 못하면 화덕과 모루는 물론이고 공방 건물 전체가 헐값에 팔려 나간다.
이안은 작업대 구석으로 시선을 돌렸다.
바닥 한구석에 녹슨 폐철 파이프 몇 자루가 굴러다니고 있었다. 광산에서 고압 배수용으로 쓰이다 버려진 이음매 없는 강철관이었다.
‘석궁의 한계는 명확해.’
활대의 탄성과 시위의 장력에 의존하는 구조로는 아무리 룬을 정밀하게 새겨도 전달할 수 있는 에너지의 상한선이 낮다. 부품이 크고 제작 공정도 비효율적이다.
만약 화약 대신 마석 가루의 폭발력을 폐쇄된 관 내부에서 점화시키고 그 압력으로 탄환을 밀어낸다면?
활대도 시위도 필요 없다. 오직 약실의 밀폐와 총열의 공차 그리고 점화 룬의 타이밍만 맞추면 손바닥만 한 크기로도 석궁을 뛰어넘는 관통력을 낼 수 있다.
이안의 눈동자에 차가운 계산의 불꽃이 일었다.
쿵, 쿵, 쿵.
대장간 문을 거칠게 두드리는 소리가 아침 정적을 깼다.
“안에 있나? 경비대다!”
전달병의 목소리였다.
마라가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안은 작업대 위의 나무 상자 뚜껑을 덮으며 문 쪽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첫 번째 시험은 끝났다. 이제 사흘이라는 시간 동안 공방의 운명을 뒤바꿀 진짜 싸움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