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으로
마도 공학자의 전설 무기 공방1화

마도 공학자의 전설 무기 공방

마도 공학자의 전설 무기 공방

AD
스폰서 광고

1화: 부러진 석궁의 균열

눈을 뜨자마자 손가락부터 확인했다.

왼손 검지가 제대로 굽혀지지 않았다. 손등에는 오래된 화상 자국이 굳은 껍질처럼 남아 있었고 손바닥에는 쇳물을 오래 쥔 사람의 굳은살이 박여 있었다.

한도윤은 숨을 들이켰다.

쇠 냄새와 젖은 재 냄새가 났다. 낯선 천장을 보고도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실험실이 아니라는 결론이었다.

그는 몸을 일으키려다 옆구리를 붙잡았다. 갈비뼈 아래가 욱신거렸다. 마지막으로 기억나는 것은 초고압 소재 실험기의 압력계가 붉게 번지던 순간이었다. 그 뒤에는 빛과 열뿐이었다.

“……여기가 어디지?”

목소리가 낮고 거칠었다. 자신의 목소리와 달랐다.

작업대 위에는 녹슨 집게와 망치 그리고 검은 얼룩이 번진 장부가 놓여 있었다. 장부를 펼치자 글자가 읽혔다. 배운 적 없는 문자인데도 의미가 눈에 들어왔다.

동시에 짧은 장면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붉은 머리의 견습생. 문을 걷어차는 빚쟁이. 쇠붙이를 두드리는 손.

이안 페로.

그 이름이 낯설지 않았다. 그렇다고 자신의 이름도 아니었다.

장부 아래에는 붉은 밀랍이 찍힌 종이가 끼워져 있었다.

《페로 공방 압류 예고 통지서》

사흘 뒤 해가 지기 전까지 채무를 갚지 못하면 화덕과 공구 일체를 회수한다는 내용이었다. 공방 주인 이안 페로의 이름도 분명히 적혀 있었다.

도윤은 통지서를 내려놓았다.

사흘.

실험실로 돌아갈 방법은 보이지 않았다. 휴대전화도 없었고 주머니에는 낡은 동전 두 개뿐이었다. 이 몸은 움직일 때마다 갈비뼈와 손가락이 따로 비명을 질렀다.

문밖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스승님? 일어나 계세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문이 열렸다. 짧은 적갈색 머리와 큰 고글을 쓴 소녀가 양팔로 긴 나무 상자를 안고 들어왔다.

“정말 일어났네.”

“내가 며칠이나 누워 있었지?”

“사흘이요. 열은 내렸는데 머리까지 같이 식은 줄 알았어요?”

소녀는 도윤과 작업대를 번갈아 살폈다. 머릿속에 이름 하나가 떠올랐다.

“마라.”

그녀의 눈썹이 꿈틀했다.

“제 이름은 기억하네요. 그럼 이건요?”

마라는 상자를 작업대에 내려놓았다. 뚜껑을 열자 부러진 석궁이 드러났다.

나무 몸체는 긁혀 있었고 양쪽 날개 중 하나가 반으로 갈라져 있었다. 방아쇠 옆에는 푸른빛이 탁하게 굳은 룬 홈이 보였다.

“카르딘 경비대 물건이에요. 오늘 밤까지 고쳐서 돌려줘야 해요.”

“수리비는?”

“선금은 약값으로 썼고요. 완성품을 넘겨야 나머지를 줘요.”

마라는 압류 통지서를 보았다.

“사흘 뒤면 저 사람들이 화덕까지 뜯어 갑니다. 이번에는 실수하면 안 돼요.”

도윤은 석궁을 들어 올렸다. 생각보다 무거웠다. 손목에 힘을 주는 순간 왼손 검지가 찢어질 듯 아팠다. 그는 석궁을 작업대 가장자리에 얹었다.

“이걸 몇 번 고쳤지?”

“두 번이요. 첫 번째 장인은 활대를 갈았고 두 번째 장인은 룬을 새로 팠어요. 그런데 경비병이 쏘면 또 한쪽으로 꺾여요.”

“분해할 도구를 줘.”

마라의 표정이 굳었다.

“평소에는 보자마자 활대부터 갈았잖아요.”

“그래서 두 번 실패했겠지.”

“……정말 스승님 맞아요?”

도윤은 대답하지 못했다. 석궁의 나사를 가리키는 것으로 대신했다.

“줄과 송곳. 숯가루도 있나?”

마라는 한참 그를 노려보다가 공구함을 열었다. 곧 줄과 송곳 그리고 작은 숯가루 주머니가 작업대에 놓였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회색 망토를 걸친 젊은 전달병이 서 있었다. 그는 대장간 안을 훑은 뒤 석궁에 시선을 고정했다.

“오늘 안에 격발이 되지 않으면 의뢰는 끝이다. 경비대는 고장난 석궁을 더는 떠안지 않는다.”

“밤까지는—”

마라가 말했지만 전달병은 손을 들어 막았다.

“말이 아니라 결과를 가져와. 실패하면 선금도 돌려받을 거다.”

그는 압류 통지서 옆에 작은 나무패를 내려놓았다.

도윤이 나무패를 집어 들었다.

“수리하면 얼마를 받지?”

“은화 여섯 닢. 실패하면 선금 두 닢을 먼저 내놓고 나머지는 없다.”

마라의 손이 주먹으로 굳었다. 은화 여섯 닢이면 필요한 돈의 절반도 되지 않았다. 그래도 당장 화덕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수입이었다.

“맡지.”

도윤이 말했다.

전달병은 그의 손을 흘겨보았다.

“손부터 고치고 일하는 게 어때? 또 불발되면 이번에는 경비대장이 직접 온다.”

문이 닫혔다. 발소리가 골목 저편으로 사라지자 마라가 입을 열었다.

“왜 맡았어요?”

“돈이 필요하니까.”

“은화 여섯 닢으로는 사흘을 못 버텨요.”

“없는 것보다는 낫지.”

“이번에도 망치면요?”

도윤은 왼손을 내려다보았다.

“그때는 다른 방법을 찾는다.”

“스승님은 늘 그렇게 말했어요. 다른 방법을 찾는다고 해 놓고 결국 빚만 늘렸죠.”

마라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화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눈가가 붉었다.

도윤은 이안의 삶을 빌리고 있었다. 그 사실이 목을 조였다. 그러나 지금 마주한 것은 죄책감이 아니라 눈앞의 석궁과 사흘이라는 시간이었다.

“이번에는 먼저 망치지 않을 거야.”

그는 석궁을 작업대 중앙에 놓았다.

나사를 풀자 낡은 활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활대의 오른쪽 끝은 부러져 있었지만 파단면이 이상했다. 단순히 힘을 받아 꺾인 결이 아니었다. 안쪽 섬유가 한 방향으로 눌린 뒤 바깥쪽으로 밀려난 흔적이었다.

도윤은 숯가루를 금속 부품의 마모 자국에 문질렀다. 푸른 룬 홈 주변만 가루가 진하게 붙었다.

“활대가 부러진 게 먼저가 아니야.”

“그럼요?”

“이쪽이 먼저 틀어졌어.”

그는 송곳 끝으로 방아쇠 옆 룬 홈을 가리켰다. 홈은 보기보다 깊이가 달랐다. 왼쪽 끝은 송곳이 얕게 걸렸고 중앙부는 끝까지 들어갔다.

마라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 정도 차이로요? 룬은 살아 있잖아요.”

“살아 있는 게 문제야. 힘이 고르게 흐르지 않아.”

도윤은 쇠못 하나를 룬 홈 옆에 세웠다. 마라가 가져온 작은 마석 조각을 가까이 대자 룬이 희미하게 빛났다.

빛은 홈 전체로 퍼지지 못하고 중앙에서 왼쪽으로 튀었다. 부러진 날개가 작업대 위에서 딱 소리를 냈다.

“방금 봤죠?”

“네.”

“그럼 룬이 문제예요?”

“룬과 금속이 서로 다른 길을 보고 있어.”

도윤은 룬 홈의 깊이를 줄로 재려 했다. 왼손이 떨리면서 줄이 미끄러졌다. 화상 자국이 당겼고 금속 가루가 상처 사이로 파고들었다.

마라가 줄을 낚아챘다.

“손도 못 쓰면서 뭘 고친다는 거예요?”

“손을 못 쓰는 게 아니라 오래 못 쓰는 거야.”

“그게 지금 중요해요?”

“중요하지. 오래 못 쓰니까 순서를 정해야 해.”



도윤은 부러진 활대를 다시 살폈다. 활대 전체를 바꾸면 시간이 부족했고 새 부품을 만들 쇠도 없었다. 균열의 시작점과 룬 홈의 불균형을 고치면 발사력이 낮아져도 석궁을 되살릴 수 있었다.

“활대는 임시로 묶는다. 먼저 룬 홈을 고르게 만들고 힘이 몰리는 곳을 줄여야 해.”

“그러면 약해지잖아요.”

“쏘지도 못하는 강한 석궁보다야 낫지.”

마라는 대꾸하지 못했다.

도윤은 작업대 아래를 뒤졌다. 폐철 조각과 얇은 철사가 나왔다. 철사는 녹이 슬었고 폐철은 표면이 울퉁불퉁했다. 그는 철사를 룬 홈에 걸어 깊이를 비교하고 숯가루 자국을 따라 종이에 선을 그었다.

종이 위에는 일정하지 않은 간격의 선이 생겼다.

이상했다. 홈은 처음부터 거칠었던 것이 아니라 반복해서 깎인 흔적이 있었다. 누군가 고장을 고치려다 매번 조금씩 더 파낸 모양이었다.

“마라. 이거 누가 마지막으로 손봤지?”

“길드에서 소개한 장인이요. 이름은 기억 안 나요.”

“두 번째 말고 첫 번째.”

“헤르만이라는 사람이었어요. 활대가 약하다면서 금속 고리를 덧댔죠.”

도윤은 석궁 옆면의 작은 금속 고리를 보았다. 고리는 활대의 한쪽만 더 세게 눌러 놓고 있었다. 그것이 룬의 비대칭과 겹치며 발사 순간마다 같은 방향으로 힘을 밀어냈다.

“수리한 게 아니라 더 묶어 놓았군.”

“그럼 뭘 해야 해요?”

“고리를 빼고 룬 홈의 높은 부분만 아주 조금 낮춘다. 폐철로 받침을 만들어 힘이 한쪽으로 쏠리지 않게 해.”

“폐철로요? 그건 장식용도 못 되는 조각인데.”

“그래서 얇게 갈아야 해. 두꺼우면 또 틀어진다.”

마라는 종이의 선을 내려다보다가 줄과 폐철을 집었다.

“제가 갈게요.”

“너는 활대를 묶어. 나는 룬 홈을 손봐야 해.”

마라는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그녀는 부러진 활대와 가죽끈을 가져왔다.

대장간 밖으로 밤이 내려앉았다. 골목의 발소리는 드물어졌고 화덕의 붉은빛만 두 사람의 얼굴을 비췄다.

도윤은 송곳을 쥐었다.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자 통증이 팔꿈치까지 올라왔다. 이대로라면 몇 번도 제대로 긁지 못한다.

그는 숨을 천천히 내쉬었다.

금속은 힘을 준 만큼만 움직인다. 무리해서 한 번에 고치려 하면 부러진다. 힘이 지나갈 길부터 정리해야 한다.

송곳 끝이 룬 홈에 닿았다.

첫 번째 긁음은 얕았다. 푸른 가루가 떨어졌다. 두 번째 긁음에서 손목이 흔들렸고 송곳이 홈 가장자리를 찍으며 불꽃이 튀었다.

마라가 고개를 들었다.

“괜찮아요?”

“아직.”

“그게 무슨 뜻이에요?”

“아직은 안 망가졌다는 뜻이야.”

도윤은 석궁을 내려다보았다. 금속 안쪽에서 작은 저항이 손끝으로 전해졌다. 룬 홈을 긁을 때마다 석궁 전체가 서로 맞지 않는 톱니처럼 밀어냈다.

손끝에는 석궁의 미세한 떨림이 오래 남았다.

“스승님?”

마라가 불렀다. 그녀는 활대와 가죽끈을 안은 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밤새 해야 해.”

“정말 고칠 수 있어요?”

“고장 난 이유는 찾았어.”

“그게 고칠 수 있다는 뜻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해 봐야지.”

도윤은 압류 통지서를 장부 안에 넣었다. 사흘 뒤면 이 공방의 화덕이 식는다. 그 전에 석궁 하나를 살려야 한다.

“줄을 세 종류로 가져와. 거친 것과 중간 것. 가장 고운 것도 필요해.”

“손은요?”

“네가 물을 부어 줘. 손가락이 굳으면 바로 말해.”

마라는 잠시 그를 보다가 공구함 쪽으로 돌아섰다.

“이번에 실패하면 망치도 내놓을 거예요?”

“그래.”

“성공하면요?”

“공방을 지킨다.”

마라는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약속은 기억해 둘게요.”

도윤은 다시 송곳을 들었다.

푸른 룬이 어둠 속에서 약하게 깜빡였다. 다음 긁음이 들어가자 석궁의 날개가 천천히 떨렸다.

그리고 룬 안쪽에서 불꽃 하나가 손등을 향해 튀었다.

AD
스폰서 광고
YOU MAY ALSO LIKE

이런 작품은 어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