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으로
아포칼립스 마트 사장은 갑질이 하고 싶다4화

[아포칼립스 마트 사장은 갑질이 하고 싶다]

아포칼립스 마트 사장은 갑질이 하고 싶다

AD
스폰서 광고

4화 [갑질의 시작]

두목이 온 이유

골목 어귀의 그림자는 사람 하나보다 컸다.

강두철은 비에 젖은 가죽 조끼를 걸치고 자동문 앞에 멈췄다. 굵은 팔뚝에는 검은 문신이 감겨 있었고 목덜미부터 턱밑까지 길게 이어진 흉터가 빗물에 번들거렸다.

그의 뒤에는 정호와 민석이 서 있었다. 조금 전까지 문을 걷어차던 놈들이었지만 이제는 젖은 작업복을 움켜쥔 채 두철의 눈치만 봤다.

[고위험 방문자 접근 완료.]

[강두철 / C급 신체 강화 / 무장 반응 없음.]

[권고: 출입 조건을 명확히 고지하십시오.]

도진은 화면을 읽고 천천히 숨을 골랐다. 무기가 없다는 문구가 오히려 불길했다. 강두철은 쇠파이프나 식칼보다 자기 주먹을 더 믿는 인간이었다.

짐꾼들이 배급을 늦게 받는 날이면 늘 저 목소리가 창고 안을 눌렀다. 곯아떨어진 사람을 발로 차 깨우고 빈 자루를 들이밀던 목소리였다.

“한도진.”

두철이 유리문을 바라보며 말했다.

“안에서 살쪘냐? 목소리가 많이 달라졌네.”

도진은 카운터 뒤에서 손을 꽉 쥐었다. 아직 몸은 그때의 공포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카운터 밑으로 몸을 숨기고 싶다는 생각은 오래 가지 못했다.

그는 입구 화면을 눌렀다. 자동문 위로 하얀 문장이 떠올랐다.

[입장 조건: 무장 해제. 선불 결제. 협박 및 폭행 금지.]

“네 부하 둘은 무단 침입과 협박을 했다. 무기는 보관 중이고 오늘 해 질 때까지 출입 제한이다.”

“그래서?”

“사과하고 코어를 가져오면 그 뒤에 무기를 돌려준다.”

두철의 시선이 카운터 옆 보관함으로 향했다. 회색 쇠상자 안에는 파이프와 식칼이 그대로 잠들어 있었다.

“내 애들 물도 못 마시게 해 놓고 거래 타령이냐?”

“물은 판다. 뺏기지는 않아.”

도진이 가격표를 가리켰다.

산다수 생수 1병 — 2포인트.

핫컵라면 1개 — 3포인트.

선불. 가격표 외 요구 금지. 물건은 계산 후 가져갈 것.

두철이 짧게 웃었다. 웃음소리에는 기분 나쁜 자신감이 묻어 있었다.

“코어는 나중에 줄게. 네 가게가 이 동네에서 계속 열리게 해 주는 값이라고 생각해.”

“그런 값은 가격표에 없다.”

“그럼 내가 정해 줄까?”

두철이 유리문에 손바닥을 댔다.

두꺼운 유리가 안쪽으로 휘는 듯 보였다. 강화된 근육이 부풀고 젖은 타일 위에 그의 발이 깊게 박혔다. 정호와 민석이 희미하게 기운을 얻은 얼굴로 뒤에서 고개를 들었다.

도진의 목이 바짝 말랐다. 문밖이라면 자신은 저 손을 피할 방법이 없었다. 이 사실은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문 안이었다.

“들어올 거면 손님으로 들어와.”

도진이 말했다.

“아니면 들어오지 마.”

C급의 주먹

강두철은 대답 대신 자동문을 밀어젖혔다.

문이 열리자 차가운 새벽 공기와 흙냄새가 매장 안으로 밀려들었다. 두철은 한 번도 허락을 구하지 않은 사람처럼 하얀 타일 위로 성큼 발을 들였다.

[무단 침입 시도 감지.]

[위반 기록을 추가하시겠습니까?]

도진은 확인 버튼을 눌렀다.

“기록해.”

두철이 피식 웃었다.

“종이쪼가리로 사람을 겁주네.”

그가 카운터를 향해 걸었다. 양옆의 매대가 낮은 진동과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다. 생수 진열대와 과자 매대가 통로를 좁히며 두철의 길을 막았다.

강두철은 어깨로 매대를 밀었다.

철제 선반이 삐걱거렸다. 생수병들이 흔들렸지만 떨어지지는 않았다. C급 강화 능력은 헛소문이 아니었다. 두철은 성인 한 명이 겨우 비집고 지나갈 틈을 억지로 벌려 냈다.

“이 정도 장난으로 날 막겠다고?”

그는 좁은 틈을 뚫고 카운터 앞까지 다가왔다. 도진의 심장이 세게 뛰었다. 손가락 끝은 차가웠지만 시선만은 피하지 않았다.

“무기부터 돌려줘.”

“거절한다.”

“그럼 네가 직접 꺼내.”

두철의 주먹이 카운터 너머 도진의 얼굴을 향해 날아왔다.

쾅.

주먹은 도진의 코앞에서 멈췄다.

보이지 않는 벽이 두철의 팔 전체를 가로막고 있었다. 충격이 투명한 막을 타고 퍼지며 매장 조명이 짧게 흔들렸다. 두철은 눈을 크게 뜬 채 한 번 더 주먹을 밀어 넣었다.

이번에는 팔이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손등의 핏줄만 툭툭 튀었다.

[위반 기록 2: 직원 및 소유자에 대한 폭행 시도.]

[강제 제압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화면 아래에 붉은 글자가 떠올랐다.

[주의: 제압 권한은 매장 안전 확보를 위한 기능입니다. 위반 행위와 무관한 사용은 운영 신뢰도에 악영향을 줍니다.]

도진은 그 문장을 오래 보지 않았다. 저 인간을 괴롭힐 수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왜 제압해야 하는지가 기록되어 있다는 뜻이었다.

“강두철.”

도진이 카운터 밖으로 한 걸음 나왔다.

두철의 눈빛이 흔들렸다. 과거라면 도진이 절대 좁히지 못했을 거리였다.

“무릎 꿇어.”

보이지 않는 힘이 두철의 어깨를 눌렀다.

강두철은 이를 악물고 버텼다. 허벅지의 근육이 부풀어 오르고 바닥 타일이 끼익 소리를 냈다. 그러나 힘줄이 떨리던 무릎은 끝내 바닥에 닿았다.

쿵.

정호와 민석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두철은 고개를 들지 못한 채 거친 숨을 토해 냈다. 분노가 먼저였지만 그 뒤에는 처음 겪는 공포가 섞여 있었다. 그가 믿던 힘이 여기서는 아무 값도 없었다.

“사람을 꿇려 놓고 장사하겠다는 거냐.”

“사람을 때리려고 들어온 쪽은 너다.”

도진은 마른 목소리로 대답했다.

“내가 네 부하들을 내보낸 이유도 같은 거다. 규칙을 지키면 손님으로 대한다. 못 지키면 문을 닫는다.”

“내가 밖에서 널 잡으면?”

순간 도진의 눈썹이 아주 조금 움직였다. 두철은 그 미세한 틈을 놓치지 않았다. 하지만 도진은 곧바로 입구 화면을 바라봤다.

“그 말도 협박으로 기록할까?”

두철의 입이 다물렸다.

그때 민석이 뒤에서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형님. 오늘도 사냥 나갈 사람이 없었습니다. 창고에 남은 건 말린 풀뿌리뿐이에요.”

정호가 민석을 노려봤지만 이미 늦었다. 두철의 턱 근육이 딱딱하게 굳었다.

도진은 두 사람이 물 진열대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것을 보았다. 굶주림은 남의 것을 빼앗을 이유가 되지 않는다. 다만 굶주린 자들을 계속 문밖에 세워 두면 언젠가 더 큰 폭력이 찾아올 것이다.

가격표에 없는 일

카운터 화면이 조용히 바뀌었다.

[기본 구역 보안 평가: 경계.]

[상시 보안 인력 확보 권고가 유지됩니다.]

[조건 충족 방문자에게 임시 직원 계약을 제안할 수 있습니다.]

도진은 새 메뉴를 열었다.

투명한 화면에는 짧은 계약서가 떠 있었다. 근무 구역, 업무 지시권, 근무 완료 뒤의 보상, 규칙 위반 시 계약 해지와 출입 제한. 화폐 대신 노동을 정확한 조건으로 바꾸는 기능이었다.

‘조건 충족 방문자.’

시스템은 두철을 좋은 사람이라고 판단한 것이 아니었다. 강한 몸과 분명한 위반 기록 그리고 바로 앞에 놓인 운영 문제가 맞물렸을 뿐이었다.

도진은 두철을 내려다봤다.

“일할래?”

두철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뭐?”

“마음에 안 들면 지금 강제 퇴장시킨다. 네 부하들도 무기 없이 굶든지 다른 데서 사냥하겠지.”

도진은 화면을 두철 쪽으로 돌렸다.

“대신 정문 경비를 하면 물과 식량을 번다. 무장 해제 확인. 손님 줄 세우기. 다른 손님을 털거나 위협하는 놈이 있으면 막는 일.”

두철의 눈이 계약서를 훑었다.

“나한테 문지기나 하라고?”

“맞아. 네가 제일 잘하던 일이잖아. 다만 약한 사람을 막는 게 아니라 약한 사람을 괴롭히는 놈을 막는 거다.”

두철의 입꼬리가 한 번 비틀렸다. 조롱하려던 표정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보상은.”

“수습 칠 일. 하루 근무를 끝내면 생수 세 병과 핫컵라면 두 개.”

“지금은?”

“근무 시작 전 급여는 없다.”

도진이 단호히 말했다.

“첫 교대가 끝나면 네 눈앞에서 지급한다. 다만 손님에게 손을 대거나 가격표를 바꾸려 들면 그날 급여는 없다. 계약도 끝이다.”

“내 부하들은?”

“네 급여는 네가 받는다. 부하 몫까지 네가 받아서 배급하는 구조는 안 만든다.”

도진은 정호와 민석을 차례로 보았다.

“저 둘은 출입 제한이 끝난 뒤 사과와 코어를 가져오면 무기를 되돌려준다. 손님으로 들어와서 스스로 물건을 사면 된다.”

정호가 울컥한 얼굴로 한 발 나섰다.

“형님이 네 밑에서 일하면 우리도 다 끝이잖아.”

“끝난 건 네가 문을 차던 순간부터야.”

도진이 말했다.

“여기는 두목이 배급을 가르는 곳이 아니다.”

정호는 입을 다물었다. 민석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두철은 한동안 바닥만 보았다. 힘으로 빼앗으면 쉬웠다. 지금까지는 그랬다. 그러나 이 안에서는 그 힘이 자신의 무릎조차 지키지 못했다.

그가 낮게 물었다.

“내가 계약하면 내 부하들이 여기서 행패 못 부리게 막아도 되나.”

“그게 네 일이다.”

“내가 규칙을 어기면?”

“기록 남기고 계약 해지. 네가 방금 겪은 것처럼.”

도진은 계약서 가장 아래의 조항을 가리켰다.

[직원 역시 고객 및 소유자와 동일하게 운영 규칙을 준수한다.]

두철은 그 글자를 여러 번 읽었다. 과거의 자기였다면 지키지 않을 약속이었다. 하지만 약속을 어긴 대가가 무엇인지 방금 전 온몸으로 배웠다.

수습 보안팀장

“제압을 풀어.”

두철이 말했다.

“계약서에 지문 찍겠다.”

도진은 바로 힘을 거두지 않았다.

“계약 내용을 소리 내서 읽어.”

두철의 눈이 잠시 날카로워졌다. 그러나 그는 곧 화면을 향해 입을 열었다.

“무장한 손님은 물건을 사기 전에 무기를 맡긴다. 줄을 어지럽히거나 손님을 협박하면 제지한다. 가격표 밖의 물건을 요구하지 않는다.”

한 줄씩 읽을수록 그의 목소리는 낮아졌다.

“근무 중 약탈과 폭행을 하면 계약이 끝난다.”

도진은 마지막 줄을 덧붙였다.

“그리고 급여는 근무를 끝낸 뒤다.”

두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다.”

도진이 제압을 해제했다.

두철은 천천히 일어섰다. 고개가 천장 가까이 닿을 만큼 큰 몸이 다시 서자 매장 공기가 좁아진 듯했다. 그래도 그는 주먹을 쥐지 않았다.

카운터 위에 작은 검은 카드가 나타났다.

[강두철 / 수습 보안팀장 / 근무 구역: 자동문 및 기본 구역 입구.]

[직원 출입증이 발급됩니다.]

두철은 카드를 집어 들었다. 손가락이 카드 모서리를 조심스럽게 쥐었다. 그에게는 칼보다 가벼운 물건이었지만 쉽게 부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눈빛이었다.

“오늘부터 이 문 앞에 서.”

도진이 말했다.

“손님이 들어오면 가격표부터 보게 해. 무기부터 확인하고. 규칙을 못 지키면 들어오지 못하게 해.”

“정호와 민석은?”

“문을 차면 내보내. 사과하러 오면 줄 세워.”

정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두철은 한 번 부하들을 돌아봤다.

“들었지.”

그 한마디에 두 사람은 고개를 숙였다. 전처럼 명령을 받은 것이었지만 더는 남의 배급을 빼앗으라는 명령이 아니었다.

두철은 자동문 옆에 섰다. 입구 화면의 출입 조건을 읽고는 손가락으로 문장을 한 번 짚었다.

“사장.”

“왜.”

“이 불빛하고 라면 냄새 말이야.”

두철이 어두운 골목을 바라봤다.

“여기서 멀지 않은 지하철 통로까지 난다. 굶주린 놈들은 물 냄새보다 이런 냄새를 먼저 따라온다.”

말이 끝나자 유리문 밖 어둠에서 발자국 소리가 멈췄다.

하나가 아니었다.

비에 젖은 신발들이 골목 끝에 차례로 모습을 드러냈다. 누군가는 빈 물통을 들었고 누군가는 아이를 등에 업고 있었다.

도진은 새로 생긴 보안팀장을 보고 가격표를 다시 펼쳤다.

문을 여는 일은 이제 혼자만의 일이 아니었다.

AD
스폰서 광고
YOU MAY ALSO LIKE

이런 작품은 어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