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멸 예정 악녀는 연금술 카페를 엽니다

9화: 백청 쿠키와 고결한 학문
라 보나의 아침은 평소보다 조용했다. 마리는 학회 조사로 일반 판매를 잠시 멈춘다는 안내문을 문 앞에 붙였다.
아델은 주방 안쪽에서 작은 절구를 품에 안고 서 있었다. 손목 끈 사이로 새어 나오던 빛은 오늘도 희미했다.
“공녀님. 정말 가마를 가져가겠다고 하면 어떡해요?”
“그 전에 그들이 왜 가져가려는지부터 확인해야죠.”
엘리제는 작업대 위에 유리 접시와 기록판을 놓았다. 불안한 상황일수록 순서가 있어야 했다. 재료 확인. 봉인. 반응 기록. 시식 전 증상 확인. 시식 뒤 관찰.
연금술 학회 남부 지부의 경고장은 결론이 간단했다. 오용 혐의가 확인되면 면허를 정지하고 가마를 봉인한다.
엘리제는 그 문장을 다시 떠올리며 입술을 비틀었다.
사람의 통증을 덜어 주고 피로한 기사를 다시 걷게 만든 음료가 오용이라니. 다만 마력 허브는 배합 하나가 어긋나도 약과 독의 경계가 뒤집혔다.
문종이 맑게 울렸다.
회색 로브를 걸친 남자 셋이 안으로 들어왔다. 앞선 남자는 뾰족한 안경 아래로 매장을 훑어보더니 인사도 없이 금속 상자를 카운터에 내려놓았다.
“제국 연금술 학회 남부 지부 조사관 오르덴입니다. 라 보나의 연금술 면허와 가마 사용 기록을 확인하겠습니다.”
그의 뒤에는 눈처럼 흰 수염을 허리까지 기른 노인이 서 있었다. 노인은 화덕과 벽의 안정석을 살피고 엘리제에게 고개를 숙였다.
“하르덴. 남부 지부 원로요.”
“엘리제 드 밸류어입니다. 자리에 앉으시죠.”
“앉을 시간이 없습니다.”
오르덴은 서류 한 장을 펼쳤다.
“귀하는 기사들에게 마력 순화 결정을 섭취시키고 출처 불명의 마공 허브를 과자에 혼합했습니다. 이번 조사에서 위해성이 확인되면 즉시 봉인 절차에 들어갑니다.”
“출처는 장부에 다 적혀 있어요. 그리고 기사들은 각자 증상을 기록하고 동의한 뒤 음료를 마셨죠.”
엘리제는 미리 펼쳐 둔 장부를 가리켰다. 레온의 훈련 시간과 어깨 통증, 섭취량, 관찰 결과가 날짜별로 빼곡했다.
그때 문가에 에드윈과 레온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늘은 예약 치료일이 아니었지만 에드윈은 황실 보급 계약서 사본을 들고 있었다.
“계약상 제품과 기록의 소유는 라 보나에 있습니다. 조사에는 이의가 없으나 압수와 봉인은 근거와 입회가 필요합니다.”
오르덴의 눈썹이 꿈틀했다.
“황실이 카페 일에까지 관여합니까?”
“보급 계약의 범위에서만요.”
에드윈은 무표정하게 답했다. 레온은 말없이 벽 쪽에 섰다. 커다란 체격이 조용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매장 안 공기가 묵직해졌다.
엘리제는 금속 상자를 톡 두드렸다.
“학회가 문제 삼는 재료는 이 안에 있겠네요.”
오르덴이 상자를 열었다. 안에는 각기 다른 봉인 유리병 세 개가 들어 있었다. 흰 서리가 맺힌 백설초, 검푸른 뿌리인 청맥근, 달빛 같은 꽃잎 가장자리에 검은 빛이 감도는 독월화였다.
“세 가지 모두 남부에서 사용 제한을 둔 마공 허브입니다.” 하르덴이 말했다. “특히 함께 달이면 신경 마비를 일으킬 수 있소.”
“그럼 오늘은 학회 재료로 시험하죠.”
마리와 아델이 엘리제를 보았다.
“학회 사람 두 분과 제 입회인 두 분이 병의 봉인을 확인하세요. 각각 다른 접시에 옮기고 남은 양도 적어 두겠습니다. 검증이 끝나기 전에는 누구도 가마나 반죽에 손대지 않는 것으로 하고요.”
“그 위험한 일을 굳이 여기서 하겠다는 겁니까?” 오르덴이 물었다.
“제 손님이 먹을 수 있는지 확인하는 자리니까요. 대신 제 기준에서 위험하다고 나오면 즉시 폐기합니다. 판매도 하지 않아요.”
하르덴은 한참 엘리제를 바라보다가 지팡이 끝으로 바닥을 한 번 짚었다.
“좋소. 공개 검증으로 진행하지.”
엘리제는 가마에 낮은 불을 붙였다.
첫 번째 유리병의 백설초를 가마에 넣자 차가운 흰 연기가 피어올랐다.
엘리제는 온도를 올리는 대신 화덕 아래의 안정석을 반만 열었다. 높은 열을 가하면 백설초의 독성 핵이 깨지며 사방으로 퍼진다. 먼저 낮은 온도에서 성분을 풀어 낸 뒤 다른 재료가 붙잡을 자리를 만들어야 했다.
“백설초는 독이 아니라 약초로도 쓰이지 않습니까?” 아델이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맞아요. 열과 양을 잘못 맞추면 독이 되는 거죠. 그래서 공정표 없이 흉내 내면 안 돼요.”
희던 잎이 맑은 액체로 변하자 엘리제는 청맥근 가루를 한 꼬집만 넣었다. 액체는 곧 탁한 푸른색으로 변했고 바닥에는 검은 침전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오르덴이 즉시 앞으로 몸을 기울였다.
“보십시오. 독성 침전입니다. 세 허브의 충돌이 시작됐어요.”
“맞아요. 그러니 지금은 먹을 수 없죠.”
엘리제는 주저하지 않고 은망을 꺼냈다. 마력 입자만 통과시키는 가는 그물이었다. 그녀는 액체를 걸러 검은 침전을 유리병에 옮겼다.
“청맥근의 쓴 마력이 백설초의 독성 핵을 붙잡으면 이런 찌꺼기가 생겨요. 이걸 반죽에 넣으면 안 됩니다. 버리는 단계예요.”
베른이 곁에서 폐기량과 남은 재료량을 장부에 적었다. 오르덴은 그 기록을 보며 입을 다물었다. 엘리제가 위험을 감춘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버릴 양까지 계산하고 있었다.
“아델. 순화 결정은?”
아델은 절구를 가만히 기울였다. 고운 결정 가루가 한 숟갈 분량으로 접시에 모였다.
“너무 곱게 빻으면 안 된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열 번만 더 돌렸어요.”
엘리제는 가루를 손끝에 비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해요.”
아델의 뺨에 작은 미소가 번졌다.
독월화는 마지막이었다. 엘리제는 꽃잎 하나의 절반만 잘라 넣었다. 순화 결정과 소금 알갱이가 검은 잔광을 바닥으로 끌어내리는 동안 그녀는 가마의 압력을 한눈도 떼지 않고 살폈다.
가마 안쪽에서 낮은 울림이 났다. 벽의 안정석도 푸른빛으로 한 번 흔들렸다.
레온의 손이 검 손잡이로 향했다. 엘리제가 곧바로 손을 들었다.
“괜찮아요. 마력층이 분리되는 소리예요. 한 번 더 울리면 중단할 겁니다.”
다행히 두 번째 울림은 오지 않았다. 검은 빛은 바닥의 소금 결정에 붙어 멎었고 남은 액체는 겨울 하늘처럼 옅고 맑은 파란색이 되었다.
엘리제는 그 액체에 우유 버터를 섞었다. 지방막이 남은 마력 입자를 감싸자 서늘한 향이 고소한 향 속으로 부드럽게 눌렸다.
“독을 없앤다는 건 모든 성분을 지우는 게 아니에요. 사람을 해치는 부분만 분리하고 남는 성질이 안전한지 다시 확인하는 거죠.”
“그래도 한 번의 검증으로 일반 손님에게 팔 수는 없소.” 하르덴이 말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오늘은 시식도 기록 동의한 사람만 합니다. 하루 열 개 이상은 만들지 않을 거예요.”
엘리제는 하얀 반죽에 푸른 액체를 한 방울씩 섞었다. 반죽 표면에 하늘빛 결이 번졌다. 작은 원형 틀에 짜 넣은 쿠키들이 화덕으로 들어가자 매장에는 버터와 맑은 허브 향이 차올랐다.
쿠키가 식힘망 위에 놓였을 때 엘리제는 바로 누구에게도 내밀지 않았다.
그녀는 쿠키 하나를 잘라 유리판 위에 올리고 학회가 가져온 독성 지시액을 떨어뜨렸다. 붉은 액체는 잠시 표면을 맴돌다가 맑게 투명해졌다. 이어 마력 반응판 위에 작은 부스러기를 올리자 검은 선이 천천히 푸른 점으로 옅어졌다.
“독성 핵의 반응은 없군.” 하르덴이 중얼거렸다.
“세 허브가 안전해진 게 아니라 이 배합과 이 공정에서만 독성 핵이 분리된 거예요.” 엘리제가 말했다. “다른 허브를 섞거나 불을 조금만 높여도 결과는 달라질 수 있어요.”
오르덴은 반응판을 들여다봤다.
“지시액은 조작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시식 전 기록을 받는 거죠.”
엘리제는 빈 기록판을 앞으로 밀었다. 손끝 저림, 기침, 마력 사용량, 알레르기 반응 여부. 항목은 간단했지만 빠진 것이 없었다.
“저부터 먹을게요.”
그녀는 쿠키 반쪽을 들어 한입 베어 물었다. 바삭한 표면이 부서지며 버터의 고소함이 퍼졌다. 뒤이어 백설초의 서늘한 향과 독월화의 은은한 단맛이 혀끝에 남았다. 청맥근 특유의 텁텁함은 보이지 않았다.
잠시 뒤 엘리제는 손목의 맥과 마력선을 확인했다.
“이상 반응 없음. 관찰 시작.”
오르덴은 여전히 접시를 보지 못했다. 그때 하르덴이 천천히 지팡이를 내려놓았다.
“학회의 의심으로 시작한 시험이니 내가 먹겠소.”
“원로님은 평소 증상이 있나요?”
“오래된 기침과 손끝 저림이 있지. 마력을 오래 다룬 탓이오.”
“그럼 그 두 가지를 기준으로 보죠. 불편하면 바로 말씀하세요.”
하르덴은 기록판에 직접 서명했다. 그의 손은 펜을 쥔 채 미세하게 떨렸다. 노인은 백청 쿠키를 집어 천천히 씹었다.
매장 안이 조용해졌다.
한 번의 숨이 지나가고 두 번의 숨이 지났다. 하르덴의 어깨가 아주 조금 내려갔다. 펜을 쥔 손가락이 전보다 자연스럽게 펴졌다.
“맛이…… 있군.”
노인의 눈가가 깊게 흔들렸다.
“청맥근을 다룰 때마다 목에 남던 쓴 통증이 없소. 백설초의 차가움도 살을 찌르지 않고 독월화의 향은 이렇게 부드럽게 남는군.”
그는 한참 접시를 바라보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예전에 내 제자가 이 세 허브를 다루다 손의 마력선을 다쳤소. 그날 이후 나는 이 조합을 금지해야만 한다고 믿었지. 다시는 누구도 다치지 않게 하려면 봉인뿐이라고.”
엘리제는 하르덴의 떨림이 잦아든 손을 보았다.
“그 판단이 틀렸다고 말하는 건 아니에요. 다만 위험하다는 이유로 연구까지 멈추면 다음 사람도 똑같이 다칠 수 있어요.”
하르덴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래서 공정과 기록을 남기는 것이군.”
“네. 맛있게 만들고 싶어서 시작했지만 안전하지 않으면 라 보나 메뉴가 될 수 없어요.”
오르덴은 굳은 얼굴로 면허 봉인서를 접었다. 잠시 후 그는 품에서 새 문서를 꺼내 탁자 위에 놓았다.
“남부 지부는 면허 박탈 절차를 철회하겠습니다. 백청 쿠키는 학회 공동 검증 대상으로 등록하죠.”
문밖에서 기다리던 기사들 사이로 작은 탄성이 흘렀다. 마리와 아델은 조심스럽게 박수를 쳤다.
오후의 햇살이 매장 바닥까지 기울 무렵 하르덴은 확인서에 마지막 도장을 찍었다.
“다음 달 남부 공개 강연에서 이 공정을 설명해 주시오. 나를 포함한 원로들이 배우겠소.”
“전부 공개하진 않아요.” 엘리제가 곧장 답했다. “레시피를 베끼는 사람보다 공정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 더 위험하니까요. 먼저 재료 기준과 기록법, 판매 상한부터 공개하겠습니다.”
하르덴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웃었다.
“그것이야말로 오늘 우리가 배운 것이오.”
베른은 확인서의 학회 인장을 확인하고 장부에 새 메뉴를 적었다. 마리는 예약을 묻는 손님들에게 증상 확인이 먼저라고 안내했다.
엘리제는 판매 장부 맨 위에 한 줄을 더 적었다.
백청 쿠키. 사전 확인. 하루 열 개. 학회 공동 검증 중.
그때 하르덴의 수행원이 카운터에 검은 봉투 하나를 내려놓았다. 봉인에는 남부 지부보다 훨씬 큰 원형 문양이 찍혀 있었다.
“중앙 본부에도 공녀님에 관한 의견서가 올라갔습니다. 오늘의 결과와 함께 이 초대장을 전달하라는 지시였습니다.”
엘리제가 봉투를 뒤집었다.
[제국 연금술 학회 중앙 본부]
라 보나의 메뉴 하나가 인정받자마자 중앙이 손을 뻗어 왔다.
엘리제는 봉투를 장부 옆에 올려두고 미소 지었다.
“좋네요. 이번에는 제가 먼저 기준을 들고 가면 되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