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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멸 예정 악녀는 연금술 카페를 엽니다10화

파멸 예정 악녀는 연금술 카페를 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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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사교계의 무지개 다과회

중앙 연금술 학회에서 온 봉투가 장부 옆에 놓인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라 보나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세 번 울렸다. 이번에는 조심스러운 손님이 아니었다. 보석을 주렁주렁 단 부인 셋과 하녀들이 좁은 매장을 가득 메웠다.

앞선 여자는 은빛 머리 장식과 자줏빛 깃털 부채를 들고 있었다.

“엘리제 드 밸류어 공녀가 맞겠지요?”

“맞아요. 손님으로 오셨다면 자리에 앉으세요.”

“손님이라기보다 주최자에 가깝답니다.”

여자가 부채를 펴며 웃었다.

“오르시아 후작부인입니다. 중앙 귀족 부인회에서 남부 영지 교류 다과회를 열기로 했어요. 장소는 이곳으로 정했고 날짜는 모레입니다.”

“예약을 받으려면 선불과 인원 확인이 필요합니다.”

“그런 절차는 우리에게 요구하지 않아도 돼요.”

옆에 있던 벨로아 백작부인이 코웃음을 쳤다.

“중앙 사교회의 이름으로 여는 모임이니까요. 공녀가 사교계를 떠났다는 소문이 사실인지 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하고요.”

“학회 본부가 공녀를 중앙으로 부른다는 소식은 이미 부인회에 돌았답니다.”

오르시아 후작부인이 봉투를 힐끗 보았다.

“중앙에서 공녀의 공정을 다루기 전에 우리가 먼저 맛을 확인해 드리려는 거예요.”

먼저 맛을 확인한다는 말은 레시피와 명성을 먼저 가져가겠다는 뜻이었다.

“제가 사교계에서 탈퇴했다는 사실은 서류로 접수됐습니다. 비공식 다과회에 참석하지 않는다는 서약도 했고요.”

“그러니 우리가 공녀의 카페로 찾아오는 겁니다. 사교계가 공녀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말이지요.”

엘리제는 잠시 생각했다. 거절하면 사교계를 무서워해 숨는다는 이야기가 돌 것이다. 받아들이면 자신들의 이름으로 라 보나의 메뉴를 발표하려 들겠지.

“좋아요. 다과회를 열죠.”

부인들의 입가가 올라갔다.

“대신 라 보나의 규칙을 따르세요. 외부 음식과 재료는 반입할 수 없어요. 주방에는 저와 직원만 들어갑니다. 시식에 쓰는 재료와 반응은 기록하고 참석자 모두 서명해야 해요.”

“다과회에 검문이라도 하겠다는 건가요?”

“안전 확인이에요. 학회에서 방금 면허를 조사받은 가게라서요.”

엘리제는 봉투를 손끝으로 눌렀다.

“메뉴의 가격과 제공량도 제가 정합니다. 무료 시식이나 레시피 증정은 없습니다.”

벨로아 백작부인의 부채 끝이 탁자를 건드렸다.

“감히 부인들에게 값을 받겠다는 건가요?”

“감히가 아니라 장사니까요.”

엘리제는 웃으며 예약표를 내밀었다.

부인들은 돌아가지 않았다. 오르시아 후작부인은 결국 예약금 봉투를 내려놓았다. 떠나기 전 하녀 하나가 주방을 힐끗 바라보았다.

그 시선은 재료보다 레시피를 찾는 사람의 눈이었다.


“공녀님. 정말 저 사람들을 받아 주실 거예요?”

아델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손목의 낡은 끈 사이로 새어 나오던 빛이 조금 흔들렸다.

“받아 주는 게 아니라 이용하는 거예요.”

엘리제는 작업대 위에 달걀과 버터를 올렸다. 그 옆에는 보랏빛 꽃잎과 붉은 열매가 담긴 유리병이 놓였다.

“중앙에서 온 부인들은 맛보다 남의 시선을 먹고 사는 사람들이에요. 그러니 시선이 바뀌는 디저트를 내놓을 겁니다.”

엘리제는 보랏빛 꽃잎을 작은 가마에 넣었다. 낮은 불에 맑은 자주색 액체가 흘러나왔다.

“자색 월화 추출액이에요. 산도가 달라지면 색이 바뀌죠. 베리 시럽과 섞으면 분홍색이 되고 우유 크림에 닿으면 푸른색에 가까워져요.”

“그럼 손님마다 케이크가 달라져요?”

“차의 성질과 온도에 따라서요. 사람의 마음을 읽는 마법은 아니에요. 재료가 서로 반응하는 겁니다.”

엘리제는 반죽을 여섯 그릇에 나누고 자색 월화와 레몬즙 그리고 블루민트 시럽을 다른 양으로 넣었다.

아델은 색과 온도를 표에 적었다.

“첫 번째 층은 따뜻할 때 분홍색. 세 번째 층은 식힌 뒤에 연한 노란색. 마지막은 크림이 닿으면 푸른색.”

“잘했어요. 이 표도 손님들 앞에 놓을 거예요.”

“부인들이 싫어하면요?”

“싫어할 수는 있어요. 하지만 틀렸다고 우길 수는 없게 만들 겁니다.”

마리가 주방 문 앞에 멈춰 섰다.

“공녀님. 아까 그 하녀가 창고 앞에서 서성이고 있어요. 손에 작은 병을 들고요.”

엘리제는 바로 밖으로 나갔다. 하녀가 움찔하며 병을 소매 안에 숨겼다.

“그건 뭔가요?”

“장미 향유입니다. 후작부인께서 가져오신 차에 넣으라고 하셨어요.”

“식용 장미수가 아니라 향수용 향유네요. 이건 주방에 들어오면 안 됩니다.”

“오늘은 당신을 쫓아내지 않아요. 다만 내일 부인들 앞에서 이 병이 어디서 왔는지는 확인해야겠어요.”

엘리제는 병의 봉인 위에 자신의 도장을 찍었다.

“라 보나에서는 숨긴 재료가 가장 비싼 재료보다 먼저 기록됩니다.”


다과회 당일 라 보나는 아침부터 낯선 향으로 가득했다.

오르시아 후작부인은 벽에 걸린 메뉴판을 치우고 은제 찻주전자를 카운터에 올려놓았다. 벨로아 백작부인은 마리에게 차를 따르라고 명령했다.

“이런 곳에서 다과회를 열다니 아직도 믿기지 않는군요.”

벨로아 백작부인이 케이크 접시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중앙의 응접실이라면 최소한 금박 접시는 써야 하는데 말이에요.”

“금박은 맛을 보장하지 않아요.”

엘리제는 흰 크림과 푸른 크림이 번갈아 든 케이크를 들고 나왔다.

“분자 연금술 무지개 케이크입니다. 층마다 다른 향이 나고 차의 온도와 산도에 따라 색이 변해요.”

“무지개라니. 어린아이 간식 같군요.”

오르시아가 칼을 들었다.

엘리제는 접시를 내밀기 전에 손을 들었다.

“먼저 차와 케이크를 각각 봉인하겠습니다. 외부 차를 사용하겠다고 하셨으니 안전 확인이 필요해요.”

베른이 재료 기록판을 들고 다가왔다. 각 찻주전자에서 시료를 덜어 작은 유리병에 넣고 참석자들이 봉인 상태를 확인했다.

벨로아 백작부인은 찻잔을 케이크 옆에 놓았다. 엘리제는 케이크 위에 베리 시럽 한 방울을 떨어뜨렸다. 시럽이 푸른 크림에 닿자 보랏빛이 번졌다. 차에서 덜어 둔 시료를 옆 접시에 놓자 같은 크림이 곧 분홍색으로 변했다.

“색이 제멋대로잖아요.”

“차와 시럽의 산도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제멋대로가 아니라 반응한 거예요.”

엘리제는 조각을 잘라 내밀었다. 버터 향과 레몬 향이 차례로 깨어났다.

“드셔 보세요. 첫 번째 층부터 순서대로 맛이 바뀔 겁니다.”

오르시아 후작부인이 못마땅한 얼굴로 한입 먹었다. 그녀는 잠시 씹다가 눈을 크게 떴다.

“처음에는 달지 않군요.”

“첫 층은 버터와 소금으로 단맛을 늦췄어요.”

“그 다음에는 신맛이 올라오고 마지막에 꽃 향이 남아요.”

벨로아 백작부인이 자신도 모르게 말했다. 곧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그 정도는 중앙의 파티시에라면 모두 할 수 있답니다.”

“그렇다면 레시피를 공개해도 괜찮겠네요?”

엘리제는 기록판을 펼쳤다.

“온도별 추출 시간과 층마다 다른 산도 그리고 마력 안정석의 개방량까지 전부 적혀 있어요. 중앙 학회에도 같은 기록을 제출할 겁니다.”

“우리는 레시피를 베끼려 온 것이 아니에요.”

“그럼 다행이네요. 부인회 이름으로 중앙에 발표할 메뉴가 필요하다는 말은 듣지 못했거든요.”

오르시아 후작부인의 얼굴이 굳었다.

그때 벨로아 백작부인의 하녀가 몰래 봉인 주머니를 열었다. 엘리제가 손가락을 튕기자 카운터의 작은 종이 울렸다.

“그 병은 아직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하녀의 손이 멈췄다.

엘리제는 병을 들어 빛에 비추었다. 투명한 액체가 잔 안에서 느리게 흔들렸다.

“향수용 장미 오일입니다. 식용 장미수와 다르게 반응석이 붉게 변해요. 차에 넣으면 향은 강해지지만 식품으로 쓸 안전성은 없습니다.”

“그건 단순한 향료예요.” 벨로아 백작부인이 말했다.

“그렇다면 검사 결과를 기록해도 문제없겠네요.”

엘리제는 은망 위에 액체 한 방울을 떨어뜨렸다. 망 아래의 반응석이 붉게 빛났다. 아델은 기록판에 즉시 결과를 적었다.

“식용 향료가 아니라는 기록이 남았습니다.”

오르시아 후작부인이 부채를 접었다.

“공녀는 손님을 의심하는 버릇이 있군요.”

“손님을 의심하는 게 아니라 재료를 확인하는 겁니다. 손님이 누구든 기준은 같아요.”

엘리제는 케이크의 마지막 조각을 접시에 올렸다. 차가 식자 푸른 크림이 맑은 은빛으로 바뀌었다.

“이 케이크는 사람의 지위를 구분하지 않아요. 좋은 차를 가져온 분에게도 같은 반응을 하고 향수 오일을 넣은 차에도 같은 반응을 합니다.”

벨로아 백작부인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다과회가 끝났을 때 부인들의 접시는 대부분 비어 있었다. 칭찬은 없었지만 두 번째 조각을 요구하는 사람은 많았다.

오르시아 후작부인은 마지막까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오늘 시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중앙에 사기극이라고 알릴 수도 있어요.”

“알리세요. 봉인된 시료와 참석자 서명을 함께 보내겠습니다.”

엘리제는 기록판을 들어 보였다.

“중앙 학회에도 먼저 제출할 거예요. 후작부인께서 보내실 소문보다 원본 기록이 먼저 도착하겠죠.”

문종이 울렸다. 검은 망토를 걸친 카일레온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는 매장 안의 은제 주전자와 부인들을 한 번 훑어본 뒤 엘리제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예약 손님이 남아 있군.”

“마지막 확인 절차예요. 보급 계약 입회인이 필요하던 참이었고요.”

카일레온은 기록판을 받아 들었다. 그는 말없이 봉인 상태와 서명을 확인했다.

“황실 보급 계약의 기록 보관 항목에 따라 이 자료를 감찰단 금고에도 보관하겠다.”

부인들은 카일레온이 황실과 연결된 사람이라는 사실은 알아보았다.

“이런 작은 다과회까지 황실이 들여다봅니까?” 오르시아가 물었다.

“라 보나의 안전 기록은 계약 범위 안에 있다.”

카일레온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단호했다.

오르시아는 예약금 영수증을 받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중앙 학회 초대에 응하지 않으면 오늘 일은 끝나지 않을 겁니다.”

“그 초대는 이미 받았어요.”

엘리제는 장부 위의 봉투를 가리켰다.

“중앙으로 올라갈 때도 제 재료와 기록은 제가 관리할 겁니다. 사교회가 정한 응접실에서 제 가게를 심사받을 생각은 없어요.”

오르시아가 돌아서자 무지개 케이크의 마지막 층이 햇빛을 받아 은빛으로 빛났다.

부인들이 떠난 뒤 마리가 긴 숨을 내쉬었다. 아델은 기록판을 끌어안았다.

“공녀님. 제가 제대로 적었나요?”

“아주 정확했어요. 오늘부터 이건 네가 만든 첫 공식 공정 기록이에요.”

아델의 손목에서 새어 나오던 빛이 조용히 가라앉았다.

카일레온은 빈 접시에 남은 케이크 부스러기를 바라보았다.

“저 케이크는 내 것도 남겨 두었나?”

“무감각한 분도 맛을 느끼게 만든 메뉴는 아니에요. 산도와 향이 변할 뿐이죠.”

“그럼 다음에는 그 점까지 고려해 보도록.”

무심한 말이었지만 그의 눈동자에는 작은 기대가 맺혔다.

엘리제는 중앙 학회 봉투를 들어 올렸다.

“좋아요. 중앙 공개 시식에 가죠.”

“피하는 것과 무대를 고르는 건 달라요.”

엘리제는 무지개 케이크의 색 견본을 정리했다.

“이번에는 그들이 정한 다과회가 아니라 제가 정한 시식회로 만들 겁니다.”

중앙은 이제 라 보나를 부르려 하고 있었다.

엘리제는 봉투의 봉인을 천천히 뜯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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