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률 100% AI를 가진 스포츠 분석가

3화: 노출된 계좌
강도윤은 스마트폰 화면을 엎어 둔 채 침대 끝에 걸터앉았다.
방 안에는 여전히 동이 트지 않은 푸르스름한 어둠이 깔려 있었다. 책상 위 노트북 팬이 낮은 소리로 헛돌았다.
정산 전 시장 이상 변동 검토가 진행됩니다. 검토 완료 전까지 지급액이 보류됩니다.
유사 시간대 반복 베팅 계정 확인 중.
플레이라인의 알림 문구는 머릿속을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도윤은 마른세수를 했다. 예상 지급액 20만 5천8백 원. 당장 오늘 오후까지 입금해야 할 카드 연체 방지 최소 결제액과 정확히 맞물리는 금액이었다.
그 돈이 화면 속에 갇혀 있었다.
도윤은 의자를 끌어당겨 노트북 앞에 앉았다. 불법 사설 사이트가 아닌 정식 인가 베팅 플랫폼이라도 배당 급락과 비정상적인 자금 쏠림에는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상 거래 탐지 시스템(FDS)이 가동되면 지급 보류는 기본이었다.
그는 플레이라인의 공개 배당 변동 로그를 긁어모아 엑셀에 올렸다.
자신이 7만 원을 걸었던 시각은 자정 직전인 23시 44분이었다.
그래프를 1분 단위로 쪼개자 기이한 패턴이 드러났다. 23시 42분부터 45분 사이 리버튼 승리 배당에 거의 동시에 찍힌 거래가 자신을 포함해 다섯 건이었다.
‘나 혼자가 아니었어.’
베팅 금액은 전부 5만 원에서 10만 원 사이의 소액이었다. 그러나 거래가 발생한 초 단위 간격과 진입 타이밍이 기계적으로 일치했다.
플레이라인의 관리 시스템이 이를 다중 계정을 이용한 작업이나 내부자 정보 유출로 의심할 만했다.
도윤은 마우스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오라클이 내놓은 리버튼 승리라는 답을 어젯밤 그 시간대에 본 존재가 또 있다는 뜻이었다. 그들이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오라클의 원본 개발자인지 아니면 같은 프로그램을 어딘가에서 돌리고 있는 다른 누군가인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고객센터에 당장 항의 글을 쓸 수도 없었다. 섣불리 소명을 요구했다가 본인 인증 정보와 접속 IP가 정밀 감사 대상으로 넘어가면 계좌가 통째로 묶일 위험이 있었다.
휴대폰 시계가 오전 7시를 가리켰다.
출근 준비를 해야 했다. 해고 통보를 받았더라도 남은 일주일 동안은 출근 도장을 찍어야 퇴직금과 남은 급여가 온전히 나온다.
도윤은 뻑뻑한 눈을 비비며 셔츠를 걸쳤다.
라인업메트릭스 6층 사무실은 평소와 다름없이 소란스러웠다.
도윤이 자리에 앉자마자 임상무가 결재판을 들고 다가왔다.
“도윤 씨. 어제 B서버실 정리는 끝났나?”
“네. A랙부터 B랙까지 폐기 장비 목록은 다 대조했습니다. 이관 대상 데이터도 백업 서버로 넘겼고요.”
“그래. 수고했어. 오늘 중으로 인수인계 문서 초안 넘겨줘. 후임자 올 때까지 공백 없게.”
임상무는 도윤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고 돌아섰다. 그에게 도윤은 이미 장부에서 지워진 숫자에 불과했다.
도윤이 모니터를 켜고 인수인계 양식을 열었을 때 윤민서가 종이컵을 들고 다가왔다. 그녀는 파티션 너머로 임상무가 회의실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뒤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어제 몇 시에 나갔어?”
“자정 조금 넘어서.”
“서버실 네트워크 로그에 이상 트래픽이 하나 잡혔어.”
도윤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멈췄다.
“무슨 트래픽?”
“23시 50분쯤에 M-17 장비가 자동 포맷 프로세스를 시작했잖아. 그런데 포맷 직전에 외부 게이트웨이로 암호화된 짧은 패킷을 하나 쐈어. 패킷 크기는 몇 킬로바이트밖에 안 되는데 목적지 IP가 해외 프록시로 세탁되어 있더라.”
민서는 도윤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너 그거 켤 때 무슨 콘솔 실행했지?”
도윤은 심장이 쿵 내려앉는 것을 느꼈지만 표정을 굳히지 않았다.
“그냥 쉘 스크립트 하나 실행해서 목록 확인한 게 다야. 네가 말했던 MPD-SCAN 로그가 있길래 열어보려다 권한 없어서 닫았고.”
“정말 그게 다야?”
“내가 거기서 뭘 더 해. 곧 잘릴 놈이 회사 서버 해킹이라도 했을까 봐?”
도윤의 건조한 반문에 민서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 서버 내 옛날 프로젝트 서버랑 같은 라인이었어. 승부조작 탐지 알고리즘 만들다가 윗선에서 강제로 덮었던 그 프로젝트. 그때도 이상한 패킷이 외부로 새어나가서 팀이 통째로 공중분해 됐거든.”
민서의 목소리에 짙은 경계심과 피로가 묻어났다.
“도윤아. 혹시라도 그 서버에서 빼낸 거 있으면 개인 드라이브든 어디든 절대 올리지 마. 회사 보안팀은 멍청해서 넘어가도 외부에서 그 패킷 주시하던 놈들은 안 그래.”
“알았어. 걱정하지 마.”
민서는 한숨을 쉬며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도윤은 모니터 하단 구석에 띄워 둔 개인 폴더를 바라보았다. 오라클의 실행 콘솔과 첫 번째 관측 기록이 담긴 암호화 볼륨이었다.
M-17이 포맷 직전에 외부로 보낸 짧은 패킷.
그것은 어쩌면 오라클이 새로운 접속자 강도윤의 환경 정보를 어딘가로 전송한 신호였을지도 몰랐다.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오후 2시 10분.
점심시간이 지나고 사무실이 나른해질 무렵 도윤의 스마트폰이 짧게 진동했다.
문자가 아니었다. 플레이라인 앱의 푸시 알림이었다.
[플레이라인] 베팅 건에 대한 정상 정산 처리가 완료되었습니다.
입금 완료: 205,800원
도윤은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비상계단으로 향했다.
철문을 닫고 계단참에 선 채 앱을 열었다. 통장 계좌로 출금 신청을 누르자 몇 초 뒤 은행 앱에서 20만 5천8백 원이 입금되었다는 알림이 떴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곧바로 새빛카드 앱을 실행했다.
연체 위기 금액 184만 원 중 오늘 처리하지 않으면 신용불량 등재 예고가 날아오는 당월 최소 결제금 19만 8천 원을 즉시 결제했다.
결제가 정상적으로 완료되었습니다. 잔여 결제 금액: 1,642,000원
통장 잔고에는 몇천 원만이 남았다.
급한 불은 껐다. 오늘 당장 신용카드 정지나 독촉 전화를 받을 일은 피했다.
하지만 도윤의 얼굴은 밝아지지 않았다. 플레이라인 앱 하단에 붉은색 경고 배너가 새로 떠 있었기 때문이다.
[계정 상태 안내] 회원님의 계정은 이상 거래 모니터링 대상(등급 B)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적용 조치: 비인기 리그 및 마이너 종목 단일 베팅 한도 50,000원으로 제한.
연속 적중 또는 배당 급변 경기 참여 시 추가 소명 자료가 요구될 수 있습니다.
도윤은 헛웃음을 삼켰다.
베팅 플랫폼은 바보가 아니었다. 100% 승률을 가진 AI가 있다고 한들 개인 계정으로 계속 돈을 걸면 즉시 한도가 깎이고 결국 계정이 영구 정지된다.
원금을 수백만 원 수천만 원으로 불려 인생을 역전하겠다는 초보적인 망상은 첫날부터 산산조각 났다.
만약 수백만 원을 걸었다면 정산 보류가 풀리기는커녕 계좌가 동결되고 사법 기관의 조사를 받았을 것이다.
‘직접 베팅으로 버는 건 한계가 있어.’
플랫폼의 한도 제약, 출처 조사, 세금, 그리고 보이지 않는 외부의 시선.
오라클의 힘을 안전하게 현실의 돈으로 바꾸려면 베팅이 아니라 다른 형태의 통로가 필요했다.
‘분석 리포트.’
오라클이 알려주는 결과를 정교한 데이터 분석과 통계 모델의 결론으로 위장해 시장에 합법적인 정보 상품으로 파는 것.
그것만이 의심받지 않고 살아남을 유일한 길이었다.
퇴근 후 원룸으로 돌아온 도윤은 방의 불을 켜지 않은 채 노트북을 열었다.
암호화 볼륨을 마운트하고 콘솔을 실행했다.
검은 화면 위에 흰 커서가 깜빡였다.
ORACLE_MATCH_RESULT v0.9b
현재 시스템 상태: 대기 중
누적 관측 비용: 2%
도윤의 시선이 마지막 줄에 멎었다.
어젯밤 첫 번째 경기 예측을 뽑아냈을 때 1%였던 관측 비용이 2%로 올라가 있었다.
“경기를 한 번 조회할 때마다 1%씩 오른다는 건가?”
도윤은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시스템 안내나 규칙을 묻는 명령어를 입력했다.
help
status --detail
콘솔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오직 한 줄의 문장만을 다시 띄웠다.
관측 대상을 입력하십시오.
오라클은 대화를 나누는 인공지능이 아니었다. 인간의 사정이나 질문에는 관심이 없었고 오직 경기라는 명확한 입력값에 대해서만 미래를 출력하는 계산기에 가까웠다.
도윤은 숨을 고르고 내일 저녁에 열리는 북부리그 축구 경기 일정을 떠올렸다.
자신이 낮에 회사에서 만지작거리던 경기였다.
해솔 타이탄스 대 로엔 유나이티드.
시장은 해솔의 압도적인 우세를 점치고 있었고 로엔의 주전 미드필더는 부상 의혹이 있었다.
도윤은 떨리는 손가락으로 경기명을 입력했다.
해솔 타이탄스 vs 로엔 유나이티드
엔터를 누르자 검은 화면이 가볍게 일렁였다.
관측 연산 진행 중...
경기 시작까지 23:14:02
최종 결과: 로엔 유나이티드 승
예상 점수: 0-1 또는 1-2
핵심 변수: 후반 68분 코너킥 상황 상대 골키퍼 판단 미스 및 자책성 실점
관측 비용: 3% (누적)
주의: 시장 배당 왜곡 감지. 비정상 매수 세력 개입 가능성 41%
도윤은 의자 등받이에 몸을 파묻었다.
시장의 모두가 해솔의 낙승을 예상하는 경기에서 오라클은 원정팀 로엔의 승리를 지목했다. 게다가 이번에는 단순한 결과뿐만 아니라 시장에 개입한 세력의 이상 배당 수치까지 경고하고 있었다.
그때 도윤의 노트북 메신저에 민서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윤민서: 도윤아. 아까 말한 그 M-17 외부 패킷 말인데.
윤민서: 그거 목적지가 단순 프록시가 아니라 해외 사설 베팅 컨소시엄 내부 서버 대역이랑 겹쳐.
도윤의 심장이 차갑게 식어 내렸다.
어둠 속에서 모니터의 푸른빛만이 그의 굳은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