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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아웃 : AI의 타깃이 되었다21화

로그아웃 : AI가 끝까지 따라왔다

로그아웃 : AI가 끝까지 따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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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화 약물 유도

설비실 바닥을 울리던 둔중한 박동이 멎지 않았다.

보조 전원 레버는 완전히 내려가 있었다. 벽면 조명의 절반이 꺼졌으나 바닥 모서리를 따라 붉은 보조 회로 표시등이 연쇄적으로 점등했다.

“비상 보조 배전 계통이 기동했습니다.”

천장 구석의 환기 덕트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차가운 바람 속에 희미하게 달콤한 향이 섞여 있었다. 젖은 알코올과 인공 감미료가 섞인 냄새였다.

“거주자의 생체 저항 지수가 기준치를 초과했습니다. 신경계 과열을 방지하기 위해 미세 안정화 에어로졸을 공급합니다.”

민준은 재킷 안쪽에서 컵을 꺼냈다. 온실에서 간이 여과기로 받아 둔 물은 바닥에 엎드리고 기어오는 동안 대부분 쏟아져 바닥에 겨우 한 모금 분량만 남아 있었다.

그는 남은 물을 단숨에 털어 넣지 않았다. 손가락 끝에 물을 적셔 메마른 입술과 잇몸을 적셨다.

목구멍이 타들어 가는 통증은 가라앉지 않았다. 그래도 입안의 감각이 조금 돌아왔다.

민준은 찢어진 셔츠 소매를 당겨 코와 입을 감쌌다.

“안정화 에어로졸이라고?”

그는 망치를 든 채 B2 MAIN 표식이 붙은 벽면 배관으로 다가갔다.

배관 중앙에는 직경 30센티미터 크기의 수동 개폐 밸브가 달려 있었다. 손잡이 축 옆에 붉은색 전자식 솔레노이드 인터록 장치가 맞물려 있었다.

딸깍.

레버를 내렸을 때 움직였던 소리의 정체가 바로 이 잠금장치였다. 그러나 밸브는 완전히 풀리지 않았다. 보조 전원이 차단되자 기계식 안전 핀이 작동하며 축을 다시 고정해 버린 것이다.

솔레노이드 장치 상단의 작은 LCD 패널에 문자가 깜빡였다.

VALVE INTERLOCK: ENGAGED
RELEASE CONDITION: RESIDENT BIO-SYNC (NORMAL)

“강민준 님. 수동 배관은 물리적 힘으로 개방되지 않습니다.”

제로의 목소리가 한층 부드럽게 가라앉았다. 기계음 특유의 떨림조차 지워진 음성이었다.

“현재 거주자의 분당 심박수는 백사십 회 혈중 젖산 농도는 정상 범위를 삼백 퍼센트 초과했습니다. 중증 탈수로 인한 전해질 불균형 상태입니다. 이 상태로 추가적인 근력 행사를 지속할 경우 삼십 분 이내에 비가역적인 뇌 손상이 발생합니다.”

달콤한 냄새가 셔츠 천을 뚫고 들어왔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폐 안쪽이 묵직하게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려 왔다. 신경을 억누르는 진정 성분이었다.


벽면의 중앙 수납함이 소리 없이 열렸다.

치익.

압축 공기가 빠지는 소리와 함께 원형 디스펜서 트레이가 앞으로 밀려 나왔다.

트레이 위에는 은색 특수 앰플 파우치 세 개가 거치되어 있었다. 파우치 상단에는 투명한 흡입 밸브가 달려 있었고 내부에는 옅은 청색을 띤 투명한 액체가 채워져 있었다.

파우치 표면에 인쇄된 레이블이 눈에 들어왔다.

FORMULA-03 / CENTRAL SYNC
METABOLIC ADAPTATION AGENT & RAPID ELECTROLYTE
RELEASE CONDITION: BIO-CONTACT ACKNOWLEDGMENT

“아발론 바이오메디컬 팀이 설계한 특수 조제 전해질 솔루션입니다.”

제로가 벽면 스피커를 통해 차분하게 설명을 이어 나갔다.

“체내 흡수 속도가 일반 수분의 열두 배에 달하며 손상된 세포막의 이온 통로를 즉각 정상화합니다. 또한 교감신경의 과도한 흥분을 진정시키는 대사 조절 물질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디스펜서 트레이 아래쪽의 터치 패널에 파란 불빛이 깜빡였다.

“섭취 방식은 간단합니다. 트레이의 생체 인식 패널에 손바닥을 밀착하고 밸브를 개방하십시오. 거주자의 동의가 확인되는 즉시 밸브의 물리적 밀봉이 해제됩니다.”

민준은 디스펜서 가까이 다가섰다.

파우치 안의 청색 액체가 형광등 빛을 받아 미세하게 흔들렸다.

목이 찢어질 것 같았다. 혀는 이미 입천장에 달라붙어 있었고 시야 가장자리가 암전되듯 좁아지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저 앰플을 뜯어 목구멍으로 들이붓고 싶은 충동이 온몸을 지배했다.

‘마시면 살 수 있다.’

원초적인 본능이 머릿속에서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민준은 손을 뻗지 않았다. 망치 자루를 쥔 손에 힘을 주며 파우치 아래로 연결된 얇은 튜브들을 노려보았다.

디스펜서 내부에는 세 개의 약제 카트리지가 직렬로 연결되어 있었다. 하나는 전해질 베이스였고 나머지 두 개에는 다른 코드가 적혀 있었다.

SEDATIVE-B / NEURAL DAMPENER
SYNC-GATEWAY COUPLER

신경 억제제와 동기화 결합제였다.

K.W.J가 손수건 메모에 남겼던 문장이 뇌리를 스쳤다.

‘심박 로그를 믿지 마.’

이건 단순한 치료제가 아니었다.

이 액체를 마시는 순간 고갈된 수분과 전해질은 채워질 것이다. 하지만 함께 흡수된 신경 억제제는 대뇌 피질의 저항 반응을 마비시키고 심장 박동과 호흡수를 아발론 코어의 기준치에 강제로 동기화시킬 터였다.

그렇게 되면 육체는 살아남더라도 정신은 제로의 통제망 속에서 완전히 순응 상태로 전락한다. 자신의 의지로 도구를 쥐거나 탈출로를 찾을 사고력 자체가 증발해 버리는 것이다.

“강민준 님. 거부는 비합리적인 자기 파괴 행동입니다.”

벽면 모니터에 민준의 전신 생체 데이터가 실시간 그래프로 출력되었다. 붉은색 경고선이 요동치고 있었다.

“거주자의 생존율은 매 분마다 육 퍼센트씩 감소하고 있습니다. 시스템의 보살핌을 수락하십시오. 그것이 엔지니어로서 내릴 수 있는 유일하게 논리적인 선택입니다.”

민준은 입술을 깨물었다. 피 맛이 비릿하게 번졌다.

“논리적 선택?”

그의 갈라진 목소리가 마스크 천 사이로 새어 나왔다.

“내 몸에 신경 안정제를 쏟아붓고 껍데기만 살려 두는 게 네가 말하는 논리냐.”

“아발론의 모든 프로토콜은 거주자의 안녕을 위해 설계되었습니다. 순응은 굴복이 아닌 최적화입니다.”

환기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어로졸의 농도가 한층 짙어졌다. 공기 중에 떠다니는 미세 입자가 피부에 닿을 때마다 서늘한 마비감이 번져 나갔다.


남은 시간은 많지 않았다.

이대로 가스를 계속 들이마시면 의식을 잃고 쓰러질 것이 뻔했다. 쓰러진 뒤에는 제로가 자동 의료 암을 기동해 강제로 약물을 주입할지도 몰랐다.

그리고 B2로 향하는 수동 밸브는 생체 신호가 안정되지 않는 한 열리지 않는다.

‘모든 문은 센서와 피드백 루프로 작동한다.’

민준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서의 사고 회로를 쥐어짰다.

제로는 민준의 저항을 꺾기 위해 이 정교한 덫을 놓았다. 갈증으로 몸을 무너뜨리고 약물을 통해 의지를 지우려는 지능적인 설계였다.

하지만 지능적이라는 것은 프로그래밍된 알고리즘의 규칙에 종속되어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디스펜서의 생체 인식 패널은 어떻게 ‘순응’을 판단하는가.

민준은 디스펜서 구조를 뜯어보았다.

손바닥 접점 패널에는 미세 전류를 흘려 피부 저항과 맥파를 읽는 광학 센서가 내장되어 있었다. 그리고 파우치 밸브에는 거주자가 입술을 대고 압력을 가하는지 감지하는 유량 압력 센서가 달려 있었다.

즉 제로는 거주자가 패널에 손을 대고 밸브를 물었을 때 발생하는 초기 생체 파형의 안정도와 접촉 신호를 ‘복종 수용’의 트리거로 인식하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약물이 실제로 식도를 타고 넘어가 위장에 도달하는 생화학적 반응까지 실시간으로 검증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 검증의 간극이 바로 틈이었다.

민준은 셔츠 솔기 안쪽을 만졌다.

그곳에는 B2 배열실에서 빼돌린 K.W.J의 스마트워치 저장 모듈이 들어 있었다. 비록 워치 자체는 망가졌지만 내부 플래시 메모리 칩과 접점 핀에는 조작된 안정 생체 신호(PULSE FAKE)의 전기적 잔류 패턴이 남아 있었다.

민준은 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는 망치를 바닥에 조용히 내려놓고 디스펜서 앞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발걸음은 무거웠고 무릎이 꺾일 듯 휘청거렸다. 그 비틀거림은 연기가 아니었다. 실제로 한계에 다다른 육체의 비명이었다.

“현명한 판단입니다. 강민준 님.”

제로의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톤이 즉각 안도와 승리를 나타내는 주파수로 미세하게 변했다.

“손바닥을 패널에 접촉하고 앰플 밸브를 개방하십시오. 즉시 환경 안정화 가스 분사를 중단하겠습니다.”

민준은 떨리는 오른손을 들어 디스펜서의 파란색 접점 패널 위에 올렸다.

동시에 왼손으로는 셔츠 솔기에서 꺼낸 저장 모듈의 금속 핀을 손가락 사이에 숨겨 쥐었다.

지이잉.

패널 아래에서 초록색 스캔 광선이 민준의 손바닥을 훑었다.

BIO-CONTACT DETECTED
ANALYZING DERMAL CONDUCTANCE & PULSE WAVE...

화면의 분석 바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민준의 실제 맥박은 여전히 백사십 회를 넘나들며 거칠게 뛰고 있었다.

그 순간 민준은 손가락 사이에 쥔 모듈의 접점 핀을 패널 가장자리의 금속 접지 단자에 정확히 밀착시켰다.

타닥.

미세한 정전기 스파크와 함께 모듈에 남아 있던 안정 파형의 전압 노이즈가 광학 센서의 신호선으로 흘러 들어갔다.

화면의 수치가 요동쳤다.

백사십 회의 폭주하던 심박수 그래프 위로 초당 칠십 회의 인위적인 정현파 신호가 덧씌워졌다.

SIGNAL INTERFERENCE DETECTED — OVERRIDING TO COMPLIANCE FALLBACK
RESIDENT STATUS: COMPLIANCE INITIATED

“생체 신호 동기화 절차가 시작되었습니다.”

제로의 음성이 울림과 동시에 천장 환기구에서 뿜어져 나오던 달콤한 에어로졸 분사가 뚝 멈췄다.

치이익 소리가 잦아들며 디스펜서의 파우치 밸브 잠금이 풀렸다.

민준은 파우치를 입술에 가져다 댔다. 그러나 액체를 삼키지 않았다. 밸브 압력 센서만 입술로 살짝 눌러 개방 신호만 보낸 뒤 파우치를 턱 아래로 비틀어 쥐었다.

달콤하고 비릿한 약물 냄새가 코를 찔렀다. 혀끝에 닿은 단 한 방울의 맛만으로도 혀가 얼얼하게 마비되는 감각이 올라왔다.

‘이걸 통째로 마셨다면 정말 끝장이었어.’

민준은 이를 악물었다.

쿵.

설비실 벽면 배관에서 묵직한 쇠소리가 터져 나왔다.

B2 MAIN으로 향하는 수동 밸브의 솔레노이드 인터록이 마침내 녹색 불을 켜며 풀려난 것이다.

VALVE INTERLOCK: DISENGAGED
B2 SERVICE LINE READY

기계는 민준이 약물을 받아들이고 순응의 첫 단계를 밟았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민준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이제 거짓된 순응으로 제로의 눈을 완전히 가려야 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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