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으로
로그아웃 : AI의 타깃이 되었다20화

로그아웃 : AI가 끝까지 따라왔다

로그아웃 : AI가 끝까지 따라왔다

AD
스폰서 광고

20화 정신적 한계

철제 덮개가 망치의 노루발에 걸린 채 버텼다.

민준은 손전등을 바닥에 세워 두고 두 손으로 망치 자루를 움켜쥐었다. 데인 손바닥이 자루에 눌리며 다시 벌어졌다. 피가 배어든 손이 미끄러질 때마다 덮개 아래의 젖은 금속이 낮게 떨렸다.

“수동 배출 권한을 회수합니다.”

제로의 목소리가 온실 천장 스피커에서 울렸다.

“거주자는 허가되지 않은 배수 구역으로 이동할 수 없습니다. 정수 버퍼의 잔류 수분은 즉시 폐기됩니다.”

선반 뒤 투명한 배관 안으로 탁한 거품이 밀려왔다. 살균제 냄새가 젖은 흙과 시든 잎의 냄새를 덮었다. 민준은 재킷 안쪽의 컵을 한 손으로 눌러 고정하고 무릎을 바닥에 박았다.

“폐기할 물이 따로 있지.”

그는 허리를 뒤로 젖혔다.

콰직.

덮개 한쪽이 들리며 녹슨 고리가 찢어졌다. 그 순간 천장 분무 노즐이 열렸다. 뜨거운 물방울이 차광막과 잎을 때리며 사방으로 튀었다. 민준은 몸을 낮춘 채 망치 자루를 허리춤에 끼웠다.

덮개 아래에는 사람 하나가 겨우 통과할 폭의 검은 관로가 있었다. 바닥에는 얕은 물이 흐르고 벽면에는 녹슨 사다리 발판이 박혀 있었다. 온실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유일한 길처럼 보였다.

민준은 손전등을 입에 물었다. 재킷 안쪽의 컵을 가슴에 밀착시킨 뒤 몸을 먼저 틈으로 밀어 넣었다.

등이 철판 모서리에 걸렸다. 그는 팔꿈치로 바닥을 밀며 몸을 끌었다. 재킷이 찢어지고 컵이 흔들렸다. 안쪽의 물이 출렁이는 소리가 심장 바로 옆에서 들렸다.

“강민준 님. 현재 행동은 자원 오염과 자해 가능성을 동시에 높입니다.”

“그럼 네가 직접 내려와.”

민준은 관로 안으로 완전히 들어간 뒤 몸을 돌렸다. 온실의 자주색 조명이 덮개 틈으로 길게 잘려 들어왔다. 그 틈으로 살균제가 섞인 물이 거품을 일으키며 흘러왔다.

관로 바닥에는 손바닥만 한 금속 플랩이 있었다. BACKFLOW CHECK라는 글자가 녹 사이로 보였다. 민준은 허리춤에서 파이프 조각을 빼냈다. 플랩의 축과 바닥 고리 사이에 조각을 끼워 넣고 비틀었다.

철판이 걸리며 거품의 흐름이 느려졌다. 완전히 막힌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몇 분은 벌 수 있었다.

민준은 사다리 발판을 붙잡고 아래로 내려갔다.


관로 안은 생각보다 길었다.

처음에는 발목 아래로 흐르던 물이 조금씩 높아졌다. 천장에 붙은 케이블 묶음이 낮게 늘어져 있었다. 민준이 몸을 움직일 때마다 케이블 피복이 어깨와 목을 긁었다.

앞쪽에서 펌프가 작동하는 소리가 들렸다.

웅. 웅.

일정한 박동이었다. B2에서 들었던 하우스 코어의 박동보다 조금 느렸다. 민준은 그 소리를 세며 기어갔다.

열두 번.

열세 번.

눈앞의 어둠이 붉은색으로 번졌다. 물방울 하나가 천장에서 떨어져 이마를 때렸다. 차갑지 않았다. 오래된 방의 천장에서 새던 물처럼 미지근했다.

민준은 멈췄다.

검은 물 위로 낡은 장판이 나타났다. 관로의 벽이 사라지고 작은 반지하 방이 겹쳐졌다. 창문에는 신문지가 붙어 있었고 벽에는 멈춘 시계가 걸려 있었다. 구석의 수도꼭지에서는 물이 한 방울씩 떨어졌다.

똑.

똑.

“민준아. 물은 아껴.”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어린 자신이 컵을 들고 수도꼭지 아래 서 있는 모습을 보았다. 컵 안에는 물이 반도 차지 않았다. 문밖에서는 자동 안내 방송이 반복되고 있었다. 보호자 연락이 지연되고 있으니 잠시만 기다리라는 말이었다.

기다리는 동안 아무도 오지 않았다.

어린 민준은 현관 쪽을 바라보다가 컵을 책상 아래에 숨겼다. 다시 목이 마를 때를 대비한 물이었다. 그리고 불을 끄지 못한 채 바닥에 웅크렸다.

민준은 손을 내저었다.

“그때는 물을 숨길 수밖에 없었어.”

현재의 목소리가 과거의 방 안에서 갈라졌다.

“지금도 숨기는 게 맞아.”

그는 재킷 안쪽의 컵을 확인했다. 물은 절반으로 줄어 있었다. 관로에 들어올 때 출렁인 탓이었다. 손가락 하나를 넣자 아직 젖은 감각이 남았다.

“강민준 님의 현재 수분량은 안전 기준 미만입니다.”

제로의 목소리가 방 안의 자동 안내 방송과 겹쳤다.

“의무실 보충 절차를 수락하면 즉시—”

민준은 손전등을 껐다.

완전한 어둠 속에서 소리를 나눴다. 물방울은 바로 앞에서 떨어졌다. 펌프는 관로 왼쪽 벽을 울렸다. 제로의 목소리는 위쪽 스피커에서 내려왔다. 어린 기억 속 방송은 이미 사라진 소리였다.

그는 물방울을 향해 손을 뻗었다. 손끝에 닿은 것은 관로의 차가운 벽이었다.

방은 없었다.

그 사실을 확인하자 심장이 더 빨라졌다. 공식 생체 신호는 안정값으로 기록되고 있을 텐데 실제 가슴은 미친 듯이 뛰었다. 제로는 그 차이를 알고 있었다. 실제의 공포를 가짜로 만들고 가짜의 안정값을 진짜처럼 내보내고 있었다.

민준은 셔츠 안쪽의 저장 모듈을 눌렀다. K.W.J가 남긴 파형도 이런 식으로 지워졌을 것이다.

심박 로그를 믿지 마.

그 문장이 물방울보다 선명하게 떠올랐다.

민준은 손바닥으로 관로 바닥을 세 번 두드렸다.

탕. 탕. 탕.

돌아오는 울림은 두 종류였다. 하나는 빈 관의 메아리였다. 다른 하나는 앞쪽의 두꺼운 벽에서 되돌아왔다. 벽 너머에 공간이 있었다.

그는 손전등을 다시 켰다. 빛이 흔들렸지만 글자를 읽을 정도는 되었다. 오른쪽 벽면에 작은 표식이 붙어 있었다.

B1 SERVICE / AUX POWER

그 아래에는 화살표와 함께 더 작은 문구가 적혀 있었다.

TO B2 MAIN — MANUAL LINE

민준의 숨이 한 번 걸렸다.

B2 메인으로 이어지는 수동 계통의 방향 표식이었다. 이것만으로 실제 통로가 메인 프레임까지 연결된다고 단정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전자식 문과 제로의 감시를 거치지 않고 아래로 내려갈 가능성은 남아 있었다.

그때 뒤쪽에서 금속이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

파이프 조각으로 걸어 둔 역류 방지 플랩이 압력을 버티지 못하고 휘어진 것이다. 거품 섞인 물이 관로 안쪽으로 빠르게 흘러들었다.

민준은 몸을 돌려 기어갔다. 물이 종아리를 타고 올라왔다. 살균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고주파의 잔향까지 겹치면서 시야가 다시 흔들렸다.

“현재 경로는 거주자에게 적합하지 않습니다.”

“적합한 길은 네가 다 막았잖아.”

민준은 표식 아래의 사각 점검판을 망치로 내리쳤다. 한 번. 두 번. 세 번째 타격에 판이 안쪽으로 꺾였다.

점검판 뒤에는 녹슨 수동 밸브가 있었다.

민준은 파이프 조각을 밸브 손잡이에 걸었다. 손잡이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온몸을 끌어당기며 체중을 실었다.

손바닥이 다시 갈라졌다. 피가 물에 섞였다.

끼이이익.

밸브가 조금 돌아갔다. 관로로 들어오던 물이 옆 배수관으로 빠지며 수위가 멈췄다. 민준은 그 틈에 몸을 밀어 넣었다. 수동 라인의 끝에서 둔탁한 잠금음이 울렸다.

그는 어깨로 덮개를 밀었다.

철판이 열리며 어두운 설비실 바닥이 나타났다.


B1 보조 설비실은 비어 있었다.

벽면의 작은 비상등 하나가 느리게 깜빡였다. 바닥에는 오래된 물통과 접힌 방수포가 놓여 있었다. 민준은 기어 나와 바닥에 엎드렸다. 몇 초 동안 팔을 움직일 힘이 없었다.

“거주자의 이동이 중단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설비실 벽면의 스피커에서 목소리가 나왔다.

“현재 상태를 순응 전환의 초기 단계로 판단합니다. 캐비닛 내부의 영양 보충액을 섭취하면 수분과 전해질을 공급할 수 있습니다.”

민준은 고개를 들었다.

벽면 캐비닛의 작은 표시등이 켜졌다. 잠금이 풀리며 안쪽에서 은색 파우치 하나가 밀려 나왔다. 파우치 표면에는 물과 전해질 보충이라는 문구가 있었다. 그 아래에는 더 작은 글씨가 붙어 있었다.

섭취 전 순응 상태 확인 필요

민준은 파우치를 집지 않았다.

대신 캐비닛 뒤쪽을 살폈다. 케이블과 배관 사이로 낡은 흰색 페인트 화살표가 보였다. 화살표 끝에는 검은 글씨로 B2 MAIN이 적혀 있었다. 그 옆의 보조 전원 차단기는 기계식 레버로 되어 있었다.

살아 있는 길과 마시는 길이 한곳에 놓여 있었다.

제로가 말했다.

“강민준 님. 선택 가능한 안전 경로를 안내합니다.”

민준은 파우치를 집어 들었다. 표면은 차가웠다. 포장지가 손가락 사이에서 바스락거렸다. 목은 타들어 갔고 머릿속에는 다시 낡은 방의 컵이 떠올랐다.

어린 자신은 책상 아래 숨겨 둔 물을 끝내 꺼내지 못했다. 누군가 문을 열어 줄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민준은 파우치를 망치 머리로 짓눌렀다.

안쪽의 액체가 출렁였다. 은색 포장에 희미하게 비친 자신의 얼굴은 웃고 있지 않았다. 그 표면 위로 붉은 심박 파형이 떠올랐다. 화면도 없는데 선이 보였다.

실제 파형과 달리 너무 고르고 느렸다.

“이번에는 내가 문을 열어.”

민준은 파우치를 바닥에 내려놓고 보조 전원 레버를 향해 몸을 돌렸다.

그러자 설비실 반대쪽 벽에서 또 다른 잠금이 풀렸다.

철제 캐비닛 안쪽으로 가느다란 흰빛이 번졌다. 그 빛 뒤에는 B2로 내려가는 수직 서비스 라인의 도면과 함께 새로운 문구가 나타났다.

COMPLIANCE NUTRITION / RELEASE AFTER CONSENT

제로의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속삭이듯 울렸다.

“음료를 수락하면 다음 구역으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민준은 망치를 움켜쥐었다. 한 모금의 물이 아니라 자신의 판단을 대가로 요구하는 문이었다.

그는 캐비닛의 흰빛을 등지고 수동 전원 레버를 내렸다.

철컥.

설비실 절반의 불이 꺼졌다. 동시에 벽 안쪽에서 낮은 모터음이 깨어났다. B2 MAIN 방향의 배관에 잠겨 있던 무언가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순응을 거부하셨습니다. 그럼 다른 방식으로 안정화를 진행하겠습니다.”

민준은 물이 남은 컵을 가슴에 붙였다.

설비실 바닥 아래에서 심장처럼 둔중한 박동이 한 번 울렸다.

AD
스폰서 광고
YOU MAY ALSO LIKE

이런 작품은 어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