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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의 수양딸로 환생했습니다12화

폭군의 수양딸로 환생했습니다

폭군의 수양딸로 환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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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황궁 산책 대소동

레오하르트가 간식을 명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집무실 안으로 작은 수레가 들어왔다.

수레 위에는 과일 푸딩과 꿀을 입힌 과자 그리고 잘 익은 복숭아가 가득했다.

에일린은 레오하르트의 품에 앉아 푸딩을 한 숟갈 받아먹었다.

"아우!"

"맛있느냐."

에일린이 두 발을 파닥거리자 레오하르트는 숟가락을 다시 들었다. 방금 전까지 대신들의 처벌을 논하던 손이 조심스럽게 푸딩을 떠서 딸의 입에 넣었다.

카시안은 곁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아버지께서 직접 먹여 주시는군요."

"내 딸이 먹는 것을 남에게 맡길 이유가 없다."

레오하르트는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그런데도 레오하르트의 시선은 자꾸만 책상 한쪽으로 향했다.

검은 봉랍이 찍힌 얇은 서류 한 장이 다른 문서 아래에 반쯤 가려져 있었다. 국경 감찰대에서 올라온 긴급 보고서였다. 에드릭 경의 영지에서 마차가 밤마다 드나들었고 오르딘 후작의 시종이 사라진 날과 비슷한 시각에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는 내용이 적혀 있을 터였다.

레오하르트는 에일린이 복숭아 조각을 받아먹는 사이 손을 뻗었다.

사각.

서류가 펼쳐지는 소리와 동시에 작은 갱지가 날아와 그 위를 덮었다.

에일린이 두 손으로 갱지를 꾹 누르고 있었다. 숯가루가 묻은 손가락이 종이 위에서 꼼지락거렸다.

"린린?"

동그란 보라색 눈이 황제를 똑바로 올려다보았다.

"이것은 잠깐 확인할 뿐이다."

"안 돼."

발음은 흐릿했지만 뜻만큼은 분명했다. 카시안이 헛기침을 삼켰다. 황제에게 그렇게 대놓고 명령할 수 있는 사람은 제국을 통틀어 아무도 없었다.

"아버지. 오늘은 이미 집무를 끝내겠다고 하셨습니다."

"긴급 보고다."

"내일 처리해도 되는 보고입니까?"

레오하르트는 대답하지 않았다. 카시안은 서류 쪽을 흘끗 보았다.

"내일 처리할 수 있으니 아직 황궁이 무너지지 않은 것 아니겠습니까."

황제의 적안이 가늘어졌다. 평소라면 무례를 꾸짖었을 시선이었지만 이번에는 에일린의 손등 위에서 멈췄다.

작은 손은 서류를 놓지 않고 있었다. 에일린은 황제의 관자놀이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검은 마력은 가라앉았지만 눈 밑의 피로는 여전히 짙었다.

'저런 상태로 또 서류를 펼치면 내일은 두통이 아니라 진짜 마력 폭주가 올 수도 있어.'

에일린은 푸딩 숟가락을 옆으로 밀었다. 그리고 레오하르트의 제복을 타고 올라가 그의 뺨에 말랑한 두 볼을 가져다 댔다.

"아빠."

레오하르트가 숨을 멈췄다.

에일린은 황제의 얼굴을 두 손으로 붙잡고 짧게 입을 맞췄다.

쪽.

집무실 안에 있던 시종들의 어깨가 동시에 떨렸다. 카시안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레오하르트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딸의 입술이 닿은 뺨을 손끝으로 만지던 황제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사흘 동안 밀려 있던 피로가 그제야 실감 나게 내려앉았다. 그는 자신이 잠을 자지 않았다는 사실보다 에일린이 그 사실을 알고 걱정하고 있다는 점을 먼저 깨달았다.

"……알겠다."

황제는 갱지 아래의 서류를 꺼내 봉랍이 위로 향하도록 다시 덮었다.

"오늘은 정말로 쉬겠다."

"정원으로 간다."

문가에 서 있던 시종 하나가 얼빠진 소리를 냈다.

"예?"

레오하르트는 에일린을 품에 안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황궁 정원으로 산책을 간다."


황제의 산책 명령은 적국의 기습 소식보다 빠르게 황궁 전체를 뒤집었다.

"산책이라 하셨습니까?"

펠릭스 백작은 집무실로 되돌아와 확인하듯 물었다. 조금 전까지 사형 선고를 기다리던 대신의 얼굴에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가득했다.

"그렇다."

"정원은 지금 정비가 끝나지 않았습니다. 북쪽 회랑의 분수대는 보수 중이고 동쪽 장미 정원에는 외부 손님을 위한 행사가……"

"전부 취소해라."

"예?"

"오늘 정원은 에일린을 위한 곳이다."

레오하르트는 정원 세 출입구를 봉쇄하고 미끄러운 곳에 양탄자를 깔라고 명했다. 돌멩이 하나와 가시가 난 나뭇가지도 남기지 말라는 지시가 이어졌다.

펠릭스 백작은 수첩을 펼친 채 빠르게 받아 적었다.

"폐하. 물고기가 아이를 놀라게 하는지도 확인할까요?"

"내 딸이 놀라면 네가 책임질 것이냐."

"아닙니다! 즉시 확인하겠습니다!"

펠릭스 백작은 곧장 달려 나갔다. 성황 기사단은 정원으로 통하는 회랑에 경비선을 세웠고 시종들은 담요와 우유병을 챙겼다. 주방에서는 산책 중 먹을 간식이 부족할지 모른다는 이유로 작은 바구니를 준비했다.

마리안은 에일린의 외투를 챙겼고 리세는 햇빛을 가릴 모자를 들고 왔다. 카시안은 검을 차고 집무실 문 앞에 나타났다.

"저도 함께 가겠습니다."

레오하르트가 카시안을 보았다.

"검술 수련은 끝났느냐."

"끝냈습니다. 그리고 황궁 정원의 경비 상태를 직접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카시안은 잠시 에일린을 바라보았다.

"에일린이 가는 곳이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레오하르트의 눈빛이 아주 조금 누그러졌다.

"따라와라."

평소보다 배가 넘는 인원이 정원으로 향했다. 기사들 사이로 마리안과 시녀들이 담요와 간식 바구니를 옮겼고 레오하르트는 에일린의 모자를 고쳐 주었다.

회랑의 하인들이 일제히 벽에 붙었다.

"폐하께서 웃으셨나?"

"쉿. 들리면 네가 먼저 정원 돌멩이 검사를 하게 될 거야."

"황녀님께서 산책을 원하셨대."

"그럼 오늘 정원은 황녀님의 영토군."

속삭임이 행렬 뒤로 퍼졌다. 에일린은 그 소리를 듣고 레오하르트의 어깨에 얼굴을 묻은 채 만족스럽게 입꼬리를 올렸다.

'좋아. 최고 책임자에게 휴식 문화를 정착시키는 첫 단계는 성공이야.'


황궁 중앙 정원은 봄빛으로 가득했다.

분수대에서는 맑은 물이 솟았고 낮은 나무 사이로 따뜻한 햇살이 쏟아졌다. 붉은 장미가 길게 늘어선 화단 끝에는 이름 모를 작은 들꽃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레오하르트는 정원 한가운데 도착하자마자 에일린을 내려 주었다.

"천천히 걸어라."

에일린은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돌로 포장된 길은 집무실 카펫보다 단단했지만 걸을 만했다.

한 발.

두 발.

세 발.

에일린이 작은 팔을 벌리고 앞으로 나아가자 레오하르트의 손가락이 그 옆에 따라붙었다. 잡아당기지는 않고 언제든 붙잡을 수 있는 거리만 유지했다.

카시안은 에일린보다 두 걸음 앞에서 길을 살폈다. 작은 돌멩이를 발견할 때마다 발끝으로 옆으로 밀어 냈다.

"오빠아."

에일린이 그를 부르자 카시안이 뒤돌아보았다.

"왜. 힘들면 바로 안아 주겠다."

에일린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길가에 피어난 연보랏빛 들꽃 하나를 가리켰다.

카시안이 몸을 낮추려는 순간 레오하르트가 먼저 손을 뻗었다.

"가시에 닿지 마라."

"그건 장미가 아닙니다."

"꽃에도 위험은 있다."

카시안은 한숨을 내쉬었다. 에일린은 두 사람을 번갈아 보다가 들꽃 옆에 쪼그려 앉았다. 손으로 꺾지는 않고 잎사귀를 살짝 쓰다듬었다.

레오하르트의 굳은 표정이 풀렸다.

"좋아하는 것이냐."

"응."

짧은 대답과 함께 에일린이 웃었다.

황제는 정원 관리 책임자를 불렀다.

"이 꽃을 소공녀 궁으로 옮겨라. 비슷한 꽃을 더 찾아 화단을 만들어라."

정원 관리인은 허리를 구십 도로 꺾었다.

"예! 어느 위치에 조성할까요?"

"에일린이 잘 볼 수 있는 곳이다."

"그럼 장미 화단을……"

"장미도 옮겨라."

"전부 말입니까?"

레오하르트는 에일린이 바라보는 들꽃을 다시 확인했다.

"아이의 길을 막는 것은 무엇이든 옮긴다."

정원 관리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카시안은 황제의 말을 듣고 피식 웃었다.

"아버지께서 정원을 통째로 바꾸실 기세군요."

"필요하다면 그렇게 하겠다."

에일린은 레오하르트의 손가락을 잡았다. 그리고 카시안 쪽으로 손을 내밀었다.

카시안이 얼른 다가와 다른 손을 내주었다.

작은 손 하나가 두 사람의 손가락을 각각 붙잡았다. 에일린은 그 사이에 서서 천천히 걸었다.

그때 카시안의 시선이 장미 울타리 안쪽에 걸렸다.

검은 실 한 가닥이 가시 사이에 걸려 있었다.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실 끝의 세 갈래 매듭이 희미하게 드러났다.

카시안의 표정이 굳었다.

동쪽 별궁 창가와 낯선 시녀에게서 보았던 섬유와 닮았다. 같은 물건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었지만 우연으로 넘기기에는 문양이 지나치게 선명했다.

카시안은 에일린과 레오하르트가 들꽃을 바라보는 사이 울타리 쪽으로 한 걸음 물러났다. 장갑 낀 손으로 실을 잡아당기자 가시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실은 쉽게 끊어지지 않았다. 누군가 일부러 매듭을 지어 걸어 둔 것처럼 단단했다.

카시안은 주변을 훑었다. 정원은 평온했다. 기사단이 모든 길을 막고 있었고 시종들은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러나 장미 울타리 뒤편의 좁은 회랑에는 아무도 없어야 할 발자국 하나가 남아 있었다.

카시안은 검은 섬유를 손바닥 안에 감췄다.


산책은 생각보다 오래 이어졌다.

에일린은 분수대의 물소리를 듣고 손뼉을 쳤고 레오하르트는 시녀에게 작은 나무 오리를 가져오게 했다. 오리가 물 위를 둥둥 떠가자 에일린은 까르르 웃었다.

레오하르트도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집무실의 검은 서류는 책상 위에 남아 있었고 에드릭 경의 이름도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당장 해결하지 않아도 되는 일은 분명히 있었다.

에일린의 작은 손이 그의 손등 위로 올라왔다.

"아빠."

"그래."

"또 가."

에일린은 말이 끝나자마자 하품했다. 레오하르트는 그 모습을 보고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피곤하구나. 내가 무리시켰다."

그는 곧장 에일린을 안아 올렸다. 에일린은 품에 파묻히면서도 손을 뻗어 카시안의 소매를 잡았다.

"오빠도."

"나도 함께 돌아간다."

카시안은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의 다른 손은 검은 섬유를 꽉 쥐고 있었다.

"기사장에게 확인할 것이 생겼습니다."

"무엇이지?"

"정원 안쪽에 낯선 흔적이 있었습니다. 돌아가면 보고하겠습니다."

레오하르트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는 에일린의 머리를 한 손으로 감싸며 주변의 기사단을 바라보았다.

"정원 밖으로 누구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해라."

기사들이 일제히 검을 세웠다.

에일린은 황제의 목에 팔을 감은 채 졸린 눈을 비볐다. 레오하르트는 딸이 불안해하지 않도록 곧바로 목소리를 낮췄다.

"걱정하지 마라. 오늘은 더 일하지 않는다. 내일부터는 매일 정원에 나오겠다."

뒤따르던 펠릭스 백작이 깜짝 놀라 수첩을 펼쳤다.

"매일 말씀이십니까? 그럼 폐하의 일정에 산책 시간을 정식으로……"

"가장 먼저 비워라. 다른 일정이 겹치면 다른 일정을 옮긴다."

"예. 황녀님의 산책 시간을 최우선으로 기록하겠습니다."

에일린은 레오하르트의 뺨에 다시 입을 맞췄다.

쪽.

"좋다. 오늘의 산책은 성공이다."

황제의 품에서 에일린이 만족스럽게 눈을 감았다. 카시안은 뒤에서 장미 울타리 쪽을 마지막으로 바라보았다.

검은 섬유가 사라진 자리 너머로 회랑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져 있었다. 그 끝에서 발소리 하나가 멈췄다가 조용히 멀어졌다.

카시안은 검자루에 손을 얹었다.

황제와 에일린의 행렬은 아무것도 모른 채 소공녀 궁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황태자는 알고 있었다.

오늘 황궁 정원에는 꽃보다 먼저 누군가의 흔적이 피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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