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에서 추방당한 명예교수가 되었다

011화 [최소 작동식]
이른 아침부터 F-Class 강의동 주변의 분위기는 평소와 전혀 달랐다.
낡은 석조 건물 외곽의 창문틀 너머로 수십 명의 구경꾼이 빽빽하게 모여들어 안쪽을 훔쳐보고 있었다. 본관에서 소문을 듣고 찾아온 하급반 학생들은 물론이고 정식 마법복을 차려입은 청강생들까지 담벼락 옆에 늘어서서 웅성거렸다. 정오의 공개 대련에서 F-Class의 평민 학생 카이드가 검술부 정식 훈련생 베른을 단 1회의 교차로 제압했다는 소식은 아카데미 전체를 뒤흔든 사건이었다.
"F-Class에서 마력 부착도 없이 마력검의 결손을 베었다는 게 진짜인가?"
"말도 안 돼. 낙제생들을 모아둔 반에서 그런 기술이 나올 리가 없잖아."
"저기 창가에 누워 계신 분이 전 아르카나 헤븐의 수석 연구원이었다는 에신 루드윅 명예교수님이신가?"
창밖에서 밀려드는 조잡한 수군거림과 웅성거림은 강의실 안쪽까지 끊임없이 흘러들었다.
에신은 창가 서류 더미 옆 긴 의자에 누워 옷자락으로 얼굴을 덮은 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마력 역류증 4단계로 인한 흉부의 미세한 열감도 성가셨지만 휴식을 방해하는 바깥의 소음은 더 큰 스트레스였다. 카이드에게 시끄럽게 하지 말라고 당부했건만 대련 승리 소문이 불길처럼 퍼지는 바람에 안식은커녕 청강생들의 시선에 갇힌 꼴이 되어버렸다.
'시끄럽게 굴지 말랬더니 아예 아카데미 전체를 시끄럽게 만들어 놓았군.'
에신은 짜증스럽게 몸을 뒤척이다가 책상 위에 놓여 있던 낡은 양피지 한 장을 집어 들었다.
머릿속이 복잡할 때 습관처럼 적어 내려가던 수식이었다. 자신의 마력 회로 부하를 계산하려다 손가락이 찌릿하게 마비되는 바람에 중간 공식이 기이하게 꺾여버린 실패작이었다. 거대한 3서클 불꽃 마법진을 그리려다가 중간 마력 고리를 통째로 빠뜨린 쓰레기 계산지였다.
에신은 더 볼 것도 없다는 듯 양피지를 찌그러뜨려 구겼다.
그는 구겨진 종이 뭉치를 구석의 나무 쓰레기통을 향해 대충 던졌다. 그러나 어깨의 긴장이 풀린 탓인지 종이 뭉치는 쓰레기통 모서리를 맞고 튕겨 나와 루나의 실습대 다리 옆 바닥으로 슬그머니 굴러떨어졌다.
에신은 다시 옷자락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루나는 실습대 다리 옆에 떨어진 구겨진 종이 뭉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에신 교수가 무심하게 던져버린 양피지였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저 자리를 어지럽히는 쓰레기로 여기고 치워버렸겠지만 루나의 눈은 달랐다. 루나는 조심스러운 손길로 바닥에 엎드려 종이 뭉치를 주워 올렸다.
"루나, 교수님이 버리신 서류잖아."
카이드가 목검을 닦다 말고 나직하게 말했다. 옆에 서 있던 하리도 우려 섞인 눈빛으로 루나를 돌아보았다.
"알아요. 하지만 교수님이 펜을 쥐고 수식을 적으실 때는 언제나 이유가 있었어요."
루나는 구겨진 양피지를 조심스럽게 펴서 실습대 위에 평평하게 문질렀다.
양피지 위에는 에신의 거친 깃펜 자국이 불규칙하게 남아 있었다. 일반적인 마학 서적에 나오는 화려하고 대칭적인 마법진과는 거리가 멀었다. 거대한 마력 수식이 이어지다가 중간 지점에서 툭 끊겨 있었고 그 빈자리에는 아주 작고 초라한 궤적 하나만이 기이하게 이어져 있었다.
루나의 깃펜이 공책 위에서 멈췄다.
"이건... 마력을 채우는 수식이 아니에요."
루나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아카데미의 모든 교재는 더 많은 마력을 쏟아부어 더 거대한 마동력을 만들어내는 법만을 가르쳤다. 마법 스크롤 하나를 만들 때도 최소 1서클 이상의 마력 코어를 강제로 주입해야만 작동한다는 것이 불변의 상식이었다.
하지만 에신이 버린 구겨진 메모는 전혀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거대한 마력 고리를 죄다 잘라내고 마력이 지나가는 길목의 가장 취약한 결손 지점 하나만 남겨놓은 구조. 마력을 억지로 밀어 넣는 것이 아니라 마력이 원래 흐르려는 최소한의 꼬리를 살짝 건드려 스스로 반응하게 만드는 형태였다.
루나는 자신이 어제 기록했던 단일 관찰식 노트를 펴서 에신의 메모 옆에 놓았다.
카이드의 잔류 검로가 베른의 방어막 뒤 결손을 관통했던 원리와 완벽하게 일치했다.
"마력을 크게 채울 필요가 없어... 최소한의 결손 고리 하나만 유지되면 아주 작은 불씨도 스스로 타오를 수 있어."
루나의 눈동자에 강렬한 깨달음의 빛이 일렁였다.
오후가 되자 F-Class 강의실 문이 끼익 소리를 내며 열렸다.
아르만 보조교수의 지시를 받고 F-Class의 추가 관찰 일지를 작성하러 온 헤르만 보조교수가 걸어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총장 보고용 양피지와 깃펜이 들려 있었다.
"루드윅 교수님은 여전히 오수 중이시군."
헤르만은 창가에서 옷을 덮어쓰고 누워 있는 에신을 흘끗 바라보고는 실습대 앞으로 다가왔다. 실습대 위에는 루나가 얇은 똥종이 양피지 위에 저렴한 마력 잉크로 아주 작은 수식을 그리고 있었다.
하리는 곁에서 손끝의 마력을 차분하게 조율하며 실습대 주변의 공기 습도를 일정하게 유지해 주고 있었다. 잉크가 얇은 종이에 너무 빨리 번지거나 마르지 않도록 돕는 정밀한 환경 제어였다. 카이드는 묵묵히 실습대 상판을 두 손으로 받쳐 든 채 조금의 흔들림도 없도록 고정해 주고 있었다.
세 학생이 시키지도 않은 역할을 스스로 나누어 하나의 작업을 수행하는 모습은 기이할 정도로 정돈되어 있었다.
헤르만이 안경을 고쳐 쓰며 루나가 그리는 종이를 내려다보았다.
"루나 학생.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건가?"
"일회용 점화 스크롤을 만들고 있습니다."
루나가 공책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무덤덤하게 답했다.
헤르만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피식하는 실소가 섞인 웃음이었다.
"점화 스크롤이라... 아카데미 매점에서 파는 가장 하급의 점화 스크롤도 최소 1서클 마력 코어 결정이 들어가네. 마력을 안정적으로 감싸려면 고급 양피지와 삼중 붕산 잉크가 필수적이지. 자네가 지금 사용하는 저렴한 막종이와 얇은 수식으로는 촛불 하나도 켜기 전에 종이가 먼저 까맣게 타버릴 걸세."
헤르만은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검술부 대련에서 카이드 학생이 성과를 냈다고 해서 마학의 기본 원리까지 무시할 수는 없네. 3서클 마법은커녕 기초 점화 마법도 제대로 시전하지 못해서 저런 잡동사니 장난감을 만드는 것인가?"
헤르만의 비아냥에도 루나의 손길은 흔들리지 않았다.
루나는 에신의 구겨진 메모에서 읽어낸 결손 고리를 얇은 종이 중앙에 정확히 안착시켰다. 수식은 불과 세 줄에 불과했고 들어간 잉크의 양도 상용 스크롤의 10분의 1도 되지 않았다.
"완성했습니다."
루나가 얇은 종이를 들어 올렸다.
"좋네. 그럼 그 잡동사니가 실제로 작동하는지 직접 검증해 보지."
헤르만은 품에서 묵직한 청동 장치를 꺼내 실습대 위에 올려놓았다.
아카데미 마학 실습실에서 사용하는 표준 마력 점화 등잔이었다. 등잔 내부에는 정제된 마력 기름이 가득 채워져 있었고 상단에는 마력 소모량을 정밀하게 계측하는 수정 구슬이 달려 있었다. 일반적인 하급 스크롤을 대더라도 수정 구슬의 붉은 눈금이 최소 10단위 이상 줄어들며 불꽃이 터져 나오는 구조였다.
"이 등잔의 마력 기름은 웬만한 강도의 불씨가 아니면 점화되지 않네. 마력을 억지로 밀어 넣다가 종이가 폭발하지나 않으면 다행이겠군."
헤르만이 거만한 태도로 팔짱을 꼈다.
창밖에 모여 있던 청강생들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실습실 내부를 지켜보았다. F-Class의 괴짜라 불리는 루나가 과연 저 초라한 종이 조각으로 정식 마학 장비를 작동시킬 수 있을지 의구심이 팽배했다.
루나는 동요하지 않고 스크롤을 등잔의 점화 홈에 조심스럽게 갖다 대었다.
루나는 숨을 내쉬며 스크롤 상단에 자신의 손가락을 얹었다.
그녀가 흘려보낸 마력은 지극히 미세했다. 아카데미 표준 측정석이라면 아예 수치조차 잡히지 않을 만큼 가늘고 얇은 마력 실티였다.
스윽.
루나의 마력이 스크롤 중앙의 결손 고리에 닿는 순간 얇은 양피지 위에서 작은 변화가 일어났다.
종이가 요란하게 폭발하거나 불꽃을 뿜어내지 않았다. 양피지 중앙의 수식이 아주 은은한 푸른빛을 발하더니 종이 자체가 소리 없이 타들어 가며 작은 불씨 하나를 맺었다.
그 불씨는 등잔의 마력 기름 표면에 조용히 내려앉았다.
치이익.
맑고 푸른 불꽃이 등잔 위로 차분하게 피어올랐다.
그을음 하나 없이 깨끗하고 완벽한 점화였다. 둔탁한 마력 폭발도 소음도 없었다. 마력 기름의 결손 지점을 건드려 기름 스스로가 불꽃을 유지하도록 만든 극도의 효율적인 점화였다.
헤르만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뭐... 뭐라고?"
헤르만은 황급히 등잔 상단의 수정 구슬 계측기를 확인했다.
수정 구슬 내부의 붉은 눈금은 단 1단위도 줄어들지 않고 제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0.1단위 미만의 마력 소모. 기존 상용 점화 스크롤이 소모하는 마력의 100분의 1도 되지 않는 기적적인 측정 수치였다.
"수치 변화가... 거의 없다니? 1서클 마력 코어도 없이 똥종이 한 장으로 표준 점화 등잔을 켜다니 이게 말이 되는가!"
헤르만의 목소리가 하이톤으로 찢어졌다.
창밖의 청강생들 사이에서도 벼락같은 동요가 터져 나왔다.
"봤어? 마력 계측 수치가 전혀 안 움직였어!"
"상용 스크롤을 다 쓰레기로 만드는 기술 아니야?"
"F-Class에서 마학의 공식을 완전히 새로 쓰고 있다고!"
소란스러운 함성 소리에 에신이 짜증스럽게 옷자락을 치우며 몸을 일으켰다.
마력 역류증으로 뻑뻑해진 눈을 비비며 주변을 둘러보자 강의실 안은 난장판이었다. 헤르만 보조교수는 미친 사람처럼 보고서를 휘갈겨 적고 있었고 루나는 까맣게 탄 종이 조각을 들고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너희들... 남의 수업 시간에 왜 이렇게 시끄러워?"
에신이 피곤에 젖은 목소리로 신경질을 냈다.
헤르만이 헐떡이는 숨을 내쉬며 에신 앞으로 다가와 깊게 고개를 숙였다.
"루드윅 교수님! 참으로 경탄스럽습니다! 제자에게 마력의 양에 의존하는 기존 스크롤을 버리고 회로의 결손을 이용하는 최소 작동식(最小 稼動式)을 전수하셨을 줄이야! 이 일회용 점화 스크롤은 마학 공학의 패러다임을 바꿀 혁명입니다!"
에신은 관자놀이를 누르며 황당한 눈으로 루나의 손에 들린 탄 종이 조각을 바라보았다.
자세히 보니 자신이 아침에 손가락이 마비되어 수식을 망치고 구겨 버렸던 바로 그 양피지였다.
'아니... 내가 손이 꼬여서 잘못 적은 쓰레기를 쓰레기통에 던진 건데 그걸 주워다가 종이를 태우고 있었단 말인가?'
에신은 기가 막혀서 허탈한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그는 피로가 짙게 깔린 얼굴로 루나를 노려보며 건조하게 중얼거렸다.
"내가 손이 미끄러져서 잘못 적은 쓰레기를 왜 주워다가 종이를 태우고 있냐."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강의실 안의 공기가 조용하게 가라앉았다.
루나의 눈동자가 깊은 감격으로 떨렸다.
손이 미끄러져 적은 쓰레기.
그것은 스승이 제자들에게 전하는 엄중한 가르침이었다. 마력을 낭비하고 불필요한 공식을 덕지덕지 붙인 기존의 마법이야말로 진짜 쓰레기라는 뜻이었다. 불완전하고 낭비되는 수식은 주저 없이 버리고 가장 순수한 최소 단위만을 남기라는 숭고한 교육론이었다.
"명심하겠습니다, 교수님!"
루나가 공책을 가슴에 품고 깊게 고개를 숙였다.
"마력을 낭비하는 헛된 공식을 모두 쓰레기처럼 버리고 오직 최소한으로 작동하는 가치만을 연구하겠습니다!"
카이드와 하리도 숭고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헤르만 보조교수는 눈물을 글썽이며 깃펜을 바쁘게 움직였다.
[루드윅 명예교수, 마학의 낭비를 '쓰레기'라 칭하며 최소 작동식의 시대를 선언하다.]
에신은 멍하니 그 꼴을 바라보다가 다시 의자에 털썩 누워버렸다.
'제발... 다들 나 좀 가만히 놔둬라...'
속으로 피눈물을 흘리며 옷자락을 다시 얼굴 위로 덮었지만 이미 늦어 있었다.
루나의 점화 스크롤 소식은 순식간에 본관으로 퍼져나갔고 F-Class 강의동 앞을 메운 청강생들의 인파는 아침보다 두 배로 늘어나고 있었다. 에신이 그토록 바랐던 조용한 안식은 오늘도 저 멀리 아득하게 멀어져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