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의 천재 식물학자

10화: 제국 공인 대식물학 연구실
온실 천장에 맺힌 물방울이 아침 햇살을 받아 파랗게 반짝였다.
보르도액이 마른 엘릭서 릴리 잎은 전날의 붉은 반점을 밀어낸 채 단단한 결을 되찾고 있었다. 로완은 환기창 아래를 한 번 더 훑어본 뒤 손끝에 묻은 푸른 보호막 가루를 털었다.
"숯 상자는 아직 비워 두지 마세요. 바람이 바뀌면 필터가 어느 쪽부터 막히는지도 기록해야 합니다."
한스가 장부에 적던 깃펜을 멈췄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밖에 온 사람들이 심상치 않습니다. 회색 망토를 입은 이들이 여섯이나 왔습니다."
유리문 너머로 낯선 마차가 멈춰 있었다. 문장이 없는 회색 망토와 은빛 측정판을 든 사람들 사이에 알버스 듀란 학장이 서 있었다. 그 곁에는 펠릭스와 실비아 부교수도 보였다.
마지막으로 들어온 온실 감독관은 회복한 화단을 훑어보며 입꼬리를 비틀었다.
"좋은 구경거리군. 병든 온실을 아카데미의 자랑으로 포장하려는 모양이야."
로완은 대답하지 않고 장갑을 벗었다. 학장이 직접 심사관을 데려왔다면 오늘의 목적은 분명했다.
알버스가 재배대 앞에 섰다.
"수도 식물학회와 황실 약초 조달국의 요청으로 임시 공인 심사를 열겠다. 로완 조수가 만든 처방이 한 번의 행운이 아니라 누구나 검증할 수 있는 기술인지 확인하는 자리다."
심사관 중 가장 나이 많은 여인이 은빛 측정판을 펼쳤다. 판 위에는 대식물학자 공인 규정이 빽빽하게 떠올랐다.
"판정은 마나 출력이 아닙니다. 원인을 구분하는가. 타인이 같은 절차를 따라 안전하게 재현할 수 있는가. 그리고 식물과 주변 구획에 더 큰 피해를 남기지 않는가. 세 가지입니다."
감독관이 코웃음을 쳤다.
"말은 그럴듯하지요. 하지만 저 조수의 온실에서 역병이 터졌습니다. 재배소 책임을 맡길 자격이 있는지부터 따져야 합니다."
펠릭스의 눈썹이 꿈틀했다. 실비아가 먼저 차가운 목소리로 받아쳤다.
"외래 포자 투입 흔적은 제가 감측했습니다. 책임을 논하려면 그 증거부터 뒤집으세요."
감독관은 입을 다물었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그렇다면 더 좋습니다. 말이 아니라 결과로 증명하게 하십시오."
로완은 그제야 심사관을 바라봤다.
"받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실패한 처방도 장부에 그대로 남겨야 합니다. 제 방법은 기적을 보이는 일이 아니라 원인을 틀리지 않는 일입니다."
나이 든 심사관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좋은 대답이군요. 심사는 공개 기록으로 진행하겠습니다."
두 명의 심사 보조가 검은 천으로 덮인 나무 상자를 온실 중앙에 내려놓았다. 천이 벗겨지자 축축한 흙 냄새가 퍼졌다.
상자 안에는 어린 달빛 세이지 열두 포트가 들어 있었다. 절반의 잎에는 잎맥을 따라 붉은 갈색 반점이 번졌고 나머지 잎은 힘없이 아래로 처져 있었다.
"어젯밤 외부 격리실에서 옮겨 왔습니다. 마나 주입과 정화 주술은 금지합니다. 두 시간 안에 처방을 결정하고 한 시간 뒤 결과를 감측하겠습니다."
"한 시간 만에 회복을 보이라고요?"
한스가 낮게 숨을 삼켰다.
로완은 포트 하나를 꺼내 들었다. 흙 표면은 젖은 비단처럼 번들거렸고 배수구에서는 탁한 물이 한 방울씩 흘렀다. 그는 룬 메스로 가장자리 흙을 들어 올려 가는 뿌리 하나를 꺼냈다.
뿌리 끝은 희지 않았다. 누런 막이 얇게 붙어 있었고 일부는 손대자마자 끊어졌다.
"잎의 반점은 진균성 잎마름병입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닙니다. 뿌리가 물에 잠겨 산소를 잃었어요. 약한 뿌리 때문에 잎이 더 쉽게 뚫렸습니다."
심사관 한 명이 가까이 다가왔다.
"포자는 룬 병에서 검출됐습니다. 과습도 그만큼 중요한 원인이라는 말입니까?"
"포자가 칼이라면 과습은 문을 열어 둔 일입니다. 포자만 없애도 문이 열린 채면 다음 병이 들어옵니다."
로완은 포트를 세 구획으로 나눴다. 붉은 반점이 잎 절반을 넘은 네 포트는 격리 상자로 옮겼다. 회복 가능성이 있는 여덟 포트는 한스에게 넘겼다.
"병반 잎은 줄기에서 한 마디 아래로 잘라 내고 밀봉하세요. 가위는 포트 하나를 자를 때마다 소독합니다. 흙은 전부 갈지 않습니다. 살아 있는 뿌리가 남은 쪽만 열어서 물길을 만들어야 해요."
한스는 즉시 마른 자갈과 참숯을 꺼내 왔다. 펠릭스는 심사관의 시선을 의식하면서도 말없이 포트 받침을 고였다.
로완은 젖은 흙을 억지로 쥐어짜지 않았다. 포트 옆면에 가는 구멍을 내고 뿌리가 없는 가장자리로 자갈과 숯을 밀어 넣었다. 고인 물이 검은 숯 사이로 빠지자 눅눅하던 냄새가 조금 옅어졌다.
"뿌리를 깨끗하게 씻으면 더 빨리 죽습니다. 지금 필요한 건 소독된 상처가 아니라 숨 쉴 틈입니다."
감독관이 화염 마석을 든 인부를 턱짓으로 불렀다.
"한 시간 안에 변화가 필요하다면서 물길 타령인가. 화염 마석 하나면 흙을 말리고 포자도 태울 수 있다."
인부의 손에서 붉은 열기가 일렁였다. 어린 세이지의 잎이 열기를 느끼자마자 가늘게 떨렸다.
로완이 인부 앞을 가로막았다.
"그 불은 흙 표면만 말립니다. 안쪽의 뿌리는 더 익고 뜨거운 공기는 포자를 천장까지 띄우겠죠. 여기에 남은 건강한 포트까지 전부 병들게 하자는 겁니까?"
"네가 뭘 안다고!"
"적어도 식물이 견디지 못하는 걸 성과라고 부르지는 않습니다."
온실 안이 조용해졌다. 펠릭스가 화염 마석을 똑바로 바라보며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공개 심사라고 했습니다. 심사 규칙에 없는 열풍을 넣을 생각이라면 우리 가문도 이 기록의 공정성부터 문제 삼겠습니다."
감독관의 손등에 핏줄이 솟았다. 그러나 심사관들이 이미 장부에 화염 마석 사용 금지라고 적는 모습에 인부를 물릴 수밖에 없었다.
로완은 환기창 쪽으로 몸을 돌렸다.
"한스, 숯 상자 두 개를 창 아래에 세워요. 펠릭스 생도님은 향이 강한 은잎 민트를 재배소에서 가져와 주십시오."
"민트라고? 그 풀 냄새가 병을 막는단 말인가?"
심사관이 의아하게 물었다.
"병든 잎을 약초 향으로 치료하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바람길을 좁히고 필터를 거치게 하려는 겁니다. 은잎 민트의 향기 성분은 작은 해충이 잎에 붙는 것도 줄여 줍니다. 포자가 다시 날아와도 잎에 오래 머물 환경부터 없애야 합니다."
잠시 뒤 한스가 촘촘한 숯가루를 채운 나무틀을 환기창 틈에 맞췄다. 로완은 창문을 활짝 닫지 않고 손가락 두 마디만큼만 남겼다. 공기는 계속 드나들되 한꺼번에 휘몰아치지 못했다.
펠릭스가 가져온 은잎 민트 화분은 포트 앞쪽에 반달 모양으로 놓였다. 로완은 대지 룬 분무기에 묽은 보르도액을 채운 뒤 잎의 앞면과 뒷면에 안개처럼 뿌렸다.
"구리-석회막은 이미 들어간 균사를 되돌리는 약이 아닙니다. 새 포자의 발아를 막는 방패입니다. 그러니 병든 잎을 먼저 떼어 내고 바람길을 잡은 뒤 써야 합니다."
푸른 물방울이 잎맥 위에 고르게 앉았다. 한스가 만든 배수층 아래에서는 고인 물이 더 이상 받침에 차오르지 않았다.
시간을 재던 모래시계의 마지막 모래가 떨어졌다.
실비아가 수정 감측판을 포트 위로 가져갔다. 검은 반점 주변에서 꿈틀거리던 붉은 마나 파동이 느리게 가라앉았다. 아직 상처 난 잎이 갑자기 푸르게 되살아난 것은 아니었다. 다만 건강한 잎에 새로 떠오르던 미세한 점들이 더 번지지 않았다.
"발아 반응이 멈췄습니다. 필터 앞과 뒤의 포자 밀도도 다릅니다. 창 안쪽은 현저히 낮아요."
실비아의 선언에 심사관들이 차례로 측정판을 들여다봤다.
나이 든 심사관은 배수구 옆의 맑아진 물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완전 회복을 가장하지 않았습니다. 살릴 수 없는 포트는 격리했고 남은 개체에는 피해가 적은 순서로 처방했지요. 그 판단 자체가 재현 가능한 기술입니다."
감독관이 다급하게 끼어들었다.
"그저 흙을 파고 풀을 놓은 것뿐입니다. 그런 하찮은 일을 제국 공인 자격으로 인정할 수는 없습니다. 저자는 귀족도 아니고 정식 마도사도 아닙니다."
알버스 학장이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러니 더 인정해야 합니다. 누구든 배울 수 있는 방식으로 아카데미의 영초를 살렸으니까. 이곳은 혈통을 증명하는 곳이 아니라 살아 있는 것을 지키는 곳이네."
학장은 심사관이 내민 은빛 등록판에 자신의 인장을 찍었다. 실비아가 두 번째 인장을 더했고 마지막으로 심사관들의 빛줄기가 판 위에 겹쳤다.
은빛 글자가 공중에 떠올랐다.
제국 공인 대식물학 연구실. 책임자 로완.
한스가 두 손을 꼭 쥔 채 웃음을 터뜨렸다. 펠릭스는 로완의 어깨를 세게 두드렸다.
"이제 누구도 널 말단 조수라고 부르지 못하겠군. 연구실 책임자라니."
로완은 등록판을 받으면서도 온실 안쪽의 포트를 먼저 바라봤다. 새 잎이 나려면 아직 시간이 필요했다. 공인이라는 글자가 뿌리를 대신 숨 쉬게 해 주지는 않는다.
"자격보다 필요한 건 운영권입니다. 필터 교체와 격리 구획을 허락 없이 막지 못하게 해 주십시오."
"이미 준비해 두었네."
알버스가 두루마리를 내밀었다. 특허 약초 재배소를 제국 공인 대식물학 연구실로 승격한다는 결정과 황실 희귀 약초 공급지 권한이 적혀 있었다. 재료 출입 권한과 감염 구획 긴급 격리 권한도 함께였다.
감독관은 서류를 바라보다가 이를 악물고 밖으로 나갔다. 유리문이 닫힌 뒤에도 그의 구두 소리는 한참 복도에 남았다.
사람들이 심사 상자를 정리할 무렵 펠릭스가 환기창 밑에서 작은 종이 조각 하나를 집어 들었다.
"로완, 이건 뭐지?"
종이에는 짧은 문장과 함께 은색 먹으로 찍힌 문양이 있었다. 휘어진 물길을 세 갈래로 가르는 표식이었다.
로완의 시선이 굳었다. 수호 신목의 배수로에서 건져 낸 은색 봉인 조각에도 바로 그 모양이 있었다.
문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수호 신목 배수 기록을 넘겨라.
실비아가 종이를 받아 감측판 위에 올렸다.
"잉크에 남은 마나가 희미합니다. 하지만 온실에 포자를 뿌린 자의 잔재와는 결이 달라요. 같은 편인지조차 단정할 수 없습니다."
로완은 종이를 천천히 접어 품에 넣었다.
오늘 얻은 권한은 재배소 문을 지키는 데만 쓰이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가 흙속에 감춘 물길과 봉인의 기록을 노리고 있다면 그 기록부터 먼저 찾아야 했다.
"학장님. 연구실 책임자의 자료 열람 권한으로 수호 신목 정원의 출입 장부를 확인하겠습니다. 그리고 온실 방어망도 오늘 안에 완성하죠."
유리 온실 너머로 북쪽 정원의 검은 나뭇가지가 바람에 흔들렸다. 로완은 은빛 등록판을 단단히 쥔 채 그쪽을 바라보았다.